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도구로 하는 올바르지 않은 작업
작업에 어울리지 않는 잘못된 도구를 사용하며 고생 끝에 결과를 냈나요? 고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잘못됐습니다.

어느 회사에 출근하든 항상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스위트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제공하는 방식은 조금씩 달랐습니다. 어딘가에서는 출근할 때 오피스 스위트 설치 미디어를 건네 받았는데 미디어 케이스에는 씨디키가 적혀 있곤 했습니다. 이런 씨디키는 아마도 회사 안에서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었을테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온 사방에 유출되어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지불한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씨디키로 오피스 스위트를 사용하는 일이 쉽게 일어납니다. 시간이 지나자 마이크로소프트도 이런 배포 방식의 문제를 인지한 모양인지 여전히 똑같은 씨디키를 사용하면서도 올바른 최신 설치 파일을 다운로드 하기 위해 정해진 웹사이트에 씨디키를 등록하도록 해 올바른 수량만큼 설치되는지, 올바른 장소에 있는 올바른 기계에 설치되는지 확인하기도 합니다.
이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스위트는 완전히 온라인 기반의 라이선스 관리와 배포 방식으로 변경되어 회사는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회사가 구입한 라이선스가 몇 개 사용되고 있는지, 어느 컴퓨터에서, 어떤 사용자에 의해 실행되고 있는지 모니터링 할 수 있고 앞서 소개한 잘못된 위치에서 실행되는 상황을 발견하면 바로 실행을 차단할 수도 있게 됩니다. 이렇게 관리 환경이 변해 오는 동안 우리가 직접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스위트가 오랜 세월에 걸쳐 거의 변하지 않으면서도 버전 번호가 바뀌며 새로운 구입을 유도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소프트웨어를 조금만 시간을 들여 사용해 보면 오래된 버전은 현대에 도통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편하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스위트에 포함된 몇몇 소프트웨어는 시간이 흐르며 부침을 겪기도 합니다. 가령 원노트는 아주 오래 전에는 오피스 스위트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추가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개선되어 오고 있습니다. 반대로 액세스나 퍼블리셔는 한때 이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순간이 분명 있었겠지만 현대에는 더 이상 오피스 스위트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액세스는 로컬에서 실행되는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였는데 과거 어떤 시대에는 구조화된 데이터를 내 컴퓨터 로컬에 데이터베이스 모양으로 저장하고 이에 기반한 소프트웨어 역시 로컬에서 구동하기도 했습니다. 액세스는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였고 나머지 오피스 스위트 구성요소들과 잘 연동되어 여러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와 이에 기반한 애플리케이션이 웹 기반으로 옮겨 가며 더 이상 로컬에서 동작하지 않게 됐고 로컬에서 필요한 훨씬 더 가볍고 간단한 구조화된 데이터를 처리하는 역할은 엑셀이 담당하면서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퍼블리셔는 한때 DTP라는 단어가 널리 활용되던 시대에 워드에 비해 좀 더 본격적인 인쇄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용도의 소프트웨어였습니다. 하지만 이 소프트웨어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역할이 모호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미 DTP 소프트웨어 시장에는 과거의 절대 강자와 신흥 강자가 한창 격전을 벌이는 중이었고 퍼블리셔가 제공하는 기능은 전문 편집자들을 털끝만큼도 만족 시키지 못했으며 시간이 지나자 워드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되면서 오피스 스위트에서 조용히 사라집니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 비지오는 실행할 때 나타나는 스플래시에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스위트 로고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오피스 스위트를 구입할 때 포함되지 않습니다. 