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의 사기를 개선하는 유일한 방법
팀의 사기를 올리는 방법에는 사람들을 잘 대해 주고 그들의 개인적, 직업적 요구를 확인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것도 있습니다. 근데 이들이 근본은 아닙니다.

오래된 삼국지 게임에서 군대의 사기를 올리는 방법으로 강한 장수가 군대를 통솔하게 하거나 군대에 넉넉한 식량을 할당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군대에 충분한 보급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사기 이전에 군대의 존속 자체를 결정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보급을 충분히 하는 것 만으로도 사기를 올릴 수 있다는 설정은 어쩌면 그 시대에 군대에 대한 충분한 보급이 잘 일어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플레이 한 삼국지 게임은 모두 일본에서 만들었는데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이 보급 계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심각한 문제에 노출된 여러 사례를 보면서 그들이 만든 게임이 군대에 보급을 잘 하면 사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 이상하지만은 않습니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은 특히 보급을 소홀히 해 여러 전선에서 어처구니 없이 패배하곤 했는데 한때 저 유명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등장인물이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뱀을 뜯어먹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바당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장면에 묘사된 전투가 바로 대한민국 개국공신 무다구치 렌야의 임팔 전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더이상 그 장면이 충격적이라기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웃긴 장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작전에 희생된 수많은 군인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임팔 작전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여러 전투 중 수 십년이 흐른 다음의 미래 사람 입장에서 몇 안되는 웃긴 전투로 자리 잡았고 과달카날의 일본군만큼이나 보급을 소홀히 한 군대는 이를 잘 할 때 사기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잘할 때는 그냥 군대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뿐 사기를 올리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삼국지 게임에서 보급을 잘 할 때 군대의 사기가 올라가는 동작은 암만 생각해도 이상했고 지금도 여전히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에 팀의 사기를 올리는 방법은 삼국지 게임에서 군대의 사기를 올리는 것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일단 우리들 대부분은 이미 충분히 보급을 잘 받고 있기에 보급을 추가로 한다 하더라도 사기를 올리리라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은 이미 회사로부터 받은 급여에 기반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대체로 밥 정도는 먹고 다니기 때문에 추가로 보급 한다고 해서 상태를 개선할 수 없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어떤 회사는 회사의 의미 있는 이벤트 선물로 직원들에게 케이크를 선물했는데 직원들이 크게 실망해 케이크를 그냥 버리는 등 이슈가 일어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했더라면 돈을 낭비하지도 않고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사기가 떨어진 나머지 화나게 만들 일도 없었겠지만 우리들이 마치 제 2차 세계대전 중 과달카날 전투 중 보급이 끊긴 일본군이 아닌 이상 먹을 것을 보급 받았다고 해서 사기가 개선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직원들에게 먹을 것을 돌려 사기를 올리는데 성공한 사례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한번은 한 회사에서 전 직원을 이끌고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야구장에 한 팀의 개막전을 보러 갔는데 4월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저녁 시간의 야구장은 너무나 추웠습니다. 다들 자리를 지키며 덜덜 떨고 있을 때 회사는 직원들에게 치킨 상자를 보급했는데 이 치킨 상자 역시 추위에 장시간 방치되어 있던 나머지 차디 찬 상태였지만 이미 춥고 굶주린 상태인 직원들에게 이거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 어디냐며 거의 얼어붙은 치킨을 우적우적 씹으며 그나마 사기가 올라 야구 팀을 응원했었는데 이게 제가 기억하는 먹을 것을 보급해 사기를 올린 거의 유일한 사례입니다.
