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함우월주의
전체 게임의 동작을 고려하지 않고 단위 기능에 집중하면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처럼 개함우월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워싱턴 군축조약과 런던 군축조약에 의해 건조 가능한 함선 배수량에 제한을 안게 된 일본은 개함우월주의를 내세웁니다. 개함우월주의는 일본과 일본의 적국이 같은 배수량의 군함을 보유하고 있을 때 일본의 군함이 항상 적국의 군함보다 모든 면에서 더 우월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적국보다 더 많은 무기를 싣고 더 두꺼운 장갑을 탑재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더 큰 배수량이 필요하지만 이론적으로 충분한 기술력이 뒷받침된다면 같은 배수량일 때 더 우월한 배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가령 현대의 함선이 같은 배수량일 때 스텔스 형상을 적용해 레이더에 더 작게 탐지되고 또 더 유선형으로 만들어져 같은 엔진을 사용해도 더 빠르고 더 강력한 레이더 시스템을 적용해 적을 더 잘 탐지하도록 만들었다면 이는 어쩌면 배수량의 한계를 기술로써 극복한 사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는 아직 냉전시대의 군비경쟁을 통한 폭발적인 기술 발전이 일어나기 이전으로 강대국들은 확실히 당시 한국과 같은 제 3세계 국가들보다 훨씬 진보 되어 있었지만 일본은 당시 강대국으로 분류되면서도 다른 강대국보다 상대적으로 더딘 발전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종종 코미디 소재로 전해 듣곤 하는 경항공모함 류조 같은 웃픈 결과가 바로 이 개함우월주의를 고수한 끝에 나온 것입니다.
당시 일본 입장에서 해군군축조약의 가장 큰 의의는 자신들의 총 배수량을 미국의 60% 수준으로 묶어둔다는데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경제력과 공업력은 이미 그 시점의 미국에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처럼 함선을 마음껏 찍어낼 수 없더라도 훨씬 더 큰 경제력과 공업력을 가진 미국을 이 정도 수준으로 묶어둘 수 있다면 대서양과 태평양 양쪽에 해군력을 분산해야 하는 미국과 태평양에서 비슷한 영향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함우월주의는 이론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경제력과 기술력의 부족을 무시하고 배수량 기준으로 항상 상대 함선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이론 상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실제 물리적인 세계, 그리고 당시 일본의 경제력과 공업력 기반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 군부는 이런 사실상 물리적인 한계를 무시하기 일쑤여서 물리적인 한계를 무시하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해야만 하는 상황에 자주 놓인 것 같은데 이런 일종의 까라면 까야 하는 상황은 수 십 년이 흐른 다음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를 일으키는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앞부분을 쓰기 위해 개함우월주의를 검색했다가 튀어나온 일본의 경항공모함 류조 그림을 보고 이 이야기를 알고 있음에도 빵 터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거의 100년 가까이 지난 미래인의 관점에서 이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보고 웃지 않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를 나일강에 거꾸로 띄워도 저것 보다는 더 멀쩡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