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드 스테이트 소사이어티. 그 결말은 올바른가?

실제 세계에서 일어난 학교 폭력 사건에 대한 너무 쉬운 행정의 대응을 보고 갑갑해하다가 문득 오래된 애니메이션 솔리드 스테이트 소사이어티의 결말이 올바른지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솔리드 스테이트 소사이어티. 그 결말은 올바른가?

방송 프로그램에서 지방 소멸 위기 지역을 언급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분들은 여러 가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가족 전체의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통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문제들이 생긴 모양입니다. 그 중 하나는 아이들에 대한 괴롭힘 문제입니다. 또래 집단은 오래 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외부에 배타적인 특징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 지방으로 이사 간 다음 꽤 오랫동안, 어쩌면 학교를 다니는 내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자리에 계속해서 살아왔다면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함께 학교에 갈 수 있었겠지만 다른 도시에서 전학 온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미 단단해진 또래 집단은 결코 저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집단은 저나 저와 비슷한 외부인들을 끝까지 외부인으로 남겨둠으로써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집단의 결속력을 유지하고 이를 확인하는 도구로 사용했을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각광 받는 외향적인 성격이 아닌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좀 더 심하게 겪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상황은 과거 아이들이 원래 다 그렇다며 지독할 정도로 방관하던 교사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 다음 세대, 또는 그 다음 다음 세대 교사들이 나타났을 현대에도 거의 똑같은 모양입니다. 그 지역으로 전학 간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괴롭힘을 받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일어났지만 교사들은 그들의 선배들로부터 그렇게 배운 것 마냥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거나 오히려 집단의 일원이 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본격적으로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조치를 취했지만 결말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나 가해자의 이동을 통한 분리가 아닌 피해자의 이동에 의한 분리였습니다. 어쩌면 교사들은 학교에서 이렇게 상황을 처리하는 쉬운 방법을 교육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 표면적으로 볼 때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마치 이끼에 나온 것 마냥 소멸 위기 지역 상위 목록에 나타나는 이 지역의 한 학교에는 다시금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잠시 외부인으로부터 집단의 결속을 의심하게 만드는 공격이 일어났지만 모두가, 심지어 교사를 포함한 모두가 합심해 외부로부터 위협에 저항한 결과 외부인이 학교를 떠나고 다시 이전과 같은, 마치 이끼와 같은 일상이 회복되었습니다. 나이가 적을 수록 그들의 세계는 더 좁은 법입니다. 그 세계에서 학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굉장히 높을 수밖에 없는데 전학은 그 세계의 큰 부분을 하루 아침에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일입니다. 전학을 통해 지금까지 이 곳에 터를 잡고 살아오며 단단해진 집단에 그런 가혹한 세계의 변화를 겪게 하지 않고 이미 한 번 이상 그런 변화를 겪어 이미 익숙해졌을는지도 모르는 외부인에게 다시 같은 변화를 겪게 만드는 것은 집단 내부 관점으로 볼 때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한편 이런 조치는 피해자 입장에서 마치 가챠와 다름없습니다. 집단에 의한 본질적으로 학대에 가까운 행위가 일어나지만 집단의 안위를 위해 이끼처럼 뭉친 사람들은 결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려 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외부인이 떠나야 하고 그 때마다 다음 학교, 다음 학급에는 비록 기존 또래 집단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 집단이 지나치게 외부인에 배타적이지 않기를 바라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운이 나빠 그 곳에도 비슷한 또래 집단이 비슷한 수준으로 외부인에게 배타적으로 군다면 아이들의 삶은 더더욱 어려워집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은 가족이 삶의 터전을 지방으로 옮긴 다음 몇 년에 걸쳐 또래 집단에 진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집 근처에 학교가 새로 만들어지며 한 번에 학교 전체의 ‘모든’ 학생들이 전학생이 되는 꽤 특수한 상황에 놓였고 그제서야 바닥부터 만들어진 집단에 섞일 수 있었습니다. 이 이벤트가 없었더라면 힘든 시간은 더 길어졌을 겁니다.

