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숲
페르미의 역설을 설명하는 방법 중 암흑의 숲 이론에 가장 큰 매력을 느낍니다.
이 뉴스레터의 첫 제목은 혹시 거기 계시면 제게 알려주세요 입니다. 그 전에는 그저 블로그 웹사이트를 만들고 글을 쓸 따름이었습니다. 웹사이트 자체에는 피드백을 받을 방법이 없었는데 솔루션은 이 기능을 제공했지만 굳이 피드백을 받을 필요도 없고 또 요즘 세상에 누가 개인 블로그에 피드백을 남기겠나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캘린더를 통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글을 공유하면 종종 피드백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피드백 없이 일방적으로 생각을 인터넷을 통해 송출 하기만 하는 제가 마치 암흑의 숲 속에서 조용히 아주 작은 신호를 우주로 보내고 있는 작은 문명과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생각 끝에 제가 암흑의 숲 속 작은 공터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저를 드러내며 제 생각을 송출 하는 대신 제 생각을 읽으실 분들 역시 스스로를 이 작은 모닥불 주변에 드러내 주시기를 요구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뉴스레터의 첫 번째 글 제목이 결정됩니다.
‘암흑의 숲’ 이론은 페르미의 역설을 설명하는 한 가지 가설입니다. 제가 이 말을 처음 본 곳은 소설 삼체의 두 번째 이야기인 ‘암흑의 숲’에서였습니다. 우주는 암흑의 숲과 같은데 숲 속에는 여러 사냥꾼들이 숨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각 사냥꾼들은 서로의 의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경계하고 또 견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만약 한 사냥꾼이 함부로 다른 사냥꾼의 의도를 오해해 평화적으로 접근했다가 죽음을 맞을 수 있습니다. 우주에 있을지도 모르는 여러 종족은 아마도 서로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할 수 있고 또 이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의사소통에는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릴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의사소통에 오랜 세월이 걸림과 동시에 이 세월은 각자가 문명 폭발을 일으킬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어 더더욱 서로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듭니다. 가령 서로 1만 광년 떨어진 두 문명이 서로 평화적인 의도로 메시지를 발신 했다 치면 이 메시지는 서로에게 1만년 후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메시지를 평화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을 뿐더러 이 메시지가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온 지난 1만년 사이에 이 메시지를 보내 온 문명이 지금도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을지, 그리고 지금도 비슷한 문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쿠르츠게쟉트 한국판에 올라온 외계인을 찾으면 안 되는 이유 – 어둠의 숲 영상은 바로 이 암흑의 숲 이론을 설명합니다. 우주 곳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여러 문명은 서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나머지 다른 문명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고 또 다른 문명과 의사소통 하는 방법, 그리고 다른 문명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이들은 빛의 속도로도 오랜 세월이 걸릴 만큼 서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의사소통 자체가 어려울 수 있으며 앞에서 설명한 대로 서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하더라도 메시지를 보낸 시점과 받은 시점 사이에 너무 긴 세월이 지나 이를 보낸 문명이 지금도 남아 있을지, 남아 있다면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을지, 그리고 문명 수준이 얼마나 달라졌을지 판단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만약 상대의 의도를 잘못 이해해 선의를 내비쳤다가 애초에 선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선의를 오해한 상대로부터 공격을 받아 문명 전체가 파멸을 맞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서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악의를 가진 문명이 다른 문명을 파괴하기 위해 공격을 시도한다 할지라도 이 역시 상대 문명까지 도착하는데 너무 많은 세월이 걸린 나머지 상대 문명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이미 상대 문명의 최신 기술로부터 한참 뒤쳐진 상태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주의 각 문명이 살아남기 위한 가장 나은 전략은 다른 문명을 발견한 즉시 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공격을 가해 문명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소설 삼체 2권 ‘암흑의 숲’은 태양계에 있는 지구 문명의 위치를 발견한 삼체 문명이 암흑의 숲 이론에 따라 지구 문명을 파괴하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삼체 문명은 지구 문명에 비해 우주에서 문명이 살아남기 위한 규칙인 암흑의 숲 이론을 깊이 이해하고 있어 이를 잘 모른 지구 문명이 우주로 자신의 위치를 알린 지난 1권의 실수를 보고 바로 지구 문명을 파괴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기 어려운 현재 삼체 문명을 지구로 옮겨 오려고 합니다. 지구 문명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삼체 세계로부터 태양계로 함대를 파견해야 하는데 둘 사이에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함대가 태양계에 도착하는 사이에 지구에서 문명 폭발이 일어나 삼체 세계에서 파견한 함대의 기술 수준이 뒤쳐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삼체 세계에서는 먼저 지구에 양자 얽힘 효과를 이용한 일종의 소형 함선인 지자를 보내 지구의 과학 기술 발전을 방해합니다. 문명의 첨단에 서 있는 과학자들이 자살하게 만들고 또 입자가속기가 엉뚱한 결과를 내도록 만드는데 여기까지가 삼체 1권의 이야기입니다. 이로써 지구 문명은 우주 문명으로 발전하기는 하지만 컴퓨터 기술의 발전이 정체 된 기묘한 형태의 문명이 됩니다.
