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문득 일하면서 도자기 깎는 게임들의 사례를 자주 마주치고 또 도자기 깎는 행동에 대해 자주 이야기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자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도자기 이야기는 대개 도대체 저 사람들은 왜 저걸 하루 종일 몇날 며칠 혹은 수 개월에 걸쳐 반복하고 있나에서 시작합니다. 이를 그냥 도자기 깎기라고 부릅니다. 스텔라 소라 커뮤니티에서 등장하기도 하는데 우마무스메 같은 육성 게임에서 왔다고도 말합니다[^도자기 깍는다는게 무슨 밈임? - 스타세이비어 채널]. 이 밈이 흥미로운 이유는 도자기 장인이 완성품을 들고 이게 아니야! 하고 내던지는 짤이 같이 따라다니기 때문입니다. 성공보다 폐기가 더 눈에 띄는 노동이라서 그렇습니다. 도자기 깎기라는 말은 잘 나왔던 아이템도 마음에 안 들면 깨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행동을 잘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웃프긴 하지만 매우 정확합니다.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긴 만드는데 그 과정이 게임의 진짜 본편처럼 굳어져 있을 때입니다. 캐릭터를 뽑는 가챠가 끝나도 끝이 아닙니다. 그 뒤에 장비, 룬, 유물, 재련, 강화가 기다립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도자기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커뮤니티 글을 보면 도자기 깎는 게임이 실제로 해보니까 재미있다는 반응도 바로 나옵니다. 취향만 맞으면 하루 종일 붙잡고 할 수 있고 싫으면 빠르게 딸깍으로 넘긴다는 말이 같이 나타납니다. 저는 도자기 깎기의 핵심이 강요된 숙제가 아니라 자기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에서 갈립니다. 같은 시스템이라도 누군가는 딱 멈추고 누군가는 끝까지 들어갑니다[^도자기 깎는 게임이 실제로 해보니까 재미있더라 - 스타세이비어 채널]. 오늘은 그 끝까지 들어가는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일단 가장 유명한 사례로 바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원신의 성유물입니다.
원신 성유물은 얻을 때 +0부터 시작하고 강화 재료와 모라를 넣어서 강화합니다. 그리고 4강마다 부옵이 1줄씩 열립니다. 부옵이 4줄이 된 뒤에는 다음 4강부터는 이미 있는 부옵 중 무작위로 1개 수치가 올라갑니다. 이 규칙 하나로 도자기 노동이 거의 완성됩니다[^원신/성유물]. 플레이 경험은 대개 비슷합니다. 비경을 돌아서 성유물을 얻습니다. 세트가 맞는지 봅니다. 주옵이 맞는지 봅니다. 부옵에 치확이 있는지 봅니다. 그리고 +4까지만 올려서 4번째 줄이 붙는지 확인합니다. 붙는 줄이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재료로 갈아 넣습니다. 도자기를 부수는 행동은 여기서 실제 행동이 됩니다. 성유물 부옵은 최대 4개까지 가능하고, 강화 4레벨마다 강화되거나 추가됩니다. 5성 기준으로 3줄 시작이면 4레벨에 4번째 부옵이 생성되고, 8레벨부터는 부옵 수치 강화가 진행됩니다. 이런 설명은 원신을 오래 한 사람들 사이에서 거의 생활 지식이 됐습니다[^초보자용 성유물 가이드(202303) - 원신 아카데미아 채널]. 이 단계에서부터 랜덤 중첩이 시작됩니다. 비경 드랍이 랜덤입니다. 성유물의 세트와 부위가 랜덤입니다. 주옵이 랜덤입니다. 부옵이 랜덤입니다. 그 다음에는 강화 분배까지 랜덤입니다. 이걸 한 번이라도 직접 겪어 보면 도자기 깎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원신이 특이한 건 이 시스템이 너무 깔끔해서 사람들이 손절 기준을 자연스럽게 만들게 된다는 점입니다. +4에서 판단하고, +8에서 판단하고, +12에서 판단합니다. 손절이 생활이 됩니다. 완성품이 나오면 그날은 게임이 끝입니다. 안 나오면 레진만 태우고 로그아웃합니다. 그 감정의 진폭이 원신을 붙잡기도 하고 지치게도 합니다.
도자기 깎기가 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에픽세븐을 살펴보겠습니다. 에픽세븐은 원신보다 더 오래된 방식의 도자기 깎기를 모바일 수집형 SRPG에 강하게 붙여 놓은 게임입니다. 토벌을 돌고 장비를 먹고 강화합니다. 부옵이 어디에 찍히느냐로 장비의 가치가 갈립니다. 여기까지는 많은 게임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에픽세븐은 그 장비 랜덤이 플레이어들의 불만의 중심으로 계속 올라왔고, 개발사가 공개적으로 파밍 스트레스 완화를 로드맵의 핵심으로 내세웠습니다[^에픽세븐, 새로운 변화의 로드맵을 밝히다]. 2019년 로드맵 기사에서는 장비 연성(가칭) 시스템 도입해 깡옵션 개선을 통한 파밍 스트레스 완화 같은 항목이 핵심으로 요약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장비의 고정 수치(공격력/방어력/생명력) 주옵을 크게 상향했다고 밝힙니다. 이건 어차피 쓰레기인 옵션이 너무 많다는 감정에 손을 대는 방식입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 보면, 도자기 흙의 질을 조금 올려준 셈입니다[^에픽세븐, 변화의 로드맵 첫 번째 업데이트 실시]. 이 점이 중요합니다. 도자기 깎기는 랜덤이 많아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랜덤이 많은데, 그중 일부가 애초에 뽑히면 슬픈 옵션일 때 분노가 커집니다. 에픽세븐의 깡옵 상향은 그 분노를 줄이려는 선택이었습니다. 다만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강화 분배에서 또 갈리기 때문입니다. 좋은 흙을 줘도 손이 미끄러지면 깨집니다. 운이 한 번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도자기 깎기 담론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기술화됩니다. 스텔라 소라 채널 같은 곳에서는 도자기 30 이상 어떻게 깎느냐는 같은 질문이 나오고 풀연구 아니면 도자기 깎는 게 아니라는 답이 달립니다. 여기서는 도자기 깎기가 곧 점수 경쟁이고 리셋을 포함한 플레이 방식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이걸 보면 도자기 깎기는 단순히 장비 옵션만이 아니라 점수 잘 내려고 계속 리셋하는 행위까지 포괄하는 말로 확장된 걸 알 수 있습니다[^도자기 30이상 어케깎아 - 스텔라 소라 채널]. 그래서 도자기 깎기를 이렇게 요약해 두고 싶습니다. 플레이어가 반복을 통해 좋은 결과물을 골라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폐기하거나 리셋하며 그 과정 자체가 게임의 중요한 시간을 차지하는 플레이입니다. 커뮤니티에서는 그걸 도자기 깎기라고 부릅니다.