가족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야기의 주제는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치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보호자는 생계를 위해 집이 아닌 어딘가에서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하고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은 갈 곳이 마땅찮습니다. 만약 인프라가 좀 더 갖춰진 지역이라면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안전한 시설이 있었을는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이 더 많고 지금도 그런 지역은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방치된 아이들이 운 좋게 아무 일 없이 자라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지방에서 자란 저나 가족이 본 사례는 항상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방치로 시작하지만 종종 방치로 인한 사고, 학대, 가출 등의 순서로 사건이 전개되어 썩 예쁘지 않은 결말로 끝나곤 합니다. 서로 알고 있는 이런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종종 비슷한 지점을 발견하곤 하는데 바로 앞의 단계 중 가출 이후에 일어나는 학교나 경찰의 개입 후 오히려 문제가 악화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들을 방치하고 학대한 사람들, 대체로 이들의 보호자들로부터 아이들을 격리하고 이들을 보호해 삶의 다음 단계로 진행할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이는 인프라가 그럭저럭 갖춰진 곳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때문에 교사도 경찰도 이들을 발견하면 주로 집으로 돌려보내는데 집중합니다. 가령 ‘그래도 중학교 까지는 마치고 다시 이야기해보자’라든지 ‘그래도 밖에 나와 살기보다는 집에 가는 편이 낫지’ 같은 말을 하는 것 마저도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 결말 역시 별로 예쁘지 않은 것 마저도 비슷한데 이들은 자신들의 그 상태를 만든 원인과 다시 마주해야 합니다. 교사와 경찰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눈앞에서 문제가 제거되었으니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앞에서 피해 학생들을 전학 시켜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할 교사들처럼요. 하지만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문제와 정면으로 대면해야만 하고 이는 너무나 가혹합니다.

계속해봐야 더 이상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이야기를 그만 두고 이 이야기들로부터 연상한 과거에 본 애니메이션 스토리를 떠올려봅니다. 저는 공각기동대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물론 원작 만화와 두 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좋아하긴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후 제작된 TV 시리즈와 VOD입니다. 원작은 공각기동대의 세계관을 창조했고 이는 이후 매트릭스 같은 영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 두 편의 극장판은 그런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는 주체들이 의문의 본질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을 세련되게 그려냈습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관점으로 볼 때 이 과정은 대중의 관점에서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기에 이 영화들은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선문답으로 비춰지고 이야기는 갑자기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바깥으로 순간이동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면 공각기동대 TV 시리즈는 같은 세계관에 기반해 실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좀 더 보통의 관객 눈높이에서 생각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훨씬 더 재미있고 이해하기 쉬우며 공감할 수 있습니다. 가령 현대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에 접속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두뇌 일부를 기계화한 상태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계에서 누군가는 그 전뇌화 수술에 의한 후유증으로 뇌가 단단하게 굳어져 결국 사망에 이르는 가상의 질병인 전뇌경화증을 겪습니다. 원인이 불분명하고 치료 방법도 없으며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뇌화 수술을 받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기에 모두가 이 병의 존재를 마치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런 세계에서 이 병의 존재를 알리려고 하는 사람들, 이들을 저지하려는 사람들, 또 이들 모두를 추적하는 사람들이 각자 이끌어내는 이야기는 이 모든 이야기가 허구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고 또 제가 저 세계에 있다면, 또 저 세계에서 저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를 오랜 시간에 걸쳐 곱씹어 보게 만듭니다.

