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의 권력
현대에 나이는 어떤 업적을 달성했음을 말하지 못합니다. 스스로도 그런 인식을 가지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다음 알게 된 것은 자동차 운전자들 중 상당수는 제가 잘 모르는 어떤 비밀 결사에 가입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는 설마 현대 한국에 그런 비밀 조직이 공공연하게 존재하며 숨 쉬듯 활동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전거에 올라 도로교통법을 철저히 준수하며 길을 달리는 순간 적어도 한국에는 자동차 운전자들 상당수가 비밀 조직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조직은 너무나 비밀스럽게 운영되고 있어 조직의 이름조차 확인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도로독점이용권리수호자협회’ 정도로 부르고 있는데 이들은 세금으로 구축한 좋은 도로를 너무 오래 독점 사용해온 나머지 머리가 이상해져 도로에 진입하는 자동차가 아닌 그 무엇에게도 극도의 적개심을 표하곤 합니다.
이 가칭 ‘도로독점이용권리수호자협회’는 그 존재가 베일에 둘러싸여 있기는 하지만 도로를 자전거로 달려 보면 이들의 일관된 행동과 쉽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가령 대한민국 도로교통법을 준수하며 도로 오른쪽 가장자리 1미터를 차지하고 달리고 있으면 일부러 속도를 내 아주 가까이 지나가고 또 분명 거리를 두고 지나갈 공간이 충분한데도 경적을 계속해서 울려대며 다가오기도 하며 앞쪽에서 신호대기 할 때 일부러 자동차를 도로 오른쪽에 바짝 붙여 대 진행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행동이 운전자 개개인의 일종의 일탈이라고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운전자들이 도로 위에 있는 자전거들에게 강한 적개심을 보일 뿐 아니라 목적과 의도를 가지지 않은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살인 미수에 가까운 행동을 직접 겪으며 이들이 어떤 비밀 조직에 속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않고서는 이런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동차 운전자가 아니어서 이 비밀 단체에 가입할 수 없어 실제 어떤 행동 강령에 기반한 보상이 이루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도로 위에 자전거를 위협하면 금전적 보상을 받고 또 다 위험하게 위협할 수록 더 큰 보상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단지 위협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피해를 입히면 아주 큰 보상을 받게 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대한민국 형법에 의해 상해나 살인은 처벌 받게 되므로 운전자들은 비밀 조직의 행동 강령에 따른 행위와 대한민국 형법에서 금지하는 행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가령 차선 오른쪽을 달리는 자전거에 가까이 지나갈 수록, 또 빨리 지나갈 수록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행동을 한 다음 보험 청구처럼 블랙박스 영상을 첨부해 보상을 청구하면 조직에서 심사 후 계좌로 입금해 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잠깐 가칭 ‘도로독점이용권리수호자협회’에 소속된 운전자들의 행동을 소개했는데 이들의 행동을 조금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일단 이들은 대한민국 도로교통법을 준수하며 도로 오른편을 주행하는 자전거를 발견하면 차선 안에서 최대한 오른쪽으로 붙은 다음 속도를 올립니다. 만약 자전거 운전자가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경적을 길게 울려 자신의 존재를 알린 다음 차를 더 오른쪽으로 붙여 주행합니다. 이 상태로 자전거 운전자를 거의 스치며 지나가는데 그나마 대한민국 형법이 상해와 살인에 대해 처벌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팔꿈치로 자동차에 붙은 먼지를 닦아내는 선에서 마무리 되지만 대한민국 형법이 이런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방금 지나간 그 자동차는 직접 자전거 뒤를 들이받았을 겁니다.
또 이들은 인도가 있는 1차선 도로에서 정지신호를 받아 정차 할 때 오른쪽 거울에 자전거가 보이면 일부러 자동차를 오른쪽에 바짝 붙여 자전거가 지나갈 수 없게 만드는데 이 경우 자전거를 세워 인도로 들고 올라가거나 오토바이들이 종종 그러듯 오른쪽에 붙은 자동차 왼편을 돌아 이 자동차를 앞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도로교통법 상 자전거는 항상 도로의 맨 오른쪽 차선의 오른쪽 가장자리로만 달릴 수 있기 때문에 도로 오른쪽을 막아선 자동차를 피하기 위해 그 자동차의 왼편으로 나가면 안됩니다. 자동차 왼편에 나갔다가 문제가 생기면 보험사와 아주 깊은 대화를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법률을 준수하는 수준에서 ‘도로독점이용권리수호자협회’에 소속된 운전자가 도로 오른편을 막아 서면 상황에 따라 자전거를 멈추고 인도 위로 올라가 진행한 다음 다시 도로로 내려와야 합니다.
