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소비 회고
2021년에는 여러 가지 내용을 한 번에 회고했었습니다. 한 해 동안 일어난 일 이것 저것을 한 번에 쓸 수 있어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각 주제를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웠습니다. 그러다가 트위터에서 ‘올해의 무엇’ 목록을 봤는데 이렇게 항목 별로 분리해서 글을 만들며 생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앞에 글쓰기 회고와 글 공유 회고를 각기 다른 글로 만들었고 이번에는 위 올해의 무엇 목록에서 ‘올해의 소비’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가계부를 열고 2022년 1월 1일부터 오늘(2022년 12월 31일)을 범위로 할부를 포함해 한 번에 10만원 이상 지출한 항목들을 나열한 다음 이야기할 만한 항목을 찾아 살펴보며 이야기할 만한 항목을 추렸습니다.
스픽
1월 첫날 스픽을 구입했습니다. 그 전까지 2년 넘게 듀오링고를 사용했습니다. 듀오링고 덕분에 헛갈리던 표현을 덜 헛갈리게 됐고 또 자주 영어를 읽고 타이핑 하게 되어 의미가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각 잡고 본격적으로 시험 공부를 하는 편이 나을지 아니면 지금처럼 캐주얼한 상태를 유지하는 편이 나을지 고민했는데 분명 본격적으로 각 잡으면 순식간에 포기할 거란 걱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12월 말에 스픽이라는 서비스를 알게 됐고 이전에 듀오링고에서는 하기 쉽지 않았던 말하기를 할 수 있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1월 초에 등록하면 1년 비용을 할인해 준다고 해서 구입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듀오링고 처럼 중간에 실수를 만회하는 방법에 따라 아주 오랫동안 연속 학습을 유지할 수는 없었지만 1년 동안 딱 하루 빠진 나머지 모든 날 동안 잠깐이라도 학습했습니다.
듀오링고가 본격적인 문법을 배우고 싶을 때 부족함을 느꼈다면 스픽은 레슨 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스픽 스스로는 레슨을 늘리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운영할 생각은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연말이 다가오면서 내년에도 이 서비스를 계속해서 사용할지 고민했습니다. 내년에 조금만 더 하면 레슨이 바닥을 드러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소개한 AI 스피킹 기능은 내가 개떡같이 말한 문장을 예쁜 문장으로 교정해주고 또 주제만 정해진 상황에서 꽤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레슨과 연습을 마친 다음 AI 스피킹 기능을 사용해 몇 마디 더 나누는 것이 의미 있어 보여 레슨이 부족해 보이는 상황에도 다시 구입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지난 1년 동안 이 서비스를 통해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발전하려면 제대로 각 잡고 공부해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의미는 적어도 더 못하게 되지는 않도록 적당히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정도라고 봅니다. 1년 현상 유지에 십 몇 만원 정도 사용하는 건 꽤 괜찮았다고 평가합니다.
에일리언웨어 데스크탑
7년 동안 사용하던 메인 PC는 상당한 인내력을 길러주었지만 이제는 때가 왔습니다. 이 PC는 부품을 구입해 조립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조립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품 간 상성을 파악하기도 귀찮고 각 부품 가격을 알아보고 또 별 관심 없이 살던 소켓 이름이나 핀 개수, 요즘 유행하는 부품 이름 따위를 알아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국내에 잘 알려진 어지간한 완제품을 구입할 생각도 잘 안 들었고 한편으로는 다나와 완성 PC들은 보는 순간 눈알이 썩을 것 같은 LED로 온몸을 둘러싼 모양이라 PC를 조립하지 않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저런 제품을 팔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아무 장식 없이 전원 버튼만 덜렁 달린 작은 모양을 원했지만 그런 껍데기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작으면 이상한 모양이고 장식이 없으면 이상한 디테일이 눈알을 썩게 만들곤 합니다. 고민하다가 약간 삐딱해진 나머지 이럴 바엔 나도 내 눈이 썩든 말든 요즘 유행하는 PC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고 또 그 안에 LED도 번쩍거리는 기계를 사볼까 싶었습니다. 또 지난 몇 년 동안 작은 껍데기 덕분에 생긴 건 마음에 들었지만 스토리지라도 증설할라 치면 파워서플라이를 뜯어내야 해서 이제는 모양보다는 기능에 신경을 쓸 때라고 생각했고 작은 크기에 집착하지 말고 아예 넉넉한 크기를 사자고 애써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눈 딱 감고 에일리언웨어 데스크탑을 주문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수많은 그래픽카드가 광산에 끌려가 갖은 고통을 겪고 있을 즈음이라 여전히 그래픽카드는 비쌌고 꽤 큰 돈을 지출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여전히 최상위 제품을 구입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머지 부품은 앞으로 몇 년 동안 신경 쓰지 않도록 준비했지만 그래픽카드만은 여전히 엔트리 모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엔트리 레벨이라도 이전보다는 훨씬 훨씬 훠얼씬 쾌적해졌습니다.