그 다음 시리즈에서는 모든 사람이 극도로 정보화된 세계에서 서로 집단을 이루지 않은 낱낱의 사람들이 같은 정보에 노출된 다음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또 같은 행동을 하는 현상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극중에서는 서로 같은 정보를 접한 사람들이 결국 총리를 암살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이들이 모여 서로가 지금에 이르도록 만든 그 정보의 원천을 서로에게 질문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정작 그 정보의 원천을 접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마주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오래 전에 만들어진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이후 일본에서는 실제로 전 총리 암살 사건이 발생했고 또 미국에서는 의사당 폭동 사건이 발생했으며 한국에서는 법원 난입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존뇌화 한 결과로 고도로 연결되어 정보화된 사회와는 약간 다르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깨어 있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정보시스템에 연결 되어 생활하는 현실과 애니메이션 속 세계의 설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이런 설정에 근거해 발생한다고 가정한 가상의 사건이 실제 세계에서 거의 동일하게 발생했다는 점은 이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본 지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이야기들을 다시금 곱씹게 만듭니다. 공각기동대에서 전뇌화된 모든 사람들과 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은 사실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의지해 살아가는 현실 세계와 별로 다르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한편 현대의 지방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에 대한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조치와 공각기동대 TV 시리즈를 연달아 생각하다가 문득 또 다른 공각기동대 애니메이션 ‘Solid State Society’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 역시 오리지널 공각기동대의 설정에 기반하고 또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공각기동대 두 번째 극장용 애니메이션인 ‘이노센스'에서도 다룹니다. 아이들을 인형에 비유하며 아이들이 인형으로부터 이들을 흉내내며 삶의 방식을 익혀 성장하지만 결국 그들의 행동은 인형의 그것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가정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람에게 복종하도록 만든 인형이 사람을 공격해 사망 사고를 일으키고 예의 공안 9과가 이 사건의 원인을 추적하는 업무를 맡게 됩니다. Solid State Society에서 소령이 떠난 9과 대장 역할을 하기 위해 뒤늦게 의체화를 선택한 토구사와 달리 이노센스의 토구사는 비록 수령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의체화 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여전히 다른 9과 구성원들에 비해 가족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아이도 있고요. 그래서 결국 사람과 인형의 역할을 서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경찰 조사관의 말에 아이를 떠올리며 아이들은 인형이 아니라며 화를 내고 맙니다. 하지만 이노센스의 끄트머리에서 바토가 다시 자신의 유일한 반려견과 만나고 토구사가 그의 딸과 만날 때 토구사가 선물로 준비한 인형은 과연 토구사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변화한 것인지 아니면 경찰 조사관의 말에 분노하던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끝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롯이 우리들의 몫입니다.

솔리드 스테이트 소사이어티 이야기를 하려다가 실수로 이노센스 이야기로 빠졌는데 아마 양쪽 모두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그랬을 겁니다. 솔리드 스테이트 소사이어티에서는 다른 공각기동대 TV 시리즈와 같은 세계관에서 소령이 9과를 떠나고 시간이 지난 다음 일어나는 일을 그립니다. 이 세계에서는 토구사도 다른 9과 구성원들처럼 전신 의체화를 선택했습니다. 여전히 토구사에게는 가족이 있고 그들 중에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런 세계에서 우연히 아이들이 사라지고 또 보호자들이 자살하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우연한 자살 사고라고 여겼지만 이들의 계속되는 자살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9과가 이들 사이의 연관 관계를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 모든 사건은 아이들이 사라지는 시스템의 설계자가 토구사에게 이 시스템의 실제 동작을 체험 시켜 주는 부분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이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써 행동하려면 전뇌화 수슬을 받아야 하고 설정 상 이 수술은 7세 전후에 이루어집니다. 보호자와 아이가 전뇌 수술 병원에 함께 나타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직 전뇌화 계획이 없었지만 이 시스템의 설계자가 토구사를 조종해 예정에 없이 아이를 전뇌 시술 병원에 데려갑니다. 설계자의 의도대로라면 토구사는 아이가 전뇌 수술을 받는 동안 기다리게 되는데 이 때 토구사의 기억, 아이의 기억, 전산 상의 모든 서류가 위조되어 이전의 아이는 사라지고 재산이 남아 있지만 이들이 사망하면 국고로 환수될 처지에 놓인 노인들에게 아이가 등록되어 이들의 재산을 바탕으로 엘리트 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 시스템의 설계자는 주로 보호자로부터 학대 받는 아이들에게 이 시스템이 동작하도록 만들었고 그는 이 행동이 결국 국가를 위해 올바른 일이라고 여긴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시스템의 설계자는 마지막 순간 토구사에게 선택의 기회를 줍니다. 토구사는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한쪽 팔을 움직여 자살함으로써 예정에 없는 전뇌화 수술을 중단 시킬 수 있었습니다. 아니면 자살을 선택하지 않고 설계자의 조종에 따라 전뇌화 수술이 일어나게 만들고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 일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자살 사건은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토구사는 전뇌 수술을 막기로 마음 먹는데 이 장면이야말로 이 장면의 의미를 눈치 챈 사람들에게는 공각기동대 전체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의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첫 공각기동대 극장판에서 소령과 함께 쓰레기 회수차를 뒤쫓던 토구사에게 소령은 아직도 마테바를 쓰느냐는 핀잔을 줍니다. 마테바는 리볼버 권총의 한 종류인데 설정 상 토구사는 이 총을 즐겨 사용합니다. 하지만 소령은 실제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니 다른 총을 사용하라고 말하고 실제로 솔리드 스테이트 소사이어티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토구사는 다른 권총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습관적으로 윗 주머니에 있는 권총에 손을 가져갔다가 잠깐 멈칫 하며 다시 손을 등 뒤로 가져가 비록 업무에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가지고 다니던 마테바를 꺼내 자신의 머리를 겨눕니다. 토구사는 이 예정되지 않은 전뇌화 수술을 막기 위해 한때 즐겨 사용하던 마테바로 자신의 머리를 쏠 셈입니다. 이는 적어도 제 관점에서는 비록 여기서 죽는 선택을 해 토구사의 삶이 여기서 끝나겠지만 그 끝은 그의 결정과 그의 취향에 따르는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정말 짜릿했습니다.