기원 이야기를 꺼내면 가챠가 일본에서 왔다 정도로만 말하기도 하는데 그 말이 절반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가챠는 돈을 내고 랜덤 결과를 받는 버튼을 정교하게 만들었고 도자기 깎기는 그 버튼을 누른 뒤에 남는 랜덤 성장 노동을 세련되게 만들었습니다. 이 둘은 같은 동네에서 자랐지만 다른 모양으로 커졌습니다. 온라인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이 대중적인 형태로 자리 잡은 대표 사례로 일본 메이플스토리에서 2004년 6월 가챠폰 티켓이 나온 일이 자주 언급됩니다. 티켓 한 장을 넣으면 가챠폰에서 무작위 아이템이 나오는 방식이었고 가격은 1장당 100엔이었습니다. 이 시점이 돈을 내고 랜덤 아이템을 직접 뽑는다는 개념을 게임 안에 꽂아 넣은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확률형 아이템이란?…17년 만에 K-게임 대들보 된 '애물단지' | 연합뉴스]. 가챠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게 된 것은 이런 사례가 반복되고 확장되면서였습니다. 가챠라는 말 자체는 문구점 앞 캡슐토이 기계에서 왔다고들 합니다. 이게 게임 안에 들어오면서 플레이어는 가끔 돈을 냈는데 결과가 뭘지 모른다는 불편함을 이야기했고 운영사는 그런데도 많이 산다는 달콤함을 확인했을 겁니다. 이 둘이 충돌하는 지점이 결국 시장을 크게 바꿨습니다[^확률형 아이템]. 도자기 깎기는 여기서 한 발 늦게 더 조용하게 자랍니다. 이는 뽑기 버튼이 아니라 뽑은 뒤의 성장 쪽에서 나타났습니다. 당시 온라인게임은 강화, 인챈트, 랜덤 옵션, 합성 같은 형태로 이미 수많은 실패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플레이어는 거기서 웃고 울고 접기도 했습니다. 내가 뽑기에 돈을 썼다기보다 강화하다 터졌다는 경험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편입니다. 이상하게 이건 숫자보다 감정이 더 남습니다.
모바일 수집형이 본격적으로 커지면서 캐릭터 수집과 성장의 역할이 분리됩니다. 캐릭터는 가챠로 뽑고 성능의 디테일은 장비나 유물로 맞춥니다. 이 방식이 편한 이유가 있습니다. 캐릭터를 뽑는 구간에는 천장 같은 안전장치를 붙이기 쉽지만 장비 쪽에는 안전장치를 덜 붙여도 당장 폭발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캐릭터 뽑기만 해도 이미 재화가 크게 든다고 느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자기 깎기는 장비 쪽으로 빠르게 이사합니다. 여기서 시장 압력이 한 번 크게 들어옵니다. 그랑블루 판타지에서 300연챠를 돌리면 캐릭터를 확정으로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정 픽업 가챠에서 천장이라는 말이 업계 표준처럼 퍼져나갔습니다. 커뮤니티에서도 천장 없는 게임은 못 하겠다 같은 정서가 자랐습니다[^그랑블루 판타지/사건 사고]. 이 지점에서 도자기 깎기가 강해졌다고 봅니다. 천장이 생기면 캐릭터 수집의 바닥은 조금 올라갑니다. 그러면 게임의 장기 수명은 다른 곳에서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 역할을 장비 파밍, 부옵, 강화 분배 같은 시스템이 가져가게 됩니다. 그때부터 캐릭은 뽑았는데 종결은 또 멀다가 흔한 말이 됩니다. 물론 모든 게임이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반면 어떤 게임은 캐릭터 자체를 무한히 겹치게 만들고 장비는 단순하게 두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도자기 깎기가 유독 장비·유물 쪽에 붙어서 이야기되는 건 이런 분업이 꽤 널리 퍼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정책 쪽 압력도 시장을 밀어붙였습니다. 확률형 아이템을 법적으로 정의하고, 종류별 확률 정보를 의무 공개하는 내용이 게임법 개정안에 담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확률 공개가 단지 착한 선택이 아니라 사업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흐름이 생겼습니다[^이효석의 게임인 확률형 아이템 법제화, 韓게임의 새로운 시작 | 연합뉴스]. 이때부터 업계가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단어를 더 크게 의식하게 됐고 플레이어도 더 집요하게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확률 공개가 모든 불만을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확률을 알아도 뽑기는 운입니다. 그래서 개발사는 다른 쪽으로 길을 냅니다. 확률은 공개하되 실패해도 조금씩 쌓이는 뭔가를 넣는 방향입니다. 가챠에서는 천장이 그 역할을 합니다. 장비 쪽에서는 교환, 제작 마일리지, 부옵 변경 같은 완화 방식이 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졌습니다. 도자기 깎기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는 점이 여기서 다시 나타납니다. 뽑기는 손가락 한 번으로 끝납니다. 반면 도자기 깎기는 시간이 듭니다. 그리고 실패하면 남는 것은 허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뽑기보다 강화와 파밍을 더 욕하면서도 또 이를 더 오래 합니다. 이 모순이 이 장르의 얼굴처럼 느껴집니다. 웃기지만 슬픈 얼굴입니다. 짧게 웃고, 길게 지칩니다. 천장이 생기면 플레이어는 마음이 편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종류의 불편함이 나타납니다. 천장이 있는 뽑기는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얼마를 태울지가 대략 계산됩니다. 그 계산이 되는 순간부터 게임은 플레이어의 시간을 다른 곳에서 더 길게 쓰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 다른 곳이 장비, 룬, 유물, 재련 같은 도자기 깎기 쪽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여러 게임에 나타났습니다.
