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글쓰기 회고
꽤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글을 못 쓰는 병’이라고 부르던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뭔가 머릿속에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지만 그걸 타이핑해서 글로 만들려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도무지 아무 것도 쓸 수 없었습니다. 처음 이런 상태를 인식한 것은 2011년이었는데 일할 때 외에는 개인적인 글을 전혀 쓸 수가 없었고 또 이전에 썼던 모든 글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글을 안 쓴다면 굳이 비싼 호스팅 비용을 낼 필요가 없겠다 싶어 깃헙 페이지로 옮긴 적이 있는데 글보다는 글을 올리는 환경에 정신이 팔려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글 쓰는 문턱을 낮추면 도움이 될까 싶어 굳이 글 제목을 쓸 필요 없고 또 호스팅에 신경 꺼도 되는 텀블러로 이전해봤는데 여전히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전을 여러 번 거치면서 이전에 쌓은 글 전부를 웹에서 날려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 상태가 호전되어 글을 얼마간 쓸 수 있게 됐다가 또 다시 전혀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제 시간에 출근하고 제 시간에 퇴근하며 규칙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이면서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이전보다 생각을 글로 더 잘 옮길 수 있다는 점을 느끼면서 언제 또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글을 못 쓰는 병에 대비해 뭐라도 쓸 수 있을 때 최대한 써 두기로 합니다.
2022년에는 지난 7월 첫 주 월요일부터 매일 아무 글이라도 하나 씩 트위터를 통해 공유하는 실험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규칙은 평소에 글 쓸 거리를 메모해 놓고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다가 주말에 한번에 길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 중에 하던 생각을 글로 옮긴 다음 주 중에 글이 차례로 하루에 하나 씩 공유되도록 예약을 걸어 놓는 것입니다. 주말에 공유되지 않도록 한 이유는 설마 주말에 트위터에 올라온 긴 글 링크를 읽을 사람이 있겠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실은 주말 뿐 아니라 주 중에도 트위터에 긴 글 링크를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정한 규칙을 딱히 바꿀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대로 뒀습니다.
처음에는 한 주 정도 시차를 두고 글을 공유했습니다. 글 쓸 거리가 부족할 때를 대비해 매 달 첫 주에 그 전 달에 쓴 글을 요약하는 글을 따로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이전에 한 생각을 다시 한 번 끄집어내 기억해 두려는 목적과 매일 다른 글 쓸 거리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글 쓸 거리가 늘어났고 공유하기 전에 쌓아 놓은 글 역시 늘어나면서 굳이 월 초에 이전 달 글을 들먹이며 정리하는 글을 작성할 필요가 없어져 석 달 동안 해본 다음 그만뒀습니다. 또 글을 쓰는 시점과 글을 공유하는 시점 사이에 시차가 점점 늘어나 지금은 거의 6개월 정도 차이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글을 쓴 다음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살다가 몇 달 만에 내 트위터 타임라인을 통해 다시 마주치면 완전히 생소한 느낌을 받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것처럼 내 글을 읽고 그때서야 보이는 오타, 이상한 내용,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은 주장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위키 스타일로 글을 유지보수한다면 이런 걸 발견할 때 원래 글을 수정해야 하지만 이럴 때마다 같은 주제로 새로운 글을 만들었습니다. 이 글은 다시 몇 달 후에 타임라인에 나타날 테고 같은 생소함을 느끼며 같은 개선 과정을 반복할 것을 기대하는 중입니다. 또 시간이 흐르며 몇 달에 한 번씩 비슷한 주제를 다시 생각해 보고 조금씩 생각을 바꾸거나 개선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롤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생각과 비슷하게 동작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글을 쓸 때는 주제를 생각한 다음 준비가 됐다고 느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쭉 적어 내려 갔습니다.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이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을 설명하는 느낌으로 타이핑 하곤 했는데 이 방법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다가 잠시 생각을 삐끗 하는 순간 글을 쓰던 흐름이 깨졌고 쓰던 글을 다시 이어 갈 수 없었습니다. 흐름이 깨지면 글을 다 지운 다음 다시 준비됐을 때 처음부터 시작했는데 이런 방식 때문에 글을 끝 맺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이전에 생각의 멱살에 설명한 도통 생각을 붙들어 둘 수 없는 상태 때문에 여러 번 시도한 끝에 글 하나를 끝까지 쓸 수 있었는데 무척 소모적이었습니다.
한 주에 다섯 번 무슨 글이든 공유하려면 이런 소모적인 상태를 개선해야 했는데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적어 내려가는 대신 생각의 요점만 적으며 블릿포인트를 사용해 요점을 문단 별로 구분한 다음 이 메모를 온전한 문장으로 바꿔 글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머릿속으로는 온전한 문장으로 설명하면서 이를 음슴체로 타이핑하는 행동이 너무 생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써도 나중에 온전한 문장으로 바꿀 수 있게 됐고 특히 한 호흡에 글을 써야만 하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쓰다 말고 버리는 글이 없어졌습니다.
글을 버리지 않게 됐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 호흡으로 끝까지 쓸 때는 글 전체가 한 호흡에 끝낼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어 내 머릿 속 호흡이 가빠질 때에 맞춰 한 문단 쉬어가거나 설명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느낌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글을 쓸 때는 잘 모르지만 몇 달 뒤 타임라인을 통해 다시 만난 같은 글은 울퉁불퉁하고 중간에 갑자기 이야기하는 톤이 바뀌어 마치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이전처럼 한 호흡에 몰아 쓰는 방식 보다는 지금처럼 일단 글을 끝까지 써내는 데 집중하고 글을 개선하는 건 몇 달 뒤에 타임라인을 통헤 마주칠 때 하기로 했습니다.
결과 숫자만 따지면 지난 7월 4일 월요일부터 12월 30일 금요일까지 약 130개 정도 글을 공유할 수 있었고 2000년대 초에 블로그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이후로는 한 해 동안 뭔가를 가장 많이 쓴 한해였습니다. 뭘 많이 써낼 수 있는 것 자체는 별 의미가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글을 못 쓰는 병을 겪던 상태를 벗어난 의미는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상태와 체계를 유지해 지금 당장은 나중에 읽으면 어이 없는 글을 만들더라도 그냥 두고 시간이 지나 같은 글을 생소한 상태로 다시 읽으며 개선해 나가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오직 내 자신을 위해서 글을 썼고 이런 글들은 온라인 상에 공개되어 있을 뿐 나를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참고해 도움이 될 만 한 글이나 그런 글 주제는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볼 작정입니다. 물론 이런 고민은 내년으로 미루고 오늘은 평소 주말처럼 또 이런 저런 주제로 글을 만들어 놓을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