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현관 RFID 태그 복사 경험
오래된 아파트 공동 출입구에는 출입카드를 사용해야 열리는 문이 있습니다. 이사 올 때 관리사무소에서 출입카드를 받았는데 이걸 잊어버리면 미래에 이사 나갈 때 돈을 물어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출입카드는 다른 신용카드와 비슷한 크기였는데 두께도 그리 두껍지 않아 휴대하기에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지갑에 카드와 현금을 가지고 다니기보다는 카드를 카드 지갑에 넣어 핸드폰 뒤에 붙여 다니게 됐습니다.
카드 지갑은 카드를 두 장 까지 넣을 수 있었지만 아주 얇게 만들어져 카드 두 장을 넣으면 좀 뚱뚱해 보였을 뿐 아니라 애플페이가 안 되는 이상 신용카드를 자주 꺼내야만 했는데 그럴 때 공동현관 출입카드도 같이 빠져나와 잃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자칫 이사 가는 날 그렇잖아도 신나게 돈을 토해 내고 있을 마당에 이런 돈까지 토해내야 할 수 있었고요.
알아보니 이런 공동현관에 주로 사용되는 RFID 규격이 다들 비슷해서 RFID 복사장치와 RFID 카드 여분이 있으면 출입카드를 복사할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재미 있어 보여 얼른 복사 장치를 주문했고 빠르지는 않았지만 또 너무 늦지도 않게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복사장치가 도착해 설레는 마음으로 복사를 시도했지만 원본 출입카드를 읽을 수만 있었고 RFID 카드에 쓸 수는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규격이 여러 가지였는데 13.55 MHz라는 통신 규격만 맞으면 호환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125KHz라는 규격도 일치해야만 쓸 수도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복사장치 한 번, RFID 카드를 두 번 구입하면서 이미 출입카드를 분실했을 때 낼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내고 말았습니다. 결국 복사하는데 성공했고 이전 카드에 비해 10분의 1 크기밖에 안되는 작고 귀여운 RFID 스티커를 카드 지갑에 붙임으로써 카드는 한 장만 들고 다니면서도 카드 지갑이 뚱뚱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공동 현관에 출입할 수 있게 됩니다.
개인 관점에서는 해피엔딩이지만 몇 가지 석연찮은 점은 남아 있습니다. 애초에 공동 출입구는 보안 수준이 높지 않습니다. 좀 더 보안 수준이 높은 문은 안쪽에서 버튼을 눌러 열게 되어 있지만 이 문은 안쪽에 동작 감지를 통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즉 문 틈으로 뭔가를 밀어 넣어 동작을 만들어 내면 문을 열 수 있고요. 또한 입주민들이 잠깐 나왔다가 출입 카드가 없어 다른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누군가가 출입문 옆의 평소에는 고정되어 있는 작은 문 조각의 잠금장치를 풀어 놓기 시작해 출입구가 잠겨 있어도 그 옆의 작은 문 조각을 열면 문이 열리게 해 놓기도 했습니다. 어느 때는 열려 있고 또 어느 때는 잠겨 있는 것으로 미루어 관리인과 입주민들 사이에 소리 없는 마찰이 계속 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보안 수준이 낮기는 하지만 또 아예 없는 상태 보다는 원하지 않는 전단지가 투입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번 출입 권한을 획득하면 아무런 인증 없이 출입할 수 있고 출입 권한을 쉽게 없애기 어렵기 때문에 만약 이 출입 카드 복사본을 잃어버리면 누군가가 반영구적으로 출입 권한을 얻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누군가가 출입 카드를 주워도 이것이 어느 아파트 공동현관 출입 카드인지 알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오래 전에 집을 열쇠로 잠그고 다녀야 했던 어떤 게임에서 잃어버린 열쇠를 주워 들고 눈에 띄는 모든 집마다 열어보기를 반복해 결국 열쇠에 맞는 집을 찾아내 집 안의 모든 물건을 싹쓸이하던 사례를 기억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결국 근본적으로 공동 현관의 보안 수준을 올리려면 출입 권한 보유 여부를 카드 같은 형태로 증명하고 카드를 사용하는 개인을 한번 더 인증하는 형태여야 할 겁니다. 말이 복잡한데 핸드폰으로 말하면 권한 보유 여부를 핸드폰의 소유 여부로 제시하고 개인의 인증은 핸드폰의 잠금을 풀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형식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결론. 출입카드를 분실하면 장당 만 원만 내면 되는데 출입 카드를 복사하는데 총 5만원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