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빌딩 냉방 문제해결 사례
왜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대형 오피스 빌딩의 냉방 시스템은 쓰레기같을까요? 이 분야는 아무도 연구 개발을 하지 않는 걸까요?

이전 가상 세계에서 생활 이야기가 끝난 다음 최고로 무더운 기간 동안 제가 일하는 구역에 냉방이 제대로 안 되는 문제를 해결한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안정적인 냉방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대형 오피스 빌딩의 냉방이 예상보다 훨씬 더 엉성하게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제대로 모니터링 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런 문제가 지난 수 십 년 사이에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고밖에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지난번에 이미 이야기 대부분을 했지만 오늘은 이 오피스 냉방 문제를 오래된 경험으로부터 시작해 현대에도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과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문제의 원인, 또 대형 오피스 빌딩이 근본적으로 냉방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 따위를 조금씩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래 전 첫 회사는 압구정동의 주거지역과 그리 멀지 않은 한적한 동네에 있는 작은 건물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작은 건물 하나만으로는 인원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가까이 있는 다른 건물을 하나 더 임차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회사는 짧은 기간 안에 거대한 성공을 이루었는데 그런 성공 덕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회사가 처음 만들어져 성장한 동네를 떠나 본격적인 강남 한복판으로 이전을 계획합니다. 사실 그 시대는 이제 지금으로부터 꽤 먼 과거여서 그 시대의 강남이 지금과 얼마나 달랐는지 잘 기억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늘상 서울 북동부 베드타운과 회사 사이를 오갈 뿐 다른 곳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지독한 촌뜨기인 제 입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강남 한복판으로 근무 위치를 옮기는 건 꽤 부담스러웠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의 바로 그 강남 한복판이라니 그때까지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지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여전히 강남역에 가본 적이 없어 대체 그 곳은 얼마나 북적일지, 또 차는 얼마나 밀릴 지, 또 우리들 같은 가난뱅이 촌뜨기들이 가도 되는 곳인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이전 건물에서 짐을 포장해 놓고 퇴근했고 주말이 지난 다음 출근은 새 위치로 해야 했는데 당시 강남역 근처에 막 새로 지은 반짝이는 거대한 유리 건물은 정말 우리들이 이 건물에 들어가도 괜찮은 것인지, 혹시 경비원에게 쫓겨나지는 않을지 겁 먹게 만들었습니다. 심호흡을 한번 한 다음 커다란 유리 회전문을 돌아 들어갔고 최대한 빨리 제 자리가 있는 층으로 이동해 으리으리한 건물에 정장을 차려 입은 사람들로부터 최대한 빨리 숨었습니다. 알고 보니 다른 몇몇 분들도 저처럼 처음 건물의 당당한 위용을 보고 들어가기를 주저했다는 말씀을 듣고 저만 촌뜨기는 아닌 것으로 조금 위안을 받습니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이 거대한 오피스 빌딩에는 다른 여러 입주사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그분들 거의 대부분은 말끔한 정장을 차려 입고 출근하는 분들이어서 우리들이 입주하고 로비에 정장 차림이 아닌 무슨 대학생 같은 사람들이 우글거리기 시작하자 우리들에게 그리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말끔한 오피스 룩을 뽐내며 바르게 걷는 사람들이 즐비한 대리석 바닥이 깔린 대단한 로비에 딱 봐도 거북목에 구부정한 허리로 엉금엉금 걸어가는 사람들이 대강 세탁물 바구니에서 꺼낸 것 같은 옷을 아무렇게나 주워 입고 다니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건물 운영 측 역시 우리들에게 최소한 비즈니스 캐주얼 정도의 복장을 요구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우리들이 제대로 임대요금을 납부하고 있는 멀쩡한 입주사인 이상 그런 요구에 딱히 응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한번 회사 공지사항에 복장 이야기가 나타났고 열 받은 우리들은 철저하게 공지사항을 무시함으로써 우리들의 의사를 표현했고 회사, 건물 운영사는 더 이상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은 채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열 받는 기억을 간직한 우리들은 더 이상 로비에서 마주치는 ‘양복쟁이’들에게 더 이상 주눅 들지 않게 됩니다.
