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포인트 말고 다른 도구도 살펴보세요
파워포인트는 분명 프리젠테이션을 작성하기에 가장 훌륭한 도구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는데도 유용하지만 몇몇 기능은 다른 도구를 사용해 더 높은 생산성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다이어그램을 그려야 하는 일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다이어그램을 그릴 필요가 생겼을 때 마이크로소프트 비지오라는 도구가 이 역할에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점을 알게 되어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굳이 비지오를 필요로 할 만한 다이어그램을 그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정도 작업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스위트에 포함된 파워포인트로도 충분히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작업에 필요한 그림은 파워포인트에서 만드는 것이 딱히 이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회사가 비지오를 사주기는 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고가로 판매되던 비지오가 반드시 필요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딱히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 즈음에 문서에 포함하기 위해 그리던 다이어그램들은 굳이 비지오가 아니더라도 파워포인트만으로도 충분히 그릴 수 있었습니다. 다만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노드를 정렬하고 재배치하는 등 관리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파워포인트 만으로는 아쉬운 지점이 생기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다이어그램 대부분은 한 번 그려 문서에 첨부하거나 파워포인트 파일 자체를 사용하고 나면 다시 수정할 일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이어그램과 플로우차트가 조금 더 길어지고 조금 더 복잡해지기 시작하고 또 게임 인터페이스를 그리기 시작하자 파워포인트 만으로는 작업이 슬슬 어려워졌습니다.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기회서에 첨부한 다이어그램이 파워포인트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길어지거나 복잡해지고 있다는 것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파워포인트 한 페이지로 그려낼 수 없는 다이어그램이 설명에 필요하다면 업무 정의가 잘못되었거나 서로 다른 업무로 분리해야 하는 업무를 한 덩어리로 처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그런 생각 자체를 못 했고 그저 제 생각을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하기에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한 페이지의 캔버스는 너무 작았습니다. 그래사 본격적으로 비지오에 의존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지오를 처음 실행하면 A4 용지에 인쇄하기 위한 작은 캔버스로 시작하지만 설정에서 캔버스를 거대한 크기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항상 새 비지오 파일을 만들면 맨 처음 하는 일이 캔버스 크기를 한 변이 2미터인 정사각형으로 재정의 하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해 두면 캔버스를 마음껏 낭비하며 다이어그램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파워포인트로 다이어그램을 그릴 때는 애초에 캔버스가 아주 좁았기 때문에 다이어그램을 수정하려 할 때 이전 버전을 남겨둔다든지, 다른 다이어그램을 동시에 참고한다든지 하는 작업 방식을 애초에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기껏해야 다른 페이지의 내용을 페이지업, 페이지다운 키를 사용해 오가며 참고하는 정도가 한계였는데 페이지를 오갈 때마다 작업의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그런데 비지오에서 넓은 캔버스를 사용하면서 다이어그램을 수정하려 할 때 이전 버전의 다이어그램을 복사해 옆에 붙여놓고 참고해 가며 다이어그램을 수정한 다음 이전 버전과 새 버전을 한 캔버스 안에서 비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파일의 다이어그램을 복사해 지금 작업 중인 다이어그램 파일의 캔버스 한 구석에 붙여 넣은 다음 참고하며 동시에 다이어그램을 그릴 수도 있었습니다. 넓은 캔버스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캔버스에는 다른 문서에 붙여 넣을 다이어그램 뿐 아니라 온갖 참고 자료, 문서 스크린샷 따위가 널려 있게 됐는데 이런 작업 파일은 뒤죽박죽 정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그 중에서 제가 필요로 하는 다이어그램만 온전히 정리되어 있으면 정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넓은 캔버스의 나머지 부분은 정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이어그램을 그리는데 넓은 캔버스가 굉장히 유용하다는 점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파워포인트로 아무것도 그려낼 수 없었습니다. 