현대에 팀의 사기를 올리는 일은 삼국지 게임에서 군대의 사기를 올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아침마다 만원 지하철을 뚫고 회사에 간신히 도착해 모여 앉아 일하는 이유는 이 일이 일생의 과업이기 때문 같은 거창한 이유 때문 만은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이 없다고 함부로 말하지는 않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고 그 일을 하는 모습이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는 모양일 뿐입니다. 우리들은 주로 전통적인 관점에서 일 한 시간에 따라 보상을 받으므로 일단 자리에 앉아 시간을 받으면 그 성과와 관계 없이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당히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적당한 수준으로 처리하고 일이 없을 때는 적당히 빈둥거리기를 반복하면 생계를 유지할 수준 정도로 일할 수 있고 여기에는 딱히 불만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론적으로는 그럴 것 같고 또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 일터에서는 최대한 조용히 맡겨진 일에만 집중해 일을 마치고 퇴근 시각이 되면 칼같이 퇴근해 실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한 이 직업을 가진 몇몇 사람들은 그 정도 수준에서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회사를 함부로 자아 실현의 장으로 여길 때 온갖 위험한 상태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애초에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고 또 여러 온라인 게임으로부터 인상적인 경험을 하면서 제 스스로가 이런 경험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그러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을 자아 실현의 방법으로 삼게 만듭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 목표는 제가 하는 일이 프로젝트 전체가 출시를 통해 고객들을 대면하고 그들로부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피드백을 받고 라이브 과정을 통해 긍정적인 부분을 유지하고 부정적인 부분을 개선해 나가면서 고객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또한 이 관점에서 제 개인적인 사기의 원천은 개발팀에서 제가 하는 일이 프로젝트 전체의 목표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또 그 일들이 여러 협업 부서에 걸쳐 원만하게 진행 되어 개발팀 내에서 의미 있는 모양으로 동작하며 나아게 게임 전체의 단단한 일부를 담당하는 모양으로 동작하는 것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개인적 관점에서 사기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인은 그 모습이 어떻든 제가 하는 일이 프로젝트 전체의 목표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 않거나 프로젝트 전체의 목표가 희미해 제가 하는 일과 방향이 일치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협업 부서들과 손발이 잘 맞지 않은 상태가 되어 업무가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고 오랫동안 정체 되어 있거나 계속해서 요구사항이 바뀌는 등 저 자신의 행동에 관계 없이 업무 성과가 프로젝트 전체의 개발 진행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 프로젝트에 걸쳐 게임디자인이 충분한 계회글 준비하더라도 이 계획을 협업 부서에서 실행할 수 없을 때가 있는데 이 이유가 프로젝트 전체에 잘 공유되지 않으면 프로젝트 전체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르는 실무자들 관점에서는 우리가 실컷 계획을 준비하더라도 온갖 이유를 들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 상황을 바라보며 무기력감을 느끼고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직원들에게 케이크를 돌리거나 난데없이 회식이라며 약솓하지 않은 저녁 식사 자리에 데려가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거나 갑자기 비전을 발표한다며 사람들을 모아 놓고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행동들은 사기를 진작하는데 어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따라오셨으면 이미 팀의 사기를 올리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 대략 짐작하셨을텐데 팀의 사기를 올리는 방법은 팀이 목표를 달성하고 성과를 내며 이 성과가 팀 외부로부터 적절한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떨어진 사기는 오직 일이 제대로 진행되기 시작할 때 회복하기 시작할 수 있으며 일이 추진되어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고 이 사실이 제대로 평가 받을 때 의미 있는 사기 진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외에는 그 어떤 방법도 팀의 사기를 올릴 수 없습니다.
한번은 마일스톤 시작 전까지 요구 받은 수많은 요구사항에 대한 기획서 여러 뭉치를 반드시 마감 날짜에 맞춰 작성해 협업 부서가 검토하기 시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아주 강력한 요구를 접수합니다. 사실 요구 받은 분량은 그리 만만치 않았는데 이 많은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 일관된 관점에서 극단적으로 짧은 제한시간 안에 모두 쏟아내기 위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요구사항 모두가 구현되었다고 가정할 때 동작할 게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상태여야만 했습니다. 만약 기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한 다음 이런 고민을 시작했다면 절대로 기한을 맞출 수 없었을 겁니다. 