강남 한복판에 새로 들어선 오피스 빌딩에는 처음 보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었는데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출입카드를 태깅해야 열리는 스피드게이트가 있었고 또 창문은 중앙에서 원격으로 여닫을 수 있도록 모터로 동작하는 것 같은 체인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건물이 우리들 같은 방식으로 건물을 사용하는 회사가 있으리라는 가정 하게 설계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현대에는 한 층 전체를 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회의실이나 탕비실 같은 자잘한 구획을 별도의 작은 방으로 구획하는 모양이 일반적인 것 같지만 그 건물은 그보다 더 이전 시대에 회사 하나는 여러 작은 단위 부서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부서들이 더 작은 격리된 구획에서 일하는 식으로 구성된 회사 구조를 고려했던 것 같습니다. 넓은 한 공간을 작은 여러 구획으로 나누면 상대적으로 더 적은 사람들이 일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건물을 설계한 누군가는 한 층에 대략 80여명 정도가 상주할 것을 가정하고 냉난방 시스템을 설계한 것 같습니다. 또한 고도성장기 한국을 이끈 여느 평범한 회사들과는 달리 이상적으로 오전 아홉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여섯시에 일을 끝내는 회사들만이 입주할 것으로 가정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결코 증명할 수는 없을 이런 가정을 하게 된 이유는 건물의 냉방 시스템이 한 번에 두 층을 묶어서 통제하도록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입주사들이 자신들만을 고려한 냉방 계획을 건물에 요구할 때 입주사가 최소 두 층 이상을 임차하고 있다면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한 회사가 한 층을 임차하자 그 위로 올라가는 여지간한 회사들은 다른 회사와 냉반방 제어를 공유해야만 하는 이상한 처지에 놓입니다.
한 층에 최대 80여명이 상주할 것을 고려하고 설계한 냉방 설비는 여러 층을 임차할 뿐 아니라 한 층에 설계 인원의 두 배가 넘는 인원이 한 층 전체를 한 공간으로 사용하며 파티션을 다닥다닥 붙여 놓고 사용하는 입주사가 나타나자 상당한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일단 우리들은 한여름에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상시 불만이었고 어제간하면 개인용 산풍기를 하나 씩 두고 있었는데 선풍기로 바람을 일으키지 않으면 수 백 대의 컴퓨터와 모니터가 만들어내는 열기조차 식힐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회사는 건물 운영사에 최대한의 냉방을 계속해서 요구했고 건물 운영사는 어느 정도 이 요구를 수용했지만 마치 깜빡 했다는 것처럼 가끔씩 한 층에 두 배 이상의 수용 인원이 밀집한 우리들을 고려하지 않은 기본적인 냉방 계획에 따라 냉방을 하기도 해서 잊을 만 하면 한번 씩 우리들 모두의 분노를 이끌어냅니다. 사실 규칙적으로 요청을 반복하면 될 일이었지만 우리들 덕분에 문제를 겪는 다른 입주사가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그들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됐는데 앞서 냉방 설비가 두 층을 한 번에 제어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덕분에 우리들이 임차한 가장 아래층보다 한 층 아래에 있는 입주사는 우리들이 냉방! 더 많은 냉방!을 요구할 때마다 덩달아 원하지도 않는 냉방 폭탄을 받았고 또 그들은 전통적인 구획이 더 많고 더 적은 인원이 근무하는 스타일의 회사인 덕분에 사람 백 수십 명과 컴퓨터 수 백 대를 차갑게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은 최대한의 냉방을 고작 수 십 명이 얻어맞아 다들 심각한 냉방병을 겪고 있었다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더워 죽는 것 보다는 추워서 옷을 껴 입는 쪽이 올바른 접근 방법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냉방에 병적일 정도로 예민하게 집착합니다.
