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에게 진 빚
사실 저는 둠보다 퀘이크를 더 오래, 더 감명깊게 플레이 한 세대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존에게 깊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업계의 전설의 이름을 이렇게 불러도 될 지 의심스럽습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성과 이름을 부르는 문화가 서구권과는 달라 성을 불러야 할 상황과 이름을 불러야 하는 상황이 확실히 구분된다고 알고 있고 만약 제가 실제 세계에서 존과 마주친다면 저는 분명 존을 존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실제 세계에서 존과 마주친다면 마치 오래 전 아주 먼 발치에서 새 아이패드를 발표하러 온 스티브 잡스를 본 것처럼 그를 카맥씨라고 부르기는 커녕 말조차 걸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제 평생에 존을 만날 일도 없을 테고 또 그 사람 앞에서 얼어 붙어 그의 성조차 부르지 못할 상황을 맞을 일도 없을 테니 이 글에서는 편하게 존이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둠의 창조자들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책일까 하고 살펴보니 첫 출간은 이 글을 타이핑 하고 있는 2024년 초여름으로부터 20여년 전이었고 이 시대는 개인적으로 아직 게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을 진지하게 하던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두 존으로부터 시작해 현대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산업의 뚜렷한 일부를 창조해냈고 또 제 인생의 경험을 하게 만들어 준 두 사람, 그 중에서도 다른 한 존과 구분되는 존에게 진 빚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제 삶과는 아무 관계 없이 이드소프트는 울펜슈타인을, 둠을, 퀘이크를 만들었고 저는 이드소프트의 수많은 같은 시대 팬들과 달리 둠으로부터 이드소프트를 알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맨 처음 접한 이드 게임은 울펜슈타인 3D였는데 이는 그 시대의 어린 저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 시대의 IBM 호환 PC 기반으로 동작하는 그럴듯한 3D 게임이라는 사실은 출시로부터 몇 년 늦게 게임을 접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대단했지만 그 시대의 저는 그냥 제 기계에서 구동 되는 게임 중 하나에 불과할 뿐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그 시대에는 일인칭 슈터 장르에도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아 지금과 같이 키보드 위에 왼 손을 올려놓고 이동 조작을 하는 대신 여전히 방향키를 사용해 이동 조작을 하고 컨트롤 키를 사용해 총을 발사했는데 화면 상에서 총구가 가리키는 방향과 나치들이 서 있는 위치가 제가 바라볼 때 공간 상에서 직선이라고 인지 되지 않아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수많은 방을 하나 하나 돌며 적을 처치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는데 실제 세계에서도 방향감각이 그리 좋지 않았던 저는 오직 시각 만으로 회전 정보를 획득해야만 했기에 완전히 똑같이 생긴 문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벽, 그리고 기술적으로 모든 장소에서 완전히 똑같이 생겨야만 했던 바닥과 천장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데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특히 모든 공간이 직각으로만 꺾일 수 있었던 기술적 한계 덕분에 각 공간은 이어지는 여러 공간 사이에 맥락을 전혀 제공하지 못했고 거의 똑같이 생긴 방에 반복해서 들어가 총을 쏘거나 아이템을 먹거나 방이 비어 있는지 확인하기를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이내 지루해져 게임을 그만 뒀고 결국 이 게임 맨 끝에 보스로 히틀러가 나온다는 건 먼 미래에 가서야 알게 됩니다.
