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 게임에 사용할 토큰 체계를 설계할 때 가질 마음가짐
요즘 개인적으로 고민하는 주제는 크립토 게임 프로젝트에 어떤 토큰을 사용하도록 설계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입니다. 크립토 게임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P2W 게임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몇 십 년에 걸쳐 산전수전 다 겪으며 성숙한 전통적인 게임과 달리 크립토 게임은 아직 산전수전 겪어 가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아직 어떤 방법이 더 나은지, 또는 올바른지 알 수 없습니다. 러그풀을 비롯해 온갖 실패 사례들이 누적되는 중입니다.
잘 알려진 나름 전통적인 크립토 게임 프로젝트는 두 가지 토큰을 사용하곤 합니다. 이들은 흔히 유틸리티 토큰과 거버넌스 토큰으로 나누는데 유틸리티 토큰은 이를 그대로 서비스 내 유틸리티를 구매하는데 사용합니다. 거버넌스 토큰은 주로 서비스 외부의 의사결정에 관여하는데 사용하고요. 이런 화폐 구분이 처음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최초에 이런 모델을 도입한 프로젝트의 커뮤니티에 접근해 봐도 뚜렷한 의사결정 과정을 찾아내기는 어려웠습니다.
종종 전통적인 P2W 게임의 골드와 다이어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P2W 게임에서 골드는 인게임 재화, 다이아는 유료 재화로 유틸리티 토큰과 거버넌스 토큰에 비유하기에는 생성 경로와 인게임 소비 경로 및 목적이 완전히 다릅니다. 초기 크립토 프로젝트들은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덜 중앙화 되었고 또 일단 기록된 부분에 한해서는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동작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블록체인 기술이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 추측에 기반해 개인적으로는 크립토 게임이 흔히 사용하는 두 가지 토큰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의 연장에서 게임 서비스에서 일어나는 경제적, 정치적인 문제를 구분해 토큰 모양으로 해결하려는 희망으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이상의 토큰을 채용한 크립토 게임 프로젝트는 화폐와 주식의 관계로 이해하면 거의 비슷합니다. 유틸리티 토큰은 실제 세계나 전통적인 게임의 경제활동을 영위하는데 사용합니다. 실제 세계의 화폐와 똑같이 동작하므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거버넌스 토큰은 일종의 주식 개념에 가까운데 법정화폐로 교환한 다음 주식의 비율만큼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한을 얻습니다.
크립토 게임 서비스를 설계할 때 이를 두 가지 토큰으로 받아들이면 게임 프로젝트의 지향을 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게임 프로젝트와 크립토 게임 프로젝트가 가장 다른 점은 프로젝트 수립과 개발 단계에서부터 덜 중앙화된 커뮤니티에 기반한 개발 비용 마련과 의사결정에 있습니다. 서비스를 런칭해 고객을 만나기 전까지 제한된 인원의 의사결정을 통한 위험성을 스스로 감당하는 대신 초기 단계에서부터 덜 중앙화된 인원들을 의사결정에 포함시켜 위험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위험을 관리하고 그 댓가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주체들에게 경제적, 정치적으로 보상해야 하는데 전통적인 크립토 프로젝트에서 이 단계의 정치적 보상이 거버넌스 토큰으로 이어집니다.
전통적으로 거버넌스 토큰은 인게임 활동으로 획득할 수 없도록 설계하기 때문에 인게임 경제활동과 아웃게임 정치활동이 분리되는데 이 때문에 경제 주체와 정치 주체가 서로 쉽게 구분됩니다. 실제 세계에서는 서비스 사용자와 회사의 주식을 가진 투자자가 서로 분리된 상태가 당연하지만 블록체인에 기반한 크립토 프로젝트의 지향은 이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발을 시작하면서부터 의사결정을 분산시켜 위험을 관리해 서비스를 런칭하면 이 댓가를 커뮤니티에 지불해야 하는데 커뮤니티의 서비스에 대한 전문성을 유지 시키려면 인게임 경제활동과 아웃게임 정치활동 주체가 서로 분리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또한 이것이 실제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Multi-Token Games Are Trouble’에서 유틸리티 토큰과 거버넌스 토큰을 분리한 결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개발팀이나 투자자와 나머지 인원들을 카스트화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실제 세계나 전통적인 게임 프로젝트는 그렇게 진행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크립토 프로젝트로써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초기 크립토 프로젝트가 경제와 정치 문제를 모두 블록체인에 기반한 덜 중앙화된 공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 단계를 지나 현실적으로 보상하고 이들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는 접근을 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