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쓰레기는 과연 쓰레기로 정의해야 할까?

디지털 쓰레기는 과연 쓰레기로 정의해야 할까?
시작하기 전에: 지난 7월부터 평일에는 매일 트위터에 글을 하나씩 공유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쓰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없애버리기를 반복한 나머지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였는데 이를 극복하려는 목적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보다는 하고 싶은 말에 초점을 맞춰 작성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글 각각이 마음에 드는 상태가 아니게 됐지만 할 말을 할 수는 있게 됐습니다. 석 달 정도 안정적으로 글을 공개할 수 있게 됐으니 이번에는 평소에 예상하지 않은 주제를 써 보기로 했습니다. 주중에 아무 주제나 던져 달라고 요청해서 '디지털 쓰레기는 과연 쓰레기로 정의해야 할까?'라는 주제를 얻었습니다.

일단 시작하기 전에 디지털 쓰레기를 정의해야 합니다. 검색해보니 현대에 디지털 쓰레기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물리적인 디지털 쓰레기. 효용이 끝난 전제 제품과 이를 이루는 부품을 말합니다. 이들은 수거됐지만 제대로 재활용 되지 않는 거대한 양의 컴퓨터와 주변 기기, 스마트폰과 이를 구성하는 온갖 회로와 배터리 등등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들이 계속해서 쌓이면 인류 스스로 그레이 구 역할을 해 행성을 완전히 소모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인류가 쌓은 데이터 그 자체입니다. 2018년 기준으로 인류는 하루에 약 2,500,000,000 GB (이십오억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생산해내고 있으며 2018년 기준 현재 인류가 생성한 데이터 중 90% 이상이 지난 2년 이내에 생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참고) 데이터 라이프사이클을 고려하면 이 거대한 데이터는 결국 물리적인 디지털 쓰레기로 귀결되겠지만 라이프사이클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네트워크를 통해 접근 가능한 데이터 형태로 유지되며 이들 중 인류에게 유용하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는 데이터를 디지털 쓰레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물리적 디지털 쓰레기 이전에 현재 폐기되지 않은 디바이스에 기록된 상태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는 상태인 데이터를 디지털 쓰레기라고 보고 생각해볼 작정입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20여년에 걸쳐 사진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여러 서비스를 옮겨 가며 비용을 지불해 왔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크게 구글과 애플에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구글에는 구글포토가 사용하는 스토리지에 비용을 지불하고 있고 애플에는 아이클라우드 드라이브를 사용하는데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이 비용은 제가 집에서 직접 스토리지를 관리하는 것보다 더 비싸지만 저 자신보다 더 잘 관리해주고 또 집에서 물리적으로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어 사고로부터 안전합니다.

종종 이렇게 비용을 지불해 가며 데이터 유실에 민감하게 대비하는 일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고민해볼 때가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알고 있는 한은 제 컴퓨터가 갑자기 사라져도 ‘거의’ 모든 데이터는 안전할 겁니다. 그런데 이 데이터들은 거대 인터넷 기업이 운영하는 데이터센터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 모든 데이터가 항상 유용하게 활용되는 상태는 아닙니다. 사진이 필요해서 검색하면 분명 찾아낼 수 있지만 이 사진 거의 전체는 평소에 거의 접근 되지 않습니다. 평소에 이 사진들은 데이터센터 한 구석을 차지한 서버의 하드디스크 일부를 차지한 채로 전력을 소모하고 있을 겁니다.

이 데이터는 활용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기만 하는데도 상시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이는 데이터센터 건설과 운영비, 데이터센터와 내 단말기 사이를 연결하는 전 지구적 인프라에 이릅니다. 가끔 이런 인력과 비용, 에너지와 인프라를 전 지구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보관하고 있는 데이터를 이런 어처구니없이 거대한 전 지구적 인프라에 의탁할만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데이터는 제가 비용을 지불하는 한 사라지지 않고 내가 지출하는 비용이나 그것들이 소모시키는 에너지의 가치에 한참 모자라는 수준으로만 활용될 겁니다. 언젠가 제가 더이상 비용을 지불하지 않거나 에너지가 부족해 더 이상 데이터센터를 운영할 수 없게 되거나 운석이 지구에 부딪쳐 인류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질 겁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유지하고 있는 사진 뭉치를 디지털 쓰레기의 일부로 보고 있습니다. 제 자신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의미가 없고 유지하는데 개인적인 비용과 사회적인 비용을 동시에 지출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되어도 유용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이런 디지털 쓰레기를 쓰레기로 봐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 볼 겁니다. 먼 미래에 과거의 유산을 발견한 SF에서 종종 과거 인류가 남긴 일상의 흔적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단계에 도달한다면 현대의 쓰레기는 미래에 유산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수메르인들의 영수증은 확실히 과거 인류의 유산이 되었습니다. 단 이들은 그냥 땅 속에 묻혀 있는 상태만으로도 긴 시간을 넘어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현대 데이터센터는 그렇지 않습니다. 상시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만약 미래에 이런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면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겁니다. 현대에는 데이터가 소모시키는 비용에 비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는 쓰레기에 가깝겠지만 먼 미래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다만 미래에까지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거대한 에너지를 공급해야 하고 현대의 보안 수준에 맞춘 암호화 등의 이유로 미래에 이를 전달할 수 없게 된다면 미래에 이들은 과거에 남겨진 물리적인 디지털 쓰레기에 더 가까울 겁니다.

먼 미래에 데이터를 전달해 이를 활용할 수 있다면 현대의 데이터센터에 쌓인 데이터를 디지털 쓰레기라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단 이 데이터가 오직 현대에만 영향을 끼치고 미래에 전달될 수 없다면 디지털 쓰레기라고 정의해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추신: 주제의 맥락을 고려하면 디지털 쓰레기는 퍼블릭 블록체인에 남겨진 유틸리티 서비스들의 이용 흔적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지만 일단 이번에는 좀 더 일반적인 디지털 쓰레기에서 접근했습니다. 덕분에 다음에는 퍼블릭 블록체인에 남겨진 수많은 서비스들의 이용 흔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