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사주세요

지난 31호 뉴스레터의 커버스토리 궁극적으로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가요? 끝 부분에 오대산 밑 주차장과 그리 길지 않은 전나무 산책길에서 다른 해에 건물 안에서 눈이 오거나 말거나 제 할 일을 하며 첫 눈을 맞이했던 것과는 달리 첫 눈이 내릴 때 밖에서 눈을 맞으며 첫 눈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항상 눈이 내리면 즐겁다는 감정 보다는 이 눈 때문에 차는 얼마나 막힐지, 또 얼마나 추울지, 밤에 눈이 얼면 또 집에는 어떻게 갈 지 같은 고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강원도의 어마어마한 제설 능력을 믿고 산에 가까운 도로를 돌아다녔는데 아니나 다를까 눈이 내리기 시작한 지 채 한 시간도 안 되어 길에 눈이 쌓이지도 않은 상태인데도 벌써 16톤 덤프트럭을 개조한 제설차가 반대쪽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보고 눈이 저에게 줄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을 걱정하기 보다는 그저 내리는 눈 자체를 느끼는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이 날 함께 눈을 맞은 일행은 한 분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한국에 아이폰이 처음 출시될 때 아이폰으로 갈아 탄 다음 각자 형편에 맞는 적당한 시점에 다음 아이폰으로 갈아 타기를 반복해 현재에 이릅니다. 그 사이에 다른 폰을 사용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마치 에스프레소가 세계를 지배한 이 시대에도 여전히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려 마시기를 고집하는 사람 마냥 새 아이폰으로 넘어갈 뿐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여기에는 스마트폰이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요구사항이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은 이제 일상에 너무 많은 영역에 관여하는데 아이폰이 제시하는 사용 경험에 아주 익숙해진 나머지 스마트폰의 외형과 그 인터페이스는 사라지고 제가 스마트폰에 요구하는 작업과 그 작업의 결과물만 남아 작업 자체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랬고 여기에 자기 주장 강하고 온갖 설정을 조절할 수 있는 강력한 스마트폰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이 합쳐진 강력한 기계를 놔 두고 굳이 아이폰을 지금까지 사용해 오고 있었습니다.

한편 지난 첫 눈 내리던 날 그냥 눈으로 봐도 쓰러진 전나무 옆에 굳이 ‘쓰러진 전나무’ 표지판이 있는 모습을 보며 함께 걷던 사람들 모두 웃기다며 낄낄거렸는데 이 구성에는 저처럼 아이가 없는 사람도 있었지만 학부모님도 있었습니다. 여튼 이 모임에는 아이들 없이 어른들만 눈을 맡으며 바보같이 뛰어 놀고 낄낄대며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아이폰 사용자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다른 스마트폰을 사용하시던 한 분이 ‘아니 뭐야. 다들 약속이라도 한 건가. 아이폰 안 쓰면 여기 못 있겠네’ 라고 말씀하셔서 보니 한 분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폰이고 갤럭시고 그 폰을 가지고 사진을 찍고 연락을 주고 받고 또 길을 찾고 주변에 식당이나 카페를 검색하는 거의 모든 작업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폰이 다를 뿐 서로 사용하는 앱 마저 거의 비슷했는데 사진을 찍는 데는 서로 다른 카메라 앱을 사용했지만 길을 찾고 주변에 식당과 카페를 검색하는 데는 네이버맵이나 카카오맵을 사용했고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을 때는 카카오톡을 사용했습니다. 폰이 달라도 결국 서로 사용하는 앱과 서비스가 똑같으니 서로 아무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차이가 없던 시간 대부분이 지나가고 서로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서로가 찍은 사진을 교환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갤럭시가 왜 짜증나는가 하면에 설명한 귀찮은 일이 일어납니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순식간에 사진 교환이 일어났고 이런 방식으로 사진을 교환해본 적이 없어 에어드랍이 꺼져 있던 분도 어렵지 않게 에어드랍 네트워크에 추가해 순식간에 사진과 영상 수 십 개가 공기중으로 오갔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 공유 과정에 아이폰이 아닌 다른 스마트폰을 참여 시킬 수 없었는데 이 다른 스마트폰에 사진을 전송하기 위해 각자가 카카오톡 채팅방에 한 번에 서른 장 씩 사진을 보내야 했습니다. 위에 소개한 글에서 설명한 대로 카카오톡은 서기 2023년에 동작하는 앱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낙후했는데 메시징 기능은 리액션을 할 수도 있고 특정 메시지에 답글을 남길 수도 있게 되며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서로 사진을 주고 받는 동작은 몇 년에 걸쳐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진을 올리면 바로 이어 앞으로 약 일주일 동안만 사용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나타나고 이 기간이 지나면 파일이 사라져 다운로드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상태를 해결하려면 사용자 각자가 별도로 가입해야 하는 유료 서비스인 톡서랍을 사용해야 하는 등 암만 생각해도 사용성 개선과는 거리가 먼 이상한 방법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이전에 다른 모임에서 사진을 공유할 때는 모두가 구글 계정이 있고 또 구글포토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일단 각자가 찍은 사진이 각자의 구글포트 계정에 업로드 되기를 조금 기다린 다음 누군가 한 사람이 구글포토에 공유 엘범을 열고 모두가 공유 엘범에 각자가 찍은 사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사진을 나누기도 했는데 이 경험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공유 엘범이 생성되고 이를 열고 있으니 공유 엘범에 포함된 사진 갯수가 점점 늘어나며 각자가 공유한 모든 사진이 공유된 엘범이 완성됐고 여기서 버튼 하나를 터치하자 공유 엘범에 있는 사진이 중복 없이 개인 구글포토 계정에 추가되었습니다. 이후 누군가가 공유 엘범에 사진을 추가하면 이를 알 수 있었고 심지어 공유 엘범에 추가되는 사진을 확인 없이 바로 개인 계정에 추가하도록 설정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아이폰을 사용하는 상황 만큼이나 모든 사람이 구글 계정을 가지고 있고 또 구글포토를 사용하는 시나리오는 드물었고 이 방법은 아주 잠깐 동안 편리하게 사용했지만 여전히 다양한 사람들과 사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밤에 모여 이 동네에서만 파는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한 분이 이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아이폰을 사용해 자신도 아이폰을 사용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모님 입장에서 아이폰이 뭐라고 멀쩡한 스마트폰이 있는데 굳이 아이폰으로 바꿔야 하느냐며 아이에게 지금 사용하는 폰을 계속해서 사용하라고 하셨고 또 시간이 지나며 이런 대화가 반복된 모양입니다. 하지만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런 아이폰에 대한 건의가 썩 와 닿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서로 다른 스마트폰을 사용하더라도 결국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결국 네이버맵이나 카카오맵을 사용하며 결국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것은 모두 거의 같은 경험이고 스마트폰의 종류에 관계 없이 이런 경험은 거의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갤럭시 스마트폰은 더 저렴하고 다양한 장치들과 더 잘 호환되며 한국에서 무적인 삼성페이를 지원하고 배터리도 더 오래 갈 뿐 아니라 수리비용이 저렴하기까지 합니다. 사실 이런 장점을 생각하면 아이폰을 쓸 이유가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아이폰은 특별한 장점이 있지도 않으면서 비싸기까지 합니다.

