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경험 미화를 경계하기
과거의 경험은 미화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에 과거 게임 경험과 현재 게임 경험의 차이에서 과거의 게임 경험을 미화해 이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으므로 현대에 이런 생각에 기반해 비즈니스를 해서는 안됩니다.
얼마 전 점 열 두 개가 있지만 이 중 동시에 서너개만을 인지할 수 있다는 그림을 봤습니다. 화면을 가려 가며 동시에 한 줄에 있는 점만 보면 모든 점을 셀 수 있지만 그림 전체를 동시에 보면 열 두 점을 동시에 볼 수 없습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이유는 원추세포가 시야의 중앙 부분에만 집중되어 있어 시각 기준으로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은 시야의 중앙 뿐이고 나머지 영역은 정확히 볼 수 없지만 대충 본 결과를 뇌가 예측해서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뇌는 반복된 패턴을 보고 중앙에 점이 없는 패턴으로 정확히 볼 수 없는 가장자리의 이미지를 만들어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패턴 중앙에 점이 있는 것입니다.
뇌는 시각을 만들어줄 뿐 아니라 기억을 만들어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시작할 때 이야기한 과거 게임 경험을 미화하기도 하고요. 게임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에서는 사람 뇌가 이렇게 행동한다는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런 이야기들의 핵심은 과거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고 시간이 지날 수록 미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입니다.
택시요금 인상을 알리는 기사를 읽은 분들이 이전 시대에 택시를 타던 경험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타임라인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과거에는 택시요금도 더 저렴했고 앱과 이를 구동할 수 있는 폰이 없어도 택시를 탈 수 있었으며 그냥 길에 나가서 손을 들어 택시를 잡을 수도 있었고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없어도 택시를 탈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전 시대에 택시를 이용하던 경험이 더 나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과거를 미화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걸 따지는 행동이 비겁해 보이긴 하지만 한번 생각해 봅시다. 택시요금이 더 저렴했던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과거였으니 당연합니다. 시간이 흐르며 화폐가치가 감소해 요금은 당연히 올라야 했습니다. 명목 상 요금이 올랐는데 전체 경제규모에 비해서는 얼마나 올랐을까요. 이걸 확인해보기 전에는 택시요금이 올랐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앱이 없어도 택시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일단 큰 길까지 나가야 했습니다. 골목에는 배회 영업 하는 택시가 절대로 들어오지 않았으니까요. 큰 길까지 나가기 어렵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 시내만 해도 ‘양방향 차선이 그려져 있는’ 길과 여러 블록 떨어진 곳들이 많습니다. 이곳에서는 택시가 다닐 ‘가능성’이 있는 곳까지 몇 백 미터를 걸어야 했습니다. 만약 걷기 힘들다면? 짐이 많다면? 여러 명이라면? 비라도 내린다면? 과연 이 경험이 앱을 사용하지 않을 만한 경험이었을까요. 제 기준에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없어도 택시를 탈 수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심지어 한동안은 카드 사용을 이유 없이 거절하거나 기계가 고장 났거나 기계를 사용할 줄 모른다며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기계를 사용할 줄 모른다고 해서 제가 직접 기계를 조작해 결제한 적도 있습니다. 아마 거짓말이었을 겁니다. 시간이 흘러 이 방법이 서로에게 더 편하다는 사실을 아주 힘들게 배우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금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배제되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이는 개선해야 하며 과거 경험이 더 나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이 경험을 모은 현대의 택시 사용 경험이 이전 시대에 비해 더 나빠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택시 호출 앱을 사용할 수 있으면 큰 길까지 몇 백 미터를 걸어 나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택시를 하염 없이 기다리거나 빈차 램프에 불이 들어온 택시를 향해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지만 내 옆에 있는 큰 가방을 보고 경기도 버스마냥 그냥 지나가 버리지 않게 됐습니다. 짐이 있어도 사람이 많아도 택시를 탈 수 있습니다. 비가 와도 큰 길까지 옷을 다 적셔 가며 걸어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지역 경계, 시간 별 할증, 지불 방법, 합승 순서에 따라 다른 요금산정방식 같은 문제로 얼굴 붉힐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이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요금과 앱 사용만으로 과거 경험이 더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쉽게 과거 경험이 더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시작할 때 설명한 과거를 미화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가 더 나았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알 수 없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분명 과거의 경험이 더 나았다고 말할 일이 있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과거의 택시나 과거의 게임 사례를 떠올리며 혹시 내가 과거를 미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하려고 노력할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