왜 그런 이상한 순서로 게임을 접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둠보다 둠을 기반으로 만든 헤러틱을 먼저 접했습니다. 해러틱은 둠과 완전히 똑같은 기반, 완전히 똑같은 규칙으로 만들어졌지만 배경과 적, 캐릭터가 완전히 달랐고 덕분에 둠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게임이었습니다. 울펜슈타인 3D와 달리 이제는 모든 공간이 직각으로 만날 필요가 없어지면서 드디어 한 스테이지를 이루는 여러 공간이 맥락을 가지고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가령 이전에는 긴 복도의 좌우에 여러 방이 연결되더라도 각 방으로 들어가는 문과 복도 끝에 있는 문이 완전히 똑같이 생겨 만약 복도가 ㄱ자로 꺾이기라도 하면 뻔한 복도인데도 방향 감각을 쉽게 잃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둠에 기반한 해러틱은 복도는 복도, 방은 방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방 안에 들어갔다 나오면 어디 까지가 방이었고 어디 부터가 복도이며 어느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었는지 이전에 비해 훨씬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공간이 반드시 직각으로 만나야 한다는 기술적 한계가 깨지자 스테이지는 한 줄기의 핵심 통로와 이를 둘러싼 다양한 규모의 방으로 구성된 맥락을 가지고 정돈된 형태가 되어 굳이 지도를 열지 않아도 레벨의 진행 방향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어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울펜슈타인에는 사실상 레벨디자인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면 해러틱, 그리고 해러틱이 기반한 둠 부터는 레벨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천장이 높은 공간에서 높은 곳으로부터 다가오는 악마를 처치하더라도 여전히 기술적 한계로 저는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울펜슈타인 때와 마찬가지로 마법봉의 끝과 악마 사이가 일직선 상에 있지 않아 여전히 불편한 느낌은 그대로였습니다. 둠 보다 해러틱을 먼저 접한 덕분에 끝없이 플레이 한 해러틱은 지금도 초반 여러 스테이지의 레벨디자인과 배경음악, 악마들이 나타나 공격하는 소리, 이들이 죽을 때 나는 소리 따위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둠이 멀티플레이 데스매치를 통해 업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을 때 둠 싱글플레이를 접합니다. 어렴풋한 기억에 공중파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나이 많은 남자들이 정장을 입고 테이블에 앉아 컴퓨터 게임의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여기 언급된 게임이 바로 둠이었습니다. 해러틱을 처음 접할 때 그 안에 나오는 상대들이 하늘을 나는 악마, 붕대로 온몸을 감싼 미라 같은 것들이어서 그들을 공격해 쓰러뜨리는데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면 둠에서는 이전보다는 좀 더 인간형에 가까운 악마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닫힌 공간의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나타나 해러틱에 비해 좀 더 빠르게 뛰어다니며 이들의 공격을 피해야만 했는데 이런 플레이야말로 둠보다도 먼저 경험했던 해러틱과 둠을 구분하는 차이로 인식합니다. 둠의 공간은 해러틱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직각으로 만나지 않는 공간과 이를 통해 맥락을 가지는 공간 구성, 계단과 빗면을 통해 이전 공간과 다음 공간을 시각적으로 구분하는 장치, 지도 상에서 사선으로 진행하는 구간과 직선으로 진행하는 구간을 각각 핵심 동선과 비 핵심 동선으로 구분하는 등 다양한 면에서 울펜슈타인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화면 하단에 체력 옆에 나타나는 둠가이의 체력에 따른 표정은 마치 현대에 리부트 된 둠을 플레이 하며 슬레이어가 헬멧을 뒤집어쓰는 순간 모니터 앞에 있던 저도 자세를 고쳐 앉고 좀 더 미간을 찌뿌린 표정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공격을 받아 체력이 낮아질수록 좀 더 바쁘게 뛰어다니며 체력 아이템을 찾고 악마를 하나라도 더 쓰러뜨립니다.
