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서비스를 가계부에 기록할 때 하는 고민

구독 서비스를 가계부에 기록할 때 하는 고민

유료 가계부 서비스인 후잉을 꽤 오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 만족하는 다른 서비스가 없었습니다. 후잉이 유일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요즘 세상에는 신용카드 회사나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직접 읽어 소비를 자동으로 기록하고 분류하고 또 통계를 내 주는 서비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에 걸친 경로 의존성으로 인해 함부로 가계부 서비스를 갈아탈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세월이 흐르며 여러 가계부 앱이나 서비스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동안에도 우직하게 유지 보수 되고 있어 크게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가계부에 지출 항목을 기입하려면 지출 항목의 카테고리를 정해야 합니다. 식품, 교통, 통신, 의료, 미용 같은 식입니다. 이런 항목 하나하나를 잘 고민해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후잉에 설정된 기본값 대로 사용하다가 시간이 흐르며 요구사항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수정했습니다. 가령 카테고리 기본값에는 ‘유흥’ 항목이 있었고 저는 술값을 유흥비로 기입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니 내가 술 마시며 잘 노는 것도 아니고 또 술을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니어서 술값을 별도 카테고리로 구분할 필요가 없겠다고 판단해 유흥 카테고리를 없애고 술값을 식비에 통합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긴 기간에 걸쳐 시행착오를 겪어 나름 카테고리를 변경해 가며 사용하는 중입니다.

한참 전부터 요즘에 걸쳐 고민하는 주제는 월 단위 구독을 어떤 카테고리로 기록해야 할 지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모호하지 않은데 저 혼자 모호하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서비스가 구독 형태로 바뀌며 카테고리를 새로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더 자주 생기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같은 건 간단히 여가 비용으로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유튜브 프리미엄은 단순 여가 비용으로 처리하기에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는데 유튜브는 여가 뿐 아니라 정보 습득 방법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 용도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두 가지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여전히 여가 비용으로 기입하고는 있지만 점점 더 불편해지고 있습니다. 유튜브 프리미엄 이용요금을 반으로 쪼개 여가 비용과 공부 비용으로 각각 기입하는 방법을 검토 중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비용을 받지 않던 구글 워크스페이스 개인 사용자들에게 비용이 청구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커스텀 도메인으로 지메일을 사용하는 용도인데 여기까지는 통신 비용으로 처리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구글 드라이브 용량이 포함되면서 카테고리 분류가 모호해집니다. 온라인 스토리지는 통신 비용일까요? 온라인 스토리지는 파일을 공유하는 통신 비용으로 볼 수도 있고 파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보안 비용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원패스워드는 애초에 무슨 비용일까요. 방금 ‘보안 비용’을 언급했지만 이 카테고리를 아직 만든 것은 아닙니다. 요즘 세상에 원패스워드 같은 도구 없이 인터넷을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합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광범위하게 관여하므로 통신 비용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보안 카테고리가 있다면 보안 비용으로 볼 수 있을 것도 같고요.

컨플루언스는 무슨 비용일까요. 표면상 평범한 위키 서비스입니다. 개인적인 모든 기록을 관리하고 정리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도출하는데 사용합니다. 모호하지만 ‘공부’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기입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이 위키를 훨씬 더 넓은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페이스를 익명 접근할 수 있게 설정한 다음 도메인에 연결해 웹사이트로 활용합니다. 업무 기록을 정리하고 분류하고 검색하는데 사용합니다. 지라와 연동해 할일을 관리하고 할일에 관련된 문서와 미디어를 보관하는데도 사용합니다. 이 모든 역할은 다시 위에 언급한 파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보안 용도와 겹치기 시작합니다.

아직 마음에 드는 방법을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또 이런 목적에 따라 카테고리를 분류하려는 접근 자체가 올바른지에 대한 고민도 여전합니다. 다만 이런 고민들로부터 구독을 통해 사용하는 서비스들이 시간이 흐르며 활용 범위가 전통적인 가계부의 카테고리 구분과 잘 맞지 않는 형태로 변해 가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했습니다. 유튜브가 여가에서 출발해 공부 목적을 포함하고 컨플루언스가 공부 목적에서 웹사이트를 통해 일종의 통신 비용과 보안 비용으로 확정되어 가는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가계부를 마음에 들도록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온라인 서비스들의 발전과 활용 방향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보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