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자동이동버튼

디아블로 이모탈의 자동이동 인터페이스는 두 곳에 있습니다. 하나는 퀘스트가이드 인터페이스에, 다른 하나는 화면 중앙에 있습니다. 퀘스트가이드 인터페이스를 터치하면 퀘스트의 이번 스텝에 지정된 목적지로 이동합니다. 언제 순간이동하고 언제 걸어가나요?에서 말씀 드린 규칙대로 순간이동하거나 걸어서 이동하는데 순간이동을 시도했지만 뭔가의 이유로 순간이동에 실패하면 바로 이어서 목적지를 향해 걸어서 이동하기 시작하는 동작도 들어있습니다. 화면 중앙의 자동이동 인터페이스는 현재 자동이동 상태를 아려주고 이를 일시정지하거나 재개하는데 사용합니다.

자동퀘스트를 편리하게 진행하는데 집중한 게임들은 자동퀘스트 도중 플레이어가 개입해 조작하더라도 조작을 끝냄과 동시에 즉시 자동퀘스트 동작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자동퀘스트에 의해 필드를 걸어서 이동하는 도중에 누군가 흘려 놓은 골드를 발견했습니다. 자동퀘스트 이동 궤적을 보니 골드를 안 먹고 지나갈 것 같길래 플레이어가 개입해 캐릭터를 수동으로 이동시켜 골드를 먹습니다. 그리고 V패드에서 손을 놓으면 바로 자동퀘스트로 돌아가 갈 길을 따라 이동합니다. 만약 자동퀘스트를 중단하고 아예 다른 행동을 하고 싶다면 명시적으로 퀘스트가이드 인터페이스를 터치해 자동퀘스트를 중단해야 합니다.

디아블로 이모탈에서는 이를 수동으로 제어하게 해놨습니다. 자동퀘스트 진행 중 이동이나 전투 조작을 입력하면 자동퀘스트가 중단되며 화면 중앙에 이 상태를 표시해 줍니다. 같은 상황에서 골드를 먹기 위해 수동으로 이동 조작을 입력해 골드를 먹고 손을 떼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자동퀘스트를 계속하려면 화면 중앙의 자동이동 버튼을 터치하면 됩니다. 퀘스트가이드 인터페이스를 터치할 수도 있긴 한데 자동퀘스트가 일시정지된 상태에서는 화면 중앙에 자동이동 재개 버튼이 있지만 이 때 퀘스트가이드는 자동퀘스트가 켜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자동퀘스트를 계속할 생각으로 퀘스트가이드를 터치하면 자동퀘스트가 꺼지고 한번 더 터치해야 자동퀘스트거 켜집니다.

자동퀘스트 재개 버튼이 화면 중앙에 있기 때문에 캐릭터나 전투 장면을 가릴 수 있습니다. 자동퀘스트 도중 길을 막는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 전투조작을 입력하면 자동퀘스트가 일시정지되는데 이 상태가 화면 중앙에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수동전투를 강제하는 장르라고 부르기 좀 민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자동이동 재개 인터페이스는 수동전투나 수동이동이 시작되면 똑똑하게 사라져 줍니다. 그러다가 전투 상황이 끝나고 이동을 시작하거나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으면 다시 납니다. 또한 이 인터페이스의 흥미로운 점은 희미해지거나 화면에서 사라진 상태일 때도 똑같이 조작할 수 있는 점입니다. 전투를 시작해서 인터페이스가 화면에서 완전히 사라진 상태여도 버튼이 있던 지점을 터치하면 버튼이 눌립니다. 그래서 퀘스트가이드 상으로 자동퀘스트가 켜진 상태일 때 전투 상태이든 아니든 아무때나 화면을 가리지 않고 버튼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자동퀘스트 재개 버튼을 다른 장소에 배치했으면 이렇게 할 필요가 없었을텐데 이들은 이 자리가 목표를 달성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한 스텝에 목표가 여러 개인 퀘스트에 대한 의견