별도로 구입하려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특히 좀 더 본격적인 템플릿을 포함하고 있던 비지오 프로페셔널 버전은 개인이 구입하려고 마음먹기에는 정말 가격대가 상당했습니다. 사실 그 정도 가격대면 개인은 구입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비지오를 한창 사용하던 시대에는 이를 대체할 만한 적당한 소프트웨어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회사의 경영지원 부서에서는 종종 파워포인트와 비지오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파워포인트가 있는데 왜 고가의 비지오를 구입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일단 화가 났지만 시간이 지나며 당신이 이 소프트웨어를 사 주지 않으면 당신은 회사에 대한 배임을 저지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내용을 예쁘게 표현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기안서를 작성하는 요령을 배우는 기회가 됩니다. 안타깝게도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파워포인트와 다른 드로잉 소프트웨어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 이를 설명하는데 시간을 들여야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경영지원을 담당하고 있기도 해서 종종 슬퍼질 때가 있습니다. 여튼 저 시대에 비지오를 대신할 소프트웨어는 드물었고 저는 회사가 구입해 준 회사에서만 쓸 수 있는 비지오 외에 제 개인적으로 슬 비지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지만 도저히 이를 구입할 엄두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찾아왔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덕분에 엄청나게 고가이던 비지오 프로페셔널 두 카피를 구입하는데 성공합니다. 비지오가 계정에 추가된 날짜를 보고 저 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눈치 채실 분도 계실 텐데 말하기 떳떳한 이야기는 아니니 더 이상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비지오 역시 시간이 흐르며 현대에는 그 위상이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앞서 마이크로소프트 액세스가 시간이 흐르며 데이터베이스와 이에 기반한 애플리케이션이 웹으로 이동하며 그 설 자리를 잃었다는 이야기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비지오 역시 비슷한 길을 걷습니다. 특히 기업용 정보시스템이 웹 기반으로 동작하는 위키위키 형태의 소프트웨어로 변해 가면서 비지오는 이번만큼 강력하기는 했지만 편안한 소프트웨어가 아니게 됩니다. 가령 기업용 정보시스템이 여전히 수많은 오피스 파일과 공유디렉터리에 의해 굴러가던 시대에는 비지오로 작성한 다이어그램은 오피스 스위트의 아무 소프트웨어에나 붙여 넣어도 그 형태가 완벽히 유지됐고 심지어 적어도 로컬 환경에서는 붙여 넣은 다이어그램의 원본 비지오 파일을 수정하면 이를 붙여 넣은 파일을 열 때 알아서 반영되었습니다. 종종 붙여 넣는 순간 소프트웨어가 크래시 되어 깊은 실망을 안겨줄 때도 있었지만 비지오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스위트 모두가 서로의 결과물을 다른 소프트웨어에 붙여 넣는 시나리오를 거의 완벽하게 처리해 내는 모습은 훌륭했고 비지오 역시 이 훌륭함의 한 축을 담당합니다. 하지만 회사의 정보시스템이 웹 기반으로 옮겨 가면서 비지오로 작성한 다이어그램은 그림판에 한 번 붙여 넣어 그림으로 바꾼 다음 다시 웹 기반의 정보시스템이 붙여 넣어야 하는 불편함을 유발하는 소프트웨어가 되었고 이 즈음 나타난 웹 기반의 드로잉 소프트웨어가 나타나며 비지오는 점점 뒤로 밀려납니다. 가령 현대에 컨플루언스 위키를 회사의 핵심 정보시스템으로 사용한다면 아마도 가장 널리 사용하는 드로잉 도구는 비지오 같은 거추장스러운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상당히 낮은 가격으로 제공되는 draw.io 일 겁니다. 그렇게 비지오 역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스위트에서 조용히 물러납니다.
