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레이드가 가지는 의미
1인 레이드의 등장은 우리들이 MMO 장르에 거대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오래 전 함께 게임을 만들다가 장렬하게 말아 먹은 사람들 중 지금도 연락 하며 지내는 사람들이 또 다시 오랜만에 모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래 전 카지노 라이크 - 1.5년 정리에 한 적 있습니다. 이제 함께 일하며 게임을 말아 먹은 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러 다들 그 때 알던 모습들과는 꽤 많이 달라졌고 또 그 때까지 했던 경험과 생각으로부터 꽤 멀리 까지 나아가 이야기를 거듭할 때마다 저 자신의 변화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변화를 인식하고 한 번에 여러 사람들의 변화를 인식할 수 있어 재미있는 자리입니다. 실은 이 날 낮에 이번 달 안에 모두 작성해야 하는 큼직큼직한 문서 몇 개 중 하나를 작성하느라 나름 집중한 상태로 여러 시간 동안 달린 덕분에 슬슬 퇴근할 시간이 되자 온몸이 너덜너덜해져 아프다고 하고 그냥 안 나갈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지만 그건 또 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래도 얼굴이라도 비춘 다음 먼저 집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출발합니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출발한다는 생각으로 나온 제가 사실은 일행 중 가장 먼저 도착해 줄을 서고 그 다음 도착한 분과 이야기를 시작한 다음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 새 차가 다 끊기고 두 번째 들린 술집도 마감 시간이 되어 쫓겨 나와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른 날과 별로 다르지 않게 요즘 일 하는 이야기, 각자의 구인 정보 교환, 그리고 요즘 하고 있는 고민, 그리고 서로에게 물어보면 분명 생각하지 못했을 황당한 답변을 기대할 수 있는 질문 따위를 주고 받았는데 그 중 하나로 1인 레이드에 대한 질문을 받아 제가 한 대답 이야기를 해 볼 작정입니다.

일단 맥주를 몇 잔 마신 다음 여러 게임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게임이 최근 업데이트를 통해 1인 레이드를 추가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이게 현대에 무슨 의미일지 생각해봤습니다. 비슷한 개념이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에 처음 나타난 다음 꽤 긴 시간이 지났고 우리들은 여전히 비슷한 장르 게임을 만들며 처음 게임 전체의 로드맵을 작성할 때 게임 시스템을 어느 정도 갖추고 나면 지난번 그 규칙은 말이 됩니다. 그런데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주나요?에 언급한 우편 기능 마냥 당연히 들어갈 것을 예상하고 게임의 방향이나 특징과 무관하게 레이드 기능을 추가하곤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천년대 초중반 이 장르 게임으로부터 레이드 플레이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목표를 위해 한 장소, 한 시간에 모였을 뿐 아니라 이들이 강력한 보스의 공격에 맞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또 이들 중 실수로 보스의 공격에 쓰러진 사람들을 극적으로 되살려 모두 함께 보스의 최후를 맞이하는 플레이는 이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대단한 경험을 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이 많은 사람들이 강력한 보스의 행동 패턴을 익혀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미리 준비하고 또 사람들마다 그룹을 만들어 그룹 단위로 이를 통솔하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그룹 내 나머지 사람들을 이끌어 전체 플레이 중 일부를 담당해 모두가 완벽한 플레이를 만들어냈을 때 이를 이끌어낸 사람들은 더더욱 강렬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초기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들이 그저 여러 사람들이 한 필드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사냥하고 마을에서 이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기 할 일을 하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구석에 앉아 지켜보기만 해도 충분히 재미있던 것에서 더 나아가 이제 눈앞의 같은 위협에 대항하는 수 십 명의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모여 지금 이 순간 세계 각지 어딘가의 컴퓨터와 모니터 앞에 앉아 같은 보스를 향해 집중하고 모두의 승리를 위해 능숙하게 행동하는 경험은 분명 게임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 자신들이 참여한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이 궁극적으로 달성할 목표로 삼기에 충분합니다.