천장은 원래 파칭코 쪽에서 나온 표현으로 뽑기 횟수나 과금액이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교환권이나 레어 보장을 주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2016년 그랑블루 판타지 안치라 사태를 기점으로 게임 업계에서 천장이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천장(게임 용어)]. 천장을 폭사 방지로만 이해하면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폭사가 막히니 좋은데 동시에 여기까지는 써도 된다는 상한이 생깁니다. 금전 감각이 마비된다는 말이 천장 설명에 자주 붙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상한을 견디고 캐릭터를 얻은 뒤에는 장비를 깎으러 가는 행동이 자연스러운 다음 순서가 됩니다. 그 흐름이 커뮤니티에서 너무 익숙해져서, 천장과 도자기 깎기는 거의 한 세트처럼 따라다닙니다. 여기서 시장의 압력이 하나 더 나타납니다. 플레이어의 불만이 커지면 개발사는 대개 두 방향 중 하나를 택합니다. 하나는 뽑기 쪽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뽑기와 상관없는 성장 쪽에 시간을 더 실어주는 방향입니다. 두 방향은 같이 갈 때가 많습니다. 천장과 장비 파밍이 동시에 강화되는 게임은 그래서 탄생합니다. 플레이어는 편해졌다고 말하면서도, 묘하게 더 바빠집니다. 에픽세븐의 2019년 변화의 로드맵 기사는 이 흐름을 아주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장비 연성 시스템 도입과 깡옵션 개선을 통한 파밍 스트레스 완화가 로드맵 핵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장비 등급보다 옵션이 중요하다는 게임의 성격을 전제로, 원하는 옵션 장비를 얻기 위한 제작 쪽 개선을 약속했다는 점입니다. 에픽세븐 장비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버립니다. 토벌을 돌고 장비를 먹고 강화하다가 부옵이 엉뚱하게 찍히면 바로 이 도자기가 아니야 신세가 됩니다. 장비 연성은 그 폐기율을 조금 줄여주고 플레이어에게 그래도 뭔가 만들 수 있다는 감각을 주는 시도입니다. 이 시점부터 도자기 깎기는 단순한 파밍이 아니라 파밍을 정리하는 기술까지 포함하기 시작합니다. 어느 장비를 남기고 어느 장비를 재료로 쓸지 어떤 장비는 연성 재료로 쓸지 같은 판단이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이 로드맵에서 깡옵 상향을 이미 보유한 장비에도 일괄 적용하고 강화 단계별 상승 수치에도 배율이 적용된다고 말한 대목이 특히 눈에 띕니다. 이미 강화한 장비도 같이 상향되면 플레이어는 내 과거 노동이 무효가 되지 않는다는 안도를 얻습니다. 이 감정은 라이브서비스에서 생각보다 큽니다.
이런 개선이 왜 시장 압력이냐고 묻는다면 규제와 신뢰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커질 때마다 법안 이야기까지 같이 나타납니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이 2021년 게임업계 연쇄 파동을 계기로 관련 법안이 발의되고 논의가 커졌습니다[^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 이 압력은 개발사가 그냥 확률이라고만 버티기 어렵게 만듭니다. 뽑기 확률은 공개하게 되더라도 그 다음은 결국 감정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플레이어는 스펙을 맞추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뽑기가 안전해지면 맞추고 싶은 마음이 장비 쪽으로 더 몰립니다. 그 장비 쪽이 너무 지옥이면 욕이 터지고 운영사는 개선을 약속합니다. 그러면 도자기 깎기 메커닉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완화된 형태로 더 오래 살아남습니다. 이 흐름을 보면서 천장이 도자기 깎기를 약하게 만든 게 아니라 도자기 깎기를 메인 엔드게임으로 올려준 쪽에 가깝습니다. 다만 모든 게임이 같은 결론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어떤 게임은 천장도 없고 도자기도 약해서 대신 콘텐츠 소비 속도가 빨라 업데이트에 더 의존합니다. 반면 어떤 게임은 천장이 있어도 장비 파밍이 비교적 단순해서 플레이어가 도자기 노동에 빠지지 않게 관리합니다. 이 차이는 계속 벌어집니다. 도자기 깎기가 중첩 랜덤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라이브서비스가 오래 굴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습관에 가깝습니다. 한 번만 랜덤이면 금방 끝납니다. 두 번 랜덤이면 오래 갑니다. 세 번 랜덤이면 커뮤니티가 손절 기준이라는 방어 기술을 만들고 그 기술이 다시 메타가 됩니다. 그 순간부터 도자기 깎기는 게임의 부속품이 아니라 게임 그 자체가 됩니다.
원신 성유물은 중첩 랜덤의 교과서처럼 보입니다. 비경에서 성유물이 드랍될 때 세트와 부위가 랜덤이고, 그 성유물의 주옵이 랜덤이며, 부옵도 랜덤입니다. 그리고 강화할 때는 +4마다 부옵이 붙거나 이미 있는 부옵 중 하나가 랜덤으로 강화됩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먹는 랜덤과 키우는 랜덤을 연달아 통과해야 합니다. 이 중첩이 원신만의 발명은 아닙니다. 다만 원신은 이를 전세계적인 공용어로 만든 쪽에 가깝습니다. 성유물이 한국 커뮤니티에서 유물형 도자기의 대명사가 된 것도 이 깔끔한 중첩 때문입니다. 3옵 시작이면 +4까지만 찍어보고 버려라 같은 말이 왜 자연스럽게 나오는지 시스템이 다 설명해 줍니다. 에픽세븐은 같은 중첩을 더 오래된 방식으로 더 거칠게 굴려 왔습니다. 어떤 장비는 세트가 맞고 주옵도 맞는데 부옵이 망하고 어떤 장비는 부옵은 괜찮은데 강화가 엉뚱한 데로 가고 어떤 장비는 처음부터 깡옵이 붙어서 찜찜합니다. 이런 장비가 쌓이면 플레이어는 파밍보다 정리에 지칩니다. 그래서 에픽세븐이 내놓은 완화책 중 하나가 부옵 변경이었고 커뮤니티에서는 이걸 큰 분기점으로 받아들였습니다[^(또 장문)부옵변경권은 에픽세븐 역사상 큰 변곡점이 될거 같음]. 이 글을 읽어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부옵 변경권이 늘고 부옵 변경용 인터페이스가 추가되면 오히려 피로해지고 귀찮아집니다. 도자기 깎기를 완화하려고 만든 기능이 도자기 깎기의 조작 단계를 늘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랜덤을 줄이면 편해질 것 같지만 선택이 늘면 다시 피곤해집니다. 좋은 의도가 늘 좋은 체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메커닉의 방향이 갈립니다. 하나는 랜덤을 조금 덜 랜덤하게 만드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랜덤을 계속 랜덤으로 두되 통제권을 팔거나 나눠주는 방향입니다. 에픽세븐의 부옵 변경은 두 번째에 가깝습니다. 랜덤을 없애지 않습니다. 대신 좋은 장비를 살릴 기회를 줍니다. 그러면 플레이어는 폐기 대신 수선을 선택합니다. 도자기 조각을 다시 붙이는 작업이 추가된 셈입니다. 손맛이 늘 수도 있습니다. 대신 손이 더 바빠집니다.
