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과 치외법권 사이
조직은 종종 서로 완전히 다른 행동을 한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적어도 일관성은 있습니다.

여러 달 전에 사과문을 올릴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고 또 이 어이 없는 상황에 블로그고 뭐고 다 때려치는게 맞을지, 아니면 제가 제 이름을 걸어 놓고 글을 쓰는 매체를 통해 다른 누군가를 저격한다고 생각할 만큼 수준 낮은 평가를 받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지, 또 그런 취급을 받는 이상 조직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야 할 지 복잡한 생각을 한 채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저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누군가가 제가 글을 쓴 행위에 의해 제가 자신을 저격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따라 제 존재가 불편하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높은 분들이 모인 자리 또는 여러 높은 분들에게 말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를 전달 받았는데 서로 다른 여러 높은 분들과 여러 차례 면담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각각의 면담은 친절하게 이루어졌지만 면담을 거듭할 때마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상황인가 싶었습니다.
위 사과문에 언급했다시피 저는 제 경험에 기반해 이를 생각해본 다음 제 생각을 작성하는 방식의 글을 씁니다. 하지만 그 모든 내용들은 우리가 주로 현실이라고 부르는 시공간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별개의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제 실수이거나 우연입니다. 주로 과거에 겪은 일이 시간이 많이 흐른 현재에도 전혀 개선되거나 변화하지 않은 채 똑같이 일어나는 일이 있기에 우연일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 차례에 걸친 각각의 면담이 친절한 분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런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고 또 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제 행위에 의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결과에 대해 극도로 유보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지금도 이 웹사이트에 있는 여러 글과 여러 글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이야기 중 어떤 내용이 누군가에게 자신이 저격 받았다고 느끼는지, 나아가 그 분이 제 존재를 불편하게 느끼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오늘은 시간이 좀 흐른 다음 생각을 정리해 이 웹사이트의 모든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가정하고 제 행위의 몇 가지 측면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확실하게 해둘 것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제가 미쳐버리지 않는 이상 미래에도 누군가를 저격한다는 수준 낮은 행동을 할 의도도 이유도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여러 높은 분들에 의한 친절한 면담을 반복함에 따라 제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수치심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제가 그런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할 만큼 저를 수준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기에 제가 이런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저 자신의 행동이 그런 수준 낮은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제 일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한 사람으로써 원활하게 동작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짧지는 않은 세월에 걸쳐 일했지만 여전히 개선할 것 투성이이고 성공적인 프로젝트 완수 경험이 많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수준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그 수준 낮은 평가의 결과가 제가 제 일을 원활하게 혹은 훌륭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다른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할 거라고 생각하는 수준의 평가는 저 자신에게 깊은 수치심을 남겼습니다. ‘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정도 수준으로 평가되는구나’ 싶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치심은 지워지지 않지만 저는 저 자신에 대한 주변의 평가를 획득했고 제가 이 업을 유지하며 제 생계를 지탱하는 한 이는 해결해야만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소위 밀덕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전쟁사에 관심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상식적 범위 안에서 저격은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감춘 채 정확한 목표에 대해 실행하는 행동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신의 존재를 감추는 것입니다. 정확한 목표에 대한 행동의 실행은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특히 자신의 안위를 고려하지 않는 종류의 행동을 특정인에 대한 테러라고도 부릅니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미래에도 그런 행동을 생각할 만큼, 그 정도로 저열한 의도를 가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에, 만약에라도 제가 그런 의도를 가졌다면 제 이름으로 만들어진 도메인에 제 이름을 밝히며 글을 쓰는 웹사이트를 사용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멍청하지만 현대에 블라인드 같은 안전한, 저격이라는 정의에 더 어울리는 방법을 놔두고 굳이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멍청하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멍청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수치스럽습니다.