이에 비해 수많은 위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위상을 지키고 있는 소프트웨어도 있습니다. 바로 엑셀과 파워포인트입니다. 사실 워드는 현대에 나머지와 같은 수준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과거에는 문서의 생애주기 상 문서가 만들어지는 핵심 목적은 종이에 인쇄된 모양으로 공유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회사 단위의 정보시스템이 문서 기반이 아니라 웹 기반의 위키위키 모양으로 바뀌면서 종이에 인쇄될 목적으로 문서를 만들지 않는 이상 워드를 사용할 필요가 크게 줄어들었고 개인적으로는 현대에 워드는 이전과 같은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엑셀과 파워포인트는 각자의 분야에서 최강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엑셀은 여전히 간단한 작업들을 부드럽게 처리하는 독보적인 경험에 기반해 온라인으로 옮겨 오며 이전에 비해 압도적으로 빠른 개선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누구나 파이썬 스크립트를 다룰 수 있는 현대에 대체로 한 줄로 작성할 거라고 가정하고 시작된 인라인 함수는 현대의 요구사항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환경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는 엑셀의 인라인 함수 수준의 의도적으로 그 확장을 제한해 로직이 복잡해져 엔지니어가 아닌 사람 관점에서 통제 불가능한 코드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현저히 낮춥니다. 그러면서도 현대에 추가되는 함수들은 본격적인 프로그래밍 관점에서 나오는 요구사항과 인라인 함수 환경의 제약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모양도 있어 이들이 앞으로 엑셀 인라인 함수를 얼마나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기대하게 만듭니다. 어설프게 엑셀을 따라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소프트웨어들은 이런 고민의 최전선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그저 숫자를 넣을 수 있는 스프레드시트 수준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파워포인트 역시 엑셀과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꽤 강력한 위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때 애플이 자사 신제품 발표에 그들의 프리젠테이션 도구를 사용해 주목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파워포인트와 유사 프리젠테이션 도구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며 널리 활용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특히 간이 프리젠테이션이라면 파워포인트를 대신할 도구들이 얼마든지 있지만 본격적으로 중요한 발표를 해야 할 때 발표 자료의 짜임새에 신경 써야 한다면 파워포인트를 대체할 도구를 찾기는 불가능합니다. 전문적인 모션그래픽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접할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모션그래픽,고해상도 이미지와 영상을 그 스스로 내장하고도 멀쩡하게 돌아가는 성능, 실제로 발표해 보기 전에는 알기 힘든 발표자 도구에 포함된 인터페이스 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발표자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온갖 세심한 기능들은 겉보기에는 파워포인트를 대신할 도구가 온 사방에 널린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한 발표자료는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집니다.
현대에도 살아남은 오피스 스위트 소프트웨어에 여전히 강력한 소프트웨어가 남아 있다는 점은 이들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 크게 축소된 현대에도 여전히 회사들이 거의 습관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스위트를 제공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 내 의사소통을 거의 슬랙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적은 이메일을 받지만 여전히 아웃룩을 사용하고 거의 모든 기록을 컨플루언스에 남기지만 여전히 원노트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한때 팀 밖으로 나가는 문서에 한해 워드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현대에는 그 역시 그냥 컨플루언스에 작성하고 이를 인쇄하기에 적당한 모양의 PDF 파일로 변환해 전달하기 대문에 워드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여전히 엑셀과 파워포인트가 각자의 위치에서 강력함을 유지하는 것은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현대의 업무 환경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스위트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서서히 그 입지가 줄어들 거라고 예상합니다. 파워포인트는 앞서 설명한 대로 여전히 강력하지만 아직도 종종 회사에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달라고 요청할 때 여전히 파워포인트의 존재 때문에 소프트웨어의 사용 목적을 좀 더 정확히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곤 합니다. 