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의 운명이 예정된 물건의 고가전략
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하는 회사들의 사례가 많은 세계에서 또 다른 회사가 고가전략을 채택한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코비드 국면에서 여러 산업이 매출 감소를 겪었지만 고가전략을 고수하던 몇몇 산업은 거의 아무 피해도 입지 않았으며 오히려 고가전략 유지를 통해 매출이 상승하기도 했다는 사례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가전략을 검토할 수 있다면 고가전략을 검토해 실행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꽤 유효한 전략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고가전략을 구사하는 산업의 제품에 관심을 가질 만한 고객이 아니므로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23년 초 애플이 근미래에 새로운 고가 라인업의 신제품을 출시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보고 고가전략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고가 제품들 중 전자제품은 거의 없거나 제가 모르는 영역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귀금속, 정밀가공기계, 패션아이템, 자동차 같은 영역에는 고가 제품을 자주 마주칩니다. 이들은 항상 제품을 만드는데 실제로 소요된 소위 원가 이야기에 쉽게 오르내리곤 하지만 이 제품의 가격은 소위 원가와 관계 없이 고객들이, 또 이 제품을 바라보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 제품에 보낸 인정의 수준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겁니다. 이런 인정은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았는데 먼저 오랜 세월 유지되어 온 전통과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스토리텔링, 지난날 역사 속의 인물들이 제품을 사용해 온 덕분입니다. 현대에 같은 제품을 사용하는 내가 그들의 연장선에 있고 마치 내가 그들과 비슷한 수준에 올라선 느낌을 주고 이와 함께 제품의 고객이 아니더라도 이 전통과 역사와 스토리텔링을 선망하는 사람들 역시 제품의 가치를 만들어내며 이는 고가전략을 선택할 수 있는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란 고가 제품들은 종종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함 없이 유지되는 제품의 가치를 강조하곤 합니다. 여기서 제품의 가치란 제품 자체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동일하게 사용 가능하거나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도 여전히 너무 흔하지 않으며 오랜 옛날과 비교해 현대에도 의미 있는 모양과 기능을 제공한다는 의미처럼 보입니다. 가령 귀금속은 그 특징 자체가 사람이 살아 있는 세월 정도로는 변하지 않는 것들을 의미하며 정밀가공기계나 패션아이템 역시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적당히 수리하고 또 조금 수선하면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과 기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가령 미디어에서 아주 오래된 가죽 제품이나 아주 오래된 시계를 여전히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데 이런 제품들이 종종 강조하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제품의 가치가 유지된다는 점을 잘 표현하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이런 접근이 전자제품에도 어울릴지는 조금 고민스럽습니다. 영화 오션스 13에서는 빌런이 금색으로 장식된 삼성폰을 아주 귀한 물건으로 여기다가 결국 이 전화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전화 같은 전자제품이 전통적인 고가 제품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면 전통적인 고가 제품들만큼이나 오랜 기간에 걸쳐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아주 오래된 자동차들은 몇몇 새로운 법률을 준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또 현대의 안전 수준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제한된 환경에서 여전히 운전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자동차로써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옷이나 가방, 시계 역시 수선과 수리를 거치면 현대에도 똑같이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한편 2007년 영화에 나온 전화를 16년이 지난 2023년에 가져온다면 높은 확률로 전화 통화 기능 자체를 사용할 수 없을 겁니다. 국가마다 통신망 규약이 꽤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2G 통신망이 완전히 종료되어 적어도 3G를 지원해야만 현대에도 전화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전화가 아무리 한정 생산되었고 또 금색으로 고급스럽게 장식되었다 하더라도 채 20년이 흐르기도 전에 기계 본연의 기능을 전혀 사용할 수 없으며 배터리 수명이 많이 줄어들었다면 지금 시대에 켜지기나 할 지 의심스러우며 애초에 현대에 이 기계를 충전 시킬 규격에 맞는 케이블이 있을지 조차 걱정스럽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전에 사용하던 아이폰 몇 대를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폰 3GS나 5는 지금도 멀쩡히 켜지며 카메라 같은 기능은 여전히 동작합니다. 귀찮아서 심카드를 옮겨보진 않았지만 여전히 통화도 가능할 겁니다. 그렇다면 전화 본연의 역할을 여전히 할 수 있으니 어쩌면 이런 전자제품도 위의 고가전략을 취하는 제품들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요? 현실은 제조사로부터 OS 지원이 중단되었고 서드퍼티 소프트웨어들 대부분 역시 새 OS를 최소 사양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오래된 OS에서도 사용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앱스토어에서 구할 수는 있지만 이미 인터넷 세계 전체가 새로운 기술로 무장해 과거의 소프트웨어가 실행된다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구성되어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가령 아이폰 3GS에 포함된 유튜브, 구글맵 같은 앱은 현대에 더 이상 동작하지 않으며 웹브라우저로 보내 버립니다. 하지만 브라우저 역시 오래 되어 현대의 웹사이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직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기기들 조차 OS 지원이 중단되었을 뿐 아니라 최소한의 보안 업데이트 이외에는 아무런 관리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주 오래된 아이패드 하나는 유튜브 시청 가능한 시계로 사용할 뿐 그 이상으로는 활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조금 과장해서 근 미래에 벽돌이 예정된 기계가 기존 고가전략을 취하는 제품들과 비슷한 고가 전략을 취할 때 이 전략이 유효할지 의심스럽습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들 자체가 애초에 그런 제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의 관점과 거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그 정도 수준에 다다르면 제품의 실질적인 활용에는 관심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수준에 다다르지 못한 이상 여전히 근 미래에 벽돌이 예정된 전자제품의 고가전략은 이 전략이 성공적으로 통할지 궁금한데 아직 미래를 모르는 현재의 제 입장에서는 그냥 궁금하다고 말하고 지나가면 되겠지만 미래의 제 입장에서는 과거의 제가 뭔가를 예상해 놓으면 더 재미있을 것이 분명하니 위험을 무릅쓰고 예상을 하고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애플의 전자제품 고가전략은 제품이 아주 빠른 기간 안에 벽돌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하며 전통적인 고가 제품들이 취하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는 특징을 달성하지 못해 실패합니다. 미래의 제가 이 글에 찾아와 과거의 예상을 맞춰보면 재미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