무엇이 글을 읽기 위해 이메일을 사용한 등록을 요구에 응한 독자가 저를 불편하게 느끼도록 만들었을지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제 여러 가지 경험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어 어떤 글이 그런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그런 글이 하나 뿐만이 아닐 수도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론적으로 모든 글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느끼도록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하려고 합니다. 이 관점에서 시간이 지난 다음 돌아본 제 경험과 이를 개선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제 생각이나 관점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 조직은 상명하복의 문화를 미덕으로 삼아 왔습니다. 동양에서, 동아시아에서, 정확히는 주로 극동아시아에서 이런 문화는 더더욱 두드러집니다. 혹자에 따르면 유라시아 전체에서 유럽의 밀농사와 아시아의 벼농사가 이런 문화를 가른 가장 근본적인 차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쌀의 인구부양력이 밀에 비해 훨씬 높지만 벼를 경작하기 위해서는 노동 집약적인 관개시설이 필요했기 때문에 집단적 사고, 상명하복 같은 문화가 나타났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이는 수많은 전쟁을 거치며 더욱 공고해졌다고 알려져 있고 개인적으로 이런 관점에 동의합니다. 산업의 발달로 인해 현대에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이에 기반한 의사 표현, 이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기회의 탐색이 중요해졌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이런 예쁜 말들이 가장 잘 동작한 곳은 미국 정도가 거의 유일하며 특히 전 세계에서 가장 늦게 근대화에 돌입한 동아시아 지역은 더더욱 이런 예쁜 말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는 식민지 시대나 전쟁으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난 현대에도 여전히 우리들의 여러 가지 행동에 영향을 끼칩니다. 큰 조직에 속해 조직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이를 수행하는 것은 적어도 극동아시아 지역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는 일종의 미덕과도 같으며 과거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에 따른 어떤 발언이나 행동을 하면 처벌을 받습니다. 주로 조직으로부터 배제되는 방식으로요. 제가 여러 차례에 걸친 친절한 면담을 거치며 수치심과 함께 경제적인 위협을 느낀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편 현대에는, 그리고 우리들이 일하고 있는 이 상업용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 그 중에서도 엔터테인먼트에 해당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는 어쩌면 이러한 믿음이 항상 올바르게 통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처음 이 업계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회사에는 육아휴직 제도가 있었는데 이를 소개하는 관리 부서의 누군가는 아직 제도를 처음으로 사용하신 분이 나타나기 전이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이러한 제도의 사용은 흔하고 또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직 업계 전체에 걸쳐 정년을 맞으신 분이 굉장히 적습니다. 업계 전체에서 알려진 첫 번째 정년 퇴직 하신 분이 나타났을 때 회사는 정년 퇴직 절차를 올바르게 수행한 모양이지만 그 이상의 뭔가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년 퇴직도 여느 퇴사와 별로 다르지 않았을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업계에서 알려진 첫 정년 퇴직 사례가 이렇게 쉽게 그냥 지나가서는 안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동시에 육아휴직 제도처럼 정년 퇴직이 딱히 특별하거나 신기하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 잡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 생각들의 핵심은 이 산업이 탄생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산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다양해져 우리들의 삶에 항상, 그리고 반드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벤트들이 이 산업도 다른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이 분야는 여전히 지독하게 강한 경쟁 압력이 유지되고 업무의 복잡성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습니다. 과거에 비해 개발 환경은 훨씬 단순해지고 저 같은 보통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이들 모두를 합친 소프트웨어와 라이브 서비스는 그 노하우를 일관된 모양으로 조직에 남기기 아주 어렵게 만듭니다. 시장에 게임이 나타났다가 사라짐에 따라 이들이 수 년에 걸쳐 쌓은 노하우는 대부분 회사 구석의 뜨겁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서버 구석에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모양으로 방치되기 일쑤이며 또 어느 때는 그렇게조차 보존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번은 어느 런칭에 실패하고 정리되는 회사로부터 에셋 일체를 구매한 적이 있는데 이런 식이 아니라면 이 에셋 일체는 어디에도 재사용되지 못한 채 누군가의 하드디스크 구석에 영원히 잠들었다가 하드디스크 수명이 끝나면서 사라졌을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가 성숙해 가는 것과는 별개로 저는 여전히 지금까지 다른 업계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조직 자체에 노하우를 쌓기 쉽지 않다고 느낍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훨씬 커다란 조직에서조차 중단된 프로젝트가 생산한 문서와 에셋, 빌드에 접근하기는 어렵습니다. 