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모바일 튜토리얼과 인터페이스의 충돌 사례
모바일 이전 시대에는 튜토리얼이 어땠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이제 너무 먼 과거가 되어 버렸어요. 하지만 모바일 시대 이후에는 튜토리얼이 어땠는지 확실히 기억납니다.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것이 모든 게임이 다 똑같은 튜토리얼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화면을 시커멓게 뒤덮고 내가 집중해야 할 부분만 하이라이트 한 채로 터치를 기다리는 겁니다. 그 옆에 작게 설명을 곁들여서요. 개인적으로 이 방식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일단 화면을 시커멓게 덮어버려 내가 터치하는 인터페이스의 상대적인 위치를 인식하기 힘들었습니다. 또 게임의 주요 메커닉을 먼저 설명하거나 내가 습득한 다음 실제 이 시스템을 사용하는 과정을 알려주면 좋겠는데 아직 메커닉을 습득하기 전에 다짜고짜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하니 지금 나한테 알려주는 이 동작이 뭘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물론 현대의 모바일 게임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내가 주요 메커닉을 습득했는지 여부는 게임 진행에 별로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게임의 주요 성장 시스템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아도 이들을 활용해 성장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정교하게 설계한 빨간점 aka 레드닷 때문입니다. 튜토리얼이 화면을 시커멓게 뒤덮고 상대적인 위치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인터페이스를 터치해 빨리 튜토리얼을 넘기는데 집중하더라도 나중에 게임을 플레이 하며 내가 조작해야 하는 인터페이스에 정확하게 빨간점을 찍어 줍니다. 빨간점의 설계 목표는 이 빨간점이 찍힌 자리만 조작해도 게임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자. 이 이야기는 오늘 주제에서 많이 벗어나니 빨간점에 대한 이야기는 미래로 넘기고 이 문단의 핵심은 튜토리얼은 표면적으로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주요 메커닉을 학습시키는 것이지만 이 과정이 성공적이지 않아도 사실 아무 상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바일 게임의 전통적인 튜토리얼 방식은 종종 뚜렷한 인터페이스 설계 철학과 충돌하기도 합니다. 리니지W는 필드 PvP를 허용합니다. 이 말은 내가 명시적인 안전지대에 있지 않은 이상 상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게임의 인터페이스를 설계할 때 유의할 점은 절대로 내 플레이어캐릭터를 포함한 화면 중앙 영역과 주요 조작 영역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어기는 순간 플레이어캐릭터는 즉시 대응 조작을 하지 못하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됩니다. 하지만 화면이 좁은 모바일 게임의 한계 상 완벽하게 이 원칙을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주 사용하는 인벤토리, 캐릭터정보 등의 인터페이스는 이 원칙에 맞춰 설계하고 보조 성장, 커뮤니티 등 하루에 몇 번 정도 여는 인터페이스는 화면 전체를 사용하도록 디자인합니다. 후자는 주로 명시적인 안전지역에서 조작할 것을 가정합니다. 물론 이들도 화면 바깥에서 플레이어캐릭터가 공격당할 때 이를 알려줍니다.
튜토리얼을 진행하다가 안타까운 상황과 마주쳤습니다.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선택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튜토리얼이었는데 인벤토리는 위에서 이야기한 원칙에 따라 설계되었지만 튜토리얼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 튜토리얼은 내 캐릭터를 가릴 뿐 아니라 튜토리얼을 마치기 전에는 조작할 수도 없습니다. 다행히 이 튜토리얼은 초반에 등장하기 때문에 플레이어캐릭터를 큰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지만 몬스터에게 공격 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튜토리얼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요 인터페이스가 핵심 원칙을 지키며 설계된 게임을 기대했지만 아주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