문제는 우리들이 그 시대에도 여전히 너무나 이상적으로 여기던 오전 아홉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여섯시에 일을 끝내는 직종이 아니었다는데서 발생했는데 일단 건물 운영사는 오후 여섯시가 되면 칼같이 냉방을 중단했고 야근을 일삼던 우리들은 여섯시 반을 넘기면 뜨뜨미지근해지는 주변 공기 때문에 제대로 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여섯시에 냉방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퇴근할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우리들은 또 지독하게 회사에 덥다는 불만을 계속해서 끊임없이 토로했고 회사는 건물 운영사와 한창 동안 실랑이를 거듭한 끝에 냉방 시간을 오후 여덟시까지로 조정합니다. 이 역시 이쯤 되면 일부러 까먹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의 요청과 무관하게 냉방이 오후 여섯시에 중단되는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났고 그 때마다 우리들은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평일에는 그렇게 버틸 수 있었지만 해외 게임 관련 행사 직전 행사에 내보낼 빌드를 준비하느라 주말에도 출근해야만 했는데 이 날 출근한 모두가 그만 거의 실성해버렸습니다. 분명 주말 출근이 예정되어 있으니 냉방을 준비해 달라고 회사에 요구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우리 층에 멈추고 문이 열리자 이미 엘리베이터들이 모여 있는 공간부터 공기가 손가락에 만져질 것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했고 안쪽으로 향하는 유리문이 열리자 순간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공기를 곧이곧대로 들이마셨다가는 그 자리에서 삶은 고기로 발견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말에 회사는 물론 건물 운영사도 응답하지 않았고 우리들은 하는 수 없이 그 미친 한중막 안에서 컴퓨터를 켜고 일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이 하나씩 정신이 나가 소화기로 전동식으로만 제어되어 수동으로는 열리지 않는 유리창을 부수려고 하는 걸 말려야만 했습니다.
이 겉만 번지르르한 건물의 냉방이 형편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일단 건축주가 비용을 낮추기 위해 두 층 단위로 제어되는 어처구니없는 에어컨 설계를 받아들인데서 시작합니다. 또한 근대적인 정보기술 회사들이 전통적인 더 적은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 대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밀어 넣기 위해 층 전체의 공간을 한 덩어리로 사용해 최대 수용 인원을 아득히 초과하기 일쑤라는 당연한 사실을 망각한 채 한 번에 여러 층을 임차하겠다는 고객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덥썩 계약을 맺어 버린 건물 운영사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들은 한 사람 당 적어도 한 대 이상의 컴퓨터와 두 대 이상의 모니터를 사용했고 이 장치들은 에어컨이 잘 동작할 때는 인지하기 어렵지만 냉방이 꺼지는 순간 이 장치들도 지속적으로 어마어마한 열을 배출하고 있음을 뜻하지 않게 알게 됐는데 같은 건물에 있는 여러 입주사들 중 컴퓨터를 이렇게 많이 사용하는 다른 회사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또한 실내 기온을 측정해 목표 실내 기온을 달성하는 방식으로 냉방 시설이 동작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실내 기온은 우리들이 체감하는 실내 기온과 아득한 차이가 있었고 도대체 그들의 온도 측정 장치가 이 공간의 어디에 박혀 있길래 저 정도로 우리들의 실상과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실내 기온을 측정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하도 지독하게 건물 운영사에 냉방을 강요한 나머지 어느 순간 냉방 문제는 꽤 완화되었지만 결국 우리들이 그 건물을 떠나는 그날까지 우리들과 인접한 층에 있던 말끔한 옷을 자려 입은 분들이 일하던 그 입주사 분들은 지독한 추위에 벌벌 떨며 일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여러 오피스 빌딩에서 일했는데 처음으로 강남 한복판에 있던 으리으리한 자태를 뽐내는 대형 오피스 빌딩과 마찬가지로 다들 겉모양만 멀쩡할 뿐 하나같이 냉방 시설은 형편 없었습니다. 