ARPG 계열은 도자기 깎기의 또 다른 형태를 보여줍니다. 패스 오브 엑자일에서는 Prefixes Cannot Be Changed 같은 메타모드가 유명합니다. 접두를 잠가서 좋은 접두를 보호한 채 다른 화폐를 써서 나머지를 수정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랜덤을 이기는 방법이 운이 아니라 공정 설계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이를 처음 봤을 때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제작 퍼즐을 던져주는 방식이라고 느꼈습니다[^PoE Prefixes Cannot Be Changed — Path of Exile]. 이런 잠금이 모바일 수집형으로 넘어오면 표정이 조금 달라집니다. 모바일에서는 잠금을 주는 대신 비용이나 재화 요구를 더 강하게 걸 때가 많습니다. 모바일 라이브서비스는 재화를 소각해야 하고 이벤트를 돌려야 하며 사람을 오래 붙잡아야 합니다. 잠금은 성공 확률을 크게 올리기 때문에 그만큼 비용을 올리거나 횟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려는 압력이 생깁니다. 이 균형 조절이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작은 차이로도 감정이 크게 변합니다. 디아블로4 재추첨 불만도 이와 연결됩니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원하는 옵션이 안 뜬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안 뜰수록 점점 더 비싸지는 체감 때문입니다. 시즌에 따라 골드보다 재료가 더 빡세다고 느끼는 순간도 오고 그때는 차라리 골드만 내게 해달라는 말이 나옵니다. 어떤 플레이어는 재추첨에 필요한 재료를 파밍하려면 시간 제한 콘텐츠를 돌 수밖에 없고 생활 때문에 그 시간에 못 들어가면 재추첨 자체를 못 한다고 불평합니다[^Enchanting material cost is too high]. 이 사례는 모바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도자기 깎기를 설계할 때 어떤 자원을 태우게 할지를 선택하면 그 자원의 수급 방식이 곧 플레이어의 감정을 결정합니다. 언제든 벌 수 있는 자원이면 노동이 됩니다. 정해진 시간에만 벌 수 있으면 생활 압박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후자가 훨씬 빨리 지칩니다. 게임이 내 하루를 쪼개기 시작하면 도자기를 깎는 게 아니라 내가 깎이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건 강한 피로입니다. 이 발전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약해진 것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완전 랜덤, 완전 폐기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쓰레기도 재활용할 길을 일부러 만들어 두는 편입니다. 교환 포인트, 제작 마일리지, 분해 재화 같은 것입니다.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시간을 썼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감정을 줄이려는 시도는 늘어났습니다. 다만 그 시도는 종종 또 다른 버튼을 낳고 또 다른 정리 피로를 낳습니다. 에픽세븐의 부옵 변경권 글이 말한 피로가 바로 그런 종류입니다.
원신, 에픽세븐, 서머너즈워, 명일방주는 같은 수집형으로 묶이지만 도자기 깎기를 다루는 방식은 꽤 다릅니다. 이 차이를 보면 이 게임은 왜 이렇게 피곤한지 같은 감정의 원인이 조금 더 뚜렷해집니다. 이런 비교를 할 때 플레이어가 어떤 버튼을 반복해서 누르게 되는지를 살펴봅니다. 플레이 경험을 훨씬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원신은 출시 초기에 성유물이라는 도자기를 엔드게임 중심에 놓았습니다. 성유물은 세트, 부위, 주옵, 부옵이 랜덤이고, 강화는 +4마다 부옵이 추가되거나 기존 부옵이 랜덤 강화됩니다. 이 규칙은 지금도 그대로이고 플레이어가 하는 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게임에서 변화는 메커닉이 바뀌었다보다 플레이어가 받아들이는 방법이 굳어졌다는 쪽이 더 큽니다. 2021년쯤에는 성유물 3옵·4옵 차이를 따지는 글이 올라오고, 강화 분배에 집착하는 방식이 고인물 놀이처럼 자리 잡았습니다[^(잡담) 원신) 성유물 3옵 4옵은 능력치 총합이 차이 있긴한거지?]. 원신을 오래 할수록 이건 종결을 찍으라고 만든 게 아니라 종결을 구경만 하라고 만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실제로 종결을 찍습니다. 다만 그 사람의 이야기가 커뮤니티에서 비틱으로 소비되는 순간 다수의 플레이어는 나는 저기까지 안 가겠다는 손절선을 다시 그립니다. 여기서 재미도 생깁니다. 동시에 상처도 생깁니다. 에픽세븐은 타임라인에서 변경이 더 눈에 띄는 편입니다. 출시 초기에는 토벌을 돌고 장비를 먹고 강화가 망하면 버리는 흐름이 강했습니다. 장비 주옵, 부옵 조합 표 같은 자료가 초창기부터 돌아다닌 것도 사람들이 그만큼 장비의 복잡함을 일찍 체감했다는 뜻입니다[^장비 주옵 부옵 정리표]. 2019년에는 장비 스트레스가 크게 터졌고 개발사는 로드맵을 공개하면서 장비 연성(가칭)과 깡옵 상향 같은 파밍 스트레스 완화를 약속합니다. 이 발표는 도자기 깎기가 너무 빡세면 게임이 흔들린다는 신호로도 읽혔습니다[^에픽세븐, 변화의 로드맵 첫 번째 업데이트 실시].
장비를 리셋해서 강화 수치를 0으로 되돌리는 아이디어가 공식적으로 논의되기도 했습니다. 글을 보면 플레이어는 잠재력 있던 장비가 강화가 망해서 아깝다는 감정을 말합니다. 이 감정이 에픽세븐 도자기의 핵심입니다[^Reset the enhanced equipment]. 이 흐름을 보면서 에픽세븐이 도자기를 더 깎기 쉽게 만들었다기보다 도자기를 깨도 다시 주워 담게 만들었다 쪽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편해진 만큼 손을 더 댈 이유도 늘어납니다. 그래서 체감은 사람마다 갈립니다. 누군가는 숨통이 트이고, 누군가는 할 일이 늘었다고 말합니다. 서머너즈 워는 도자기 깎기의 고전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한 몬스터에 6개의 룬을 장착하고 룬은 15강화까지 가능하며 3, 6, 9, 12 강화에서 옵션이 추가되거나 이미 있던 옵션 중 하나가 강화됩니다. 강화는 실패해도 룬이 파괴되지 않습니다[^서머너즈 워 : 천공의 아레나/룬]. 이 게임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룬 강화 방식이 개편됐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10회 강화였는데 개편 이후 3, 6, 9, 12, 15 중 원하는 단계까지 자동으로 강화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도자기 깎기의 반복 클릭을 줄여준 변화입니다. 랜덤이 문제라기보다, 랜덤을 다루는 인터페이스가 문제인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룬 옵션이 랜덤인 건 그대로인데 손가락 노동이 줄면 짜증이 줄어듭니다. 반면 룬을 많이 깎는 사람은 그 절약된 시간만큼 더 많이 돕니다. 이건 장점이자 함정입니다. 편해졌는데 더 하게 되는 순간이 오기 때문입니다. 한편 명일방주는 같은 수집형이지만 원신이나 에픽세븐처럼 랜덤 부옵 장비를 무한히 파밍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대신 모듈이라는 전용 장비 비슷한 성장 축이 추가됐고 이는 4성 이상 오퍼레이터가 2차 정예화하면 개방됩니다. 모듈 데이터 칩 같은 재화를 소모해 모듈을 개방하고 데이터 메모리, 데이터 리더기 같은 재화로 강화하는 식입니다[^명일방주/모듈]. 명일방주의 도자기 깎기는 여기서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랜덤 부옵을 굴리는 방식이 아니라 누구 모듈을 먼저 열고 어디까지 투자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뉴비에게 모듈이 뭔지 설명하는 글에서도 전용 장비 같은 거라고 풀어 말합니다[^누비들을 위한 모듈이 뭔가요 글]. 이 게임에서 도자기 깎기의 괴로움이 줄어든 대신 재화가 늘 부족하다는 종류의 답답함이 남는다고 느꼈습니다. 랜덤으로 폭망해서 열받는 날은 적지만 계획대로 못 키워서 찜찜한 날은 생깁니다. 피곤함의 성질이 바뀐 느낌입니다.
