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회사들이 메타버스를 만들 이유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메타버스의 실패를 바라보며 전통적인 업계가 메타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헌데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나타나고 어떤 커다란 회사는 회사 이름 마저 바꿔 버렸을 뿐 아니라 저 자신 역시 그걸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게임 만들던 사람 관점에서 짧지는 않은 기간 동안 메타버스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고 동작할 수 있으리라는 가정 하에 뭘 어떻게 만들어야 메타버스가 되는지 고민해 왔습니다. 한동안은 메타버스가 서로 다른 가상세계 사이에 이른바 상호운용성을 제공하는 또 다른 가상세계라는 관점이 꽤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집중해 NFT의 메타버스의 상호운용성에 대한 접근하는 방법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상호운용성을 제공하는 또 다른 가상세계는 그 스스로 존재할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 보다가 암만 생각해도 그럴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이 특성은 여러 다른 특성 중 하나가 될 수는 있겠지만 이 특성이 메타버스를 정의하지는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한편 이 또 다른 가상세계는 상호운용성을 제공해 서로 다른 가상세계의 구성요소가 이 새로운 가상세계에 실체화되는 동작을 해야 한다면 메타버스는 스스로 자신이 메타버스임을 입증할 수가 없다는 점 역시 메타버스를 정의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이 가상세계 바깥의 다른 가상세계, 그리고 실제 세계의 여러 요소를 서비스 주체에 중립적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NFT를 통해 가상세계에 실체화한 형태를 메타버스라고 한다면 한 메타버스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세계와 그 세계에 실체화 된 적이 있는 구성요소가 필요합니다. 메타버스를 만들겠다고 주장하려면 이미 구축된 다른 세계가 필요하고 다른 세계에 실체화된 구성요소를 받아들이는 형태여야 합니다.
이런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서로 다른 세계의 서로 다른 실체화 방법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서로 호환되는 데이터로 정의하거나 사람이나 기계가 개입해 서로 다른 실체화 방법에 따라 데이터를 직접 마이그레이션 해야만 합니다. 말이 어려운데 한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 데이터를 다른 게임에 불러오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두 게임 사이에 서로 다른 시스템에 맞춰 캐릭터 데이터를 고쳐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현대에 3D 환경에 나타나는 캐릭터는 서로 비슷한 저작도구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가상세계 혹은 게임의 특성에 따라 취할 수 있는 행동, 상호작용 방식, 게임에 나타나기를 의도한 방식에 따라 다른 표현 방식 등에 따라 데이터가 호환되더라도 서로 다른 가상세계에서는 원래 의도한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을 수 있으며 여기에는 사람이나 기계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메타버스를 개발하려는 당신. 남이 싼 똥을 주워 먹을 준비가 되어 있나요?에 소개한 적이 있는데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한 세계의 리소스가 아무런 장벽 없이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은 가상세계 사이의 규칙 차이로 인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데는 오직 사람의 노가다만이 유효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더럽고 귀찮고 짜증날 뿐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도 아닌 어쩌면 반복적인 노동을 대량으로 필요로 하기 때문에 메타버스를 만들겠다는 플레이어들이 꽤 있었지만 실제로 의미 있게 동작하는 제품을 만들어낸 곳은 없거나 거의 없습니다. 또 이런 작업의 고통과 난이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 플레이어들은 만들어진 메타버스에 참여하고 싶어할 뿐 절대 스스로 메타버스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전자는 그저 새로운 가상세계에 맞춘 에셋을 전달하면 그만이지만 후자는 에셋을 설계해야 할 뿐 아니라 저마다 다른 가상세계에 맞춰 개발된 에셋을 마이그레이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메타버스와 NFT는 어쩌다 사기 키워드가 되었나, 메타버스는 왜 망하고 있나요? 같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메타버스는 근본적으로 이 새로운 가상세계에 호환 시킨 여러 다른 세계에 실체화 된 적 있는 구성요소를 또 다시 실체화 시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가상세계에 실체화 될 여지가 있는 구성요소는 이미 다른 가상세계에 실체화 되어 멀쩡히 동작하고 있을 겁니다. 또한 각각의 구성요소는 자신이 원래 실체화 되어 있던 바로 그 가상세계에서 가장 잘 동작하며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집니다. 가령 한 게임에 전설 무기가 있다고 합시다. 이 무기 에셋을 활용해 다른 가상세계에 이 무기가 나타날 수 있게 개발할 수 있겠지만 이 무기의 강함 마저 다른 가상세계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 무기의 강함은 이 무기가 원래 존재하던 가상세계의 규칙과 맥락에 의해서만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원래의 강함이라는 맥락을 유지하지 못한 채 외형만 마이그레이션 된다면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기술적으로는 서비스 주체에 어느 정도 독립적이라고 알려진 블록체인을 통해 한 세계의 구성요소를 NFT 모양으로 만들어 다른 가상세계에 호환성을 가지게 할 수 있고 실제 사례들도 있지만 별 의미는 없습니다.
