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질문 하기

올바른 질문 하기

1차 완료는 완료인가요 아닌가요에서 ‘1차 완료’라고 말씀하시는 작업자님께 그래서 그 상태는 완료된 상태를 말하는지 완료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지를 직접 질문하면 종종 상대를 방어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질문의 의도는 이 작업의 ‘1차 완료’ 상태를 ‘완료’로 판정하고 제작된 에셋을 다음 작업자에게 전달 시켜 다음 작업을 시작하고 또 이번 작업을 완료하신 작업자님께는 그 다음 작업 계획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1차 완료’의 확실한 의미를 잘못 질문하면 아주 쉽게 ‘작업이 완료됐다는 내 말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같은 식으로 방어적이기도 하고 또 아주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작업의 상태를 평가하고 결과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모호함을 최대한 없애야 하지만 인간적인 측면을 생각하고 또 각자가 껄끄럽게 생각하지만 차마 직접 입 밖에 내고 싶어 하지는 않는 말들을 대신 말하면 상황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 수 있기도 합니다.

먼저 인간적으로는 평소에 내가 모두의 적이 아님을 아주 조심스럽게 학습 시켜야 합니다. 게임디자이너로써 마이크로 PM 역할을 하며 파이프라인 상에서 각 작업자들 사이를 연결해 아무 일도 진행되지 않았지만 책임자를 확인하려고 할 때 ‘저 사람이 나한테 전달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같은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내가 여러분들을 평가하거나 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며 여러분들과 똑같은 그냥 작업자일 뿐이고 일이 잘못 되면 디렉터 그룹에게 똑같이 깨지고 또 똑같이 인사평가에 C등급이 나오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똑같이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가고 또 똑같이 살을 빼려고 노력 중인 그냥 똑같은 사람임을 학습 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 종종 파이프라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군가의 잘못이 확실하고 또 중간에서 마이크로 PM으로써 의사를 확실히 전달했으며 전달한 기록도 있지만 내가 기록과 전달을 빠뜨렸기 때문에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문제를 뒤집어 써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며 내가 결코 모두의 적이 아니라는 점을 학습 시키는데 성공하면 그 다음부터는 ‘1차 완료는 그래서 완료인가 완료가 아닌가’ 같은 나름 날 선 질문을 웃으며 할 수 있게 되고 질문을 듣는 사람도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한 분위기에서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조금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퀄리티를 올리기에는 상황이 적합하지 않고 또 미래에 이 아이콘들은 다시 변경될 가능성이 있으니 이번에는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 하는 것으로 협의해 ‘1차 완료’를 ‘완료’로 부드럽게 변경할 수 있습니다.

한편 평소에 그런 노력을 함과 동시에 정확히 필요한 정보를 요구하는 좋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최근부터 F1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여러 사람들 처럼 저 역시 한 1년 쯤 전부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했는데 마치 처음 야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처럼 맨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모르고 그냥 보다가 그 다음에는 게임 규칙이 보이고 그 다음에는 그 게임을 하는 팀이 보이고 그 다음에는 그 팀을 구성하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보이며 똑같은 게임이 거기 참여하는 심지어는 관중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로 보이기 시작하는 경험과 비슷했습니다.

이번 F1의 경우에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캐릭터 각각의 인간적인 면과 이들이 속한 팀, 팀 헤드가 처한 상황과 인간적인 면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인간 관계, 실적을 내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다음 시즌에 목이 날아갈 수 있는 상황, 그리고 낮은 타이어 신뢰도, 많은 사람들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수행해야 하는 피트스탑, 세이프티 카 같은 경기 진행을 의도적으로 망가뜨리기 위한 장치들을 서서히 익혀 가며 야구와 비슷하게 이전에는 그냥 자동차를 몰고 같은 코스를 수 십 바퀴나 도는 지루한 게임에서 거기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얽힌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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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상도 버전은 유튜브 웹사이트에서 직접 보세요: https://youtu.be/IGwm1QmwN9s