기획서를 작성하는 기간 동안 개인적인 사기는 별로 좋을 수가 없었는데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간신히 이미 생각해 둔 요구사항을 문서로 옮기기에도 아슬아슬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거나 일단 기능 각각을 정의하고는 있지만 이 기능들이 어우러져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반복 플레이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요구사항 각각을 정의해 이들의 개발을 시작하고 나면 생각할 시간을 조금 벌 수 있을 테고 그 틈을 타 이들을 묶은 전체적인 플레이를 고민하고 그에 따라 기능 각각을 세부조정 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저 자신을 설득한 다음 일단은 요구사항 각각을 정의하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렇게 약 4주에 걸쳐 아슬아슬하게 꽤 큰 요구사항의 여러 덩어리를 각각의 문서로 준비해 약속한 마지막 날에 딱 맞춰 협업 부서에 문서를 전달할 수 있었는데 일정을 지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슬슬 마지막 날이 가까워질수록 슬슬 쫄리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어서 마지막 날에 맞춰 모든 문서를 한 번에 공유할 수 있게 됐을 때 이번엔 꽤 아슬아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제 관점에서 걱정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어쨌든 약속을 지켰다는 관점에서는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이들을 묶을 운용 정책을 고민하기 시작할 시간을 벌 수 있을른지도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이후 꽤 긴 기간에 걸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문서를 살펴보지 않았고 요구사항을 작성한 다음 으레 일어나야만 할 리뷰, 브리핑, 담당자 설정, 지라 태스크 발급 등 그 어떤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애초에 마일스톤을 시작한 다음에는 그동안 미뤄 뒀던 기술 부채를 청산하기 위한 기간을 가질 예정이었다고 하는데 우리들은 그런 계획을 전혀 전달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중간관리자들은 날짜에 맞춰 모든 기획서를 준비하기를 계속해서 요구했고 절대로 날짜를 지켜야만 한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날짜를 강조하는지 납득할 수는 없었습니다. 만약 기획서 여러 개가 어느 날짜에 정확히 준비되어 있어야만 한다면 그 이유는 그 날짜에 맞춰 그 다음 계획이 수행될 준비가 끝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기획서가 정확한 날짜에 나오면 바로 이를 살펴보고 브리핑을 요청하고 담당자를 할당하는 등의 작업이 바로 이어 쉴 틈 없이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기획서는 반드시 약속한 날짜에 나와야만 하고 이 사실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획서를 대량으로 작성하는 기간 내내 제 데드라인에 대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들었을 뿐 그래서 그 기획서들이 준비되고 나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계획을 전혀 들을 수 없었고 저는 이 문서들이 준비된다 하더라도 뭔가 의미 있는 다음 작업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어렴풋이 예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관리자의 평가를 받으므로 이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기에 꽤 노력해서 정확한 날짜에 모든 문서를 제출합니다.
하지만 그 후 정확히 한 달 반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우리는 지금까지 제출한 문서들이 구현된다고 가정하고 그 다음에 제출할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일을 겪은 것은 저 한 명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날짜에 맞춰 모든 문서를 준비하라는 압력을 받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정확한 날짜에 맞춰 새 마일스톤에 해당하는 요구사항들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한 달 반에 걸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똑같이 마주했고 우리들 모두의 사기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올리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각자에게 케이크를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 되어 프로젝트 전체의 완성도에 일조하고 궁극적으로 고객과 대면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 상황은 각자의 업무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첫 단계에서부터 이미 진행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날짜에 맞춰 제출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문서들이 제때 준비된다는 가정 하에 다음 문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는 마치 소설을 쓰는 것과 비슷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기반해 다음 요구사항을 작성하고 있었고 이 다음 요구사항이 근거하고 있는 전혀 구현되지 않은 이전 요구사항은 구현 진행에 따라 얼마든지 세부사항이 변경될 수 있었기에 우리들이 작성하고 있는 그 다음 단계의 문서들은 아주 쉽게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물건이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우리들 모두 어느 정도 경험을 가지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다음 요구사항을 작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휴직 하면 회사는 급여를 지불하지 않아 생계에 문제가 생기니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아 뭐라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명 구현되지 않은 기능에 근거한 새로운 요구사항은 모래 위에 올린 건축물처럼 기반이 약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할 수밖에 없었고 이 상황에 사기는 바닥에 꼴아박다 못해 아래층으로 한없이 뚫고 들어가 거의 차이나 신드룸을 연상시킬 정도로 지구 깊숙이 파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정확히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루 종일 온갖 회의에 끌려다니느라 자리에 거의 없는 제 보스는 하루 웬 종일 자리를 비우느라 자기 팀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잘 파악하지 못하긴 했지만 그나마 사람들이 곧 퇴근할 시간대에 간신히 나타나 대강 살펴봐도 사람들의 분위기가 그리 긍적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겁니다. 