이론적으로 파워포인트는 같은 일을 좀 더 전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여느 소프트웨어와 비슷한 드로잉 도구를 포함하고 있고 또 누군가가 만들어 무료나 유료로 배포하는 템플릿을 사용하면 웹사이트 디자인이나 애플리케이션 디자인에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파워포인트는 프리젠테이션을 만들기 위한 소프트웨어이고 프리젠테이션은 각각의 페이지가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채 표시될 것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파워포인트로 드로잉을 만들 수는 있지만 화면 전체가 한번에 표시될 것을 가정한 자료를 만들기 위한 환경은 넓은 캔버스에 기반해 드로잉을 만드는 요구사항을 전혀 반영하지 못합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파워포인트와 다른 본격적인 드로잉 도구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넓은 캔버스를 사용할 있다는 점입니다. 앞서 비지오를 사 달라고 요청할 때조차 경영지원 부서로부터 파워포인트가 있는데 왜 비지오가 별도로 필요한지 설명을 요구 받았는데 그 시점에도 이미 비지오는 파워포인트가 전혀 따라오지 못하는 수준의 차트 스냅 기능, 선 정리 기능이 있어 파워포인트로는 도저히 생산성이 안 나오는 드로잉을 훨씬 빨리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드로잉을 만들 때 파워포인트와 비지오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비지오는 프리젠테이션을 고려하지 않으므로 드로잉 전체가 한 화면에 표시될 상황을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고 이에 따라 거의 제한이 없는 캔버스에 기반해 드로잉을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플로우차트를 만들거나 인터페이스 와이어프레임을 그릴 때, 업무공간의 간이 설계를 만들거나 비지오에서 지원하는 전기, 화학, 공정 등 온갖 그림을 그릴 때 항상 정확히 그 그림에 집중해 그 그림만을 화면에 띄워 놓고 작업하지 않습니다. 완성된 드로잉은 여러 드로잉이 합쳐진 결과물일 뿐 드로잉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각각의 세부 영역을 그린 다른 드로잉 조각,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확정하지 못해 표현 가능한 여러 가지 방법을 모두 시도해 본 후보, 드로잉을 작성하는데 참고할 다른 문서나 그림 따위가 한 캔버스 위에 흩뿌려져 있고 이들을 참고하고 또 조합한 결과가 바로 완성된 하나의 드로잉입니다. 마치 과거에 손으로 설계를 작성할 때 작은 종이에 그리는 대신 커다란 캔버스에 그리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파워포인트는 이 각각의 드로잉을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이들을 커다란 캔버스에 늘어놓고 작업할 수가 없습니다. 비슷한 작업을 하려면 캔버스 곳곳에 흩뿌려 뒀을 정보들을 서로 다른 페이지에 분산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각각의 페이지로 이동해 정보를 확인해야만 하는데 이는 극도로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생각의 속도를 늦추고 생각이 더 넓게 펼쳐질 가능성을 제한합니다.
지금까지 주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스위트를 구성하는 여러 소프트웨어의 사례를 들어 작업을 수행하는 올바른 도구가 있고 그런 올바른 도구를 사용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일어나는 생산성의 차이,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 가는 업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소프트웨어가 아예 사라지거나 그 존재감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특히 똑같이 드로잉을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임에도 파워포인트와 비지오가 서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고 이 차이가 생산성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스위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현대에도 여전히 꼭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스위트가 아니더라도 어떤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프트웨어 대신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소프트웨어를 계속해서 사용하며 굳이 그럴 필요 없는 고생을 하는 사례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가령 기획서를 작성할 때 인터페이스 와이어프레임을 여전히 파워포인트로 그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인터페이스 와이어프레임은 말 그대로 와이어프레임이기에 의도를 전달할 수만 있으면 어떤 도구로 그리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터페이스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사용자의 조작에 의해 상태가 바뀌고 이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변해야 합니다. 파워포인트로 인터페이스 와이어프레임을 그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자신이 그 작업에 얼마나 숙련되었는지 자랑하는 분과 이야기할 때 굳이 그런 분들을 설득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심술궂은 의도로 제시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탭 인터페이스를 그려 보라는 것입니다.
