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프랜차이즈를 MMO로 만들면 왜 욕부터 먹을까
무슨 게임인지 직접 게임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원래 MMO 장르가 아닌 게임 프랜차이즈를 기반으로 만든 MMO 게임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MMO 게임이 개발 도중 좋은 평가를 받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고객들의 눈높이는 오래 전에 서비스를 시작해 이미 몇 년에 걸쳐 업데이트 되어 온 성공적인 MMO 게임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개발 중인 MMO 게임은 이런 눈높이에서 볼 때 만들고 있다기보다는 만들어진 것이 거의 없는 뭔가 허접하고 이상한 상태로 받아 들여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몇 년에 걸쳐 서비스 해 온 MMO 게임은 일단 출시에 성공했고 여러 번의 업데이트를 거쳤으며 온갖 괴상한 사건 사고에도 불구하고 서비스가 무너지지 않고 버터 낸 상태이고요. 그래서 MMO 게임을 개발 도중에 공개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이걸 알면서도 공개한다는 것은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어떤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게임이 아닌 프랜차이즈나 MMO 장르가 아닌 게임 프랜차이즈를 MMO 장르 게임으로 만들면 역시 게임을 개발 도중에 공개하는 것 만큼이나 나쁜 평가를 받기 쉽습니다. 먼저 게임이 아닌 프랜차이즈나 MMO가 아닌 게임 프랜차이즈가 MMO 게임 개발을 검토할 정도로 시장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면 높은 확률로 기억에 남는 주요 캐릭터와 매력적인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을 겁니다. 가령 영화에서 강력한 주인공이 매력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 적들에 맞서 싸우며 여러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을 거고요.
그런데 이런 프랜차이즈를 MMO 장르로 만들면 가장 먼저 강력한 주인공이 사실은 그 세계에 유일한 존재가 아니었음을 드러내야만 합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그 세계에 단 한 명 밖에 없기 때문에 매력적인 세계관에 어우러져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MMO 장르에서는, 특히 주인공이 성장해야만 하는 시스템에서는 이 세계에 주인공이 사실 접속자 수만큼 있음을 고객들에게 납득 시켜야 합니다. 강력한 주인공이 수 없이 많은 세계에서는 영화에서 본 주인공의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실은 나 말고도 수많은 고객들이 함께 겪은 여러 경험 중 하나일 뿐이며 나 자신도 영화에서 본 그런 강력하고 또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여러 강력한 존재들 사이에서 평범해진 실제 세계에서 나 자신과 똑같은 존재임을 납득해야 합니다. 고객이 이런 설정을 반길까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주인공 한 명을 특정하기 어렵다면 어떨까요. 매력적인 세계관에 기반해 여러 시대에 걸쳐 여러 인물이 등장하며 이들이 겪는 사건이 전지적 시점으로 묘사되어 고객이 어느 한 인물에 몰입하지 않는 종류의 프랜차이즈라면 상대적으로 MMO 장르로 만들 때 나쁜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낮습니다. 고객들은 MMO 게임이 제시하는 매력적인 세계와 거기 등장하던 기억에 남는 인물들을 하나로 묶어 인식하기 때문에 그 세계에서 아직은 별로 특별하지 않은 나 자신을 이전처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계관이 충분히 특별하며 매력적이고 긴 세월에 걸쳐 여러 인물이 등장하며 이들이 얽힌 여러 사건이 일어나는 프랜차이즈는 MMO 장르로 무사히 재해석 되어 성공적으로 런칭하고 또 오랜 기간 서비스 하곤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2023년 봄 현재 기존 MMO 장르가 아닌 프랜차이즈가 MMO 장르로 개발되고 있는 한 게임이 나쁜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고객이 이 프랜차이즈의 이전 게임으로부터 게임의 세계와 인물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MMO 장르가 제시하는 방법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 이 프랜차이즈는 싱글플레이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싱글플레이는 세계 속에서 나는 특별하고 내가 겪는 사건은 세계에 직접 영향을 끼쳤습니다. 멀티플레이에서도 싱글플레이에 겪은 사건의 난이도를 올려 여러 사람들과 플레이 하며 더 높은 보상을 얻도록 바뀌었지만 근본적으로 플레이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싱글플레이 세계에서는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며 이들이 모여 있어도 각자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이 프랜차이즈가 MMO 장르로 바뀌면 MMO가 아닐 때 나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이미 정립해 놓은 고객 입장에서 익숙한 그 관계를 새로운 게임에서는 완전히 바꾸기를 요구 받게 됩니다. 나는 이 세계에 유일한 영웅이고 내가 겪는 사건이 세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던 것을 나는 이 세계에 강력하지만 너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범한 영웅 여러 명 중 하나이고 내가 겪는 사건은 나 자신의 강함에 영향을 끼칠 뿐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는 세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를 고객들에게 친절하고 또 조심스럽게 설명하지 않은 채 갑작스레 새로운 MMO 게임을 공개하면 이전에 이미 세계와 자신의 관계 정립을 끝낸 고객들로부터 게임 자체보다는 새로운 관계 정립 요구를 거부하는 관점에서 비롯된 나쁜 평가를 피할 수 없습니다.
결론. 이전에 세계와 자신의 관계를 이미 정립한 고객들에게 이 프랜차이즈에 기반한 MMO 게임은 새로운 세계와 자신의 관계 정립을 요구합니다. 이 과정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이 과정을 조심스럽게 제시하지 않는 이상 고객들로부터 게임 자체에 대한 평가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