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직업생활 회고

2022년 직업생활 회고

참고로 이 글은 이전에 쓴 회고 시리즈의 마지막입니다. 앞서 적은 2022년 회고 시리즈(2022년 운동 회고, 2022년 읽기 회고, 2022년 소비 회고, 2022년 글 공유 회고, 2022년 글쓰기 회고)에 이어 직업생활 회고를 할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아직 잘 되었는지 잘 못 되었는지 판단할 정도로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하고 행동을 했지만 이 행동이 앞으로 미칠 영향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2023년에는 내 행동에 대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난 날 행동이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일단 지금은 판단, 결정, 행동, 결과 중 앞의 세 가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울었음

판단은 2021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거의 항상 월 최대 노동 시간까지 채워서 일하는 나날이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노동 시간 자체는 이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다음부터 어느 회사, 어느 프로젝트에서도 크게 개선될 기미가 없어 이게 인생인가보다 하고 생각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저 가치 단계의 모니터링에서 이야기한 문제를 미리 발견할 수도 있었고 또 의견과 방향을 미리 이야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마일스톤 마지막 주에 마감 하느라 정신 없는 상황에서야 밝혀지는 문제와 의견과 방향은 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정신을 상당히 갉고 있었습니다.

우리들 스스로도 모호한 요구사항을 기반으로 개발하며 부닥친 여러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겪으며 이번 마일스톤이 끝날 때 그 결과물이 충분히 재미있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또 매끄럽게 동작하지조차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일스톤 마지막 날에 디렉터로부터 ‘한 번만 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문제를 지금까지 방치했다고?’와 ‘이 상태로 대표님께 보고를 어떻게 하라는 거야?’ 라는 소리를 들으며 신나게 깨진 다음 한참 침울해져 있었습니다. 이 침울함은 여태까지 마일스톤이 반복되는 동안 항상 느끼던 감정이었지만 이 날 따라 어디부터 수습을 해야 할 지, 당장 이 회의실을 나가 누구에게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암만 생각해도 이 방에서 방금 들은 요구사항은 이전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는 점을 생각했습니다.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다음 행동을 하기 전에 좀 더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한 다음 움직였을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날은 방을 나가자 마자 첫 번째 상급자를 붙잡아 회의실에 들어가 상황을 토로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다음 상급자에게 이야기해 보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지만요. 여전히 평소 같았으면 그냥 밥이나 먹으러 갔을 테고 밥 먹으면 감정이 좀 풀렸을 텐데 이 날에 내 행동은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말이 끝나고 회의실 밖에 나가자 마자 그 다음 상급자를 바로 붙잡고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상황을 처음부터 조리 있게 이야기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갑자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방금 회의실에서 겪은 일을 설명하기는 했지만 나는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있었을 뿐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었는데 그냥 입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상급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차 물었고 우선 감정보다는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아무리 이야기하려고 해도 일어난 일은 머릿속에서 영상과 소리로 맴돌 뿐 입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상급자는 결국 이 일에 관련된 다른 사람들을 불러왔는데 여기 부터가 웃긴 부분입니다. 여전히 말은 안 나오는데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던 디렉터를 보니 말할 수 없는 상태는 둘째 치고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그렇습니다. 회사에서 울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이후 한동안은 이 방에 있던 사람들 외에는 이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상담의에게도 이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결국 다음 해에 회사를 그만 두고 나서 쉬는 동안 이전에 함께 일했던 다른 분들을 찾아 다니며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문득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몇 달이 지난 다음에야 이전 팀원들과 술을 마시며 이 날 일어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마음이 좀 풀렸고 더이상 이 날의 쪽팔림에 빠져 있지 않게 됩니다. 어쩌면 오늘의 이 글을 통해 이 이야기가 구글에 영원히 박제될 겁니다. 내 가장 쪽팔린 경험을 사람들에게 까발리는 행동을 통해 마치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떠나 보내는 것처럼 이 기억과 생각을 떠나 보내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변할 거라고 생각함

한편 2021년 말에는 곧 시장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일하며 배운 점 중 하나는 세상이 크게 변할 때 그 중심에 있든지 최소한 그 변하는 곳 근처에라도 서 있지 않으면 막상 세상이 변한 다음에는 그 세상에 쉽게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가령 2000년대 초중반에 시장이 급속히 온라인 게임 위주로 바뀔 때 이 시류에 편승하지 못한 분들을 나중에 구인 공고를 통해 받은 우울한 이력서를 통해 만났습니다. 이 분들은 온라인 게임으로 변하는 세상 근처에라도 서 있지 않아 변하는 세상의 맨 앞으로부터 너무 많이 멀어져 있었고 함께 할 결정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2010년대 초중반에 시장이 급속히 모바일 게임 위주로 바뀔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대 받던 팀을 나와 모바일 게임을 만들다가 실패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봐도 그 때 그 큰 팀을 나오지 않았으면 이후 일자리를 찾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변하는 그 중심에 서 있지는 못했지만 그 근처 어딘가를 맴돌며 너무 멀리 벗어나지는 않으려고 노력은 해 왔습니다.

2020년대 초중반에도 시장의 일부가 전통적인 게임과는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상승장 동안에는 온갖 사기가 난무하는 어처구니 없는 세계였지만 그 안에서도 맨 앞에서 성공을 이끌어낸 사례들이 있었고 지금은 하락장 속에서 사기와 사기가 아닌 것을 구분할 만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게임에 블록체인 기술을 붙인 소위 크립토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몇몇 마스토돈 인스턴스에서는 가상화폐, NFT, 블록체인에 관련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기도 하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올바르지 않게 대해 신망을 잃어버린 점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이 곳이 세상이 변하는 장소의 변두리 어디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022년 초에 이직을 결정했습니다.

결과는 아직

이전 프로젝트는 여전히 개발 중이고 이전에 비해 대단히 개선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 새로운 분들이 많이 참여해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모바일 시대를 맞이하며 떠난 프로젝트가 이제 오랜 개발 기간 끝에 공개되는 모습을 보며 이전 프로젝트 역시 이런 멋진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새로운 온갖 것을 배우고 이들이 게임에 미치는 영향과 그 속에서도 전통적인 게임이 동작하게 만들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팀을 빌딩하며 이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기이한 일을 겪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한편으로는 ‘제기랄. 괜히 그만뒀나’ 하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2022년이 끝나는 지금은 그럭저럭 매듭이 지어 졌고 다음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곳이 과연 이전 온라인이나 모바일처럼 다시 한 번 세계가 바뀌는 곳 근처가 맞을까요? 이전에는 운이 좋아 우연히 그 근처에 있었다면 이번에는 의지를 가지고 움직인 이 곳이 그 곳이 맞을지 아직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전에 겪은 부끄러운 경험 때문에 도망치듯 빠져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저질렀고 이제 저지른지 시간이 지났고 또 이제 안정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회고는 마무리하고 1년 뒤 미래의 나에게 이 글에 뒤를 이은 생각을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