‘도로독점이용권리수호자협회’에 소속된 운전자가 운전하는 자동차들은 좌회전 할 때도 자전거를 발견하면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하는데 가령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좌회전 해서 왕복 4차선 도로에 진입하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제 앞에 있는 버스는 신호를 받아 좌회전 한 다음 거기 정류장이 없는 이상 왼쪽 차로로 진입합니다. 좌회전 하며 오른쪽 차로로 진입하는 차들은 주로 바로 이어서 우회전을 할 차들입니다. 그런데 버스들은 종종 오른쪽 거울에 자전거가 보이면 오른쪽 차로에 진입할 이유가 없는데도 좌회전 하며 오른쪽 차로로 진입해 앞에 설명한 정지신호에 길 오른편을 막는 식으로 차로 오른편에 바짝 붙어 자전거의 진행을 막습니다. 이런 상황을 자주 겪는 길은 도로 가장자리에 인도나 다른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브레이크를 꽉 잡고 버스가 지나가게 해 주거나 버스에 갈려 병원 신세를 져야 합니다. 그런데 아예 신호대기 하면서 자전거를 버스 앞에 대고 기다리다가 좌회전을 해 보면 버스는 항상 왕복 4차로 중 왼쪽 차로로 진입했는데 암만 생각해도 이는 도로에 자전거가 있는 상황과 없는 상황 사이에 명백히 행동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전거를 타며 가장 싫어하는 길은 도로 중앙에 폴이 박혀 있는 길인데 다른 곳에서는 도로 오른쪽에 붙어 달리면 ‘도로독점이용권리수호자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운전자들은 중앙선을 살짝 넘어 거리를 유지한 채로 자전거를 추월하지만 도로 중앙에 폴이 박혀 있고 도로 오른쪽에 피할 공간이 없으면 꼼짝 없이 뒤에 오는 모든 차량을 가로막고 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도로독점이용권리수호자협회’ 소속 운전자가 모는 차량이 뒤에 오면 이들은 피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경적을 길게 울리기도 하고 또 저단에서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 큰 소음을 내며 뒤에 바짝 붙어 오기도 합니다.
자전거를 탈 때는 대부분 후방 레이더를 사용하기 때문에 달리는 도중 뒤를 볼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자동차가 큰 엔진음을 내며 뒤에 바짝 붙어 있으면 거의 엔진소리가 뒤통수 바로 뒤에서 들리는 느낌인데 이럴 때야 말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됩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도로독점이용권리수호자협회’에 속한 운전자의 살의에 가득한 눈을 마주해야만 합니다. 이럴 때야 말로 오히려 도로 중앙으로 나가 길을 완전히 막은 다음 제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 형법이 동작한다는 사실을 신뢰하며 저를 뭉갠 다음 ‘도로독점이용권리수호자협회’의 보상과 그에 따른 처벌을 함께 받든지 아니면 경적을 울리고 가속 페달을 깊이 밟고 있지만 현재 속도를 유지하며 자전거 후미를 따르든지 사이에 선택을 강요해야만 합니다.
자. 이런 배경에서 종종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모여 자동차로만 갈 수 있는 근교 가게에 뭘 먹으러 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주로 큰 자전거 대신 생각 안하기, 생각만 하기에서 소개한 작은 자전거를 타는데 작은 자전거를 타면 복잡한 도로에서 더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고 아주 짧은 오르막이 반복되는 근교의 좁은 도로에서 더 유리하며 목적지에 도착하면 작게 접어 들고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은 자전거를 타면 큰 자전거를 탈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로독점이용권리수호자협회’로부터 더 큰 위협을 받곤 합니다. 이들은 복장을 완전히 갖춰 입고 큰 자전거를 탈 때는 상대적으로 덜 위협적으로 굴다가도 작은 자전거가 도로에 나오는 것을 보면 순간적으로 뇌로 피가 몰려 머리가 띵해지는 증세를 겪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웬만큼 도로 주행에 익숙해지만 이들의 위협에도 ‘그럼 치어 죽이시든가’라는 자세로 주행을 계속할 수 있게 되는데 이 날은 이런 마음가짐으로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일어납니다.
자전거 여러 대가 도로를 달릴 때는 대략 넉 대에서 여섯 대 정도를 한 팩으로 부르며 이 단위로 묶어 함께 달리는데 이보다 자전거가 더 많으면 여러 팩으로 나눠 통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달려야 합니다. 가끔 한강에 2열로 자전거 수 십 대가 중간에 빈 공간 없이 달릴 때가 있는데 이거 정말 심한 민폐입니다. 이 날은 자전거 다섯 대가 한 팩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팩 맨 앞과 맨 뒤는 다른 자전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로 오른쪽에 덜 붙어 달립니다. 이유는 뒤에 따라오는 자동차가 맨 뒷사람과 맨 앞사람이 튀어나온 거리를 보고 팩의 길이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도로독점이용권리수호자협회’ 소속 운전자자들의 위협운전으로부터 팩의 나머지 인원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로에서 만나는 자전거 여러 대를 보면 맨 앞 자전거와 맨 뒤 자전거는 유난히 다른 사람들보다 도로 중앙에 가깝게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건 사실 목숨 걸고 팩을 지키는 행동입니다.