처음 그런 플레이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 정도의 대규모 인원이 한 번에 모여 보스와 맞서 싸우는 게임 모드를 넣기를 강하게 원했는데 실제로 이를 개발해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동시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만 플레이가 정상적으로 동작해야 했으므로 지금까지 전투 시스템만으로는 이 플레이를 온전히 구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령 플레이어 40명이 참여해야 정상적으로 동작하게 만들려면 이들이 최소한의 강함을 달성해야 하기는 했지만 이들이 필요 이상으로 강할 때 이런 일부 플레이어들에 의해 전체 플레이가 너무 큰 영향을 받지 않아야 했는데 만약 이런 제어에 실패하면 모두가 여러 시간에 걸쳐 준비하고 또 기대했을 보스가 순식간에 녹아 내려 보상을 획득한다는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겠지만 플레이 경험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요구사항에 가장 쉽게 접근하는 방법 중 하나는 플레이어들 각각의 강함에 어느 정도 대응하기는 하지만 보스가 이런 강함의 차이 정도는 가볍게 씹어 먹을 정도로 대단히 강하도록 설정하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는 몬스터와 공격을 주고 받으며 전투 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보스가 같은 공간에 모인 플레이어들 거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규모가 큰 공격을 하고 이 공격이 상당히 치명적이어서 분명 필드나 다른 던전에서는 제법 강한 모습을 보였을 플레이어들을 순식간에 녹여 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보스는 여러 플레이어들을 한 번에 녹일 광역 공격을 남발하곤 했는데 물론 보스는 자신과 싸우는 수많은 작은 플레이어들을 죽여 없애는 것이 목표이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그런 식으로 싸우다가는 고객들이 짜증을 내고 더 이상 이 보스에게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으므로 어느 정도 플레이어들을 봐 주기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서로 상당히 다른 요구사항에 대응하기 위해 강력한 광역 공격을 하되 공격을 시작하기 직전에 광역 공격이 일어날 자리에 미리 시각 효과를 표현해 조금 느슨하게 집중하고 있더라도 잠시 후 일어날 강력한 광역 공격을 미리 회피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를 흔히 장판이라고 불렀습니다.
장판 공격은 강력한 보스가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플레이어들과 맞서 싸우기에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는데 일단 공격 자체가 강력하기 때문에 여기 맞으면 상당히 아팠고 한동안 전열에서 이탈해야만 했습니다. 의도적으로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전투에 다시 참여할 수 있게 만들고 다른 누군가가 계속해서 장판을 피하느라 이 플레이어를 도와주지 못하면 결국 완전히 전열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식으로 서로 플레이를 잠시 멈추고 바닥에 누운 다른 플레이어를 광역 공격을 피하며 도와 줘야만 하도록 만듭니다. 또 시각 효과를 바닥에 깔아 이어서 나타날 광역 공격의 패턴을 알 수 있게 만들면 플레이어들을 각 시점에 맞춰 보스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또 적당한 위치로 몰아 넣어 그 상황에 맞는 플레이를 고안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도 있었습니다. 가령 원거리 플레이어들이 유리하게 보스를 공격하며 전공을 쌓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그저 광역 공격을 회피하고만 있을 뿐인 근거리 플레이어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한번에 원거리 플레이어들이 주로 밀집한 자리에 광역 공격을 해 이들을 멀리 쫓아내고 한동안 근거리 플레이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또 무력화 같은 개념을 도입해 무력화 상태를 이끌어내는 조건에 맞는 플레이를 하도록 압력을 가하지만 동시에 이 조건에 맞추려면 계속해서 바닥에 깔리는 다양한 장판을 회피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고 또 무력화 상태가 시작될 때 의도적으로 모든 플레이어들을 보스로부터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장소로 밀어내 이들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어 그 동안 아껴 뒀던 이동 속도 관련 버프를 바로 이 순간에 사용해야만 보스에게 의미 있는 공격을 하도록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플레이를 하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대에 같은 가상의 장소에 모여 이 보스를 상대하고 있고 이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보스의 광역 공격 패턴에 맞춰 다 함께 공격을 회피하는 플레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흡사 이들이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의 보스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스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플레이가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이런 강렬한 경험과 즐거움을 준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이런 강력한 보스가 등장하는 이유는 그에 걸맞는 보상을 주기 위해서인데 초기 플레이어들이 새로운 보스의 공격 패턴을 파악하며 죽어 나가며 강렬한 플레이 경험을 획득하며 즐겁게 플레이하고 또 자신들의 플레이 경험을 다음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시점이 지나고 나면 그 다음에 보스를 처치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맨 처음 보스의 패턴을 파악한 플레이어들로부터 보스의 패턴을 익히고 와야 하는 압력을 받습니다. 