하지만 이들이 거의 일인칭 슈터 장르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는 하지만 이렇게 존 또는 존들이 관여한 이 장르 게임 세 개를 플레이 해 봤으면서도 여전히 일인칭 슈터 장르에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본 가장 큰 이유는 고개를 돌려 공간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울펜슈타인은 그렇지 않았지만 둠부터는 현대적인 삼차원 기술에 기반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다양한 바닥과 벽, 계단과 빗면, 여러 층으로 구성된 레벨과 퍼즐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어인 저는 항상 화면의 정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적들은 하늘 저 높은 곳부터 저를 공격하며 내려왔고 이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시야에 적이 들어오면 무기를 발사했는데 무기가 가리키는 방향은 제 시야와 마찬가지로 화면의 정면이었지만 정면 방향과 높이가 다른데도 적이 공격 받는 모습을 보며 이 미묘한 차이가 게임에 이입하기 어렵게 만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에도 컴퓨터 좀 만져본다는 사람들은 둠을 플레이 하고 있었고 저 자신도 그랬지만 둠은 그저 여러 게임 중 하나 정도로 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무슨 일을 일으켰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나갑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퀘이크를 접했합니다. 재미있게도 퀘이크는 마치 그들이 처음 둠을 배포했던 것과 비슷하게 종이 잡지에 포함된 디스크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둠의 창조자들’에서는 퀘이크의 전체 에피소드를 포함하되 첫 번째 에피소드만 언락 되어 있고 나머지 에피소드는 암호화 해 놨다가 돈을 내면 언락 코드를 알려주기로 했었다고 되어 있지만 제가 종이 잡지 부록으로 입수한 퀘이크는 정말 첫 번째 에피소드만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만 포함되어 있었음을 확신하는 이유는 파일 목록에 정말 첫 번째 에피소드 데이터 파일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퀘이크는 이미 이전에 경험한 둠과 달리 드디어 고개를 이리 저리 돌려 공간 곳곳을 바라볼 수 있었고 시야를 돌림에 따라 소실점이 어색하지 않게 표현됩니다. 하늘에 보라빛 구름이 신비롭고, 또 음산하게 흐르고 공간을 울리는 기묘한 효과음은 이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게다가 시야를 위아래로도 돌릴 수 있게 되면서 드디어 무기의 총구 방향과 소실점 방향이 일치하게 되어 이전처럼 적을 화면 중앙에 놓고 컨트롤 키를 누르면 맞출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만 그 미묘한 어긋남을 참을 수 없었던 것에 비해 퀘이크부터는 드디어 총구 방향과 적의 피격 위치가 일치해 적에게 총을 쏜다는 느낌이 정확히 들었습니다. 덕분에 여러 사람들이 일인칭 슈터 장르를 울펜슈타인이나 둠으로부터 시작한 것에 비해 저는 이 게임들을 플레이 해봤음에도 퀘이크를 일인칭 슈터 경험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퀘이크부터 적극적으로 사용한 고저차를 이용한 레벨 구성, 복층 구조를 사용한 퍼즐 같은 요소가 포함되어 고개를 돌려 공간 곳곳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삼차원 공간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이전에는 해러틱에서 종종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끝에 있는 열쇠를 획득하는 메커닉 정도가 복층 공간을 사용하는 메커닉의 한계였다면 퀘이크에서는 본격적으로 물을 가로지르는 모든 다리는 그 밑으로 뛰어내려 물과 연결된 독립된 공간을 탐험할 수 있었고 넓은 공간에서 고개를 들어 다른 층에서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적과 대면하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둠에서도 비슷한 레벨디자인이 있었지만 다른 층에 있는 적을 공격하려면 그 층에 연결된 계단을 찾아 이동한 다음 그들과 같은 층에 있게 된 다음에야 공격할 수 있었지만 퀘이크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실제 세계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층에 있더라도 직선 상의 시야가 확보되면 공격할 수 있었고 이런 행동을 유도하는 레벨디자인은 그 공간이 실제로 얼마나 큰지 인식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어떻게 구했는지는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결국 에피소드 네 개로 구성된 퀘이크의 나머지 에피소드 세 개 역시 구해 플레이 했고 뒤로 갈수록 레벨 각각의 분위기가 게임 전체에 걸친 일관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메커닉, 상당히 다른 구성으로 다가와 기묘하고 독특한 경험을 줬습니다. 특히 울펜슈타인 때는 게임 끝에 있다는 히틀러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마지막 레벨의 거대한 보스와 대면했고 그의 강력한 공격을 피해 두 층으로 만들어진 공간 곳곳을 달리며 무기를 먹고 공격하고 또 기둥 뒤에 숨고 아래 층에 내려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는데 이후 거대 보스와 전투를 다양한 게임에서 경험했지만 이 때만큼 강한 정신적 각인을 만들어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퀘이크 3를 플레이 하기 시작합니다. 퀘이크 2는 플레이 하지 않았는데 그 시대에 다른 어떤 게임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퀘이크 3은 싱글플레이는 아예 손 대지도 않았고 시작하자마자 다른 사람들과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했습니다. 퀘이크 3 자체가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VPN 클라이언트를 설치해 로컬 네트워크 환경을 만든 다음 플레이 할 수 있었습니다. 퀘이크 3은 이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본 레벨디자인 측면에서 퀘이크 1과 비교할 때 싱글플레이로는 썩 훌륭하지 않았습니다. 퀘이크 1이 싱글플레이에 초점을 맞춘 레벨디자인을 통해 적어도 싱글플레이에서는 의미 있는 경험을 줬지만 반대로 퀘이크 1 멀티플레이는 썩 훌륭하지 않았는데 애초에 싱글플레이를 위한 방향성을 가진 레벨에서 데스매치를 플레이 하는 것 자체가 썩 좋은 경험을 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실제 사람에게 총을 쏘는 경험과 드디어 총구 방향과 소실점이 일치하는 두 가지 특징이 합쳐져 뇌리에 아주 깊은 각인을 남깁니다.