퀘스트 한 스텝에 목표 여러 개를 넣을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스텝 하나에는 목표 하나만 넣을 수 있게 할 것인가. 제 기준에서는 결정하기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이전에 참여했던 한 프로젝트는 처음에 이런 시스템을 단순하게 만들어 빠르게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시장은 항상 성공적인 한 장르가 출시되면 이후 몇 년에 걸쳐 비슷한 게임들이 범람하고 그들 중에는 또 다른 성공하는 게임이 나오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장르 자체에 대한 피로가 쌓여 장르 자체의 수명이 끝나게 됩니다. 이 장르가 다시 시장에서 유효한 수명을 되찾는데까지는 다시 몇 년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두주자가 아니었던 우리는 플레이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 같은 복잡한 기능을 배제하고 뭐든 단순하게 만들기로 했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퀘스트 한 스텝에는 목표를 하나만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게임의 방향이 변했습니다. 단순하고 빠르게 만들어 출시하자는 목표에서 출시가 늦어져도 좋으니 최대한 다채롭게 만들고 이로 인한 복잡도를 감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변경이 일어났는데 그 중 하나는 퀘스트의 스텝 하나에 동시 진행할 수 있는 목표 여러 개를 넣을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퀘스트 데이터가 상당히 복잡해지고 관리하기 어렵게 되기도 하고 또 동시에 여러 목표를 수행하는 자동퀘스트를 만들기 까다로울 거라고 예상해 개인적으로 반대했습니다. 단일 퀘스트 스텝에서 늑대 열 마리를 잡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 것과 늑대 열 마리와 오크 네 마리를 잡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 경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자동퀘스트에 의해 진행되면 그냥 캐릭터가 주변의 몬스터를 공격하고 있을 뿐 이것이 동시에 늑대와 오크를 섞어서 잡고 있는 상태가 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한 스텝에 여러 목표를 수행하도록 하기로 결정해 개발을 진행했씁니다. 퀘스트 데이터를 엑셀에 입력하고 있었는데 한 스텝에 여러 목표를 수행하게 만들기 위해 그렇잖아도 복잡한 엑셀 퀘스트 데이터는 이전보다 훨씬 더 관리하기 어려운 모양으로 바뀌었습니다. 가로로 길게 펼쳐진 수많은 칼럼들은 모니터 두 대에 걸쳐 엑셀을 띄워도 한 번에 모든 칼럼을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자동퀘스트 입장에서도 상당히 복잡해졌고 또 여러 예외 상황을 정의해야 했습니다. 또 여기에 맞춰 몬스터 배치도 수정되었는데 기존에는 늑대만 깔려 있던 필드에 이제 오크를 섞어서 배치하는 식이었습니다.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이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기존에 배치된 몬스터를 모두 제거하고 그 자리에 몬스터를 섞어서 배치해야 했는데 손이 상당히 많이 가는 일이었습니다. 이 모든 작업에 몇 주를 써야 했고 그 사이에 게임은 정상 동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거친 결과를 보고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동퀘스트를 하는 내 캐릭터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불타는 마을에서 몬스터를 처치하고 사람들을 구출하는 퀘스트를 진행하며 내 캐릭터가 한번에 몬스터를 몰아서 잡고 몬스터를 다 잡고 나서 사람들을 몰아서 구하는 대신 몬스터를 처치하는 사이사이에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가가서 구하고 또 몬스터가 다가오면 전투를 계속했습니다. 자동전투에 의해 이 그림이 꽤 그럴싸해 보였고 또 몬스터만 몰아서 잡는데 비해 다채로워 보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사이에 사람들이 도망칠 길을 가로막은 장애물을 파괴하기도 하고 또 바로 뒤로 돌아 몰려오는 몬스터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같은 결정을 다시 한다면 많이 고민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멋진 게임을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비용과 시간 제한 안에서 게임을 만들어 출시해야만 합니다. 이 제한 안에서 개발하기 위해 시스템의 복잡도를 제한해야 하는데 복잡도 제한과 더 나은 게임을 개발하는 목표 사이에 어느 한 쪽을 쉽게 선택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이 한 스텝에 여러 목표를 동시에 진행하는 사례는 단순히 늑대와 오크를 섞어 잡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묻던 제 자신의 상상력 부족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룰렛 이벤트