프로젝트를 중단하며 그 동안 생산한 문서를 정리해 누군가 이를 살펴볼 때 도움이 될 만한 모양으로 만들었지만 이 문서 뭉치는 그냥 압축파일 모양으로 변해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처박혀 영원히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빌드 역시 퍼포스 리파지토리 사용이 중단되며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그 조직에서는 각 프로젝트가 생산한 에셋을 회사 전체에 걸친 라이브러리 모양으로 만들어 접근 권한이 있는 누구나 접근해 에셋을 획득해 이를 기반으로 뭔가 만들어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나마 이게 어디인가 싶지만 여기에 코드와 바이너리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컨플루언스 같은 일관된 솔루션을 여러 프로젝트에 걸쳐 사용하는 조직들은 앞서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한 모든 문서가 압축파일 하나로 바뀌어 파일서버 구석에 처박히는 것 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권한 설정으로 인해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그 컨플루언스 스페이스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지만 권한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검색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그 스페이스의 문서들이 나타나 이를 참고할 여지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업계에서 그나마 조직이 노하우를 쌓는 과정은 이 정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지금까지 살펴본 것 중에서는 그나마 잘 동작하는 수준입니다. 몇 번 그런 조직을 만나 다른 프로젝트가 생산한 문서를 살펴보며 그들의 역사, 현재, 여러 의사 결정 과정을 통해 간접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만 이런 경우는 소수입니다. 다들 프로젝트를 중단하면 사람들을 내보내고 노하우 대부분은 그냥 사라집니다. 소수의 경험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그랬습니다. 지금까지 투입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쩌면 과거의 다른 업계에서 그랬던 것과 달리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업계는 조직에 충분한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조직이 올바른 의사 결정을 할 가능성이 이전 시대나 다른 업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조직이 대체로 올바른 의사 결정을 해 이를 따르기만 하면 대체로 올바른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의사 결정에 조직에 쌓인 노하우가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보화시대 이전에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주체는 바로 조직 자체였습니다. 조직은 정보 우위에 의해 대체로 개인보다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시장의, 세계의 규칙이 변하는 속도가 현대보다 현저히 느렸기 때문에 조직이 보유한 지식의 유효 기간 역시 현대에 비해 훨씬 길었습니다. 이런 환경이라면 극동아시아의 집단주의적 문화나 상명하복 문화가 생존에 더 유리했으리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조직에 지식이 쌓이기 쉽지 않으며 시장에 경쟁 압력이 높아 수시로 프로젝트가 중단되어 이로부터 해고된 인력이 시장에 넘쳐 나고 이들이 생산한 에셋이 재사용되거나 참고용으로 사용되지도 않는 환경에서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조직이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에 세계의, 그리고 시장의 규칙이 변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경험 많은 개인의 이론적 직관이 어떤 상황을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집니다. 조직에 쌓인 지식이 거의 없고 규칙의 변화 속도가 빨라 개개인의 이론적 직관이 잘 성립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 남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어쨌든 개인의 경험에 기반한 직관에 의존하되 빨리 시도하고 빨리 실패하며 단기간 안에 조직이 보유하지 못한 지식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 지식 역시 이번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종료되면 대부분 사라질 운명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번 프로젝트에 의미 있는 경험과 지식일 수는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업계가, 제가 속한 조직이, 제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업계 전체 관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육아휴직을 당연하게 사용하고 또 정년퇴직을 당연하게 하려면 기본적인 판단은 개인의 경험에 기반한 직관에 근거하되 빨리 시도하고 빨리 실패하는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은 이전 시대에 분명 개인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정보 수준에 기반해 대체로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만,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이 업계의 특성 상 조직에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 쉽지 않고 또 조직에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업계 전체 관점에서 무책임한 일일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런 빠른 시도와 실패에 의한 개선이 용인 되어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소프트웨어 분야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또 근본적으로 동아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일하는 조직이 이전까지 대체로 성공적이었던 행동 방식을 갑작스레 바꾸기를 기대하는 것 역시 기대 수준이 너무 높은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살아 남아 정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들이 당연하게 생각해 온 조직의 결정에 따르고 의심하지 않는 자세를 조금은 수정해야 합니다. 이전 시대와 달리 조직은 우리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정보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변화나는 세계와 시장의 규칙 전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실천하려면 동아시아에서 나고 자란 우리들이 지금까지 평생에 걸쳐 학습해 온 직관에 완전히 반하는 행동을 해야만 합니다. 바로 조직의 결정을 의심하고 또 때때로 이에 순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행동하면 바로 좋은 결과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과연 정년까지 일할 수 있을까요? 대체로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당장에 저처럼 여러 높은 분들과 친절한 면담을 반복하며 수치심을 쌓아 갈 뿐일 겁니다. 조직은 조직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합니다. 이는 오래된 영화 매트릭스의 초반 설명에도 등장합니다. 조직은 순응하지 않는 개인을 처벌하며 조직 구성원들은 같은 이유로 개인을 배척합니다.
