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때 나쁜 질문은 바퀴벌레와 같다
회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서로 의사를 전달하는 가장 흔한 방법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여럿이 모여 의논한다는 의미라는데 이 의미에 어울리는 자리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리를 회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가령 문서로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을 굳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문서를 화면에 띄운 다음 그 화면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문서 내용을 읽어 주는 자리를 회의라고 하기도 하고요. 이런 자리를 피하거나 없애려고 오랜 기간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봤는데 모든 시도는 좋지 않은 결말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회의는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한 가지 이상의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결정해야 할 일이 있다면 결정하며 서로 의문이 있다면 이를 직접 전달해 푸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전에 나온 정의와 비슷하면서도 아주 조금 다른 점은 결정해야 할 일이 있으면 결정해야 하고 또 의문이 있으면 이를 직접 주고 받아 해결하는 목적이 더 있습니다. 반면 위에서 이야기 한 문서로 전달해도 충분한 내용을 회의에서 문서를 띄워 놓고 직접 읽어 가며 전달하고 그때서야 문서를 처음 본 사람들의 이해 수준이 낮은 질문에 답해 가는 것은 회의의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회의라기 보다는 낭독 및 질의응답에 가까우며 이를 회의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정말 회의 형태가 필요한 회의들이 낭독회와 뒤섞여 회의의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상 아주 많은 사람들은 낭독회를 회의라고 부르는 것을 딱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낭독회를 여러 사람들이 모여 직접 낭독을 들으며 그때그때 떠오르는 질문들을 주고 받는 행동이 생산성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낭독회는 회의가 아니며 낭독회는 적당한 문서 작성과 성실한 문서 파악을 통해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런 낭독회는 여러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같은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조직 사회에서 일종의 필요악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한편 이런 체념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직접 진행해야 하거나 초대된 낭독회에서 기를 쓰고 피하려는 상황이 있는데 참여자들이 나쁜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쁜 질문은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에 사람들 마다 다른 모양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질문은 낭독 중인 내용과 거리가 멀거나 낭독 중인 주제의 목적과 거리가 말거나 주제에 대한 스스로의 낮은 이해도를 인식하지 못한 질문입니다.
먼저 이상할 정도로 낭독회 주제와 거리가 멀거나 완전히 상관 없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낭독회 진행을 방해하거나 낭독회를 주최한 조직을 망가뜨리거나 낭독하는 개인을 고통스럽게 할 목적으로 상관 없는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이런 악의를 가지고 행동할 만큼 똑똑하지는 않은 것 같아 이 가정은 주제와 상관 없는 질문을 하는 이유에서 제외했습니다. 한동안 고민한 끝에 주제와 상관 없는 질문을 하는 분들은 자신의 질문이 주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주제의 목적과 거리가 먼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낭독회의 목표가 읽기 싫어하는 참석자들에게 문서의 내용을 읽어 전달하는 것이고 문서 자체의 목표는 어떤 기능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할 때 기능의 목적에 대한 이해, 그리고 기능 자체에 대한 이해가 이 낭독회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이 때 ‘그건 그렇고’나 ‘관련이 적을 수는 있는데’ 등의 접두어로 시작하는 질문 상당수는 의도적으로 하는 주제와 거리가 먼 질문일 때가 많습니다. 질문을 받았으니 답변을 해야 하긴 하지만 이럴 때마다 낭독회 시간은 길어지고 낭독은 자꾸만 중단되며 내용을 이해시킨다는 최소한의 목적 달성에도 실패할 때가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낮은 이해도에 기반해 맥락을 완전히 무시한 이상한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쯤 되면 낭독회에 모인 사람들이 이 주제에 대해 올바른 의견을 나누고 주제의 목적에 기여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인지 의심스러워지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악의를 가지고 이런 행동을 할 만큼 똑똑하지 않다고 가정하면 이들은 자신의 이해 수준이 낮음을 애초에 상상하지 못하고 자신의 질문이 이 자리에 어울리며 이 자리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역시 질문을 받았으니 답변을 하긴 해야 하지만 목적과 거리가 먼 질문과 같은 결과에 가까워집니다.
애초에 이런 회의 자체가 필요악인 마당에 거기서 나오는 한심한 질문 역시 필요악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편하긴 합니다. 하지만 필요악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이라도 생산성을 올릴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회의 목적이 낭독회인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는 문서를 읽고 의미 있는 질문을 가져왔으며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목적을 수정하거나 더 나은 방식을 선택할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이런 자리라 할지라도 어떤 나쁜 질문은 질문에 답하는 대신 뒤로 미룬 다음 답하지 않고 회의를 종료하거나 그 자리에서 그 질문은 회의의 목적과 범위에 맞지 않으니 다른 자리에서 이야기하거나 회의가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해 이야기하자고 답한 다음 넘어가야 합니다.
종종 나쁜 질문이라도 질문은 질문이니 질문에 답하다 보면 회의의 목적은 사라지고 이상한 질문에 답하다가 시간을 다 쓰고 아무 것도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을 종종 마주하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나쁜 질문은 바퀴벌레와 같다고 생각하는데 나쁜 질문이 하나 나올 때 이 질문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바퀴벌레처럼 우르르 몰려 나와 완전히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리곤 하기 때문입니다. 상황에 따라 나쁜 질문이 나오면 분위기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으면 최소한으로만 빠르게 답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바퀴벌레를 말한 질문자가 바퀴벌레를 인식하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의 질문을 계속할 경우 회의 시간 바깥으로 밀어내 회의 시간을 지키려고 합니다. 만약 분위기가 충분히 부드럽다면 그 질문이 바퀴벌레임을 설명하고 지나갈 수도 있고 이런 적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 정도로 참석자들 간에 신뢰를 쌓기는 아주 어려웠습니다.
결론. 회의는 회의 본연의 의미와 목적이 있지만 종종 낭독회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낭독회는 분명 피할 수 있지만 제프 베조스 정도가 아니면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한편 주로 낭독회에 나오는 나쁜 질문은 회의가 아닌 낭독회 조차 망가뜨리곤 하는데 나쁜 질문은 바퀴벌레와 같아 처음 나타날 때 확실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레 몰려 나오며 한 번 몰려 나오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