가령 입장하기 전에 ‘아무개님의 영상 보고 오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는데 여기에 솔직하게 아니라고 답하면 이내 싫은 소리를 듣곤 합니다. 분명 처음에는 모두가 잘 모르는 패턴을 피하고 그러다가 실패하면 서로를 살려 전투를 지속하기 위해 애쓰는 상황 자체를 플레이의 일부로 이해하곤 했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모든 사람들은 이제 당연히 새 보스의 패턴을 미리 숙지하고 와야 했고 딱 봐도 패턴을 숙지하지 않고 온 사람이 나타나 모두의 플레이를 어렵게 만들면 손쉽게 이 한 사람에게 모든 잘못의 책임을 묻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앞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스의 공격 패턴을 익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모두가 그런 움직임을 알고 또 그런 움직임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강렬한 경험을 하게 만들지만 그 이면에는 모두가 그런 움직임을 하기 위해 각자가 패턴을 익히고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게시물이나 영상을 보고 또 그렇지 않을 때 누군가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는 여러 과정들이 숨어 있었던 겁니다. 시간이 지나며 여러 사람이 동시에 플레이 해야 하는 강력한 보스는 계속해서 양산되었지만 이전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이런 것 하나 뿐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이유가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월이 흐르며 레이드는 서서히 더 적은 인원을 요구하고 또 상대적으로 낮은 난이도를 요구하는 스타일과 상대적으로 높은 난이도를 요구하는 스타일로 나뉩니다. 먼저 요구 인원이 더 줄어든 이유는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이 게임 외에는 달리 할 만한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은 강력한 레이드 보스까지 다다르는데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어렵고 긴 던전을 붙여 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른 저녁에 시작한 던전 플레이는 종종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고 이런 경험은 게임에 완전히 몰입한 고객들에게 강렬한 경험을 주었지만 이런 긴 시간을 낼 수 없는 고객들에게는 이런 플레이가 분명 같이 플레이하는 같은 게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 실제로는 접근할 수 없는 플레이에 불과했습니다. 개발하는 입장에서도 높은 비용을 들여 개발한 새 보스가 이전과 같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더라도 이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다른 여러 가지 일 대신 이 플레이에 집중하도록 강요할 동인이 점점 더 줄어들었습니다. 세계에는 다른 게임, 다른 컨텐츠, 실제 세계에서 사람들 사이의 만남, 실제 세계의 만원 지하철 안에서 이미 모든 기력을 소진해 게임은 커녕 집에 돌아오면 그냥 바닥에 누워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사람, 고양이짤, 틱톡 등 다른 일들이 널려 있습니다. 이런 온갖 다른 할일을 마다하고 여러 시간 동안 플레이 해야 간신히 보스와 만나고 또 정신 바짝 차려야만 보스의 강력한 공격 패턴을 욕 먹지 않고 피해 가며 플레이 할 수 있는 다분히 에너지 소모적인 일에 시간을 쓸 수 있는 수 십 명이 같은 시간에 존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심지어 현대에는 같은 시간대에 할 수 있는 적당한 플레이가 같은 게임에도 있기 마련이어서 이 게임을 플레이 하는 모든 고객들이 오직 이 보스만을 선망하며 게임을 플레이 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드는 요구 인원을 줄이고 난이도를 이에 맞춰 조절해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이전과 비슷한 플레이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좀 더 가혹한 모양으로 다른 플레이를 제공하는 모양으로 나뉩니다.
처음에는 수 십 명을 요구하던 레이드는 그 필요 인원이 계속해서 줄어들어 어느새 일상적인 파티 인원이나 그보다 더 적은 인원으로도 플레이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쯤 되면 레이드 보스는 그저 다양한 광역 패턴과 여러 가지 이전에 다른 보스로부터 경험하지 못했던 퍼즐 플레이를 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컨텐츠일 뿐 전통적인 의미의 레이드라고 부르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사람이 플레이 해야 하고 또 이전보다는 훨씬 강력한 보스를 상대해야 하는 플레이를 의례적으로 레이드라고 불러 전통적인 관점에서 레이드 플레이는 이미 게임에서 사라진지 오래지만 아직 그 이름만은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훨씬 적은 인원이 플레이 하기 때문에 여느 던전 보스와 구분하기 위해 보다 화려한 메커닉과 다양한 퍼즐을 포함한 플레이를 요구하는 사례도 나타났는데 이전에는 그냥 던전을 따로 만들고 던전 끝에 나타날 던전 보스를 서로 다른 부서에서 따로 만들어 던전 끝에 미리 약속해 놓은 널직한 공간에 보스를 내려놓아 레이드 던전을 완성하는 간단한 개발 방법에서 현대에는 던전 전체를 특정 레이드 보스만을 위한 극도로 잘 짜여진 연출을 사용해 개발하고 있습니다. 가령 레이드 던전을 시작하면 계속해서 보스가 던전 플레이를 진행해 나가는 우리들에게 가끔 나타나 공격을 날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뒤로 가면 갈수록 보스의 등장이 잦아지며 던전 끝에 도달하자 드디어 그 동안 우리들을 함께 쫓아온 보스와 우리들의 동선이 대단한 연출과 함께 서로 겹쳐 보스전을 플레이 해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하도록 하는데 이는 이전과 같이 서로 다른 부서에서 던전과 보스전을 만드는 식으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대단한 결과입니다. 이 경험 역히 정말 강렬하고 대단하지만 분명 이전 시대에 레이드라고 부르던 플레이로부터 예상한 플레이 경험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인 것은 분명합니다.