이전 악의 평범성에서 저 유명한 글을 인용하며 이렇게 조직에 순응하는 개인이 조직 전체를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위험이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오래 전에 겪은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어 이를 실행함에 따라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규칙을 수행하는 사례를 설명했습니다. 예상 하실 수 있겠지만 여기서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바로 이 상황에 문제가 있다는 의문을 가지고 이를 따르지 않는 행동을 한 저 자신입니다. 처음으로 근미래에 실행된 규칙에 대한 설명을 받았을 때 이미 이 규칙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할 때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들 것 같았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포함해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모든 분야에서 그것이 기밀이 아닌 이상 개개인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지독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이 패퇴한 이유 중에는 부대 간의 통신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뭔가 말하기 위해 한번 더 생각하고 또 실수하면 안되는 환경에서 말하게 하는 것은 이미 규칙을 실행해 보기 전에도 의사소통을 극도로 제한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 규칙을 지키지 않는 저는 조직을 대변하는 여러 사람의 표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 때 역시 여러 차례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제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으며 현상을 통해 제 이론을 증명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규칙을 따를 생각이 없었습니다. 입장은 어느 정도 강경했습니다. 이 입장을 한 번에 포기하고 조직에 완전히 순응하기로 한 계기는 조직의 다른 사람들과 사적으로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이 주제가 격해진 끝에 “너는 네가 무슨 치외법권이라도 있는 줄 아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입니다. 그랬습니다. 앞서 저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제 이름을 뻔히 적어 놓은 웹사이트에서 누군가를 저격할 생각을 할 만큼 수준 낮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조직의 결정에 의문을 가진 행동이 마치 제가 치외법권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이 감정은 너무나 깊어 상담의와 진지하게 이야기할 주제가 되었는데 상담의는 ‘좀 묻어 갈 줄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고 저는 이를 받아들여 행동했습니다. 이전에 저와 함께 일한 적 있는 예민한 분들은 제 행동의 변화를 눈치챘지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이후 조직의 어떤 결정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의문을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조직은 제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처벌할 수 없습니다. DM과 심리적 안정감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저 역시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 제 관리자, 제 주변 사람들은 이전에 비해 훨씬 행복해졌습니다. 굳이 자신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 평가를 받는 행동을 하지 않게 됐고 제 관리자는 다른 부서의 높은 분들로부터 저에 대한 문제 제기를 받아 전달하느라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어졌으며 여러 상황에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조금은 덜 무서운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변화는 개인적인 목표인 정년까지 일하는데 도움이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마음 속에 조금 불편한 구석이 남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오직 제 머리 속에서만, 그리고 그저 제 생각을 시일이 많이 지난 다음 늘어 놓는 이 장황하고 긴 텍스트로만 일어날 뿐이어서 조직에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불편한 구석은 바로 회사가 저를 왜 고용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현상 유지에 초점을 맞춰 행동하는 조직이라면 의문을 갖지 않고 순응하는 자세야말로 조직이 그 구성원들에게 가장 원하는 모습일 겁니다. 헌데 앞서 설명 드린 대로 이 업계는 복잡도가 높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산업의 속성은 흥행 산업이며 세계와 시장의 규칙이 지독할 정도로 자주 바뀌는 곳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조직은 이전 시대의 여느 업계의 조직과 달리 조직 자신에 지식을 축적하는데 실패하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조직이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게임디자이너를 고용한 이유는 이 사람이 개인 수준에서 프로젝트에 기여하기를 원해서만은 아닐 거라고 예상합니다. 만약 그저 개인 수준의 기여를 원한다면 가격 경쟁력이 훨씬 높은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명백한 손해를 감수하면서 저를 고용한 이유는 개인 수준의 기여 이상의 뭔가를 원하기 때문일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회사가 저를 고용한 이유, 저에게 하는 기대가 제가 생각하는 그것과 비슷하다고 가정할 때 제가 여러 가지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동을 그만 두고 여느 개인 수준으로 기여하는 한 사람에 머무른다면 어쩌면 저는 회사에 배임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전쟁과 뒤따르는 고도성장기에 조직은 대체로 올바른 결정을 내려 왔고 조직에 속한 개인들은 여기에 의심을 가지지 않고 행동하는 방법을 통해 실질적인 성공을 거둬 왔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또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산업에 가까워질수록 동아시아에서 나고 자란 우리들의 직관과는 다른 행동을 할 것을 요구 받고 또 그래야만 장기적으로 살아 남을 수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크게 다른 두 가지 결과로 귀결됩니다. 하나는 치외법권으로 귀결되는 개인에 대한 낮은 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에 대해 저지르는 배임 행위입니다. 조직은 저에게 배임을 선택하기를 종용했고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