이 게임들을 나란히 놓으면 현재의 도자기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원신은 초기에 깔아둔 성유물 도자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플레이어가 손절선을 학습하게 만들었습니다. 에픽세븐은 장비 도자기가 너무 크다는 불만이 터진 뒤 수선과 되돌리기 같은 선택지를 늘렸습니다. 서머너즈 워는 룬 도자기의 본체는 유지하면서 클릭 피로를 줄이는 편의 개편을 넣었습니다. 명일방주는 랜덤 부옵 도자기 대신 투자 우선순위 도자기를 올려 고통의 종류를 바꿔버린 쪽에 가깝습니다. 도자기 깎기가 잘 어울리는 장르를 이야기할 때 한 가지 장면을 떠올립니다. 플레이어가 실패했을 때 다음 판에 다시 하면 되지라고 말할 수 있느냐입니다. 그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장르는 도자기 깎기가 비교적 잘 굴러갑니다. 반면 실패가 내가 쓴 시간과 재화가 증발하는 것으로 끝나는 장르는 도자기 깎기가 금방 독이 됩니다. 여기서 사람은 게임을 미워하기보다 자신을 미워하는 쪽으로 가기도 합니다. 파밍이 장르 정체성인 게임은 도자기 깎기가 붙어도 욕을 덜 먹는 편입니다. ARPG나 폐지 줍기 장르에서 아이템 랜덤은 원래부터 메인 콘텐츠였고 플레이어도 이를 기대합니다. 디아블로 같은 게임을 할 때 좋은 베이스 아이템을 주웠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흥분을 느낍니다. 이 장르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려면 랜덤 옵션과 재추첨 같은 도자기 요소가 필요해 보입니다. 반대로 스토리를 보고 싶어서 들어온 플레이어가 많은 게임에서는 도자기 깎기의 평가가 달라집니다. 원신은 탐험과 스토리가 강한 게임인데도 성유물 도자기를 엔드게임에 강하게 붙였습니다. 이는 플레이어를 두 갈래로 나눕니다. 스토리만 보고 나가는 사람은 성유물 도자기를 거의 안 만지고 오래 남는 사람은 성유물 도자기가 사실상 일상 루틴이 됩니다. 그래서 원신 커뮤니티에서는 성유물은 적당히 타협하라는 말이 일종의 생존 조언으로 굳어졌습니다. 같은 게임 안에서도 장르가 갈라지는 순간입니다.
PvP 비중이 크고 공정성에 민감한 장르는 더 까다롭습니다. 장비 도자기가 실력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면 패배가 납득되지 않습니다. 그때 플레이어가 쓰는 말은 대개 운빨겜이고 그다음은 과금겜입니다. 그래서 장비 도자기를 PvP에 그대로 들이밀면 커뮤니티가 빠르게 갈라집니다. 몇몇 게임을 보면서 느낀 건 PvP 게임은 도자기를 넣더라도 결과를 표준화하거나 성장 격차를 일부 구간에서 막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보정이 없으면 남는 건 분노입니다. 분노는 빠릅니다. 순식간에 번집니다. 서구권에서 한국 MMO를 볼 때 흔히 나오는 불만은 노가다가 의무고 동시에 P2W가 같이 붙는다는 감정입니다. 서구권 커뮤니티에서는 한국 MMO는 훌륭한 것도 많은데 의무적인 노가다와 P2W 때문에 사람들이 못 즐긴다 같은 말이 반복됩니다. 이 반응이 장르 적합도 문제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도자기 깎기는 선택 가능한 취미로 남을 때는 괜찮지만 안 하면 콘텐츠에 못 들어가는 의무가 되는 순간부터 욕을 크게 먹습니다[^I Wish Grind in Korean MMO's Was Optional]. 한편 로그라이크, 로그라이트는 또 다른 기준을 줍니다. 여기서는 도자기 깎기가 장비 한 점이 아니라 런을 깎는 행위로 바뀌는 편입니다. 특히 메타 진행이 적은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도자기 대신 실력을 깎는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같은 반복이라도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릅니다. 반면 메타 진행이 강한 로그라이트는 계속 죽으면서 스탯을 올리는 게 싫다는 반발도 같이 나옵니다. 어떤 플레이어는 런 시작부터 지난번보다 강해진 느낌이 더럽다고까지 말합니다. 실력 게임을 기대했는데 누적 성장으로 밀어버리는 감각이 들면 속았다는 느낌이 생길 수 있습니다[^I hate progression in roguelikes]. 그렇다고 메타 진행이 항상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로그라이크 커뮤니티에서도 클래스, 종족 같은 시작 옵션 해금은 좋고 스탯 업그레이드는 싫다 같은 의견이 강하게 지지받습니다. 여기서 해금은 선택지를 늘리고 스탯은 난이도를 낮추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 구분이 모바일 수집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봅니다. 플레이어는 더 많은 선택을 주면 덜 화내고 그냥 더 세게 만들어 주면 오히려 흥미를 잃거나 공정성을 의심합니다[^Game Dev needs help : what's your favorite meta progression ?].
게임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도자기 깎기가 잘 붙는 장르는 반복을 전제로 한 재미가 있는 장르입니다. 한 판이 짧거나 실패 후 재도전이 빠르거나 실패해도 뭔가 남는 장르가 그렇습니다. 반면 반복이 길고 실패 비용이 크고 결과가 한 번에 갈리는 장르는 도자기 깎기가 불만을 빨리 부릅니다. 모바일 수집형에서 그 경계가 특히 얇다고 느낍니다. 스토리만 보는 플레이어에게는 도자기가 불필요한 독이고 랭킹을 뛰는 플레이어에게는 도자기가 할 일이자 차별점이 됩니다. 결론을 강하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도자기 깎기는 게임의 메인 재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붙으면 오래가고 게임의 메인 재미를 막는 게이트로 붙으면 욕을 먹는다는 경향은 꽤 자주 봤습니다. 원신 성유물이 전자와 후자를 동시에 갖고 있어서 더 논쟁이 되는 사례라고 느낍니다. 누군가는 그걸 엔드게임으로 사랑하고 누군가는 그걸 게임의 흠으로 기억합니다. 도자기 깎기의 감정은 두 가지가 동시에 자랍니다. 하나는 나 오늘 비틱했다라는 짜릿함이고 다른 하나는 이거 못 해먹겠다라는 피로입니다. 이 감정이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틱을 한 뒤에 더 깊은 현타를 맞고 어떤 사람은 현타를 맞은 뒤에 오히려 비틱에 더 집착합니다. 도자기 깎기는 사람의 마음을 아주 쉽게 흔듭니다. 원신 성유물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감정은 지침입니다. 몇달 째 약한 레진 다 녹여가며 파밍해도 결과물이 안 좋으니 심리적으로 참 힘들다는 글이 올라왔고 구체적인 폭망 경험이 길게 적혀 있습니다. 농축레진을 쏟아부었는데 원하는 세트가 안 나오고 메인옵이 안 맞고 메인옵이 맞아도 강화하면 엉뚱한 부옵만 붙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깃털을 +16 했더니 공퍼 한 번에 방퍼 세 번이 붙었다는 말이 생생합니다[^성유물 파밍 정말 심리적으로 지치네요]. 이 글의 댓글 흐름도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딜 조금 덜 나오면 한대 더 때리면 된다 같은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은 정말 괴로우면 안 하면 된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플레이어들은 시스템을 고치라고 요구하기보다 서로에게 기대감을 낮추는 법을 권합니다. 도자기 깎기를 게임의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이를 수용형 플레이의 언어라고 느꼈습니다.