함께 술을 마시던 나머지 사람들이 오늘의 경험을 예로 들어 학생에게 아이폰이 필요할 수도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무슨 폰을 쓰든 현대에는 그 경험이 거의 비슷해 어떤 폰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용 경험, 폰으로 할 수 있는 일에 거의, 또는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상황에서 서로 찍은 사진을 표준화된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지금 이 순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강점입니다. 사진을 나중에 따로 받을 수도 있고 사진을 다른 방법을 통해 공유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어울리는 상황에서 함께 같은 액티비티에 참여한 다음 그 즉시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를 올리는 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스냅챗이 인기를 끈 다음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은 포스트를 올리는 대신 스토리를 올리기 시작했는데 스토리는 일정 시간 후에 사라지기 때문에 알림이 오면 지금 당장 봐야 하고 또 스토리에 남겨진 답글과 리액션은 스토리를 올린 사람만 볼 수 있습니다. 스토리 하나하나가 꽤 안전한 폐쇄 커뮤니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안전한 폐쇄 커뮤니티는 함께 참여한 액티비티가 끝난 직후 짧은 시간 안에 산발적으로 일어나며 또래 사이에서 이 폐쇄 커뮤니티에 지금 당장 참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진은 나중에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인스타그램 스토리 커뮤니티에 지금 당장 참여하지 못하면 이 커뮤니티는 지금 당장의 경험을 모두에게 공유한 다음 이내 사라져 버립니다. 액티비티에 분명히 참여했지만 액티비티가 끝난 다음 바로 이어지는 커뮤니티에 참여할 기회를 놓치면 서로의 액티비티 경험 사이에는 큰 경험 차이가 생깁니다. 이 인스타그램 스토리 커뮤니티에 지금 당장 참여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다른 사람들이 찍은 내 사진이 필요하며 여기에 지금 당장 편안하게 사진을 공유 받을 표준화된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이제 일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사진을 올리지만 또 다른 일부는 인스타그램을 눈팅에만 사용하고 있어 그 경험이 엄청나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또 카카오톡 단톡방을 통해 액티비티를 공유해 인스타그램 스토리처럼 일정 시간 후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런 방식의 액티비티와 액티비티 후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경험을 하다 보면 왜 사진이 지금 당장 필요한지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커뮤니티가 카카오톡 단톡방이 아니라 스냅챗이나 인스타그램 스토리 같은 스타일이라면 사람들이 지금 당장 액티비티를 공유하고 이 시간을 놓치면 커뮤니티에서 쉽게 배제되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에 참여하려면 지금 당장 사진이 필요합니다. 액티비티 자체는 끝났더라도 액티비티는 그 뒤에 이어지는 의사소통을 포함하고 있으며 여기 참여하지 못하면 액티비티에 참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다른 사람이 찍은 내 사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만약 형편이 된다면 이런 상황을 무난하게 경험하게 하고 또 커뮤니티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편이 좋을 수도 있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렀습니다. 뉴스에 보도되는 것처럼 그저 디자인이 더 나아서, 또래들이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 같은 아주 표면적인 이유만 생각하면 그저 아이들의 유행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 그리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하며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음을 잘 배워 왔습니다. 하지만 만약 형편이 된다면 굳이 또래 커뮤니티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기회를 통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으며 한정된 자원 안에서 선택을 하고 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 그 과정에 굳이 또래 집단으로부터 쉽게 일어나는 배제를 경험할 필요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