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유틸리티 토큰 모델
원토큰 모델이나 투토큰 모델은 한동안 크립토 게임 - 일반적으로 웹3 게임이라고 표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용어가 게임의 특징을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므로 크립토 게임이라고 부르겠음 - 경제시스템 또는 토크노믹스를 설계하는데 꽤 큰 화두가 되어 왔습니다. 이른바 노토큰 모델이라는 꽤 선정적인 용어를 사용한 모델을 제안하는 트윗('1 token model? 2 token model? How about a no token model for web3 games!')을 보고 전통적인 게임을 설계했던 사람 입장에서 노토큰 모델을 해석해 보고 실은 이것이 가칭 멀티 유틸리티 토큰 모델에 더 가깝다는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액시인피니티 이후 별 생각 없이 게임 프로젝트에 블록체인에 직접 연동된 두 가지 토큰을 만들고 이들을 각각 유틸리티 토큰과 거버넌스 토큰으로 사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방식은 이미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가 있으므로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깊이 생각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게임에 몇 가지 토큰을 연동하느냐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블록체인에 직접 연동되는 토큰을 인게임에 직접 연동할 필요가 있는지 자체를 고민해야 합니다.
유틸리티 토큰을 우리들에게 더 익숙한 단어로 바꾸면 ‘다이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이아와 완전히 일대일 대응 됩니다. 다이아는 인게임 마켓플레이스에서 법정화폐와 교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다이아를 법정화폐로 교환할 수 없고요. 게임 대부분이 반대 방향의 거래를 엄격히 통제하는데 대한민국 법률을 준수하기 위해 이 방향의 교환을 통제해야만 합니다. 다이아는 인게임 화폐와 다른 자원으로 교환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이 직접 생산한 자원이 올라오는 거래소를 통해 자원과 교환하거나 인게임 마켓플레이스에서 인게임 화폐 또는 우리들에게 더 익숙한 용어인 골드로 교환할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반대 방향의 거래를 대부분 엄격하게 통제하며 이 특징이 전통적인 게임의 경제시스템이 유지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거버넌스 토큰은 전통적인 게임에 대응하는 대상이 없습니다. 크립토 게임은 게임 유저가 - 플레이어와는 구분됨 - 게임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할 방법을 열어 둡니다. 게임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거버넌스 토큰을 사용합니다. 실제 세계에서 의결권을 가진 주식에 대응 시킬 수 있습니다. 거버넌스 토큰을 채용한 크립토 게임은 거버넌스 토큰의 총 발행량을 제한해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제한된 발행량 자체로 가치를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또한 거버넌스 토큰을 주로 투자자들이 획득하게 하고요.
이런 구조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널리 알려진 대로 실제 인게임 플레이어들과 투자자들의 지향에 차이가 생기며 플레이어들의 의지가 게임의 주요 의사결정에 반영되지 않게 됩니다. 전통적인 게임은 여러 방법을 통해 플레이어들이 목소리를 내고 이 의견이 게임의 이후 업데이트에 영향을 끼치곤 했습니다. 별도 거버넌스 토큰을 채용한 크립토 게임은 오직 거버넌스 토큰의 보유에 의해서만 업데이트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플레이어들의 바램과 상관 없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거버넌스 토큰 보유자들은 장기적으로 올바른 관점 - 주로 플레이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 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위 트윗 스레드에서 시사점에서 언급한 한 가지 토큰만으로 여러 목표에 최적화 할 수 없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다만 투토큰 모델이 스스로 실패한 것이 아니라 경제 전체가 지속 불가능했기 때문이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주장 위쪽에 나열한 설명은 한 가지 토큰만으로 여러 목표에 최적화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는 아닙니다. 여전히 크립토 게임에 어떤 토큰 모델을 도입해야 하는지 명확한 판단 기준이나 상승장에서만 동작하지 않는 사례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노토큰 모델을 제안합니다. 노토큰 모델은 말 그대로 인게임에 통용되는 블록체인에 연동된 화폐가 없는 체계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전통적인 게임의 경제 시스템과 유사한데 인게임에는 다이아와 골드와 자원이 유통되고 자원은 게임 밖에서 법정화폐와 교환을 통해 발행되고 다이어는 골드와 자원으로 교환될 수 있으며 골드 역시 자원과 교환되지만 각각의 반대방향의 교환은 제한되는 체계입니다. 여기서는 법정화폐 - 오프체인 통화라고 표현 - 와 인게임에 사용 가능한 블록체인에 연동된 자원 NFT의 구성을 제안합니다.
