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the movie: 실제와 허구의 교차점

F1 영화의 여러 부분은 실제 일어난 일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F1 the movie: 실제와 허구의 교차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 F1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야구에 처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과 비슷하게 처음에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부터 팀과 선수들 개개인에 대해 알게 된 다음 그들의 커리어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때부터 이전까지는 그냥 자동차들이 달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던 경기에 달리는 자동차 하나하나의 추월과 순위가 선수들 각각의 커리어와 팀 내, 외부의 역학관계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경기가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2025년 개봉한 영화 F1을 본 주변 분들이 저에게 F1을 좋아하니 이 영화에 관심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브레드피트가 떡하니 나온 그림을 보고 이미 관심이 싹 사라져 있었습니다.물론 지난번 팀 이적을 중심으로 한 다니엘 리카도와 페르난도 알론소의 커리어 비교와 교훈에 소개한 적 있는 페르난도 알론소 같은 고인물 드라이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딱 봐도 팀 프린서펄 정도 할 것 같은 연령대인 사람이 모던 F1 경기에 드라이버로 나온다는 설정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졌고 이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보다 실제 레이스가 훨씬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굳이 실제 레이스를 놔두고 허구의 레이스를 볼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애플이 제작비를 냈으니 머지 않아 어딘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장소에 나타날 거라고 생각해 나중에 제가 볼 수 있는 곳에 나타나면 그 때 보든지 말든지 할 작정이었습니다만 어쩌다 보니 예상하지 않은 시점에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화를 본 김에 영화 속 허구와 실제 레이스 사이의 교차점들을 한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영화에서 소니 헤이스는 데이토나 24시 레이스 우승 에피소드는 페르난도 알론소의 르망 24시 레이스 출전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양쪽 모두 경험 많은 드라이버가 내구 레이스에서 보여준 능력과 이것이 그들의 커리어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소니 헤이스는 Chip Hart Racing의 포르쉐 911 GT3 R을 몰고 데이토나 24시 레이스에 참가합니다. 레이스는 7위에 시작되어 소니가 자정에 교대 투입되면서 극적으로 전개됩니다. 소니는 ‘브레이크를 집에 두고 온 것 같다'는 해설과 함께 과감한 추월을 보이며 여러 차량을 제치고 4위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며 클래스 우승을 차지합니다. 한편 페르난도 알론소는 2018년 르망 24시에 데뷔해 우승합니다. 카즈키 나카지마, 세바스찬 부에미와 함께 토요타 TS050 하이브리드를 타고 출전합니다. 알론소는 새벽 1시 30분에 교대 탑승했을 때 선두에 2분 15초 뒤진 상황이었습니다. 이후 2시간 30분 동안의 주행으로 격차를 45초까지 줄였습니다. 이 주행을 통해 토요타의 첫 르망 우승을 이끌어냅니다. 알론소는 2019년에도 르망에서 우승하며 WEC 월드 챔피언십까지 차지했습니다. 이는 2006년 이후 13년 만의 월드 타이틀입니다. 영화에서 소니 헤이스는 자정의 교대를 통해 7위에서 1위로 오르는 추월쇼를 보였고 실제 세계에서 알론소는 새벽 1시 30분부터 시작된 스틴트를 통해 2분 이상 뒤진 상황을 45초까지 따라잡는 드라이빙을 보였습니다. 영화 속 소니는 1990년대 F1 사고 이후 여러 카테고리를 전전하며 경험을 쌓은 것으로 묘사되고 알론소는 F1에서 부진했던 시기에 WEC로 활동 영역을 확장해 다른 카테고리에서 성공을 통해 F1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영화에서 소니는 데이토나 우승 후 루벤으로부터 F1 복귀 제안을 받습니다. 이는 설정 상 30년 만의 F1 복귀 기회입니다. 