다른 보호자들이 자살을 선택한 이 경험에서 토구사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버프를 받아 총이 발사되지만 목숨을 건지고 동시에 예정되지 않은 전뇌화 수술 역시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이 사라지게 만든 다음 이들에게 상속된 재산에 기반해 아이들에게 엘리트 교육을 시키던 관료들이 경찰에 연행되며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하며 이 나라를 위해 올바른 선택이라고 항변합니다. 사건이 일단락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시스템의 설계자가 누구인지, 토구사의 의심처럼 이 시스템의 설계자가 바로 2년 전 9과를 떠난 소령 본인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은 뚜렷하게 해소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애니메이션은 이 즈음에 끝나기 때문에 과연 이 잔혹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의 설계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깔끔하게 해소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 애니메이션의 끝부분에 등장인물들이 나누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사라진 줄 알았던 아이들은 알고 보니 정부 시설에서 전뇌 시스템을 경유한 잔혹한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있었고 이 아이들은 모두 구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저 역시 궁금했습니다. 이들은 앞서 이 시스템이 실제로 동작하는 모습을 체험한 토구사의 체험을 통해 이들을 병원에 데려간 보호자의 기억, 전뇌화 수술을 받은 자기 자신의 기억이 사라지고 전산 상의 모든 기록이 조작되어 그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기록 상, 그리고 기억 상 양쪽 모두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을 결국 원래 보호자에게 인계하기로 했다는 말에 결국 그것이 순리가 아닌가 하는 대화를 주고 받습니다만, 그 때나 지금이나 이 장면은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순리인지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극중에서 이 아이들은 보호자들로부터 학대 받고 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을 원래 그들의 보호자에게 돌려 보내는 것은 그저 사건을 해결할 뿐인 9과 입장에서는 순리에 가까운 일이었을는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는 결코 순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마치 앞서 잠깐 이야기한 실제 세계에서 방치되던 아이들이 가출한 다음에 일어나는 일과도 비슷합니다. 이들은 여러 가지 범죄의 쉬운 표적이 되지만 그들 중 일부는 그렇게 보호자로부터 떨어져 사는 쪽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나 경찰 어느 쪽도 솔리드 스테이트 소사이어티의 마지막 장면처럼 표면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쉬운 방법을 선택해 버립니다. 정작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통제할 권한은 적어도 실제 세계에서나 극중의 가상 세계에서나 똑같이 아이들 자기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문득 어느 휴일 오전에 포장해 온 커피를 마시며 가족과 이야기하다가 결국 오래된 애니메이션의 결말로부터 느낀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에 다다랐습니다. 그래서 솔리드 스테이트 소사이어티의 결말은 올바른가요? 그 결말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지만 적어도 저는 그 결말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극중에서도,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비슷한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