F1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역사적으로 어떤 유명한 에피소드들이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지금은 접하는 유명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모두 새로울 때인데 유튜브를 통해 레드불 팀이 2021년 시즌에 경기 시작 직전에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영상 제목 자체가 ‘How Red Bull Performed a Mechanical Miracle’이기 때문에 이들이 뭔가 대단한 것을 해내는 영상이라는 것은 플레이를 시작하기 전부터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 시작 약 20여분 전 연습 주행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왼쪽 앞 바퀴와 서스펜션이 망가졌습니다. 경기에 참가하려면 차량을 수리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규정 상 경기 시작 20분 전에는 피트레인에 진입할 수 없어 수리를 위해 차량을 차고로 가져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피트레인에서 출발할 때 합류지역에서 생길 수 있는 사고 위험성 때문에 생긴 규칙인 것 같아 보입니다. 또한 경기 시작 5분 전에는 네 바퀴가 모두 땅에 닿아 있어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는데 이 때문에 차량을 차고로 가져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수리해볼 수 있는 시간은 약 15분 밖에 없습니다.

일단 미케닉들은 상황으로 미루어 제한시간 안에 수리를 시도해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수리에 필요한 모든 도구를 출발 지점으로 끌고 와서 수리 하기 시작합니다. 평소에 대략 2~3초 안에 네 바퀴를 모두 갈아 끼우는데 익숙한 사람들이지만 뭐가 얼마나 부서졌는지, 또 얼마나 수리를 필요로 하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15분 밖에 안 남은 상황 자체가 압박을 주는 상황인데 무전을 들어 보면 누구 하나 소리치지 않고 놀라울 정도로 각자가 자기 업무에 집중하고 또 리드그룹은 근 미래에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원을 미리 확보하는 역할을 하며 팀에 남은 시간을 안내하고 정보를 수집해 수리를 계속할지 아니면 차량을 출발선에서 치울지 의사결정을 할 준비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4분 10초 즈음에 디렉터가 차량이 수리 되기까지 소요될 예상 시간을 묻는데 현장 스탭이 10분에서 12분 정도 소요될 작업이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디렉터는 다시 대략 어떤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지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는데 여기에 일단 모든 부품을 분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장황해 보이는 대답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디렉터는 말을 끊고 질문을 바꿔 만약 상황을 통제해 차량 수리에 집중할 경우 출발 4분 전에 수리를 마치고 인원이 모두 철수해 평소와 같은 상황에 도달할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여기에 현장 스탭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디렉터는 그러면 이제 작업을 언제까지 마쳐야 하는지 알 거라고 답하며 대화가 끝납니다.

여기서 디렉터의 첫 질문은 여기에 답변할 현장 스탭이 방어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질문이라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량을 고치긴 해야 하는데 불확실성이 많고 시간은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디렉터가 원한 것은 제 시간 안에 수리를 마쳐 정상 출발이 가능할지 판단하기 위해 정보를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장 스탭의 약간 방어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장황한 답변이 시작되자마자 이전에 했던 질문으로는 원하는 판단을 할 수 없음을 바로 깨닫고 바로 질문을 바꿔 의사결정에 필요한 판단 자체를 현장 스탭에게 일임하며 ‘그래서 4분전에 마칠 수 있나 없나’라고만 묻습니다. 현장 스탭은 여기에 가능하다고 답하며 이 시점에서 디렉터와 현장 스탭 모두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지적 받고 싶지 않아 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정보를 얻고 싶어 하며 때때로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합니다. 당연히 상대의 공격적인 행동에는 방어적으로 행동하기 마련인데 이는 사람의 본능이며 이를 고치려면 아주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들여 팀에 신뢰를 구축해야 하지만 솔직히 현대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을 만회할 방법 중 하나는 상대가 공격적으로 느낄 수 있는 질문을 최대한 피하고 올바른 질문을 하며 필요하다면 판단을 상대에게 맡겨 정보를 전달 받아 판단을 하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