페르난도 알론소는 2006년 이후 12년 만에 메이저 레이스 우승이라는 성취 뿐 아니라 F1에서의 부침을 다른 카테고리의 성공으로 해소했을 뿐 아니라 트리플 크라운을 커리어 목표로 삼을 수 있게 됐고 2022년 알핀, 2023년 에스턴마틴 복귀로 더욱 완성된 드라이버로써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영화는 허구의 스토리이지만 실제 F1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제가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먼저 소니 헤이스의 과거 사고는 1990년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발생한 마틴 도넬리의 실제 사고를 모티브로 했습니다. 이 사고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배경 스토리입니다. 1990년 9월 28일 스페인그랑프리에서 일어난 이 사고는 연습 세션 중 서스펜션 고장으로 인해 차량이 제어 불능 상태가 되어 시속 283킬로미터로 베리어에 충돌했습니다. 사고로 차량이 폭발하며 반으로 갈라졌고 드라이버인 마틴 도넬리가 차량에서 튕겨져 나와 트랙에 떨어졌습니다.이 사고로 도넬리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의식 불명 상태로 11분간 트랙에 방치되었습니다. 영화는 이 사고의 실제 영상을 편집해 사용했고 실제 마틴 도넬리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소니 역할의 브레드 피트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화에서 소니의 팀메이트인 조슈아 피어스의 몬자 사고는 2020년 바레인 그랑프리에서 발생한 로만 그로장의 사고를 모티브로 삼은 것 같습니다. 2020년 11월 29일 바레인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스타트 직후 크비야트와 접촉해 시속 200킬로미터로 배리어를 관통해 차량이 두 동강 나며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사고 당시 로만 그로장은 28초 동안 화염에 갇혀 있었는데 헬멧으로 헤드레스트를 부수며 탈출했습니다. 이 때 왼발이 자체에 끼어 신발을 벗고 탈출했는데 손과 발에 화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생존했습니다. 또한 2019년 F3 몬자에서 일어난 알렉스 페로니의 사고 역시 참고한 것 같습니다. 차량이 전복되며 공중으로 튕겨져 나갔으나 드라이버가 무사히 걸어 나왔습니다. 이러한 사고들은 몬자 서킷에서 고속 충돌 사고의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2025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윌리엄스는 다른 모든 팀의 뒷목을 잡게 만들 새로운 차원의 팀플레이를 선보였습니다. 이는 영화에서 나온 전략과 비슷합니다. 알렉스 알본과 카를로스 사인츠가 자신들의 실제 페이스보다 랩타임을 최대 6초까지 지연 시킵니다. 먼저 모나코는 서킷 폭이 좁아 거의 모든 구간에서 추월이 거의 불가능한데 카를로스 사인츠가 먼저 페이스를 떨어뜨리며 후위 대열에 정체를 유발합니다. 이를 통해 선두와 20초 이상의 시간 지연을 만들어 알본이 시간 손해 없이 피트스탑을 성공하게 만듭니다. 이후 다음 랩에서 사인츠와 알본이 자리를 바꿔 이번에는 알본이 사인츠가 했던 것처럼 후위 대열에 정체를 유발합니다. 조지 러셀은 알본의 느린 주행에 누벨 시케인을 숏컷하면서 추월하며 차라리 페널티를 받겠다고 말합니다. 러셀은 드라이브 스루 페널티를 받았지만 알본의 느린 주행 때문에 여전히 알본보다 앞설 수 있었습니다. 2020년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막스 베르스타펜은 스타팅 그리드로 향하던 도중 젖은 노면을 밟아 미끄러져 방호벽에 충돌합니다. 이 사고로 프론트윙이 손상되었을 뿐 아니라 서스펜션도 망가집니다. 이 에피소드는 영화에서 단시간 내 차량을 수리하는 장면과 아주 비슷합니다. 항가리 그랑프리에서 레드불은 레이스 시작 전까지 단 20분만 남은 상황이었는데 피트로 들어가 수리할 경우 피트 스타트로 큰 손해를 볼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스포팅 디렉터 조나단 휘틀리는 ‘장비를 가져가 그리드에서 수리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고 가능할 것 같다는 답변을 들으면서 그리드에서 차량 수리를 시도합니다. 레드불 미케닉들이 파손된 프론트윙과 서스펜션 수리를 함께 진행합니다. 특히 스타트 5분 전까지 네 바퀴가 바닥에 닿아 있어야 했는데 이는 그 전까지 서스펜션 수리를 마쳐야 한다는 의미였고 레드불 미케닉들은 시간 압박 속에서 성공적으로 수리를 마칩니다. 이 날 막스 베르스타펜은 2위로 경기를 마치는데 영화 속 프론트윙 및 리어윙 수리 장면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 같습니다.