게임은 여전히 인게임 화폐의 발행과 소각을 통해 경제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에 연동된 토큰을 인게임에 직접 사용하게 하는 경제시스템을 설계하려고 할 때 난처한 점은 게임이 제어할 수 없는 블록체인 상에서 일어나는 거래가 인게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게임 경제시스템이 멀쩡하게 동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실제로는 쉽게 망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때문에 블록체인에 연동된 토큰이 법정화폐와 다이아의 관계처럼 단방향 교환 단계를 거쳐 인게임에 진입하게 만들면 전통적인 게임의 경제시스템을 설계하던 방식을 동일하게 적용해 지난 20여년에 걸친 경제시스템 설계 노하우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전통적인 게임 관점에서는 별 문제가 아니지만 플레이어와 투자자의 지향이 토큰 수준에서부터 나뉘지 않아 오직 토큰을 얻기 위한 플레이가 일어나거나 단기적 이익을 위한 의사결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크립토 게임 관점에서 플레이어는 여전히 인게임 자원을 NFT화 해서 블록체인을 통해 인게임에 대한 자신의 투자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NFT로 발행되기 전까지 인게임 자원은 블록체인과 관계가 없으므로 지갑을 요구하지 않아 온보딩을 복잡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또한 플레이어는 법정화폐의 인플레이션에 의한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물론 NFT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에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단 블록체인에 연동된 통화가 직접 인게임에 사용될 때처럼 외부 인플레이션에 의해 인게임 경제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게 되며 적어도 인게임 상에서는 이전과 동일하게 동작할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블록체인에 연동된 토큰을 관리할 필요가 없어지므로 규제 문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집니다.
원토큰 모델이나 투토큰 모델과 비교해 노토큰 모델이라는 제법 선정적인 용어를 사용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멀티 유틸리티 토큰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노트큰 모델이라면 전통적인 게임과 완전히 동일합니다. 여기에 인게임 자원을 NFT화 할 때 NFT의 T가 여전히 ‘토큰’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인게임 자원은 발행될 때는 인게임 자원에 머무르지만 플레이어가 원할 때 NFT로 전환해 블록체인을 통해 거래할 수 있게 됩니다. 이 토큰은 다시 전환 과정을 통해 인게임에 돌아와 경제에 영향을 끼치므로 이를 전통적인 크립토 게임의 토큰에 대응시킬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는 인게임에 진출입이 아주 조금 제한된 멀티 유틸리티 토큰 모델이라고 정의해야 합니다.
한번 NFT로 발행된 자원은 기술적인 장애 가능성 때문에 인게임에 돌아올 때 즉시 소각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몇몇 게임들이 블록체인 상의 자원을 인게임에 들여올 때 기술적인 문제를 겪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최근에는 블록체인 상의 자원을 인게임에 들여오기보다는 인게임에서 인게임 자원 및 동일한 자원을 가리키는 NFT를 확인만 하고 인게임 상에서 실제 사용될 때 인게임 자원은 바로 사용하고 블록체인 상의 NFT 자원은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해 소각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때문에 수량 상으로만 보면 게임 서비스가 지속됨에 따라 자원 NFT는 점차 증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가칭 멀티 유틸리티 토큰 모델은 이전의 원토큰 또는 투토큰 모델과 비교해 뚜렷한 장점을 가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단 자원이라는 메타포에 의해 블록체인에 직접 연동된 유틸리티 토큰을 인게임 상에서 직접 징수할 때에 비해 거부감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어 전통적인 게임의 하수구 메커닉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