한동안 디아블로 이모탈을 플레이 하며 게임 시작할 때 경험이 경쾌해서 좋다고 생각하기만 하고 이유를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업데이트 후 이벤트가 시작되면서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게임을 시작할 때 이벤트 팝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디아블로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났는데도 이런 이벤트를 아직까지 안 해 왔다는 사실에 오히려 고개를 기웃거리게 됩니다. 아니. 모바일 게임이 이벤트 부스팅 없이 서비스를 했다고? 아마 어른들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이런 이벤트는 매출과 리텐션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칼자루 주화 상인은 무슨 역할을 하나요?에서 설명한 대로 이미 인게임에도 고문서에 기반한 메타 플레이에 보상하는 장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기간에 따라 행동의 종류와 양, 이에 따른 보상량을 조절하기 조금 어렵습니다. 지금 이 문장을 타이핑하며 생각해보니 근미래의 이벤트 시스템은 인게임 업적과 더 잘 통합된 모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건 다음에 이야기 하기로 하겠습니다. 고문서만으로는 지표의 변화에 따라 행동을 유도하거나 보상을 집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기간을 포함한 이벤트를 운용합니다. 게임을 개발할 때 고문서로는 할 수 없는 수준의 보상도 이벤트를 통해서는 할 수 있습니다. 기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바일 게임에 흔히 사용되는 이벤트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룰렛 이벤트라고 부릅니다. 이름에 맞춰 정말 둥글게 만들기도 하는데 둥근 룰렛이 돌아가는 모양을 각 게임 엔진에서 구현하기 위해 약간 귀찮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게임에 따라서는 실제로 룰렛 판을 돌리는 대신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연출만 재생하기도 하는데 대충 봐서는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룰렛에는 여러 보상이 나열되어 있고 룰렛을 돌리는데 재화가 필요합니다. 이 사례에서는 ‘굶주린 달’이라는 재화를 요구하는데 이 재화의 핵심은 이벤트에만 사용되는 별도 재화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벤트 재화는 이벤트에서만 사용하며 회사마다 집행 정책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같은 이벤트에서만 통용됩니다. 때문에 굶주린 달 재화는 굶주린 달 이벤트가 끝날 때 까지 전부 소진해야 합니다. 게임에 따라서는 남은 이벤트 재화를 소진하는 별도 이벤트를 열기도 합니다.

재화를 내고 룰렛을 돌려 보상을 얻는데 룰렛 상에 표시된 보상은 한 번 얻으면 다시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룰렛 상에 원하는 아이템이 있고 이를 초반에 얻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이벤트에 참여함에 따라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집니다. 원하는 아이템을 처음에 얻었더라도 룰렛 상의 모든 보상을 얻고 난 다음에는 ‘달의 은총’이라는 보상을 얻을 수 있어 룰렛 이벤트에 계속해서 참여할 동기가 됩니다. 게임에 따라서는 룰렛의 각 칸마다 서로 다른 확률을 지정하고 이 확률을 공유하거나 같은 보상을 계속해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정책의 차이는 이벤트를 통해 의도한 결과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벤트의 핵심은 고문서와 비슷한 시스템을 기간 한정으로 집행하며 별도 재화를 사용한 메타 플레이에 추가 보상을 지급하는 것입니다. 이미 게임을 이해한 플레이어들은 이 이벤트가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점에서 판매하는 상품 가격을 기반으로 이 이벤트의 시간 대비 비용 효율을 계산해낼 수도 있는데 운용 주체는 이미 계산을 마쳐 이 이벤트가 얼마 짜리 이벤트인지 알고 있는 상태로 이벤트를 시작합니다.

왜 던전 안에서는 퀘스트 시스템이 달라지나요?