한편 영화에서 소니가 의도적으로 사고를 내 조슈아의 순위를 올려주는 장면은 2008년 싱가폴 그랑프리에서 일어난 크레시게이트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이 사건은 넬슨 피케 주니어에게 의도적으로 사고를 내도록 지시한 승부조작 사건으로 F1 역사상 가장 큰 스캔들 중 하나입니다. 이 사고는 당시 넬슨 피케 주니어의 팀메이트인 페르난도 알론소에게 유리한 전략적 이점을 얻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넬슨 프케 주니어는 17번 코너에서 벽에 충돌하며 세이프티카를 발동시켰는데 당시 알론소는 경기 초반 적은 연료를 싣고 시작한 다음 먼저 재급유를 위한 피트스탑을 했고 이 상황에서 세이프티카가 나오면 다른 팀 차량들이 세이프티카 뒤에 정렬한 다음 피트스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순위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넬슨 피케 주니어는 사고 직후 자신의 실수라고 주장했지만 이후 자신이 고의로 사고를 냈다고 폭로하며 큰 파장이 일어났습니다. 2009년 9월 FIA는 르노 팀과 팀 수장인 플라비오 브리아토레, 기술책임자인 팻 시몬즈를 레이스 결과 조작 혐의로 시고했습니다. 브리아토레는 FIA로부터 무기한 출입 금지 조치를 받았고 시몬즈는 5년간 FIA 주최 대화 참가가 금지됩니다. 또 르노는 2년간의 유예 징계를 받아 비슷한 사건이 재발할 경우 F1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페르난도 알론소는 이 부정행위에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F1 역사상 가장 심각한 승부 조작 사건으로 기록되어 윤리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후 브리아토레와 시몬즈는 모터스포츠에서 퇴출되었으나 2025년 현재 알핀의 수장으로 브리아토레가 돌아와 있는 상황입니다. 알론소는 단독 혐의가 없었지만 비판과 의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싱가폴 그랑프리 레이스 결과와 알론소의 우승은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실제 사례로 미루어 소니의 의도적인 사고 유발은 영화적 장치이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영화 개봉 후 현실에서 영화와 비슷한 상황이 실제로 발생했는데 2025년 영국 그랑프리에서 킥 자우버 소속의 니코 휠켄베르크가 데뷔 15년 만에 첫 포디엄에 올랐습니다. 이는 영화 속 소니 헤이스의 스토리와 비슷한 사건입니다. 니코 휠켄베르크는 239번째 그랑프리 출전 만에 3위를 달성하며 첫 포디엄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F1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5593일만에 달성한 포디엄입니다. 휠켄베르크는 19번 그리드에서 출발했습니다. 레이스 초반부터 챌린징 웻 컨디션에서 여러 사고와 추월이 일어났습니다. 휠켄베르크와 자우버 팀은 피트스탑 타이밍과 타이어 선택이 전략적으로 완벽하게 작동하면서 지속적으로 순위를 끌어올렸습니다. 마지막 10랩 동안 루이스 해밀턴의 맹렬한 추격을 받았으나 노련한 수비로 마지막까지 3위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영화 후반의 클라이맥스는 2021년 아부다비 그랑프리의 마지막 1랩과 비슷합니다. 두 상황 모두 극적인 순간들로 기록되며 여러 요소가 겹칩니다. 영화에서는 마지막 3랩에서 소니, 조슈아, 그리고 실제 인물인 루이스 해밀턴 간의 스프린트가 펼쳐집니다. 소니가 조슈아의 승리를 돕는 상황입니다. 2021년 실제 상황에서는 당시 막스 베르스타펜의 팀메이트인 세르지오 페레즈가 이미 앞선 여러 랩에 걸쳐 루이스 해밀턴을 효과적으로 지연시키는 임무를 수행한 다음 리타이어했습니다. 해밀턴과 베르스타펜이 동점으로 마지막 레이스를 시작했고 해밀턴이 리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니콜라스 라티피의 사고로 발동한 세이프티카가 상황을 바꿨습니다. 두 상황 모두 아부다비 야스 마리나 서킷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서킷은 F1 시즌의 마지막 레이스가 열리는 곳으로 챔피언십이 결정되는 상징적인 곳입니다. 영화에서는 조슈아와 해밀턴이 스핀하며 소니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2021년 아부다비에서는 베르스타펜이 세이프티카가 발동된 동안 소프트로 교체했고 해밀턴은 17랩부터 사용하던 하드 타이어를 유지했습니다. 이 타이어 차이가 마지막 1랩의 결정적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랩이 시작되자 베르스타펜이 5번 코너에서 해밀턴을 추월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추월이 일어나는 9번 코너보다 훨씬 이른 시점입니다. 