반면 퀘이크 3은 모든 레벨이 처음부터 데스매치에 초점을 맞춰 만들어졌는데 이는 싱글플레이를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언리얼 토너먼트와 같이 점점 더 똑똑한 봇을 상대해 나가는 식으로 바뀌어 인상 깊지 않게 만들었지만 멀티플레이 측면에서는 이전의 모든 둠과 모든 퀘이크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됩니다. 주변 사람들과 VPN을 만들어 시간만 나면 익숙한 레벨에서 데스매치를 하고 CTF를 하며 최소 몇 백 시간을 보냈는데 로켓의 타격감이 너무 좋은 나머지 퀘이크 3를 한동안 플레이 한 다음에는 다른 일인칭 슈터 게임을 할 때도 스플래시 대미지를 고려해 실제 발사 위치보다 약간 낮은 곳에 조준선을 두고 총을 쓰는 습관이 들어 이전보다 일인칭 슈터 게임을 더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첫 회사에서 점심때마다 퀘이크 3 데스매치 플레이를 하고 또 두 번째 회사에 가니 이번에는 시대에 어울리는 퀘이크 4 데스매치 플레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장르는 비슷하지만 이제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해 준 게임이 나타납니다. 언리얼 토너먼트는 퀘이크 3과 비슷하지만 훨씬 넓은 레벨을 기반으로 다양한 게임 모드를 선보였습니다. 퀘이크에서는 기껏해야 CTF나 TDM 정도를 플레이 할 수 있었다면 언리얼 토너먼트에서는 온슬랏, 어설트, 도미네이션, 바밍런 같은 조금씩 다르지만 플레이 해보면 플레이가 완전히 다른 여러 가지 플레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온슬랏 모드를 오랫동안 플레이 했는데 넓은 레벨에서 코어를 우리 편 소유로 만들어 무기와 차량을 얻어 가는 형식으로 현대에 다양한 장르를 통해 재해석 됩니다. 또 하프라이프는 제대로 된 스토리가 있는 싱글플레이 경험을 하게 해 주었는데 특히 하프라이프 2에서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갑자기 플레이어와 행동과 세계 전체가 한 순간 사라지는 소리와 함께 멈춘 다음 등 뒤에서 G맨이 나타나 이 모든 사건의 마무리 끝에 주인공을 다시 영원한 휴식으로 보내는 결말은 세계가 멈추는 그 순간 게임이 크래시 되었다고 생각하고 마우스를 이리 저리 휘젓다가 갑자기 나타난 G맨을 보고 억울한 감정마저 느낍니다. 시간이 흐르며 하프라이프를 만들었던 회사에서 포탈 시리즈를 내놓으며 일인칭 슈터 장르를 퍼즐로 트윅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기도 했고 그 후속작은 멀티플레이 환경에서 일인칭 슈터 장르가 레벨디자인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 경험들은 그 각각이 머릿속 뇌의 어느 뉴런들에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둠의 창조자들을 읽으며 지금까지 제 경험에 비추어 존의 레벨디자인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고 제가 본격적으로 삼차원 공간에서 의미 있는 레벨디자인이라고 느끼기 시작한 경험은 레벨디자인을 맡았던 존이 회사를 떠나 엄청난 망작을 만들기 시작하고 동시에 그가 만들었던 회사의 분위기와 문화가 완전히 망가진 다음에 나온 거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존 로메로의 업적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많다고 알고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존 로메로가 초창기에 게임에 맞춰 레벨디자인 도구를 만들고 이를 사용해 기술적 제한 안에서 의미 있는 플레이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게임의 기술적 한계가 점점 더 확장되어 가고 툴 프로그래머로써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자 바로 현대 게임 개발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자기가 뭐 하는지 모르는 전형적인 능력이 부족한 프로젝트 리드의 모습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존에 대해서는 삼차원 공간을 이해한 의미 있는 레벨디자인 역량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며 그 이전 시대에 일인칭 모양을 하고 있지만 이차원 기반의 레벨디자인 역량이 있고 초창기에는 툴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다는 점 정도가 이 존이 게임 역사에 남겼다고 인정할 수 있는 업적이라고 봅니다. 비록 이 존이 떠나고 존 커맥만 남은 이드소프트의 분위기는 일하기 아주 힘든 분위기였을 것이 분명하지만 거기서 나온 퀘이크 시리즈로 미루어 분명 이드소프트는 기술적으로 이 장르의 기술적 한계를 확장하는데 거대한 역할을 했고 이 장르의 거의 러피런스에 가까운 게임을 만들어냈으며 이후에 나온 여러 데스매치 게임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다른 존에 비해 훨씬 더 깊은 업적을 남깁니다.