사실 파악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라 소위 눈치를 획득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어렵지 않게 사람들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고 분명 사기가 그리 높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잘 몰랐던 것 같은 것이 어느 날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은 아니지만 팀 구성원 중에서는 업계에서 그럭저럭 오래 버틴 편인 저와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한 자리에서 저에게 시니어로써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는데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받습니다. 저 역시 간신히 일정에 맞춰 준비한 요구사항이 한 달 이상 방치되어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꽤 당혹스러웠고 아무리 숨기려고 노력해도 이 상황에서 사기가 멘틀을 뚫고 내려가는 것을 막기는 어려웠습니다. 아마 이런 상태가 제 행동이나 제 표정에 드러나는 것을 숨길 수도 없었을 겁니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평소에 팀에 거의 신경 쓰지 못하는 중간관리자 입장에서 당장에 뭐라도 해볼 수 있는 일에는 그나마 팀의 시니어를 닥달해서 분위기를 쇄신해 보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 밖에 없었으리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이게 실현 가능한 주문인지를 평가하는 것은 서로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이미 중간관리자가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리를 비우는 동안 그 다음으로 팀에서 고민을 늘어놓기에 적당한 사람은 저였고 저는 이미 여러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현재 상황을 긍정적인 모양으로 지어내 설명하고 이 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이야기했고 또 여느 프로젝트에서도 이런 상황이 일어나곤 한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물론 사실이기는 했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된 프로젝트들의 결말은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았다는 부분까지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전체를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저 자신마저 저와 팀이 처한 상황 때문에 부정적인 모양, 그리고 사기가 떨어진 모양으로 행동하지 말고 시니어 답게 사람들을 추스리고 어느 정도 사기를 유지하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듣고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심플 사보타지 - 조직과 회의 (1)에 소개한 수많은 ‘위원회’ 업무를 수행하는데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낸 다음 모두가 퇴근하기 직전에 나타나 위원화의 결정사항을 전달하는 것을 거의 주업으로 삼고 있는 중간관리자의 요구사항으로는 당연하고 또 예측 가능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여러 위원회 활동은 실제 업무에 도움을 주기 보다는 하루 종일 중간관리자의 공백 상태를 유발하고 당장의 문제에 도움을 요청할 권한 보유자를 지워 버리는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 팀의 시니어 스탭이 뭔가를 시도한다고 해서 팀의 사기를 관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고 이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뱃속 저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공기를 포함해 이를 내뿜으며 ‘피식’ 하고 웃는 것 뿐이었습니다. 재빨리 소주 한 잔을 따라 털어 넣고 어이 터진다는 말투로 중간관리자이자 제 보스이자 제 평가권자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저에게 상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놀랍게도 그렇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고 여기서 또 한번 어이 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과 똑같은 상황을 바로 옆에 앉아 겪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나마 현재 상황을 직접 겪어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하루 종일 ‘위원회’에 끌려 다니며 자리를 비우고 있지도 않으므로 아무때나 뒤를 돌아보기만 하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상태로 앉아 있었습니다. 다만 제 자신도 사기가 떨어져 썩 기분 좋은 모양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보다는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상태로라도 자리에 존재하기라도 하는 편이 더 나았습니다. 중간관리자가 저에게 요구한 행동들을 이미 수행하고 있었고 그 결과가 현재 상태이미 이 상태를 더 개선할 방법은 저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사이에 어이가 터져 소주 몇 잔을 더 털어 넣어야만 했습니다.