첫 대형 오피스 빌딩에서는 냉방 그 자체에 민감하게 반응하느라 한 층 안에서 일어나는 온도 불균형 문제까지 세심하게 바라볼 기력이 없었는데 최소한 인간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냉방 문제가 개선되자 이번에는 한 층 안에서 어느 구역은 너무 춥고 어느 구역은 너무 더운 문제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사람에 따라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하며 쉽게 더위를 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더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더위를 잘 타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한 공간에 있는 이상 같은 냉방을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쾌적하면 누군가는 겉옷을 입을 수밖에 없는 정도의 기온이 되기 일쑤였고 사실 이 문제는 우리들이 한 공간에서 노동집약적으로 일하는 이상 근본적으로 회피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냉방시설이 균일하게 가동되는 상황에서도 실내 공기 순환이 잘 일어나지 않아 에어컨으로부터 직접 바람을 얻어 맞는 자리는 두통을 느낄 정도로 추웠고 그 바람으로부터 고작 몇 미터만 떨어져도 대형 선풍기로 최대한 바람을 불어야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덥기 일쑤였는데 이쯤 되면 건물의 냉방 시스템을 설계하거나 제작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일하길래 고작 냉방 시스템 하나를 똑바로 못 만드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건물 역시 겉으로 보면 멀쩡하고 또 평범한 그저 으리으리할 뿐인 대형 오피스 건무링었는데 처음 건물에 입주할 때는 잘 몰랐지만 본격적인 폭염이 찾아오자 바로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미 문제를 감지한 날로부터 한 주 전에 같은 층의 다른 구역에 냉방이 안 되어 시설팀이 문제를 해결한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략 그 즈음부터 우리들이 있던 구역이 덥다고 느끼기 시작해 출입구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그 옆에 있던 냉방 설정 패널에서 우리들이 있는 구역의 목표 기온을 에어컨에 설정할 수 있는 최저 기온인 16도로 설정해 봤지만 효과가 거의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구역 별로 구분된 냉방 시스템 제어기를 잘 다룰 줄 모르는 누군가가 너무 춥다고 생각해 목표 기온을 수정하다가 다른 공간의 목표 기온을 수정하거나 층 전체의 목표 기온을 수정하기를 반복한 덕분에 과거에 저를 포함한 사람들이 실내 기온에 매우 민감하게 굴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조금만 더운 느낌이 들라 치면 재빨리 냉방 제어기 앞으로 달려가 반복적이고 또 집착적으로 기온을 확인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비교군으로 회의실 하나의 목표기온을 제가 일하는 구역의 목표기온과 똑같이 16도로 설정한 다음 시간이 좀 흐른 뒤 회의실에 들어가 보니 그 곳인 인류가 살 수 없는 맨 행성처럼 변해 있었고 이쯤 되면 분명 우리 구역의 냉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미친 듯 더운 여름날 오후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한껏 억누르며 정중한 표현을 사용해 시설팀에 문의했고 다음 며칠에 걸쳐 문제를 해결한 끝에 지난 주 다른 구역의 냉방 문제를 해결하면서 우리 구역 냉방장치로 연결되는 파이프 하나가 실외기까지 똑바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해 이를 수정합니다.
하지만 냉방장치가 수리된 다음에도 여전히 우리들은 더워했는데 이게 덥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운 플라시보 효과인지 아니면 그들이 분명 문제를 해결했고 현재 정상 동작하고 있다고 안내한 것이 거짓말인지 슬슬 헛갈리기 시작합니다. 또 다시 시설팀에 정중하게 문의하기에는 그들이 에어컨이 정상 동작한다고 주장한 지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회의실은 인류가 살 수 없는 기온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또 시설팀에 정중하게 이야기하기에는 제가 무슨 전생에 냉방이 안 되는 오피스빌딩에서 일하다가 미쳐 수화기로 창문을 깨 부수려다가 죽은 사람 마냥 에어컨에 미친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할지 한참 고민하다가 이건 당장 우리들을 심각하게 괴롭히고 있었지만 이 문제에 너무 단기적으로 대응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녁때 쿠팡 앱을 열어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서버에 온도를 기록하는 기능이 있는 온도계를 주문해 다음 날 아침에 그걸 받아 들고 출근해 자리에 온도계를 올려 놓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 주 이상을 소요할 작정으로 마음을 독하게 먹습니다. 하지만 그 날 오후가 되자 더위에 사람이 완전히 지쳐 버렸고 너무 힘들어 얼굴에 표정을 유지할 기력 조차 남아 있지 않아 사람들이 저를 슬금슬금 피해 다닐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 근거 없이 더위에 미친 사람으로 찍힐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에 베팅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열흘 넘는 시간 동안 기다립니다.