현대에 우리들은 거대한 업적을 남긴 존과 비슷한 시대에 나타나 활동하기 시작한 팀 스위니의 게임 엔진에 기반해 먹고 살고 있습니다. 퀘이크 3에 빠져 있다가 언리얼 토너먼트를 구입했을 때 게임을 설치하고 나서 함께 설치된 언리얼 에디터를 처음 보고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잠깐 동안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게임 개발 환경을 그냥 배포해 버린 상황인데 시간이 좀 더 지난 다음에는 이런 시도가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그 때는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초반의 당황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나자 에디터로 게임 레벨을 열어 이리 저리 수정해 이상한 레벨디자인을 만들며 놀았습니다. 특히 레벨디자인 대부분이 탑뷰에서 볼 때 구조 대부분을 알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수직 방향으로 동작하는 레벨을 만들어 멀티플레이 환경에서 가지고 놀며 시간을 보냈는데 나중에 이런 플레이는 포탈에서, 또 몇몇 게임에 나타나 언리얼 에디터를 처음 가지고 놀던 때를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게임 만드는 일을 하기 전부터 언리얼 토너먼트에 포함된 언리얼 에디터와 스타크래프트 맵에디터를 가지고 게임을 트윅하며 레벨 기반의 게임을 만드는 아주 기초적인 개념을 익혔는데 첫 회사에서 레벨에 스타트 포인트를 찍고 다른 레벨로 건너가는 포탈을 배치한 다음 설정하고 또 MMO 게임에 몬스터를 배치하는 일들은 언리얼 토너먼트에서 처음 접한 언리얼 에디터와 별로 다르지 않아 적응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꽤 흘러 이드소프트에 남은 존이 활동하던 시대가 오래 전에 끝나고 그의 산업에 대한 기여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지만 어릴 때 존이 만든 게임을 플레이 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고 게임에 대한 생각과 감각을 만드는데 기여했으며 지금도 삼차원 상의 공간을 보고 플레이를 상상하거나 고객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실행하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존에게 빚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빚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돈으로 지불할 수 있는 형태의 빚입니다. 울펜슈타인, 둠, 해러틱을 플레이 할 때 저는 이 게임에 제대로 된 돈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퀘이크 3을 플레이 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변명을 조금 하자면 시대가 그런 시대이기도 했고 또 정식으로 게임을 출시하지 않아 돈을 지불할 방법이 별로 없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분명 결코 실행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지만 스팀에서 모든 둠 시리즈와 모든 퀘이크 시리즈를 늦게서야 구입했지만 이제 이 돈이 존에게 지불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대에 이드소프트는 베데스다의 브랜드이고 아마도 존은 더이상 그의 프로그래밍 기술을 게임에 사용하지 않기 시작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스팀에서 이드소프트의 모든 게임을 구입했다 하더라도 과거에 진 빚을 갚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게임을 만드는 제 생각의 일부를 구축하고 인생의 일부에 영향을 준 존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이 있으며 이는 이 일을 계속하는 동안 끝까지 저를 따라다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