파워포인트는 도형 몇 개와 화살표 몇 개로 구성된 그림을 그릴 수는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이 다이어그램에 아이디어를 입히고 이전 버전과 비교해 보고 또 다른 자료로부터 정보를 얻어 다이어그램에 반영하는 등의 행동을 하기는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불가능하지 않았지만 불편했고 효율이 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 어느새 비지오에서 넓은 캔버스를 사용해 작업하는데 완전히 적응해 버렸습니다. 넓은 캔버스가 유용하다고 생각한 또 다른 계기는 인터페이스를 그릴 때입니다.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은 여느 싱글플레이 게임에 비해 상당히 많은 인터페이스가 필요합니다. 여러 싱글플레이 게임은 그 복잡성을 훨씬 적은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대신 여러 인게임 요소로 표현하곤 합니다. 반면 특히 모바일 게임은 그 복잡성을 대신 표현할 만한 인게임 요소를 구축하기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그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인터페이스를 통해 표현해야 하고 이를 위해 온갖 인터페이스를 설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인터페이스는 항상 인터페이스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인터페이스는 반드시 다른 인터페이스를 통해 접근되고 또 이 인터페이스의 조작 결과에 의해 또 다른 인터페이스로 연결되곤 합니다. 그래서 한 가지 기능을 위한 인터페이스를 그릴 때 이 인터페이스에 진입하기 위해 사용하는 인터페이스와 현재 인터페이스의 조작 결과로 연결되는 다음 인터페이스를 동시에 참고하며 인터페이스를 그리면 훨씬 편하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으로부터 꽤 먼 과거에 우연히 어느 프로젝트에서 인터페이스를 작성하는데 발사믹 와이어프레임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봤습니다. 이 도구로 작성한 결과물은 뭔가 허접한 것 같았지만 제가 그동안 파워포인트나 비지오로 인터페이스를 만들며 시간을 소모하던 여러 가지 컴포넌트를 아주 간단히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가령 여러 가지 버튼의 상태, 여러 탭으로 구성된 인터페이스에서 어느 탭이 활성화 되어 있는지 같은 인터페이스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도구가 아닌 이상 도형과 선 만으로는 그리기 상당히 까다로운 그림을 실제 인터페이스가 작동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제어해 원하는 상태를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 도구는 의도적으로 결과물이 대강 손으로 스케치 한 것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덕분에 높은 분들께 보고하기 위한 그림을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터페이스를 포토샵으로 멋지게 만들면 실제 인터페이스 에셋을 제작하시는 분들이 멋진 그림에 현혹되어 제가 작성한 인터페이스를 비판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만들어 다른 사람의 시각을 사용해 개선할 여지를 놓치는 사례를 여러 차례 겪으면서 의도적으로 약간 허술해 보이는 모양으로 인터페이스 와이어프레임을 그리는 것이 의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다음부터는 발사믹 와이어프레임으로 어지간한 인터페이스를 거의 다 그려냈고 지금도 그러고 있습니다. 발사믹 와이어프레임 역시 비지오만큼 무한정 넓은 캔버스를 사용할 수 있지는 않지만 파워포인트에 비해서는 꽤 넓은 캔버스를 사용할 수 있어 이를 활용해 참고할 인터페이스, 스크린샷을 캔버스 바로 옆에 배치해 놓고 인터페이스를 그리는데 바로바로 참고할 수 있어 유용합니다.
이후 다이어그램과 인터페이스를 작성하는 강력한 도구를 여럿 만났습니다. 가령 피그마는 웹 기반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 인터페이스 와이어프레임 뿐 아니라 보다 완성도 높은 인터페이스 목업을 작성하기에도 충분했습니다. 또 다이어그램을 그리기에도 편했고 넓직한 캔버스를 지원해 이전의 작업 방식을 굳이 수정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또 다이어그램을 텍스트를 타이핑 하는 방식으로 작성할 수 있는 머메이드라는 도구를 알게 됐는데 이 도구는 오히려 상당히 복잡한 다이어그램을 그릴 때 모든 노드가 의도에 맞게 연결되었는지 검증하기 편했습니다. 그림을 보고 각 노드들의 연결 상태를 점검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특히 저는 종종 다이어그램이 의미하는 내용에 집중하다 말고 그림 자체에 현혹되어 검증해야 할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머메이드로 작성한 다이어그램은 다이어그램을 검증하는 대신 다이어그램을 만들기 위해 작성한 텍스트 문서를 살펴보며 각 노드의 연결 관계를 점검할 수 있어 복잡한 다이어그램을 작성하고 내용을 검증하는데 굉장히 유용했습니다.