이 날은 동네에 국수집에 가는 길이라 제가 맨 앞에서 달렸는데 아주 짧은 오르내리막이 계속되고 있어 가끔 뒤를 돌아보며 팩이 모두 따라오는지 확인하고 있었는데 저 뒤에서 흰색 승용차가 이미 아주 높은 엔진음을 내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별 일 있겠나 싶어 도로 상에서 위치를 유지하며 달렸는데 이내 그 차는 경적을 울린 채로 최대한 제 왼편에 가까이 붙어 빠르게 지나갑니다. 팔꿈치로 자동차에 붙은 먼지를 닦지는 않았지만 시속 40킬로미터 제한인 도로에서 거의 60킬로미터에 가깝게 우리들을 스치고 지나갔고 지나간 다음에도 몇 초에 걸쳐 경적을 계속해서 울렸습니다. 저 사람 때문에 우리들 모두가 위협을 당했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목이 그리 강하지는 않아 큰 소리를 지르지 않는데 거의 직장 끝부터 출발한 고함은 대장과 소장을 지나 위에서 압력을 일으켜 성대와 함께 목구멍을 통해 고함을 내고 맙니다.
이제 상황이 조금 더 재미있어졌는데 우리를 스쳐 지나간 흰색 승용차는 도로 오른편에 차를 세웠고 우리들 역시 그 뒤에 자전거를 세웠습니다. 이제 차에서 내린 사람이 비밀 조직의 일원이건 말건 싸워야 하는 상황에 돌입합니다. 일단 눈깔을 최대한 꼴받게 뜨고 상대를 꼴아보며 반말과 존대말 사이에 고민하고 있을 때 아주 나이들지는 않은 남성이 먼저 말을 시작합니다. “네가 뭔데 나한테 지랄이야?” 이 대화의 언어는 이 시점에 확정되었고 저 역시 상대가 사용한 것과 같은 언어를 사용해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옆에 공간 있는데 왜 위협하며 지나가? 그러다 죽으면 책임질거야?” 이런 식의 이야기가 오가다가 일행인 듯한 여성이 ‘당신들, 도로에서 자전거 타려면 수신호 같은 거 해야돼요’ 라고 말했는데 너무 웃겨서 그대로 ‘야. 너는 직진하는데 깜빡이 켜냐?’ 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일단 그 사람은 직접적인 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짜증은 났지만 완전히 무시하기로 합니다.
이야기 끝에 운전자는 ‘너희들 같은 거 앞에 가면 내가 치어 버릴 수 있어’ 라고 말했고 이제 전화의 잠금을 풀어 112를 눌러 놓고 통화 버튼을 누를까 말까 하고 있는데 이내 우리들 중 다른 한 분이 나서 ‘너 지금 그거 협박이야.’ 라고 말하며 상대를 조금은 물러나게 만들어 통화 버튼을 누르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물러난 그 중년 남성은 우리들에게 한바탕 막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은 잊었지만 그 중 또렷히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습니다. ‘내가 나이 오십에 너 - 소리친 저를 말함 - 같은 놈에게 이딴 소리 들을 사람이 아냐’ 하고 말했는데 이 날 이후 이 말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이 오십’이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옛날부터 스물, 서른, 마흔, 쉰 등의 나이에 다른 별명을 붙여 두고 그 나이에 도달하면 뭔가 달성한 것 같은 뉘앙스로 이야기하는 걸 알고는 있습니다. 가령 마흔을 불혹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 거요. 또 공자는 나이 예순에 원하는 대로 행동해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현대에는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어떤 나이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딱히 어떤 달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의 문화에 따라 나이 많은 사람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은 여전히 크게 잘못 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현대에 가까워질 수록 존중과 존경은 나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나이와 관계 없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날 흰색 소나타 하이브리드를 타는 중년 남성의 계속되는 욕설을 들으며 상황을 촬영하고 만약을 대비한 다음 직진할 때도 깜빡이를 켜라는 멍청이와 함께 자동차를 먼저 보낸 다음 서로를 위로하고 분을 좀 삭인 다음 다시 자전거를 타고 국수집에 가서 맛있는 국수를 먹고 그 동네에 있는 또 다른 맛있는 카페에 가서 다른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나이 오십의 권력’이라는 주제로 머릿속에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었고 ‘도로독점이용권리수호자협회’의 존재와 함께 한국에서 나이란 무엇인지, 또 나이에 따른 권력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존경과 존중은 무엇에 대한 것이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었고 지금도 어떤 결론에 다다르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국수 먹으러 가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위협운전을 당했고 항의했고 항의에 분노한 운전자의 욕설과 위협을 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나이 오십 먹고 너 (저)에게 이딴 취급 받는데 대한 분노를 들었으며 경찰에 신고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 언젠가 그 중년 남성의 나이에 도달할 겁니다. 만약 그 때 제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면 부디 저를 조용히 차단하지 마시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저에게 욕을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