2024년도 F1 상파울로 그랑프리가 개최된 인터라고스 서킷은 날씨 변수가 없더라도 충분히 드라이버와 자동차를 한계까지 몰아 넣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멕시코만큼 고지대는 아니지만 여느 서킷에 비해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냉각을 충분히 준비해 오지 않은 팀에게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멈춰선 차량과 리타이어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라고스 서킷은 재포장을 통해 서킷 특성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을 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전에 고압 살수를 통해 트랙을 청소한 덕분에 오히려 실컷 포장한 노면이 엉망으로 변해 이미 프랙티스 때 서킷을 달려본 드라이버들이 서킷이 ‘언드라이버블’하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퀄리파잉부터 레이스에 이르는 전체 기간에 걸쳐 많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레이스는 완전히 만신창이가 됐고 저 경험 많고 그 스스로 자신은 ‘다크 사이드’라고 주장한 바 있는 페르난도 알론소가 이 상황은 너무 위험하다며 제발 세이프티카를 디플로이 해 달라는 무전을 계속해서 핏월에 전달하게 만들기도 할 만큼 무시무시한 경기였습니다. 제 보스와 술 마시며 보스의 어처구니 없는 요구사항에 어이가 털려 피식거리다가 뜬금없이 인터라고스 서킷 레이아웃을 내놓고 상파울로 그랑프리 2024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이번 문단을 다른 글을 쓰다가 실수로 잘못 붙여 넣은 것이 아닙니다. 실은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전에 왜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팀의 극심한 사기 저하와 이를 해결해 보려는 제 보스의 어이 터지는 접근 방식을 이야기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상파울로 그랑프리는 윁 컨디션 레이스가 종종 그렇듯 완전 이상한 결과로 끝을 맺습니다. 1위는 패널티로 17그리드에서 출발한 맥스 베르스타팬이 차지해 마치 2021년도 사키르 그랑프리 때 같은 팀 세르지오 페레즈가 했던 것과 비슷한 미친 추월 쇼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베르스타펜은 베르스타펜이니까 그럴 수 있다 치고 2위와 3위야말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완전히 이상한 드라이버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바로 알핀의 에스테반 오콘과 알핀의 피애르 가슬리입니다.
2024년 상파울로 그랑프리에서 2위, 3위를 차지한 두 알핀 드라이버가 서로 사이가 나쁘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에스테반 오콘에 대해서는 이전에 독성 사람에서 다룬 적 있는데 그 개인이 실제 어떤 사람인지 알 방법은 없지만 적어도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모양으로만 미루어 볼 때 이 드라이버와 함께한 모든 팀메이트들이 이 드라이버에 대해 아주 나쁜 평가를 내린 바 있고 특히 같은 프랑스 국적인 피애르 가슬리는 오릴 때 카트 레이스 때부터 함께 해 왔지만어떤 계기로 인해 완전히 사이가 나빠졌으며 그 다음 부터는 같은 팀의 팀메이트로 만나지 않은 덕분에 그나마 F1 판에서 함께 존재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이들은 같은 프랑스 국적의 알핀 팀에서 팀메이트로 달리게 됐고 이들의 사이를 알고 있는 경영진은 이들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이 스토리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르 드라이브 투 서바이브에도 나오는데 두 사람을 불러 난데 없는 카트 레이스를 시키는 등 가식적인 행동을 시키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는 마치 고든 램지의 호텔 헬 같은 프로그램에서 형제나 친구 간에 사이가 너무 나빠 사업을 완전히 말아 먹을 위기에 고든 램지가 나타나 두 사람의 과거를 조망하고 둘 사이의 관계를 개선해 결국 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 놓는다는 결말 만큼이나 허무맹랑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고든 램지가 서로 완전히 척을 진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이들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성공한 것은 오직 카메라 앞에서만 그랬을 뿐 실제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이후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돌아가 보면 이들 대부분은 사업을 완전히 정리한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쉽게 개선되지 않으며 하루 이틀 쌓인 관계는 나중에 가면 감정만 남고 원인은 사라짐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기 더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에스테반 오콘과 피애르 가슬리의 관계 역시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넷플릭스의 카메라 앞에서마저 이들은 예쁜 모양으로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각자 굳은 얼굴로 카메라 밖으로 나가 버립니다.