제가 일하는 구역의 기온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제가 구입한 온도계의 재미있는 동작을 한 가지 알게 됐고 또 건물 측이 냉방을 시작하는 시간, 그리고 주말에 냉방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일단 제가 구입한 온도계는 본격적인 산업용 제품은 아니어서 그저 와이파이 네트워크에 붙여 놓으면 그들의 서버와 통신해 온도를 기록하는 단순한 장치인데 현재 기온에 그때그때 반응하지만 서버와 통신은 한 시간에 한 번만 시도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게다가 한 시간에 한 번 기온을 서버에 전송하지 않고 매 시간마다 한 시간 이전 기온과 현재 기온을 비교해 최소 0.5도로 설정할 수 있는 임계값 보다 차이가 더 크면 값을 전송하고 임계값과 같거나 작으면 값을 전송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온이 서서히 움직일 때는 몇 시간에 걸쳐 아무 값도 전송하지 않기 일쑤였는데 그냥 한 시간에 한 번 기온을 전송하면 훨씬 단순하게 동작할 수 있었겠지만 굳이 이런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수많은 온도계가 한 시간마다 DDoS 공격을 해 댈 서버 부하를 감안한 조치일 수도 있고 또 온도계 자체의 배터리 소모를 최소화 하려는 의도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는 시간으로 미루어 건물 측은 평일 오전 여섯시에 냉방을 시작하고 평일 오후 일곱시에 냉방을 종료하는 것 같습니다. 휴일이나 주말에는 냉방을 하지 않는데 어느 휴일에는 기온이 33도까지 올라갔지만 주말에 이틀 연속으로 냉방을 안 하는 둘째 날에는 실내 기온이 37도를 넘기는 기록을 나타냈고 이제서야 빈 책상에 쌓아 둔 간식 중 초콜릿 간식이 주말만 지나고 나면 다 녹아버리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들이 목표 기온을 아무리 낮춰도 회의실처럼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들의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목표 기온을 아무리 낮춰도 실내 기온이 25도 아래로는 거의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으로 우리들이 냉방에 미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지난 여러 날 동안의 제 자리에서 측정한 온도 변화를 기록한 정보와 함께 분명 냉방이 잘 안 되고 있으니 와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언어는 정중했지만 나름 열흘 이상 미칠 것 같은 상태를 참으며 기록한 광기를 품고 있는 그림이었고 냉방이 정상 작동 중인 점 참고 바란다고만 말할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고 이내 여러 차례에 걸쳐 여러 사람들이 나타나 에어컨을 살펴보고 또 천정의 일부를 뜯은 다음 그 안에 있는 배관과 시스템을 점검하고 또 시설팀 뿐 아니라 이번에는 건물 시공사가 출동해 문제를 확인하고 뭔가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어느 날 아침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지난 열흘 동안 반복해 이제 습관처럼 온도를 표시하는 앱을 열어 현재 기온을 확인했는데 아침 여덟시 무렵에 이미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충분히 쾌적한 기온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기대에 가득 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성큼성큼 걸어 제 자리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이 상태를 만들기 위해, 이 상태에서 일에 집중하기 위해 지난 열흘 넘는 기간 동안 버텼다는 생각이 들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피엔딩으로만 끝날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구역에도 이제 냉방이 정상 가동되기 시작했지만 근본적으로 건물의 시설팀에서는 우리들이 필요한 수준까지 충분히 냉방 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알게 됩니다. 냉방이 정상 동작하기 시작했지만 아침에 우리 구역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가장 먼저 출근한 누군가가 시설팀이 원격으로 설정한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하나마나한 목표 기온 설정을 6도 이상 끌어내려 재설정해야만 간신히 쾌적한 상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또한 냉방시설이 수리된 다음에도 제어 패널에 표시되는 현재 기온은 제가 제 자리에 있는 가정용 온도계로 측정한 기온에 비해 훨씬 낮게 나타났는데 아주 오래 전에 일하던 오피스 빌딩에서도 같은 문제가 있었고 같은 문제가 이 오랜 세월에 걸쳐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은 이제 더 이상 놀랍지도 않습니다. 아마도 온도계가 천정에 설치된 에어컨과 한 덩어리여서 그 밑 몇 미터 아래에서 측정한 온도와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만 애초에 그렇게 설계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위에서 파란 선은 냉방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충분히 냉방이 되지 않는 기록, 빨간 선은 냉방을 하지 않는 주말이나 휴일의 기록, 그리고 녹색 선은 처음으로 냉방이 정상 동작하고 또 사람이 수동으로 목표 기온을 낮춰 달성한 쾌적한 기온을 표시한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크고 으리으리한 현대적인 오피스 빌딩이라도 여전히 냉방 하나 똑바로 못 하며 건물은 그들의 입주사 별로 요구하는 기온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다른 목표 기온 설정이 필요함에도 항상 모든 층에 똑같은 목표 기온으로 냉방을 시작하며 이 상황에 우리들이 쾌적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침마다 제어기 앞을 지나가는 누군가가 습관적으로, 에어컨에 미친 사람처럼 강박적으로 목표 기온을 수정해야만 하는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그 에어컨에 미쳐 강박적으로 목표 기온을 수정하고 다른 누군가가 또 실수로 기온을 변경하지는 않았는지, 또 시설팀의 누군가가 원격에서 목표 기온을 변경하지는 않았는지 계속해서 감시하며 자신의 노동생산성을 갉아먹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게 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