2025년 늦봄 현재 인터페이스를 그릴 때는 지금도 발사믹 와이어프레임을 메인으로 사용합니다. 인터페이스 뿐 아니라 문서를 작성할 때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간단한 그림을 만드는데도 나쁘지 않습니다. 앞서 잠깐 설명한 대로 문서를 통해 아이디어를 전달할 때 복잡한 다이어그램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뭔가 일이 잘못 되어 가는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다이어그램이나 플로우차트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면 서로 다른 기능으로 분리해야 할 기능을 한 가지 업무와 한 가지 기능으로 처리하려고 하고 있거나 플로우차트 역시 다른 모듈로 분리되어야 할 기능을 한 가지 업무와 한 가지 기능으로 처리하려고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신호에 따라 기능을 분리하려고 하다 보면 비 엔지니어가 작성하는 요구사항 문서에 복잡한 다이어그램이나 플로우차트가 등장할 일이 거의 없어집니다. 그래서 다이어그램을 그리기 위해 비지오나 피그잼 같은 도구는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회사에도 어느 순간부터는 비지오를 사 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개인 기록 수단으로 컨플루언스 위키를 사용한 다음부터는 비지오에 비해 조금 불편하지만 컨플루언스 문서를 편집하며 그림을 그려 바로 임베딩 할 수 있는 draw.io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과 비교해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만 사용하는 도구는 꽤 달라졌습니다. 반면 직ㅁ도 사용하는 도구들의 특징은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어 보이는 파워포인트와 비교할 때 명확합니다. 지금도 사용하는. 거의 모든 도구가 충분히 넓은 캔버스를 제공해 생산성을 올리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너절하게 해 온 이유는 지금까지 일을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학교에 다니실 때 주로 사용하시던 오피스 스위트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여러 학교에서 재학생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스위트를 제공하고 있으니 이 범위 안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행동이 딱히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이상 지금까지 사용해 온 도구 이외에 특정 작업에 더 나은 생산성을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다른 도구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사용해 온 파워포인트가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같은 일을 더 빨리,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오래 전 비지오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익숙하게 사용해 오던 도구, 가령 파워포인트로 하던 일을 더 잘 하게 도와주는 도구들에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면 좋습니다. 아마도 회사는 그런 도구를 구매하는데 그렇게까지 인색하지 않을 겁니다. 실은 회사가 그 정도 비용을 사용한 댓가로 이전에는 파워포인트로 적당한 수준의 다이어그램이나 인터페이스를 그려 내는데 하루가 걸렸다면 이 작업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를 사용하면 같은 작업을 고작 몇 시간 만에 이전보다 더 나은 완성도로 만들어낼 수 있어 시간을 조금만 길게 봐도 압도적으로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다음 문득 오래 전 도구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지 않다에서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결국 약 2년 만에 거의 똑같은 소리를 다시 하게 되고 말았는데 개인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해 돈을 벌고 있다면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작업의 효율을 좀 더 개선할 만한 더 나은 도구가 나타나지는 않았는지 가끔 한번씩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것이 파워포인트와 이를 대신할 여러 가지 도구이기는 하지만 다른 도구들도 현대에는 개선 여지가 많습니다. 저 역시 지금은 오랜 기간에 걸쳐 컨플루언스 위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도쿠위키라는 다른 도구를 사용했고 컨플루언스를 대체하기에 충분한 더 나은 도구가 나타나면 조금은 주저할 수도 있지만 더 나은 도구로 갈아탈 겁니다. 이는 발사믹 와이어프레임이나 피그마, draw.io 같은 도구도 마찬가지입니다.
파워포인트가 항상 생산성이 낮은 소프트웨어라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파워포인트를 익숙하게 사용한 경험 때문에 같은 작업을 더 나은 도구를 사용해 더 나은 생산성을 발휘할 기회를 놓치거나 그럴 기회를 훨씬 늦게 얻는 것은 여러 모로 아쉽습니다. 어떤 도구를 사용해도 상관 없으니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작업들을 더 개선된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해 주는 도구가 있지 않을지 항상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