유튜브에서 알핀의 더블 리타이어를 검색하면 두 드라이버가 서로 팀메이트에게 전혀 양보하지 않아 같은 팀 차량 두 대가 서로 충돌해 만신창이가 되며 서로에게 욕설을 날리고 차는 완전히 망가지고 옐로 플랙이 나오고 완전히 찢어진 차량을 크레인이 들어올리며 두 드라이버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장면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이게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2024년도에 알핀은 에스테반 오콘과 계약을 2024년 까지만 유지하기로 했고 2025 시즌부터는 하스로 이적하게 되어 최소한 두 프랑스 드라이버가 같은 팀에서 팀메이트로 만나야만 하는 불운한 상황은 이제 끝을 향해 달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이제 나빠질 만큼 나빠져 이제 어떤 방법으로도 개선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들의 관계를 개선하지 못해 계속해서 문제를 겪자 이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아무 개입도 하지 않았던 이전 감독인 오트마르 자프나우어 감독이 해임되었고 또 넷플릭스 카메라 앞에서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카트를 타기도 했지만 결국 이들 사이를 개선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관계가 적어도 카메라 앞에서라도 개선된 것처럼 보일 일이 전혀 없었다면 애초에 이 긴 문단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이번 2024년도 상파울로 그랑프리에서 지독한 윁 컨디션에서 위험한 주행을 벌인 끝에 알핀의 에스테반 오콘이 2위, 같은 팀의 피애르 가슬리가 3위를 차지하면서 알핀이 1년 내내 획득할 법한 포인트를 단 한 경기만에 획득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에스테반 오콘은 종종 일단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모든 차량의 성능이 똑같아진다는 자신의 말 대로 비가 펑펑 쏟아지는 상황에서 미쳐버린 깡으로 차를 몰았고 그보다 더한 재능과 그보다 더한 깡과 자신보다 확실히 더 나은 차를 모는 베르스타펜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미칠듯한 깡으로 한계까지 차를 몰아붙였고 그 댓가로 2위를 차지합니다. 피애르 가슬리 역시 비슷한 환경에서 에스테반 오콘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들은 쿨타운 룸에서, 포디엄에서, 그리고 여라 미디어 앞에서 지난 수 년에 걸쳐 절대로 보인 적 없는 기쁨과 친밀함을 과시했는데 이건 지난 시즌 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올 시즌 내내 일어났던 여러 사건을 생각할 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앞으로도 개선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같은 이벤트를 겪은 사람들이 쉽게 가가워져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가도 두 사람을 연결했던 강렬한 이벤트의 기운이 사라지고 나면 그 관계 역시 느슨해지다가 종종 파국을 맞게 된다고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이번 인터라고스 서킷의 지옥 같은 컨디션 속에서 2위와 3위를 차지한 두 드라이버가 마치 같은 강렬한 모험을 함께한 다음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에 의해 일시적으로 관계가 가까워진 모습을 보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핵심은 일시적이든 뭐든 어쨌든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런 적 없고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게 만들었던 두 사람이 갑작스레 미디어 앞에서 서로 관계가 개선된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점 그 자체는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은 아주 낮은 사기, 완전히 망가진 관계 따위를 개선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실적을 내는 것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넷플릭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과거 두 사람이 처음 관계가 틀어진 것으로 알려진 카트 레이스에서 경험을 되살리는 자리를 만들어준다고 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개선되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 작위적인 자리에서 개선될 관계라면 애초에 그런 관계까지 가지도 않았습니다. 고든 램지의 호텔 헬에 등장하는 여러 사이가 완전히 망가진 동업자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든지간에 성과를 낸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갤러거 형제가 아무리 서로 사이가 나빠도 돈 때문에라도 관계를 유지했던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다시 하루 종일 ‘위원회’ 회의 때문에 자리를 비우다시피 하는 보스가 저에게 시니어로서 팀 분위기 쇄신에 기여해달라고 말하고 제가 단전으로부터 끌어오르는 피식거림을 주고 받은 술자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미안하지만 보스는 지금 우리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이를 잘 파악했다면 우리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했을 테고 우리들이 그 설명을 들어 납득하고 사기를 덜 잃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업무시간에 우리들을 관찰할 기회가 없기에 이미 보스가 기대하는 행동이 이미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동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상황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실망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최근 인터라고스에서 영원히 서로 레이스 도중 아무 때나 서로 차를 쳐박아 더블 리타이어를 일삼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두 드라이버가 적어도 미디어 앞에서는 서로 관계가 회복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계 개선, 사기 진작을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은 성적, 성과, 업무의 원활한 진행 같은 너무 당연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군대에 보급을 늘려 사기를 올리는 것은 보급을 지독하게 등한시했던 황군의 후예들이 만든 게임에서나 의미가 있습니다. 보급이 안 되는 군대는 애초에 성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팀의 사기는 시니어 스탭의 어떤 행동에 의해 올라가지 않습니다. 팀의 사기는 오직 팀의 성과에 의해서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 제가 각자의 성과를 더 끌어올릴 수 있도록 기여할 곱해질 수 있겠지만 애초에 성과가 0인 상태에서 제가 곱해지려고 무슨 수를 쓰든 그 결과는 0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