하지만 새 데스크탑은 데스크탑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쾌적해진 일상 작업에 대한 만족은 PC를 배송 받은 그 주에 끝났고 최신 기술을 요구하는 게임을 만족하며 높은 프레임으로 돌리는 만족감도 그 달 안에 끝났습니다. 이제는 데스크탑이 아니라 HDR을 지원하는 모니터 같은 주변기기가 PC 성능을 받쳐줘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내 모니터는 여전히 이제 10년이 넘은 오래된 모델이었습니다. 덕분에 새 데스크탑의 만족감은 아주 짧게 끝나고 이 큰 돈을 괜히 썼나 하는 후회가 드는 지출이 되었습니다.
밀레 청소기
현대에 줄이어폰은 일종의 로스트 테크놀러지로 불리곤 합니다. 줄이어폰 뿐 아니라 줄청소기도 비슷합니다. 다이슨 무선청소기는 오랜 시간 동안 제 역할을 해 줬지만 사용시간이 점점 짧아지며 어느 순간 바닥에 떨어진 먼지를 몇 십 초 동안 빨아들이고 나면 꺼지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배터리를 교체하면 간단히 새 청소기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배터리를 교체할 절차를 알아보니 또 길고 복잡한 절차와 긴 기다림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청소를 안 하고 버티는 건 쉬웠지만 청소기가 있어도 청소를 안 하는 것과 청소기가 아예 없는 상태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로스트 테크놀러지 유선청소기를 사기로 결단을 내립니다. 가족과 상의해보니 외국 제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의 한국 가전은 이전 시대와 달리 세계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간단히 한국 가전을 살 작정이었지만 딱히 가족의 의견에 반대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독일 회사에서 만든 청소기를 골랐습니다.
다이슨에서는 먼지통이 없는 청소기를 만들어 와서 먼지통의 존재를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독일 회사는 여전히 먼지통을 사용하고 있어 생소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먼지통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청소기를 받아 들고 처음 작동시키려는 순간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아무리 독일 회사들이 편리함보다는 기계의 견고함이나 신뢰성을 중시한다는 점을 인정하랴 한다 하더라도 전원 버튼이 손잡이가 아니라 본체에만 달려있다는 점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맨 처음 사용했던 금성 진공청소기조차도 전원은 손잡이에 달려 있었고 이걸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청소기의 전원은 본체에 달려 있었고 항상 허리를 숙여 바닥에 있는 본체에 달린 토글 버튼을 꾹 눌러야 했을 뿐 아니라 흡입력을 바꿀 때도 허리를 숙여 버튼을 눌러야만 했습니다.
실은 청소기는 그 역할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고장 나지 않을 겁니다. 심지어 전원 버튼이 손잡이에 달려 있어 생길 지도 모르는 고장에도 강할 거고요. 하지만 이 청소기를 사용할 때마다 ‘아 유럽 놈들은 이래서 망할 거야’라는 말을 습관처럼 되뇌일 것은 확실합니다.
