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목적을 숨긴 빌드업
게임디자이너는 자신의 정확한 요구사항을 문서에 기술하기를 요구 받지만 때때로 이런 접근은 프로젝트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덜 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게임의 모든 부분을 프로젝트 시작할 때부터 온전한 요구사항을 갖춘 상태로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첫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극심한 난항을 겪으며 요구사항은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가 또 다른 어느 날 아침에 순식간에 나타나 여기 맞춰 개발을 진행하는 우리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는데 이런 요구사항 중 상당수는 더 큰 요구사항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이 조금만 더 경험이 있었다면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요구사항을 구현하고 이들을 통합하는 과정에 가서야 문제를 알 수 있었고 일단 문제를 회피하는 선에서 요구사항을 작게 변경한 다음 다른 마일스톤에서 이번에 우리들이 겪은 문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하는 다른 요구사항을 설계해 개발해야 했습니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그런 새로운 요구사항은 이전에 개발한 요구사항들의 핵심 목표를 희석할 가능성이 높았고 또 나중에 앞서 만든 기능들의 충돌을 바로잡는 일은 그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새로운 기능들처럼 프로젝트 전체 관점에서는 그리 반짝이는 기능이 아니어서 이 개발에 참여한 사람들의 사기를 쉽게 저하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겪다가어느 날 프로젝트 리드님과 술을 마시다가 ‘다음엔 기획서 다 쓴 다음에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라는 말씀을 들었고 어린 마음에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이후 영원히 그런 그 시대에 제가 생각한 이상적인 개발을 할 기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유는 너무 당연하게도 그렇게는 개발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게임디자이너 각각이 서로가 작성하는 서로 다른 요구사항을 깊이 이해하고 이들이 통합되어 동작하는 빌드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미리 실행해볼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어쩌면 가능했으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정도 능력을 가진 사람 중 유명한 사람은 바로 아인슈타인이고 그 분이 이런 능력으로 해낸 것이 바로 여러 가지 사고 실험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우리들은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업적을 쌓았을른지도 모르지만 그런 능력으로 굳이 게임디자인 같은 일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산업 초창기의 천재들과 달리 그들이 이미 자신들이 하고 싶은 새로운 도전을 찾아 떠난 다음 그 자리를 차지한 보통 사람들일 뿐이었고 우리들은 다른 사람이 담당한 게임디자인의 핵심을 파악해 자신이 작성한 디자인과 통합해 그 결과를 생각해낼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 얼마 동안 절망했지만 우리들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일할 것이 분명한 항공기 설계 같은 분야에서도 서로 다른 요구사항을 반영한 설계를 통합하던 도중에 문제를 발견해 이를 수정하기 위해 설계를 대규모로 수정하고 또 그때까지 준비한 공정을 수정하고 또 그 결과물을 파기하기도 한다는 말을 듣고 그나마 이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용기를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