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재화를 지탱하는 보조 장치
2023년 봄 기준으로 두 달 전에 왜 현대 게임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재화를 사용하나요?를 통해 온라인 게임에 이름을 전부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여러 가지 재화가 등장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크게 격리 수단과 보상을 통해 게임이 동작하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격리 수단으로써 재화는 게임의 한 부분에서 일어난 현상이 너무 짧은 시간 동안 게임 경제 전체로 퍼져 의도하지 않은 동작을 일으키거나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해 줍니다. 유명한 게임의 데이터베이스가 망가져 데이터베이스 기술지원의 백업 복구 권고 상황에도 망가진 데이터베이스로부터 데이터를 복구한 이야기를 읽었는데 거기 달린 답글 중 ‘저쯤 되면 그냥 백섭 하는 편이 더 빨리 복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기억에 남습니다.
현대의 부분유료화 게임은 그렇게 쉽게 백섭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모든 순간마다 결제가 일어나고 결제를 통한 효과가 게임에 적용되며 이 효과의 파급효과가 게임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를 고려한 백섭 시점을 결정하는 것 자체가 아주 어려운 문제이며 백섭을 실행할 때 고객들이 겪은 서로 다른 손해를 계산해 적당한 수준의 보상을 하는 것 역시 아주 높은 수준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때문에 고객들의 큰 실망과 높은 수준의 의사결정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만들기 보다는 기술적으로 상당한 모험을 하더라도 백섭 하지 않는 결정을 하기가 더 쉽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다양한 재화를 통한 게임 경제 구성요소 간의 격리는 아주 중요합니다.
보상을 통한 동작은 조금 슬픈 이야기인데 현대 온라인 게임은 제작비가 높기 때문에 창의적인 시도를 통한 모험을 하기 어렵습니다. 높은 제작 비용을 통해 개발한 신규 컨텐츠가 흥행에 실패하면 다음 업데이트까지 게임이 살아남기 어려울 만큼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컨텐츠 흥행 실패에 대비하고 또 고객들이 게임을 더 자주 실행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 보상을 다양한 재화로 구성하고 이 보상을 서로 다른 여러 컨텐츠에 분산 배치함으로써 컨텐츠의 재미나 흥행에 덜 영향을 받으며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에 다른 날보다 활성 고객 수가 적다면 수요일에 열리는 컨텐츠의 보상을 올리면서도 게임 전체에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보상을 전용 재화로 줄 수 있습니다. 또 지난 반 년 동안 준비한 신규 컨텐츠가 초기 흥행에 실패한 상황에서 이 컨텐츠로부터 얻는 보상을 전용 재화로 정의하고 이 재화를 게임의 핵심 성장요소에서 요구하도록 만들어 흥행 실패 상황에 대응하고 개선할 시간을 벌 수 있고요.
여기 까지가 지난번 이야기였고 이번에는 결론에서 언급한 이런 재화를 뒷받침하는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게임에 다양한 종류의 재화가 등장하는 상태는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녹녹하지 않습니다. 디아블로 이모탈 재화구조에서 소개한 것처럼 20여가지가 넘는 재화는 분명 앞에 설명한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분하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게임 안에서 어떤 행동을 시도할 때마다 다양한 재화를 요구 받게 됩니다. 재화 종류가 많지 않다면 게임에 익숙해진 고객이라면 직관적으로 게임이 재시한 재화가 어떤 플레이를 요구하는 것인지 파악하고 플레이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가령 가상의 게임이 무기 강화 단계 6으로 올리려면 빛나는 자수정을 요구한다고 할 때 재화 수가 많지 않다면 빛나는 자수정이 수요일에만 열리는 던전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바로 인식하고 수요일 플레이 계획을 세우거나 거래소를 이용할 결정을 바로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화 수가 아주 많고 각 재화가 나오는 컨텐츠 위치, 이름 역시 아주 많다면 웬만한 고객들은 이 규칙을 잘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욕을 먹어도 던전 이름을 ‘요일 던전’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게임은 다양한 재화를 뒷받침 하기 위해 보조 장치를 제공합니다.
먼저 게임에 등장하는 다양한 재화를 한 화면에 조회하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합니다. 고객이 어떤 재화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재화를 요구 받을 만한 거의 모든 장소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만듭니다. 이 인터페이스는 고객의 현재 관심사에 따라 더 중요해진 재화와 덜 중요해진 재화의 순서를 고객이 자유롭게 바꿀 수 있게 하기도 합니다. 또 상황에 따라 관심을 가져야 하는 재화 종류와 보유 수량, 충전 규칙, 최대 보유량 같은 정보를 간결한 모양으로 화면 상단 구석에 알아서 표시하기도 하고요. 이런 이유로 종종 화면 상단에 재화를 표시하거나 표시하지 않는 상황, 표시할 종류 수, 자릿수 등을 잘 정의해야 하는데 이는 만드는 입장에서 뻔하면서도 결코 만만하지 않은 결정입니다.
다음으로 행동에 재화를 요구할 때 굳이 재화 이름이나 아이콘을 통해 재화 종류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아도 되도록 요구하는 재화 종류와 재화 수량, 부족하다면 부족한 수량을 정확하게 표시해 줍니다. 만약 인게임 재화가 골드 하나 뿐인 게임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물건 가격만 표시되고 구입을 시도할 때 실제로 골드 보유량을 확인해 구입에 성공하거나 실패했다면 재화 종류가 많은 게임에서는 구입을 시도하기도 전에 이미 빛나는 루비가 250개 부족한 상태라 구입이 실행되지 않을 예정임을 미리 알 수 있게 합니다.
또 게임에 재화가 표시되는 거의 모든 장소에서 부족한 재화로부터 이 재화를 입수할 수 있는 위치를 알려줍니다. 재화를 터치해 보면 이 재화를 얻을 수 있는 컨텐츠를 표시해 주는데 이 재화를 얻을 수 있는 컨텐츠가 여러 곳이라면 그 목록을 모두 표시해 주기도 합니다. 만약 인게임상점으로부터 구입할 수 있다면 인게임상점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함께 표시해 매출에 이로운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이 장치는 개발해보면 보기보다 상당히 까다로운데 인터페이스에 표시될 데이터를 수동으로 만들면 보상을 변경할 때마다 이 데이터를 수정해야 하며 자동으로 표시하게 만들려면 고객이나 게임의 상태와 다양한 조건에 따라 현재 접근 가능한 컨텐츠만 표시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꽤 정교하게 설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을 잘 개발해 놓으면 고객을 재화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가이드 할 수 있기 때문에 보상 집행 자유도를 올리면서도 고객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게인상점이나 거래소를 통해 이들 재화 중 일부를 구입할 수 있게 합니다. 이는 매출을 위한 단순한 의사결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재화를 직접 판매하는 순간 이 재화를 통해 확보할 수 있었던 라이프사이클 상의 시간 일부를 포기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매출을 위해 무조건 인게임상점을 통해 재화를 판매할 수 없습니다. 재화의 획득 난이도, 개발자가 예측한 가치, 단위 재화 당 예상 플레이 시간이나 다른 재화 요구량을 감안해 인게임상점을 통해 직접 판매할 재화를 결정하고 또 거래소를 통한 거래를 허용할 재화를 결정합니다.
결론. 왜 현대 게임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재화를 사용하나요?에서 소개한 이유에 따라 온라인 게임에 다양한 재화가 등장하는데 이들의 종류가 늘어날 수록 고객을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 상황을 지탱할 여러 가지 보조 장치를 통해 상황을 개선하면서도 게임 경제가 함부로 망가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