로지 독
원격 근무 기간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원격 근무는 계속됐고 그럴싸한 회의용 음향 장비가 필요해졌습니다. 특히 웹캠에 달린 마이크는 내 말을 전달하기에 충분했지만 나 말 뿐 아니라 작선거리 100미터 밖에서 들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와 집 앞에 온 오토바이 소리, 창 밖 새소리를 함께 전달해서 종종 문제를 일으키곤 했습니다. 한동안은 종종 유튜버들이 공중에 매달아 놓고 사용하는 좋은 마이크를 살 생각을 했는데 공간이 좁아 마이크를 공중에 매달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로지 독을 골랐습니다.
로지 독은 USB-C 포트에 꽂는 스피커폰인데 마이크가 여러 개 달려 있고 또 꽤 괜찮은 스피커도 함께 달려 있어 알아서 스피커폰으로 동작합니다. 스피커폰의 핵심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는 소리가 자기 자신의 마이크를 통해 들어가더라도 이 소리를 완전히 제거해 주는 것인데 이 역할에 충실하게 잘 동작합니다. 이름에 ‘독'이 들어있듯 기계 뒤편에는 여러 포트가 달려 있어 연결된 컴퓨터에 접근하지 않고 간단히 장비를 연결할 수 있어 편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뒤에 여러 포트를 달 거면 SD카드 슬롯도 하나 달아줬으면 좋았겠다 싶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기계를 쓸 때 가장 편한 점은 마이크에 소음이 들어갈까 걱정할 일이 완전히 없어진 것입니다. 책상 위에서 키보드 뒤편에 놓고 사용하는데 이야기를 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려도 내 목소리만 전달되고 키보드 소리는 전달되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심지어 내 뒤편에서 누가 이야기를 해도 그 사람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온전히 내 목소리만 전달되어 소음에 대한 걱정을 완전히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만 소음을 필터링하는 원리에는 마이크에 입력되는 소리의 대역을 목소리 대역으로 좁히는 것도 있어 소음이 늘어나면 내 목소리 자체의 음질이 떨어지는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광고한 대로 동작하고 이전에 골치를 썩던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을 뿐 아니라 이전에 모니터에 달린 스피커를 그냥 사용하던 입장에서 음악을 듣기에도 충분한 스피커는 만족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기능을 위해 이 정도 금액을 사용할 일인가 하는 점은 여전히 반성할 점입니다.
레푸스
지난 20년 동안 가지고 살던 지병이 있습니다. 아프거나 일상 생활에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미관상 좋지 않고 또 낮기는 하지만 전염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치료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고 또 오랜 기간 치료해야 한다고 해서 딱히 아프거나 가렵지도 않은데 그냥 둬도 되겠지 하고 지나다 보니 어느새 20년쯤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이 유튜브 추천으로 이 상태를 물리적으로 해결하는 서비스에서 올린 영상을 보다가 ‘너도 한번 가보라'고 해서 약간 떠밀려 가게 되었습니다.
이 곳은 발에 생긴 문제를 물리적 접근을 통해 완화하는 곳인데 근본적인 치료보다는 치료 과정에 필요한 물리적인 시술을 하는 곳입니다. 내 상태는 심한 편이었기 때문에 장기간 관리해야 한다는데 동의했고 큰 돈을 들여 장기 계약을 하고 일정 기간마다 방문해 시술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김에 겸사겸사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 본격적으로 가능한 모든 약물 치료를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원래는 경구약, 외용액 등을 사용하면서 물리적으로 발톱을 갈아내 효과를 올릴 수 있는데 이 역할을 대신합니다. 이제 몇 달 정도가 지났는데 이전보다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오랜 기간 약물치료와 시술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금은 약간 개선된 수준이지만 다음 연말에는 이 정도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효과가 있을지 걱정과 기대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결론
가계부를 살펴보며 꽤 큰 돈을 들인 항목 중 한번 짚고 넘어갈 만한 건 이 정도입니다. 이제 경제도 어려워지고 벌이도 시원찮아 새해에는 지출을 결정할 때 이전보다 더 강하게 검토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올해의 몇몇 지출은 지출한 만큼 효과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내년에는 뭘 사더라도 올해보다는 후회할 일이 적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