디아블로 이모탈을 플레이하면서 인스턴스 던전이나 1인 스토리 던전에 진입할 때 퀘스트 인터페이스가 바뀌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이런 퀘스트 시스템은 처음 설계할 때 특별한 요구사항이 없다면 게임 전체에 호환되도록 만듭니다. 퀘스트 시스템은 개발에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가 특히 현대의 자동퀘스트는 이전보다 훨씬 더 까다롭기 때문에 굳이 시스템을 여러 벌 만들거나 인터페이스를 달리 설계할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는 던전 안에서 퀘스트는 퀘스트인데 던전 밖에서 사용하던 퀘스트 인터페이스와는 다른 인터페이스가 나타납니다. 왜 이런 결정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던전 안에서는 던전 밖에서 볼 수 있는 퀘스트 중 일부를 표시하기 어렵습니다. 표시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표시할 때 비용이 큽니다. 가령 메인퀘스트나 정해진 장소에서만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를 던전 안에서 표시하면 자동퀘스트 시스템과 묶여 동작을 정의하기 어렵게 됩니다. 특히 정해진 장소에서만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는 퀘스트가이드를 터치할 때 지정된 장소로 걸어서 이동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그런데 던전 바깥에서는 목적지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로 연결되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인스턴스 던전 대부분은 던전 바깥과 걸어서 이동할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퀘스트가이드를 터치해도 목적지로 이동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전에 설명한 순간이동 여부를 결정하는 규칙에 따라 순간이동할 수도 있긴 합니다. 그러면 현재 진행 중인 던전을 중단시켜야 합니다. 별 생각 없이 화면에 표시된 퀘스트가이드를 터치했을 뿐인데 던전 플레이를 중단할 지를 물으면 좀 뜬금없을 겁니다. 게다가 위험하죠.

현대의 인스턴스 던전 세션은 그리 길지 않으므로 던전 플레이에 집중시켜야 합니다 지금 눈앞에서 미친 왕의 비밀이 밝혀지려고 하고 있는 순간에 다른 필드에 몬스터 30마리를 처치할 목표가 나타나 있어 봐야 쓸모가 없습니다. 집중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잘못 조작할 수도 있습니다. 던전에 집중하는 동안 잠깐 화면에서 치워 놔도 플레이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종종 하지만 분명 퀘스트가 있었는데 던전에 들어오니 퀘스트가 없어지는 것은 이상하다고 주장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던전 플레이에 집중시키는 목표가 퀘스트 인터페이스를 덜 이상해 보이도록 하는 목표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물론 상대가 의견을 굽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위 스크린샷 같은 모양으로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던전에 들어오면 내부는 이전의 퀘스트 시스템과 똑같지만 인터페이스만 다르게 표시하는 겁니다. 이건 퀘스트 처럼 보이긴 하지만 기존 퀘스트 인터페이스는 아닙니다. 던전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타나던 메인퀘스트가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달라진 인터페이스를 통해 메인퀘스트가 나타난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네요. 던전 안에서는 이 표현만 다른 퀘스트 인터페이스를 통해 던전 안에서 수행할 퀘스트만 표시에 던전 플레이에 집중시키고 던전 안에서 던전 밖을 대상으로 한 퀘스트를 조작하려고 할 때 일어나는 온갖 오동작과 필요 없는 동작을 정의하는데 필요한 수고를 없앨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던전 안에서 던전 밖과 다른 퀘스트 인터페이스를 사용합니다. 걱정 마세요. 던전 밖에 나가면 내가 플레이하던 퀘스트가 모두 안전하게 다시 나타날 겁니다.

왜 던전 안에서는 월드맵에서 다른 지역을 볼 수 없나요?