같은 원신에서도 회피형의 언어는 훨씬 짧습니다. 성유물 파밍 안하니까 좋네 같은 문장 하나로 끝납니다. 신캐를 안 뽑으니 성유물 파밍을 안 해도 되고 경치책과 모라만 캐니까 성유물 스트레스가 없어 여유롭다는 말입니다. 이 글은 웃기면서도 현실적입니다. 도자기 깎기가 싫으면 도자기가 필요 없는 삶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가챠 계획과 연결됩니다[^성유물 파밍 안하니까 좋네]. 성유물 스트레스가 단순히 스탯이 안 나온다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레진이 모자라고 강화 재료가 모자라고 파밍을 하느라 다른 콘텐츠를 못 하고 그 와중에 결과까지 없으면 마음이 상합니다. 이 감정이 내가 시간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불편함으로 이어집니다[^성유물 스트레스가 뭔가 단순히 스탯 원하는거 안나온것만 있는게 아닌듯]. 좋은 감정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좋은 감정은 길게 글로 남기기보다 짧게 자랑으로 끝나는 편입니다. 도자기 깎기에서의 기쁨은 오늘은 됐다입니다. 결과물이 한 번 나오면 그날의 실패가 전부 무효가 되는 느낌도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틱을 올리고 남은 사람들은 현타를 맞습니다. 커뮤니티가 계속 불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디아블로4 재추첨에서는 감정의 결이 조금 다릅니다. 원신은 스태미나와 시간이 주된 비용인데 디아블로4는 골드와 재료가 훨씬 직접적으로 앞에 나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그 숫자가 커지는 순간에 바로 욕을 합니다. 한 번 리롤에 500만 골드가 든다는 말이 나오고 더 나쁜 건 리롤할수록 비용이 올라가서 운이 나쁘면 처벌받는 느낌이라는 표현이 붙습니다. 이 표현이 도자기 깎기의 분노를 아주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Enchanting Costs: Frustration and Disappointment]. 여기에는 잡옵이 너무 많이 뜬다는 불평도 이어집니다. 내 빌드에 쓸모없는 옵션이 계속 후보에 올라오고 결국 잠재력 있는 아이템을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때 유플레이어가 느끼는 슬픔은 나는 좋은 베이스를 주웠는데 시스템이 그걸 쓰레기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감정이 원신의 성유물 폭망보다 더 공격적으로 나타납니다. 숫자가 너무 커서 억울함이 더 선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디아블로4에서는 시간 제한 파밍이 얹힐 때 분노가 또 한 번 달라집니다. 골드는 언제든 벌 수 있는데 헬타이드를 일 때문에 못 가면 리롤을 못 한다라고 말합니다. 게임이 내 생활을 확인하고 그 생활에 맞춰 오라고 명령하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도자기 깎기가 생활과 싸우기 시작하면 게임을 좋아하는 마음도 빨리 닳습니다[^Enchanting material cost is too high].
에픽세븐 쪽 감정은 원신과 디아블로 사이에 있습니다. 원신처럼 확률이 멀고 디아블로처럼 비용이 눈앞에서 폭발합니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플레이어는 욕을 한 번 하고 다시 손절 기준을 만들면서 살아갑니다. 이 감정이 에픽세븐을 오래 한 사람들의 생활 리듬에 가깝게 보였습니다. 한 번 크게 웃거나 울고 다음에는 더 계산적으로 굴립니다. 리듬이 바뀝니다. 사람도 바뀝니다. 이 감정을 한 가지로 정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도자기 깎기의 감정은 결과물이 나왔을 때의 쾌감과 결과물이 안 나왔을 때의 자존감 하락이 동시에 돌아가는 회전문에 가깝습니다. 그 회전문이 빠를수록 중독처럼 붙잡히고 느릴수록 번아웃이 옵니다. 원신 성유물에서 번아웃이 자주 보이는 이유가 회전문이 너무 느릴 때가 많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반면 디아블로4는 회전문이 빠를 수 있지만 비용 폭발로 손이 꺾이는 순간이 갑자기 옵니다. 그때 분노가 큽니다. 확률 공개 의무화 이야기를 꺼내면 여러 경우 그래서 가챠가 좀 착해졌는지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가챠의 숫자를 공개하는 일은 출발선이고 도자기 깎기의 분노는 그 뒤쪽에서 더 많이 터집니다. 플레이어가 화내는 이유는 확률을 몰라서가 아니라 확률을 알아도 납득이 안 돼서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공개되는데 마음은 진정되지 않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글에서는 2024년 3월 시행을 앞두고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의무화 제도를 설명하면서 확률형 아이템을 캡슐형, 강화형, 합성형으로 분류합니다. 그리고 천장 같은 방식도 공개 대상으로 본다는 내용이 같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도자기 깎기가 제도권 언어로 들어온 느낌을 받았습니다. 옵션을 변화시키는 강화형이 도자기 깎기의 핵심이고 천장은 가챠 쪽 안전장치인데 둘이 한 문서 안에 같이 놓였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2024년 3월 시행을 앞둔 게임 아이템 확률 공개 의무화]. 확률 공개가 도자기 깎기를 바꾸는 방식은 생각보다 간접적입니다. 예전에는 플레이어가 확률을 모른 채로 느낌상 더럽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표기된 확률을 봤는데도 체감이 이상하다는 쪽으로 바뀝니다. 전자는 단순 불만으로 끝나지만 후자는 신뢰 문제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플레이어가 뭔가 숨겼다고 느끼는 순간부터는 시스템이 조금 좋아져도 이미 낙인이 남습니다. 한 번 생긴 의심은 잘 안 사라집니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제도가 등장한 건 결국 신뢰의 문제였고 이용자들의 신뢰가 훼손되면서 법제화 여론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제도가 시작됐다고 긴장을 풀면 더 강한 규제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습니다. 확률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플레이어가 체감하는 공정성을 같이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이 더 커졌다고 느꼈습니다[^[기자수첩] 확률형 아이템 규제, 결국은 신뢰의 문제].