한편 메타버스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이 가상세계의 용도가 불분명하다는 점입니다.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에 제공하는 가상세계는 그 세계에 접근해야 하는 목적과 용도가 명확합니다. 용도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이며 목적은 가상세계에 캐릭터를 만들고 성장 시키며 가상세계의 여러 컨텐츠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같은 보스를 여러 플레이어가 힘들게 잡은 추억을 공유하기도 하고 게임 스토리 상 중요한 이벤트를 직접 경험하고 이를 오랫동안 추억으로 간직하기도 하며 실제 세계에서 내 실제 모습으로 대화할 때와 달리 게임 상에서 게임 속 모습으로 대화할 때 그 경험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합니다. 게임은 이를 개발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그 세계에 남아 있을 이유를 제공하고 그 이유를 연구하는데 비용을 들이고 있습니다. 반면 지금까지 잠시 나마 시장에 나타났던 메타버스들은 그런 이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른 가상세계에 실체화 된 적 있는 구성요소가 새로운 가상세계에 실체화 된다고 해서 이 사실이 이 세계에 남아 있을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가령 어떤 메타버스에 마인크래프트의 스티브가 실체화 된다 하더라도 스티브는 마인크래프트에 가장 잘 호환되며 마인크래프트에서 가장 의미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습니다. 굳이 다른 가상세계에서 호환은 되겠지만 이전과 달리 제한된 플레이에 갇혀 그 세계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쯤 되니 사람들은 지난 이십여년에 걸쳐 가상세계를 만들어 온 전통적인 개발사들이 메타버스를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전통적인 회사들은 가상세계를 만들고 그 안의 규칙을 설계하며 이 세계를 장기간에 걸쳐 유지하고 또 이로부터 경제적 성과를 달성해 가상세계가 실제 세계와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에 걸쳐 존속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경험은 가상세계의 경제시스템이나 외부 요소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로 제한됩니다. 인게임 재화를 게임 바깥에서 사고 팔 수 있도록 경제가 개방되어 있지도 않고 특히 인게임 재화를 법정화폐로 교환하는 모든 시도는 현행법상 불법이기도 합니다. 인게임에 외부 요소가 이벤트를 통해 투입되더라도 이는 이 가상세계를 만든 전문가들에 의해 외부 리소스를 마이그레이션 해 이 세계와 완전히 호환되도록 재개발하거나 처음부터 이들에 의해 바닥부터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통제에 기반해서 가상세계가 오랜 세월에 걸쳐 유지되며 외부 요소가 게임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등장하고 또 유통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메타버스는 이런 경험에 기반해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일단 의미 있는 새로운 가상세계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이 세계의 경제시스템은 외부에 노출될 이유가 없습니다. 또 이 가상세계는 다른 가상세계에 실체화된 요소를 직접적인 통제 없이 인게임에 등장 시킬 이유도 없습니다. 잘 통제되지 않은 외부 요소의 등장은 이 가상세계의 퀄리티를 떨어뜨리고 예상하지 않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특히 경제시스템이 외부에 개방되어 있을 때 유로존의 그리스나 이탈리아 사례처럼 문제에 대응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상세계를 잘 만들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이 메타버스를 만들 이유가 있거나 메타버스를 잘 만들리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메타버스의 존재에 대해 한동안 고민해 왔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제 거의 결론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메타버스는 다른 가상세계에 실체화 된 적 있는 구성요소를 새로운 가상세계에 호환성을 가지도록 만들어 서로 다른 가상세계의 구성요소를 한 가상세계에 실체화 되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를 상호운용성이라고 하며 상호운용성은 서로 다른 이익 주체들 사이에 구현 부담을 균등하게 나누기 위해 서로에게 중립적이라고 알려진 블록체인에 기반한 NFT 모양에 기반하려는 시도가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블록체인에 기록된 데이터는 서로 다른 가상세계의 서로 다른 에셋 규칙을 포함하지는 않으며 에셋 데이터를 서로 다른 가상세계 사이에 마이그레이션 하는 데는 기계나 인간의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개입에 따르는 비용을 부담해 다른 가상세계에 실체화된 구성요소를 새 가상세계에 실체화 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각각의 구성요소는 자신이 원래 만들어진 가상세계에 있을 때 가장 잘 동작하며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집니다. 또한 이들을 포괄하는 새 가상세계는 전통적인 게임과 달리 이 세계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합니다.
전통적인 게임 개발사는 가상세계를 잘 만들 수는 있지만 이 세계는 경제를 개방할 이유도, 외부 에셋이 게임에 들어오게 만들 이유도 없습니다. 이 과정에 어떤 경제적 이유가 있더라도 이는 철저히 가상세계 개발 주체의 통제 하에 외부 에셋을 게임에 등장 시킬 뿐이며 여기에는 어떤 상호운용성과 비슷한 개념의 개입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개발사들은 가상세계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지만 이 경험은 메타버스와는 별 관계가 없으며 메타버스를 만드는데 아무런 매력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