한편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은 레이드에서 뿐만 아니라 게임의 다른 영역에서도 멀티플레이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이전 시대의 모습에서 서로 온라인을 유지하며 플레이하고는 있지만 멀티플레이 상황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조금씩 줄여 가는 방향으로 변해 왔습니다. 퍼시스턴트 월드에서 개인화된 경험에서 분명 서로 온라인 상태를 유지하며 다른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볼 수 있고 이 환경이 영속적으로 유지되는 환경에서도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켜야만 하는 전투나 보상 획득 같은 순간에 분쟁이 일어날 소지를 줄이기 위해 적어도 보상 획득만은 퍼시스턴트 월드에서도 개인화된 모양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어느 시대에는 필드를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이 너무 강한 나머지 필드에서 마주친 나를 도와줄 다른 플레이어의 존재가 너무 절실하고 이들의 존재가 너무 고마웠지만 시간이 흐르며 게임은 더 이상 그런 식으로 개발되지 않았고 플레이어들은 점점 더 다른 플레이어들의 존재를 환대하지 않아도 되는 모양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사실 초기에도 흔히 ‘스틸’이라고 해서 막타에 경험치를 몰아 주는 멀티플레이에 부적절한 경험치 메커닉을 사용하는 게임에서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다가 막타를 통해 경험치만 먹고 사라지는 플레이나 몬스터가 바닥에 드랍한 아이템을 먹는 플레이가 있었습니다. 사실 MMO 게임을 근본적으로 일종의 복잡계 시뮬레이션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이런 플레이는 분명 게임이 허용하는 일어날 수 있는 플레이이지만 고객들이 이런 현상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에 경험치 획득 규칙과 드랍아이템 획득 권한 따위를 신경 써 개발해 시각적으로는 서로 같은 공간에서 같은 플레이를 하고 있지만 개념적으로는 서로 장소는 같지만 서로 다른 접근할 수 없는 차원에서 플레이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태를 만들어냈습니다.
현대에 MMO 게임은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이전과 비슷한 수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상태에서 서로 상호작용을 주고 받는 이전과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제 여러 측면에서 각자는 서로 이 게임을 현재 플레이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수준으로 작용할 뿐 이제 각자가 서로 상호작용 할 만한 이유가 별로 없고 또 서로 상호작용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으로 변했습니다. 가령 한창 여러 가지 의견을 불러일으키던 시각적으로 MMO 게임과 비슷하지만 자동 전투 기능을 채용한 매니지먼트 장르 게임들은 포션을 자동으로 사용하며 주변의 몬스터들과 자동으로 전투했기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장소에 캐릭터를 세워 놓고 자동 전투를 돌려 놓기만 하면 고객은 여느 매니지먼트 게임처럼 시간이 지난 다음 돌아와 그 동안의 전리품을 확인하고 포션을 채우고 또 다른 항상성 유지 아이템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 다음 다시 게임을 떠나기를 반복합니다. 이런 플레이 패턴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의 존재는 내 플레이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물론 서로 다른 여러 플레이어가 같은 몬스터를 공격하는 상황은 과거에는 막타를 친 플레이어만 경험치를 가져가도록 만드는 부주의한 디자인을 고수했지만 현대에는 몬스터가 죽을 때 자신을 공격한 여러 플레이어들에게 적당한 비율로 경험치를 나눠 주거나 심지어 자신이 줄 수 있는 최대 경험치보다 더 많은 경험치를 나눠 줘 플레이어들이 서로 상호작용 하는 상황을 기분 나빠 하지 않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앞마당에서 자사를 돌리는 상황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의 똑같은 플레이는 자사 효율을 떨어뜨리므로 근본적으로 이들의 존재는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하며 다른 플레이어들의 존재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객들이 이전 시대 플레이어들에게 강렬한 경험을 준 레이드 플레이를 완전히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의 고객들도 이전 시대의 그런 대단한 전설에 대해 알고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 영상으로부터 대단한 연출 경험으로 가득한 현대적인 레이드 던전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개발한 것이 영상물이었다면 고객들은 유튜브에서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를 보고 그걸로 만족했겠지만 우리가 개발한 것은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이기에 고객들은 영상을 통해 그 대단함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 경험을 직접 해 보고 싶고 또 그로부터 획득할 수 있는 보상 또한 원합니다. 때문에 영상을 통해 스포일링 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이들은 레이드 던전을 플레이 해 보기를 원합니다. 