이런 압박은 도자기 깎기 메커닉에도 영향을 줍니다. 확률이 공개되면 개발사는 확률은 이렇다는 말로 방어할 수 있게 되지만 동시에 플레이어는 더 구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게 됩니다. 디아블로4의 재추첨 불만을 보면 플레이어는 단지 확률이 낮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옵션이 후보에 잘 안 뜬다는 느낌, 같은 옵션이 반복된다는 느낌, 비용이 올라 운 나쁨 벌금이 된다는 느낌을 묶어서 이야기합니다. 확률 공개는 이 감정들을 완전히 지워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확률은 공개했으니 나머지는 체감 문제다라는 싸움으로 번집니다. 이때 도자기 깎기는 수치보다 연출과 인터페이스에서 더 많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원신 성유물 같은 경우도 확률표를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플레이어는 손절 시점을 만들어 체감 공정성을 스스로 관리합니다. 반면 시스템이 복잡하고 결과가 숨겨져 있으면 손절선이 잘 안 만들어지고 분노가 더 쌓입니다. 에픽세븐이 장비 쪽 개선을 계속 내놓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장비 도자기는 결과가 너무 다양하고 한 번 망하면 손실이 커서 납득 가능한 실패를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손대는 곳이 계속 늘어납니다. 법률 쪽은 더 현실적인 압박을 줍니다. 율촌의 뉴스레터는 확률형 아이템 표시의무와 관련해 게임산업법 개정안이 법률로 통과됐고 표시의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이나 행정제재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2025년 8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라는 일정도 명시합니다. 이런 문장을 볼 때마다 확률을 다루는 방식이 기획이면서 동시에 컴플라이언스가 됐다는 생각을 합니다[^확률형 아이템 관련 개정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과 시사점].
확률 공개가 강화되면 개발사는 확률을 깔끔하게 관리하기 쉬운 메커닉을 선호하게 됩니다. 여기서 도자기 깎기의 발전 방향이 갈립니다. 하나는 단순한 랜덤을 유지하되 천장이나 누적을 붙여 정가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랜덤을 줄이는 대신 선택형 강화나 옵션 잠금처럼 플레이어에게 통제권을 주고 비용으로 균형을 맞추는 방식입니다. 이 둘이 모두 신뢰 관리의 언어라고 봅니다. 플레이어가 이건 그래도 내가 손을 쓸 수 있다고 느끼면 확률이 낮아도 덜 화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그 통제권이 과금으로만 연결되면 다시 불신이 폭발합니다. 이 균형이 정말 어렵습니다. 게임디자이너도 어렵고 플레이어도 어렵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도자기 깎기의 최신 형태가 순수 랜덤에서 랜덤 + 설명 + 보정으로 바뀌었다고 느낍니다. 랜덤 자체는 남아 있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무턱대고 숨기기 어렵고 플레이어가 납득할 출구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 출구가 천장일 수도 있고 교환일 수도 있고 부옵 변경일 수도 있습니다. 출구가 없는 도자기는 이제 오래 버티기 힘듭니다. 대신 출구가 너무 많아도 피곤해집니다. 도자기 깎기를 넣고 싶어 하는 게임디자이너는 보통 두 가지 욕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플레이어가 오래 플레이 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고 다른 하나는 그 시간이 너무 욕으로만 남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자주 충돌합니다. 커뮤니티를 오래 보면서 플레이어가 욕을 하는 순간이 사실 꽤 일정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 순간들을 피하면 도자기 깎기는 취향으로 남고 못 피하면 악몽이 됩니다.
먼저 보이는 포인트는 플레이어가 도자기 깎기를 게임의 한 파트로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게임 그 자체로 떠밀려 들어가는지입니다. 도자기 깎기에 대한 같은 질문이 나오는 것은 도자기 깎기가 특정 장르의 특산물이 아니라 어느새 요새 게임의 공통 경험이 됐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기대를 묻습니다. 이거 하면 재밌나요?가 아니라 이걸 해야 하나요?에 더 가깝습니다[^[^(잡담) 요새 게임에서 도자기 깍는다는게 뭐임??]]. 게임디자이너가 이 질문을 듣는 순간부터가 시작입니다. 도자기 깎기를 넣을 거라면 플레이어가 이를 안 해도 된다라고 느낄 출구를 반드시 줘야 합니다. 그 출구는 난이도일 수도 있고 콘텐츠 선택일 수도 있고 목표 수준일 수도 있습니다. 원신 채널의 성유물 파밍 안하니까 좋다는 의견은 그 출구를 플레이어가 스스로 만든 사례입니다. 신캐를 안 뽑으면 성유물 파밍을 안 해도 되고 그 결과 스트레스가 줄었다는 말이 핵심입니다. 이 글이 인기를 얻는 건 많은 사람이 같은 출구를 꿈꾼다는 뜻입니다[^성유물 파밍 안하니까 좋네]. 그다음은 손절을 시스템이 도와주느냐입니다. 저는 도자기 깎기에서 제일 큰 차이가 손절의 난이도입니다. 손절이 쉬운 게임은 욕을 하면서도 계속 합니다. 손절이 어려운 게임은 욕을 하다가 접습니다. 에픽세븐 공략을 보면 장비 강화와 세팅 이야기를 하면서도 효율이 계속 강조됩니다. 속도세트를 왜 중요하게 보느냐, 어떤 세트는 장비점수 면에서 손해를 볼 수 있느냐 같은 계산이 이어지고 그 속에서 플레이어는 이 장비는 여기까지만 같은 자기 규칙을 만들게 됩니다. 게임디자이너가 시스템으로 손절을 돕지 않으면 플레이어가 자력으로 손절을 만들고 그게 메타가 됩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피곤합니다[^(장문) 장비 공략 (효율적으로 장비강화/영웅세팅을 해보자)]. 개인적으로 손절이 메타가 되는 게임을 오래 하면 마음이 닳았습니다. 계속 계산하고 계속 버리고 계속 정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게임디자이너가 도자기 깎기를 넣을 때는 버리는 행위를 존중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버리는 행위를 손해로만 두면 플레이어는 망치면 끝이라는 공포로 강화 버튼을 못 누르거나 반대로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매몰로 폭주합니다. 둘 다 나쁩니다. 결과보다 사람이 먼저 무너집니다.