인스턴스 던전 안에서 월드맵을 볼 수 없는 이유를 궁금해한 적이 있나요? 아니면 던전 플레이에 집중하느라 월드맵이 없거나 제한적인 상태 자체에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한번은 월드맵을 만들 때 비슷한 문제에 부딪친 적이 있습니다. 월드맵에 다양한 기능을 넣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월드맵은 던전 안에서도 볼 수 있어야 했는데 던전 안에서 월드맵을 여는 순간 온갖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보통은 이 온갖 이상한 일을 회피하기 위해 던전 안에서는 월드맵에 접근할 수 없게 합니다. 오늘은 던전 안에서는 왜 월드맵을 볼 수 없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스턴스 던전은 세계를 구축하는 입장에서 꽤 특이한 장소입니다. 분명 이 게임을 구성하는 세계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자연스럽게 걸어서 이동할 수 없는 장소에 있어 종종 월드맵에 대응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월드맵은 이 세계를 보여주는데 어떤 인스턴스 던전은 월드맵에 없는 천국이나 지옥을 배경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또 같은 공간이 동시에 여러 개 있을 수 있습니다. 한 파티가 퍼시스턴트 월드에 있다면 이들이 월드맵 상 한 장소에 있다고 자연스럽게 표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같은 인스턴스 던전의 서로 다른 인스턴스에 들어가 있다면 평소에는 월드맵 상에 파티를 함께 보여주는 규칙이 있더라도 이들이 같은 장소에 있다고 표시하기는 뭔가 불편합니다. 이들은 월드맵 상 같은 장소에 있지만 서로를 볼 수는 없습니다.

여느 필드와 달리 인스턴스 던전은 공간이 만들어진 이유와 공간의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 공간은 플레이어의 진행에 따른 요청에 의해 만들어지고 공간 안에서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보통은 보스를 처치하거나 던전 끝에 도달하는 겁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공간은 더이상 쓸모없어지고 모든 플레이어캐릭터들이 던전을 나가거나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던전을 닫습니다. 현대에 가까울수록 던전 세션은 점점 짧아졌습니다. 던전 세션이 지금보다 훨씬 길던 시대에는 타운 포탈 같은 장치로 던전 플레이 중 마을에 돌아가 재정비하고 돌아오는 플레이를 허용했지만 던전 세션이 짧아지고 또 F2P 모델이 도입되면서 던전 플레이 도중 던전 밖에 나가 재정비하는 플레이를 허용하지 않게 됐습니다. 또 던전이 플레이어들에게 좀 더 기억에 남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연출들을 도입하면서 던전을 중간에 멈추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월드맵은 이동 기능을 포함합니다.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지역을 보여주고 플레이어캐릭터의 현재 진행상황이 허용하는 한 보이는 여러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 기능이 현대의 인스턴스 던전과 충돌합니다. 인스턴스 던전 세션은 목표를 달성하거나 던전 플레이를 중단하기 전까지는 나갈 수가 없습니다. 던전 세션이 짧아지고 F2P 모델이 도입된 이유도 있고 연출에 의한 환경변화로 인해 던전 플레이를 잠시 멈추고 던전 밖에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기능의 효과에 비해 개발팀이 치러야 하는 댓가가 너무 큽니다. 때문에 던전에서 나가는 방법은 명시적으로 ‘나가기’ 메뉴를 선택하는 것 뿐인데 만약 월드맵을 열 수 있게 하면 월드맵에 있는 이동 기능을 통해 던전을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월드맵의 이동 기능을 사용하려고 하면 ‘이 이동에 의해 던전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동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유효한 방법이지만 좋은 디자인은 아닙니다. 던전을 종료시키는 파괴적 행동을 수행하기 전에 확인하는 것 까지는 좋지만 파괴적 행동을 수행하는 경로는 하나여야 합니다. 던전 안에서 던전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행동은 던전을 깨게 됩니다. 그러면 이동에 의한 부수적인 효과로 던전을 깨기보다는 먼저 플레이어가 스스로 던전을 깬 다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게 하는 편이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대략 이런 배경 때문에 던전 안에서는 월드맵을 볼 수 없습니다. 게임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처리합니다. 어떤 게임은 월드맵 버튼을 터치하면 ‘던전에서는 월드맵을 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조용히 던전맵만 보여주기도 합니다. 전에는 월드맵에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바람에 던전 안에서도 월드맵을 보여줘야만 하는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고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다시 설계한다면 월드맵과 월드맵에서 제공할 다양한 기능을 서로 분리하고 던전 안에서는 월드맵을 제공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