다만 앞서 설명한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고객들이 다른 사람들의 존재와 이들과의 상호작용을 점점 더 달갑게 여기지 않는 모양으로부터 이런 고객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컨텐츠가 필요할 뿐입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1인 레이드라고 생각합니다. 1인 레이드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레이드라고 보기도 어렵고 또 여느 파티플레이와도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1인 레이드는 아무리 강력한 보스가 등장해 이전에 수 십 명의 플레이어들을 상대하던 다양한 방식으로 공격을 일삼더라도 혼자 플레이 하는 이상 이전과 같은 여러 사람이 플레이 할 때 얻을 수 있는 강렬한 경험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경험을 위해 필요했던 썩 유쾌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일체가 제거된 순수하게 게임 경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1인 레이드는 이제 유튜브 영상으로만 보고 만족해야 했던 그런 대단한 플레이를 부담 없이 시도해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장판을 밟고 죽더라도 비록 그 상황에서 나를 도와줄 다른 사람은 없지만 또한 그 상황에서 내 부주의함을 나무랄 사람도 없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누군가 예습 하고 왔는지 물어보고 또 예습 하지 않았음을 실토하며 나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할 사람도 없습니다. 하루 종일 일터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집에 돌아오는 만원 지하철 안에서 이미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에서 고양이짤을 스크롤 해 보는 대신 간신히 기력을 쥐어 짜내 들어온 게임에서 다른 사람이 씹선비질을 하는 꼴을 안 보고서도 유튜브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내 조작을 통해 연출을 극도로 강화한 1인 레이드를 오롯이 내 조작과 내 책임에 기반해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서로에게 우호적인 소수의 사람들을 초대해 제한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우호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플레이할 수도 있습니다. 이전과 같이 잘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플레이 하는 모습을 보며 놀라워 할 수는 없지만 그와 동시에 나에게 딱히 그럴 이유도 없이 적대적인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혹여 실수할까 전전긍긍하며 점점 더 익숙해지는 사이에 자기 자신 역시 다른 사람들의 작은 실수를 눈감아주지 못하고 채팅창을 열고 뭔가를 쳐 넣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의 본질과 조금은 어긋나는 것 같지만 나 혼자, 혹은 나에게 우호적인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멀티플레이가 훨씬 더 의미 있는 세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과장해서 1인 레이드의 등장은 전통적인 MMO가 추구한다고 여기던 플레이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사람들은 모두가 혼자 플레이하고 자신의 경험을 제한된 온라인 매체를 통해 공유하곤 했지만 게임 스스로가 온라인 화 되면서 각자의 경험이 서로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놀랍고 강렬한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에 걸쳐 MMO 장르가 계속해서 개발되고 개발될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 회자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 사이에 상호작용 그 자체에 염증을 느끼는 고객들이 늘어났고 MMO 게임의 여러 측면이 이런 변화에 대응해 왔습니다. 몬스터를 동시에 공격할 때 경험치를 산정하는 방법, 드랍아이템의 획득 권한 같은 것들은 서로 같은 가상 세계에서 플레이하지만 서로의 존재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고 또 게임 스스로가 점점 더 경쟁적인 플레이를 부추김으로써 고객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 결과를 또 다른 새로운 규칙으로 완화하는데 몰두하며 게임이 계속해서 변해 왔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전통적인 레이드의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1인 레이드의 등장은 이런 전통적인 MMO에서 고객들이 서로 상호작용 하는 플레이에 일종의 종말이 찾아왔음을 의미합니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MMO 게임은 여러 사람들이 같은 게임을 온라인 상태를 유지하며 플레이하지만 이들 각각이 플레이 하는 경험의 실체는 싱글플레이에 가까운 형태이고 이것이 새로운 시대에 MMO의 형태입니다.
이번 66호에도 지난 2주간 공유한 이야기를 함께 보내 드립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은 요즘입니다만, 여러 생각은 다른 글에 풀어 보기로 하고 오늘은 출근하다 만난 동네 친구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또 다음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