쓰레기의 처리도 큽니다. 도자기 깎기는 쓰레기를 대량 생산합니다. 그리고 그 쓰레기를 처리하는 인터페이스가 게임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플레이어가 욕을 하는 구체적인 상황은 대부분 결과물이 별로인데 정리까지 힘들다일 때 나옵니다. 인벤토리가 꽉 차고 분해 버튼을 누르고 또 누르고, 또 누릅니다. 손가락이 먼저 지칩니다. 그다음 마음이 지칩니다. 이때 사람은 시스템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탓하기도 합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같은 말이 나옵니다. 도자기 깎기는 그렇게 사람을 약하게 만듭니다. 돈이 들어가는 지점은 더 민감합니다. 도자기 깎기를 설계할 때 과금이 닿는 순간 커뮤니티의 언어가 훨씬 거칠어집니다. P2W가 붙는 순간 논쟁이 사실상 끝나버린다고 느꼈습니다. 플레이어는 더 이상 재미를 말하지 않고 공정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도자기 깎기에 과금을 연결하더라도 돈으로 시도 횟수를 무한히 늘릴 수 있다는 감각이 들면 반발이 커집니다. 반면 돈을 쓰면 시간을 조금 줄일 수 있다 정도면 싫어도 참고 넘어가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이 차이는 아주 미묘합니다. 이 미묘함이 가장 무섭습니다. 결과의 표현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저는 랜덤이 잔인해도 연출이 납득 가능하면 욕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반대로 확률이 괜찮아도 연출이 쓰레기면 욕이 늘어납니다. 같은 옵션이 계속 뜬다는 불만은 실제 확률보다 인터페이스 경험에서 더 크게 자랍니다. 후보가 어떻게 뽑히는지, 가중치가 있는지, 같은 옵션이 연속으로 뜰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이 투명하지 않으면 플레이어는 자기가 조롱당한다고 느낍니다. 확률을 공개했다는 말도 잘 안 먹힙니다. 예외도 있습니다. 도자기 깎기가 너무 매운 게임이 있는데도 이상하게 오래 버티는 경우입니다. 이런 게임은 대개 커뮤니티가 강합니다. 비틱이 돌아다니고, 폭망짤이 돌아다니고, 손절 기준이 공유되고, 누구는 끝까지 가고 누구는 적당히 멈춥니다. 플레이어가 서로를 욕하면서도 같이 웃습니다. 저는 이게 게임이 만든 재미라기보다 플레이어가 만든 생존 문화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게임디자이너는 그 문화를 지나치게 착취하면 안 됩니다. 착취하면 커뮤니티가 먼저 부러집니다. 이는 회복이 어렵습니다.
도자기 깎기는 없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사람이 랜덤을 좋아해서는 아닙니다. 랜덤은 짜릿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빨리 지치게도 합니다. 그래도 도자기 깎기가 계속 살아남는 건 라이브서비스가 돌아가는 방식과 플레이어가 시간을 쓰는 방식이 이미 그쪽으로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싫어해도 누군가는 계속 합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꽤 많습니다. 커뮤니티를 보면 도자기 깎기가 더 이상 특정 게임의 은어가 아닙니다. 도자기 깎기가 뭐냐 같은 글이 올라오면 답은 짧게 끝납니다. 아이템에 능력 붙이는 것입니다. 이제는 설명도 필요 없는 공통 경험이 되었습니다. 플레이어가 원하는 건 멋진 용어가 아니라 이 게임도 결국 동일하다는 사실의 확인입니다. 도자기 깎기가 계속 남는 이유 중 하나는 커뮤니티가 그걸 공략으로 길들이기 때문입니다. 스텔라 소라 채널에는 도자기 깎는 최신 메타 같은 글이 올라옵니다. 여기서는 도자기 점수가 몇 랭이면 정상이고 몇 랭이면 살짝 안 좋다는 식의 기준이 공유됩니다. 도자기 깎기가 더 이상 개인 취향이 아니라 커뮤니티가 합의한 성능 문화가 되는 순간입니다[^도자기 깎는 최신 메타]. 이런 문화가 생기면 도자기 깎기는 고통이면서도 놀이가 됩니다. 누군가는 점수 자랑을 하고 누군가는 폭망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누군가는 손절 기준을 기술로 정리합니다. 이런 행동은 한편으로는 건강하다고 봅니다. 플레이어가 스스로 납득 가능한 규칙을 만들어서 시스템의 잔인함을 생활로 바꾸고 있습니다. 다만 그 규칙이 너무 강해지면 새로 들어온 플레이어에게는 너도 이 노동을 배우라는 의미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 순간부터 장르의 문턱이 높아집니다. 사람도 줄어듭니다. 속도가 붙습니다. 그래서 도자기 깎기가 계속 남더라도 형태는 계속 바뀔 거라고 봅니다. 요즘 시장에서는 불투명한 확률은 버티기 어렵습니다. 확률 공개 의무화 이후에는 단순히 확률을 숨기기보다 플레이어에게 통제감을 주는 방식이 더 주목받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글에서도 확률형 아이템 규제 이후에는 투명성을 강화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인기 아이템을 얻을 수 있게 해 좌절감을 줄이는 설계가 언급됩니다. 이런 흐름이 가챠뿐 아니라 도자기 깎기에도 영향을 줍니다[^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배경과 그 영향].
이제 게임에 도자기 깎기를 안 넣을 수는 없어 보입니다. 도자기 깎기는 어떤 게임에선 정말 재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 캐릭터가 점점 강해지고 내 판단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마침내 내가 원하는 모양이 나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은 분명히 값이 있습니다. 다만 도자기 깎기가 재미로 남으려면 조건이 필요합니다. 이 조건을 아주 생활적인 말로 바꾸고 싶습니다. 플레이어가 잠깐 쉬었다가 돌아와도 괜찮아야 합니다. 플레이어가 오늘 운이 없었어도 그래도 남는 게 있다라고 느껴야 합니다. 플레이어가 손절을 자기 죄책감으로 하지 않고 게임이 주는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도자기 깎기를 안 해도 게임을 즐길 방법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원신에서 성유물 파밍 안 하니까 좋다는 글을 볼 때 이 조건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도자기 깎기를 덜 하니까 삶이 편해졌다는 말이 그 게임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건 한편으로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도자기 외의 즐길 거리도 줬다는 뜻입니다. 반면 어떤 게임은 도자기 깎기가 곧 입장권이 됩니다. 그 게임은 오래 못 갑니다. 적어도 커뮤니티의 마음은 오래 못 버팁니다.
게임디자이너들이 도자기 깎기를 설계할 때 플레이어를 붙잡는 장치보다 플레이어를 놓아주는 방법을 먼저 고민해야 할 수 있습니다. 붙잡는 건 쉽습니다. 확률을 낮추면 됩니다. 비용을 올리면 됩니다. 시간 제한 재료를 걸면 됩니다. 그런데 플레이어는 언젠가 떠납니다. 떠날 때 욕을 하고 떠나면 그 게임의 다음 시즌은 시작부터 피곤합니다. 반면 떠날 때 재밌었는데 좀 지쳤다는 감정이 남으면 돌아올 가능성이 생깁니다. 이 차이가 라이브서비스에서 정말 크다고 봅니다. 도자기 밈이 이 도자기가 아니야로 굳은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완성품이 나왔는데도 더 좋은 걸 위해 깨버리는 행위가 웃기면서 슬픕니다. 그 슬픔이 공감이 됩니다. 그래서 밈이 됩니다. 도자기 깎기는 결국 사람의 욕심을 건드립니다. 그 욕심을 다루는 방식이 조심스러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