해밀턴은 9번 코너에서 재추월을 시도했지만 실패합니다. 영화에서는 소니가 30년 만에 진정한 레이싱의 희열을 되찾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실제 레이스에서는 베르스타펜이 첫 월드 챔피언십을 획득합니다. 영화에서는 소니가 퀄리파잉 없이 레이스에 참가할 수 없었지만 전개를 위해 허용되었는데 실제 레이스에서는 레이스 디렉터의 처리 방식이 통상적인 절차와 달라 메르세데스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습니다. 통상적으로 한 랩 뒤쳐진 모든 차량이 세이프티카를 추월해 서킷을 한 바퀴 돌아 대열 뒤쪽에 정렬한 다음 세이프티카가 퇴장하고 해밀턴의 리드로 레이스를 재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랩카를 재정렬하기에는 랩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아 모든 랩카를 재정렬하는 결정을 내리면 시즌 최종전이 세이프티카 상황에서 끝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이스 디렉터는 랩카 재정렬 시간을 줄이기 위해 규칙을 어기지는 않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베르스타펜과 해밀턴 사이에 있는 랩카만 세이프티카를 추월해 재정렬한 다음 레이스를 재개합니다. 두 상황 모두 마지막 순간의 기적이라는 스포츠 드라마의 고전적 장치를 구현했습니다. 영화는 실제 2021년 아부다비의 드라마틱한 순간을 기반으로 허구의 상황을 통해 비슷한 절정을 재현했습니다.

한편 영화에서 소니가 타이어를 교체한 후 멈춰 있다가 늦게 출발하는 행동은 F1 스포팅 레귤레이션을 위반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피트스탑 후 드라이버는 피트레인에서 안전하게, 불필요한 지연 없이 즉시 출발해야 합니다. 불필요하게 피트박스에서 출발을 지연하는 행위는 뒤따르는 차량이나 피트레인 내 다른 팀 작업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임피딩으로 판정될 수 있습니다. 드라이버가 의도적으로 피드박스에서 늦게 출발해 뒤 차량의 진입이나 출발을 방해할 경우 스튜어드 판정에 따라 드라이브스루, 5-10초 타임 페널티, 경고, 벌점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또 경기 흐름을 지연한 경우에도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2023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몇몇 드라이버가 피트레인에서 고의로 속도를 늦추며 임피딩을 유발해 페널티를 받았습니다. 2024년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도 피트박스에서 불필요한 대기와 관련해 주의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영화에서는 소니가 피트스탑 후 한동안 출발하지 않은 행동은 전략적 이유이든 기술적 이유이든 심리적 연출이든 실제 F1에서는 명확한 사유 없이 출발을 지연하는 규정 위반입니다. 영화에서는 전략적 이유에 가깝지만 참작될 여지는 적어 보입니다. 특히 다른 차량의 피트 진입을 방해하거나 전체 경기 흐름에 영향을 줄 경우 스튜어드가 조사하게 되는데 전략적 이유라 하더라도 경기 흐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페널티를 피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이참에 영화에 나온 다른 페널티를 유발할 만한 사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영화 초반 소니가 스타트 시점에 실수인 척 하며 출발하지 않는 장면은 스포팅 레귤레이션 44.9가 금지하는 주행 리듬 방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4년 모나코 그랑프리의 FP3에서 베르스타펜이 너무 느리게 주행해 경고를 받았습니다. 반복될 경우 시간 페널티와 벌점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파손된 프론트윙을 일부러 기물에 부딪쳐 파편을 뿌리는 행위는 스포팅 레뷸레이션 26.10 손상된 차량의 즉시 리타이어 의무를 위반합니다. 2025년 개정된 이 규정은 레이스 디렉터가 즉시 주행 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 스튜어드는 10초 스탑 앤 고 페널티를 부과합니다. 또 승부에 영향을 주는 고의적 충돌은 크래시게이트와 같은 패턴으로 스포츠 정신과 공정성 위반으로 규정됩니다. 2008년 르노 사례와 같이 드라이버, 팀 모두 실격, 자격 정지될 수 있습니다. 2025년 페널티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고의 충돌에 벌점 4점을 부과해 단독 사건만으로도 레이스 밴을 당할 수 있습니다. 