내구도 수리는 낡은 메커닉일까요?

내구도 수리는 낡은 메커닉일까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얼마 전 프로젝트의 몇몇 기능들을 결정하면서 기능 목록에 내구도 감소와 수리 메커닉이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본능적으로 이건 좀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본의로 목록에서 이를 제거했지만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시점에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며칠이 지나는 사이에 왜 내구도 감소와 수리 메커닉이 현대 기준으로 낡았다고 판단했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제가 생각하는 장비 내구도 감소와 수리 메커닉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내구도 수리는 기본 재화 소모처입니다. 장비를 장착하고 몬스터를 사냥함에 따라 장비 내구도가 감소합니다. 내구도가 0이 되면 더이상 대미지가 들어가지 않거나 낮은 대미지만 들어가기 때문에 여기에 비용을 들여 수리해야 합니다. 장비에 따라 내구도가 감소하는 비율을 달리 설정해 장비에 특징을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흔한 방법은 높은 크리티컬 대미지를 주는 장비는 내구도가 빠르게 감소해 이를 운용하는데 높은 비용이 들어 필요할 때만 장착하는 의사결정을 하도록 만드는 식입니다. 또 연속 플레이에 쉬어가는 템포를 만들어 줍니다. 몬스터들이 기본 재화 대신 잡템을 드랍하던 시대에는 인벤토리가 빠르게 가득 찼습니다. 이 때마다 마을에 돌아가 상인에게 잡템을 팔아 기본 재화를 얻고 이참에 장비를 수리하고 포션을 구입하는 등 정비 행동을 했습니다. 내구도 수리는 긴 반복 전투 플레이 도중에 쉬어가는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내구도는 근본적으로 장비를 소모시킵니다. 기본 재화 소모와 비슷한 맥락인데 내구도 감소와 수리를 반복하면서 최대 내구도가 조금씩 줄어드는 메커닉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는 게임 상에서 장비가 서서히 낡아 간다는 내러티브를 제공하고 근본적으로는 게임 상에서 장비가 사라지게 만듭니다. 다른 장비에 비해 전투 효율이 높은 장비가 게임에 등장하도록 만들 수 있는 안전장치 역할도 하고요. 여기에 내구도 보호 메커닉을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장비 내구도가 감소하는 건 플레이어 입장에서 별로 반길만한 일은 아니므로 내구도 감소 확률을 낮춰주는 메커닉을 도입해 여기에 기본 재화나 별도 재화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별도 재화를 요구한다면 이 재화를 독점으로 드랍하는 컨텐츠 플레이를 유도할 수도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내구도 감소 관련 옵션을 도입해 장비 특성을 다채롭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제 고민은 이런 특징들이 현대에도 유효한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게임의 닫힌 경제시스템에 재화 하수구는 필요하지만 캐릭터들 간의 재화순환이 강하게 격리되어 있어 시전 시대만큼 재화 하수구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캐릭터들끼리 직접 아이템을 교환을 허용하던 시대에는 시스템 중 일부에 문제가 생겨 자원이 폭증하면 순식간에 게임 전체로 퍼져 수습하기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직접 교환을 제공하는 대신 거래소를 사용합니다. 모든 교환은 거래소를 통해 익명으로 거래되며 모든 거래에 일정 비율 수수료를 부과해 이전에 비해 훨씬 효율적인 하수구를 운영합니다. 또 시스템 일부에서 자원이 폭증한다 하더라도 자원은 이 결함을 직접 겪은 캐릭터들에게 격리되어 이전만큼 민감하게 하수구를 관리할 필요가 줄어들었습니다.

마을로 돌려보내는 플레이는 유효하지만 내구도가 감소했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주는 이유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많은 아이템을 얻어 인벤토리가 가득찼거나 사냥을 더 안전하게 만들어 주는 포션이 떨어지는 등의 덜 부정적인 이유를 만들었습니다. 또 모바일 게임에는 자동사냥이 도입되면서 멀쩡한 반복 플레이를 중간에 끊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게임에 따라서는 오히려 아이템 분해 기능이 인벤토리에 붙어 있어 일정 시간마다 플레이어의 개입을 요구하기는 하지만 마을에 돌려보내기까지 하지는 않기도 합니다.

장비가 성장하면서 강화에 의해 장비가 깨지거나 상위 장비가 등장해 현재 장비를 대체합니다. 때문에 영구적인 내구도 감소를 통해 장비를 깨지 않아도 장비는 깨지거나 플레이어가 직접 분해합니다. 강화하다가 장비가 깨지거나 손상되는 경험은 부정적이다 못해 파멸적이기는 하지만 장비를 손상시키기만 하는 게임이라면 이를 복구할 메커닉을 제공합니다. 또 더 높은 난이도의 던전을 돌아 상위 장비를 얻으면 현재 장비 성장 수준에 약간 못미치지만 더 많이 성장시킬 수 있게 됩니다. 때문에 현재 장비는 쓸모 없어지고 다음 장비의 성장을 위해 직접 분해해 재료로 사용하게 됩니다. 내구도를 감소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현대에는 이런 장비 성장 메커닉이 주류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굳이 내구도를 도입하거나 내구도를 중복으로 운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비를 스스로 분해해 성장재료로 만드는 세계에서는 내구도를 보호할 필요도 없습니다.

장비 내구도는 같은 장비를 오래 사용하는 게임플레이로부터 나온 운용비용 부과 메커닉입니다. 현대의 장비는 패스트패션처럼 성장시키다가 바꾸는 대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구도는 현대 성장모델 기준으로는 낡았다고 생각합니다.

One thought on “내구도 수리는 낡은 메커닉일까요?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