탭 인터페이스는 화면의 고정된 공간에 서로 다른 여러 인터페이스를 표시해야 하는 상황에서 탭의 조작 상태에 따라 현재 선택된 탭의 맥락에 맞는 인터페이스만을 제한해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탭 인터페이스가 나타나기 전에는 풀다운 메뉴와 수많은 서로 다른 팝업 윈도우 인터페이스를 만들어야만 했을 테고 이들 모두의 일관성을 유지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겁니다. 하지만 탭 인터페이스가 나타나면서 화면의 일정한 영역에 서로 다른 수많은 인터페이스를 표시할 수 있으면서도 탭의 상태에 따라 그 맥락에 맞는 인터페이스만 제한해 표시하기 때문에 인터페이스가 표시될 공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사용자에게 인터페이스의 맥락을 유지하면서도 그 공간에는 도저히 다 넣을 수 없을 수많은 인터페이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탭 인터페이스는 마치 기존 인터페이스 구성요소와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버튼입니다. 여러 버튼이 서로 상태를 공유하며 토글 되고 현재 토글 된 버튼에 따라 같은 영역에 서로 다른 인터페이스들을 표시합니다. 이 점에 착안하면 굳이 3D처럼 보일 목적으로 음영이 들어간 탭을 재현하는 대신 그냥 파워포인트에서 아주 쉽게 그릴 수 있는 네모들의 집합으로 탭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 의사전달을 할 수는 있지만 본격적으로 탭 각각의 상태에 따른 인터페이스를 표현하려고 마음 먹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파워포인트는 이 네모들이 탭이라는 사실을 모르므로 어떤 탭이 하이라이트 된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특정 네모를 색상으로 구분해야 할 수 있는데 각각의 탭이 하이라이트 된 상태일 때 표시되어야 할 인터페이스를 나타내기 위해 딱 한 번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서로 다른 네모가 나머지와 다른 색상으로 표시된 탭을 상징하는 네모들의 집합과 그에 따른 인터페이스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탭은 상황에 따라 갯수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고 각 탭에 속한 인터페이스 역시 탭 하나 당 표시되는 인터페이스 집합의 단위로 변경될 수도 있지만 인터페이스 각각이 서로 다른 탭의 하위로 이동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네모들이 탭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파워포인트를 사용해 눈에 보이는 그림 그 자체를 편집하려고 하면 생산성이 극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현대에는 웹 기반으로 동작하면서도 로컬에서 실행한 것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동작할 뿐 아니라 각기 자신의 의도에 따라 정확히 동작하고 자신이 표현하고 있는 드로잉의 특성에 따라 달리 동작하는 좋은 도구들이 널려 있습니다. 가령 그저 시각적인 플로우차트를 그리려 한다면 앞서 소개한 draw.io는 그 비용에 회사를 겁먹게 하지 않으면서도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터페이스를 그리려고 마음먹었다면 피그마 같은 도구가 널리 사용되며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10년도 넘는 시간에 걸쳐 발사믹 와이어프레임을 즐겨 사용합니다. 이들이 파워포인트와 비교해 대단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넓은 캔버스를 통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정보를 분산해 놓은 상태에서 드로잉을 작성해야 하는 지독한 비효율을 없애 줍니다. 또한 지금 그리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이에 따라 그 동작이 변합니다. 현대의 어지간한 도구는 플로우차트를 그릴 때 이 그림이 플로우차트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화살표 다음에 심볼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다시 화살표가 나타나며 주로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흐르고 선이 겹치는 상태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알고 있어 이에 따라 효율적으로 행동합니다. 또한 각 선과 심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연결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플로우차트 전체를 재배치할 수 있기도 합니다. 또 인터페이스를 그릴 때 현대적인 도구들은 이 인터페이스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버튼은 널리 사용되는 활성, 비활성, 포커스, 선택 등의 상태를 쉽게 표현할 수 있고 탭이라면 아주 간단한 조작만으로 다른 탭을 하이라이트하고 이에 따라 탭에 연동된 영역의 인터페이스를 달리 표시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동작들은 도구가 자신을 통해 작성하려는 그림의 맥락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파워포인트는 어떤 맥락도 모릅니다. 이게 단점은 아닙니다. 다만 파워포인트의 임무가 아닐 뿐입니다.
한번은 팀원님 중 한 분이 이전까지 멀쩡히 잘 쓰던 피그마를 내버려두고 그외 바슷한 인터페이스를 draw.io로 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계셨는데 그냥 대충 봐서 딱해 보였습니다. draw.io는 플로우차트를 그럭저럭 그릴 수 있습니다. 이 도구는 자신을 통해 그리려는 그림이 주로 플로우차트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에 따라 행동합니다. 가령 심볼에 연결되는 선은 주로 심볼에 대해 중앙정렬인 쪽을 선호하고 선 다음에는 다른 심볼이 나타나며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심볼은 서로 무관하더라도 멀리 떨어진 다른 심볼과 줄 맞춰 배열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이 도구를 사용해 플로우차트를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도구라도 심볼과 선이 서로 연결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연결 관계를 유지한 채 플로우차트의 모든 구성요소를 재배치하는 기능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도구를 사용해 인터페이스 와이어프레임을 그리려고 시도하고 계셨고 이건 파워포인트로 그리는 것보다 나 나쁩니다. 