또스포팅 레귤레이션 33.4는 불필요하게 느리거나 불규칙한 위험한 운전을 규정하는데 2024년 카타르, 브라질에서 과도한 감속, 피트레인 출구에서 대기 행위로 페널티가 부과되었습니다. 또 블루플래그 무시는 5-10초 페널티와 벌점이 나올 수 있고 트랙 밖으로 밀어내는 행동은 ‘공간 미제공’으로 분류되어 10초 페널티와 벌점이 부과됩니다. 퀄리파잉 이후 드라이버 교체 역시 불가능한데 영화에서는 퀄리파잉이 끝난 다음 소니가 프리미엄 이코노미를 타고 왔다며 경기에 참여하지만 실제로는 스포팅 레귤레이션 32.2 예선 개시 후 드라이버 변경 불가 조항에 위배되어 빈 그리드로 시작해야 합니다. 스포팅 레귤레이션 4.2는 벌점 12점이 누적되면 1경기 출전 금지를 규정합니다. 영화에 나온 여러 행위를 한 경기에 저질렀다면 최소 18점이 누적되어 한 경기 출전 금지 후에도 6점이 남게 됩니다. 또 컨스트럭터 포인트 몰수, 벌금, 영구 추방도 가능해 현실에서는 시즌이 끝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방금 살펴본 것 중 블루플래그 위반은 제작자로 참여한 루이스 해밀턴의 조언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블루플래그 상황일 때 6번 코너에서만 양보해야 하는 이유는 헝가로링 레이아웃 때문입니다. 헝가로링은 좁고 구불구불한 중저속 코너가 연속으로 이어져 있어 추월이 어렵고 한 번 리듬이 깨지면 랩타임 손실이 커집니다. 또 직선 구간이 짧고 DRS존이 제한적이어서 추월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14개 코너 대부분이 연속 코너로 한 번 라인을 벗어나거나 속도를 늦추면 이후 여러 코너에서 연쇄적으로 손해를 보게 됩니다. 6번 코너는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려지는 헤어핀 계열의 좌회전 코너입니다. 이곳에서 양보하면 뒤따르는 빠른 차량이 자연스럽게 추월할 수 있고 양보하는 차량도 이후 코너 진입 라인을 회복하기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6번 코너에서 뒷 차를 보내면 블루플래그를 받은 차량이 최소한의 손해로 레이스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때문에 블루플래그를 한동안 이행하지 않는 영화 속 장면은 페널티를 받을 위험이 있는 행동이지만 그 장소가 헝가로링이라면 선수들이나 팀 대부분이 알고 있는 규칙이어서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고 또 영화 속 디테일을 살렸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느라 저 영화 속 세계의 스튜어드들은 관대해도 너무 관대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팀 프린서펄을 해야 할 것 같은 사람이 드라이버로 나와 이미 몰입이 완전히 깨진 상태에서 무지막지한 페널티를 줄줄이 받을 것이 분명한 무모한 행동들을 계속하는 주인공을 보며 피식거리고 있었는데 정작 영화가 끝나고 영화를 함께 본 다른 분들의 반응을 보니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던 모양입니다. 서로 영화 속 에피소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넷플릭스에서 F1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얕게나마 F1을 보던 사람에게는 이번 시즌 이전에 촬영되어 아직 페라리에 속한 카를로스 사인츠나 아직 자우버 소속인 발테리 보타스, 아직 하스 팀 프린서펄 역할로 등장하는 귄터 슈타이너, 여전히 막스 베르스타펜의 팀메이트로 등장하는 세르지오 페레즈 등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어 재미있었고 또 F1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스포츠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한편 영화 스토리와 비슷한 니코 휠켄베르크의 포디엄이 2025년 시즌 중 실제로 일어나면서 유튜브 영상에 달린 누군가의 답글처럼 ‘자. 이제 어느쪽이 픽션이지?’ 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사실 넷플릭스 본능의 질주 시즌 7은 더 이상 관심이 없어 안 보고 있었는데 이유는 실제 레이스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었고 니코 휠켄베르크 이야기는 이 다큐멘터리의 다음 시즌에나 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큐멘터리 볼 시간에 실제 경기를 보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다음 ‘시즌 7을 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