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만회하는 방식의 차이
2020년, 2021년에는 듀오링고를 열심히 했습니다. 출근하는 동안, 퇴근하는 동안에 빈 시간을 때우기에 적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죽어라 헛갈리던 관사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과 정관사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을 어느 정도는 감각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보기에는 맞을 것 같은 답이 틀렸다며 납득이 잘 안 되는 문제를 지적하거나 소리를 내 직접 말할 기회가 거의 없어 장기적으로는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년 연속 기록을 세우고 나서 그만뒀습니다. 솔직히 부엉이가 밤길에 내 뒤에서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밤길을 뒤쫓을 다른 사람이 많아서인지 내 뒤에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2022년에는 1월 1일에 스픽이라는 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전 듀오링고로부터 말할 기회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예 말을 집중적으로 시키는 앱이라길래 깊이 고민하지 않고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이전에 비해 확실히 말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또한 내 발음을 들은 기계가 문장에 녹색 줄을 치며 ‘맞는 걸로 쳐 주긴 하는데 정확한 발음은 아니었어’라고 평가하는 것을 피하려고 더 잘 발음하려고 노력하면서 이전에 비해 정확도를 유지하면서도 너무 느리지 않게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반면 문장의 구조를 익히거나 규칙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에는 예문이 부족합니다. 영상을 보며 주요 문장을 익힌 다음 예문을 반복 학습하는데 예문은 영상에서 가르쳐 준 구성을 전혀 벗어나지 않으며 예문에서 제시하는 단어들 역시 다양하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이제 곧 1년 계약 기간이 끝나는데 컨텐츠가 충분하지 않아 내년에는 어떻게 할 지 고민 중입니다.
그건 그렇고 듀오링고와 스픽을 사용하면서 연속 학습 기록을 유지하는 규칙을 생각해봤습니다. 연속 학습은 매일 매일 앱을 실행해 유효한 학습을 반복할 때마다 일 수가 올라가며 계속해서 학습 습관을 유지하도록 이끌어주는 장치입니다. 연속 학습을 유지한다고 해서 딱히 이익은 없습니다. 다만 숫자가 올라감에 따라 기분이 좋아집니다. 반대로 연속 학습 유지에 실패할 때 이전에 그 숫자가 몇이었느냐에 따라 느끼는 상실감의 차이는 큽니다.
듀오링고는 학습을 마칠 때마다 인게임 재화를 얻어 부엉이를 꾸밀 옷을 사거나 연속 학습이 끊길 때 이를 이어주는 아이템을 살 수 있습니다. 아이템을 한번에 세 개 까지 사 둘 수 있는데 본의 아니게 학습을 빼 먹은 날 이 아이템을 사용해 그동안 힘들게 유지해 온 연속 학습 기록이 작은 실수로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하지 않도록 해 줍니다. 듀오링고를 매일 한 2년 동안 아이템을 두 번 사용해 연속 학습 기록을 유지했습니다. 만약 이 아이템이 없었다면 크게 상심했을 겁니다.
이런 장치는 왜 어제 놓친 현상금 사냥을 오늘 할 수 있나요?에서 다룬 이야기와 비슷한 사례입니다. 매일 계속해서 앱을 사용하는 습관을 만들기에 ‘연속 기록’은 좋은 방법이지만 반대로 이 기록이 깨져 손해를 볼 때 느끼는 상실감은 좋지 않습니다. 디아블로 이모탈에서 어제 놓친 현상금 사냥 횟수를 오늘 이어서 할 수 있는 장치나 듀오링고에서 아이템을 사용해 연속 학습 기록을 유지하는 기능은 서로 같은 역할을 합니다.
반면 스픽은 연속 학습 규칙이 가혹하고 또 헛갈리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스픽 역시 매일 학습하면 연속 학습 기록을 올릴 수 있습니다. 2022년에는 1월 1일부터 첫 100일 연속 학습을 하면 티셔츠를 주는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받으려고 열심히 했는데 97일째 실패했습니다. 96일째 되던 날 지방 브레베에 나갔다가 밤 늦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집에 가자마자 스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집에 돌아오니 너무 피곤해 바닥에 누워 있는 사이에 자정이 지났고 0시 21분에 생각나서 앱을 켰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스픽 역시 사람이 만든 물건이라 이런 잠깐의 실수를 만회할 방법을 제공했습니다. 연속 학습이 끊긴 다음 날 안에 연속으로 학습 두 개를 진행하면 연속 학습을 연결해 줍니다. 그런데 이 규칙은 어제 학습을 빼먹은 상태에서 오늘 학습 두 개를 연달아 하면 어제 빼먹은 학습 기록을 복구해주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이 상태에서 가만 두면 오늘 학습을 빼 먹게 됩니다. 그래서 97일째 새벽에 학습 두 번을 한 다음 마음을 놓고 있다가 98일째 0시가 넘어 다시 스픽 앱을 열었더니 자랑스럽게 1일 연속 학습이 떠 있었고 더이상 복구할 수 없었습니다.
상당히 상심했습니다. 별다른 방법 없이 다시 1일부터 시작했고 이번에는 100일을 넘겼지만 이후 다른 일 때문에 또 한번 연속 학습이 깨졌습니다. 스픽의 인정사정 없는 규칙은 0시가 되기 전에 학습을 시작했더라도 학습이 끝나는 시점이 다음날이면 연속 학습에 실패합니다. 덕분에 사실상 2022년의 모든 날에 학습했지만 현재 연속 학습 기록은 아직 100일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별 일 없다면 2022년 동안 100일 연속을 다시 한 번 달성할 수 있겠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연속 수행 장치는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게 만드는 좋은 장치입니다. 연속 학습 일수가 올라감에 따라 실수할 때 댓가가 크기 때문에 더 신경 써서 습관을 만들게 됩니다. 스픽은 매일 할 일에 자동으로 나타나 정말 여간해서는 빼 먹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수로 연속 수행이 끊겼을 때 이를 복구할 간단하고 관대한 규칙을 제공하지 않으면 반대로 너무 큰 상실감을 느껴 습관을 계속할 동력을 상실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핵심은 큰 패널티를 통해 연속 수행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경각심을 가지고 연속 수행을 유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듀오링고와 디아블로 이모탈 사례는 간단하고 관대한 규칙을 통해 연속 수행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반면 스픽은 실수를 만회할 규칙이 모호하고 연속 수행 규칙이 관대하지 않습니다. 큰 상심에도 불구하고 올해 내내 매일 앱을 사용해 왔지만 이 앱은 잘못된 패널티 사례로 언급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