인터페이스 와이어프레임은 각 심볼이 의도한 위치에 고정되어야 하지만 이를 플로우차트라고 생각한 도구는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어야 할 심볼을 자꾸 다른 심볼이나 선에 대해 중앙 정렬하려고 합니다. 또 인터페이스 와이어프레임에서 선은 그저 인터페이스를 표현하기 위한 용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를 플로우차트의 맥락으로 해석하면 선은 어딘가에 연결되어야 하고 어딘가에 연결된 선은 연결된 심볼에 대한 중앙정렬을 선호하므로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도구가 적극적으로 인터페이스 와이어프레임을 플로우차트로 바꾸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동안 인터페이스 와이어프레임을 플로우차트로 만들려는 도구와 인간의 사투를 측은하게 지켜보다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전에는 당연히 피그마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를 컨플루언스에 첨부했더니 다른 피그마 라이선스가 없는 사람이 이를 편집할 수 없는 문제가 있어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draw.io를 사용해 같은 그림을 다시 그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에 회사가 다른 사람들이 피그마를 사용할 돈을 아꼈다며 상을 줄까요? 아니면 비싼 시급을 받으며 이런 비생산적인 방법으로 일해 시급을 낭비했다고 벌을 줄까요? 사실 회사는 어느 쪽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핵심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한정된 시간 안에 결과를 만들어냈는지입니다. 일단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피그마로 몇 분 만에 그릴 수 있었을 인터페이스를 이 작업에 어울리지 않는 도구를 사용해 한 시간을 사용했음에도 완료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 작업을 하는 개인이 얼마나 소모되는지입니다. 심지어 같은 작업을 훨씬 더 빨리 끝낼 방법이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이 작업에 전혀 협조하지 않는 잘못된 도구를 사용해 작업할 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은 소모됩니다. 이 소모가 누적되면 어느 날 갑작스런 면담 요청과 퇴사 통보를 받으며 놀라게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해선 안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회사가 적당한 수준의 지불 능력이 있다면 그냥 회사가 사 준 이 작업에 가장 적당한 도구를 사용해 작업하는 것입니다. 그럼 개인은 훨씬 덜 소모되고 회사 입장에서도 더 빠른 시점에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미래에 누군가 이 페이지에 있는 드로잉을 수정하려 한다면 이 사람도 자신의 작업에 알맞는 도구를 지급 받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는 어쩌면 앞서 설명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파워포인트와 비지오의 개념 차이와 생산성 차이, 작업에 알맞은 도구를 사 주지 않는 당신은 회사에 대한 배임을 저지르고 있고 또 나아가 민족에 대한 반역을 저지르고 있으며 이 지구 전체에 죄를 짓고 있다는 말을 예쁘게 표현한 기안서를 작성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저항이 있더라도 각각의 작업에 대한 생산성을 올려 줄 수 있는 확실한 도구가 있다면 이를 사용해야만 합니다. 다른 도구로 비슷한 작업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도구를 사용할 때 낼 수 있는 생산성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합니다. 종종 엑셀로 픽셀아트를 만들고 그림판으로 수채화를 그리며 파워포인트로 동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대단합니다. 자신의 작업을 올바르지 않은 도구를 사용해 완수해 낸 그 행동 역시 대단합니다. 하지만 이 일들이 만약 더 큰 프로젝트가 의존해야 하는 어떤 하위 작업이라면 이런 일들은 대단하게 여겨져서는 안됩니다. 생산성을 망가뜨리고 각자를 소모시키는 하등 쓸모 없는 있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종종 잘못된 도구를 사용한 올바르지 않은 작업이 용인되고 회사가 은근히 그런 작업 행태를 요구하는 사례도 없지 않습니다. 분명 말로만 들으면 가능할 것 같고 또 그런 요구에 따를 때 개발비를 표면적으로 아낄 수 있으니 나쁘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느 순간 파워포인트로 수많은 다이어그램을 그려내는 달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은 개인을 소진 시켜 어느 날 퇴사 의사를 밝힐 면담을 요청하도록 만들기도 하고 이런 사례를 모두 합쳐 반 년 더 빨리 만들 수도 있었을 프로젝트에 반 년 동안의 인건비를 추가로 지출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각각의 작업에는 그 작업의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지원해 주는 올바른 도구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 도구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며 생산성을 유지해야 하는 관리 측면에서도 절대 넘어가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