세월이 흘러 결국 삼체 함대는 태양계에 접근하는데 우주 문명으로 발전한 지구 문명은 이들에 맞설 함대를 파견합니다. 하지만 삼체 함대의 선발대로부터 큰 피해를 입어 지구 함대는 궤멸 되고 소수의 함대가 깊은 우주로 도망치며 지구 문명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합니다. 인류는 늦게서야 우주 문명들이 자연스럽게 숙지하고 있는 암흑의 숲 이론을 이해하고 이를 실험하는데 성공합니다. 암흑의 숲 이론을 실험하는 방법은 간단히 멀리 떨어진 행성의 상대적 좌표를 우주로 발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주가 정말로 암흑의 숲 이론에 의한 지배를 받으며 우주에 살아 남은 모든 문명이 이를 숙지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여러 문명이 인식할 수 있는 모양으로 특정 행성의 상대적 위치를 가리키는 신호를 감지한다면 이 신호에 대응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 좌표에는 분명 뭔가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좌표를 발신한 누군가는 이 행성의 위치를 인지한 다른 우주 문명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위치에 가서 만나자는 의미일 수도 있겠지만 암흑의 숲 속에서 일정 이상의 문명 수준을 달성했다면 이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은 이 좌표의 행성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위험을 최소화 하기 위해 이 행성을 아주 작은 비용으로 파괴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주로 발신한 좌표의 행성이 파괴되고 우주에는 여러 문명이 있지만 이들 모두가 암흑의 숲 이론에 따라 서로 조용히 숨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삼체 함대가 파견한 함대는 이제 감속을 거쳐 태양계에 진입하려 하지만 이에 목성 궤도에 위성을 배치해 삼체 문명의 위치를 온 우주에 발신할 장치를 만든 다음 이 사실을 무기 삼아 삼체 함대와 협상합니다. 삼체 세계는 암흑의 숲 이론을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삼체 세계의 상대적 위치가 온 우주에 발신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 발신을 통해 태양계의 위치 또한 드러나게 되며 이를 통해 지구 문명 역시 파멸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파괴적인 무기를 도구 삼아 삼체 문명과 협상해 이들이 파견한 함대가 태양계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들이 태양계 바깥의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나가게 되더라도 여전히 지구 문명의 발달을 통해 이들을 구출할 수 있기 때문에 이 협상은 원만히 타결되어 지구 문명과 삼체 세계 양쪽 모두 파멸의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삼체 2권의 이야기입니다.
작년(2023년)에 쓴 글 6만년은 우주문명을 위한 조건영상을 보고 지름이 10만 광년 정도 되는 우리 은하에 다른 문명이 10개 정도 있다고 가정할 때 각각의 문명 사이 평균 거리인 3만 광년을 왕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상대성이론의 시간 수축에 따라 광속에 최대한 가깝게 이동할 수 있다면 이동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3만 광년 떨어진 다른 문명까지 이동하는데 한 사람의 평생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 걸려 실질적인 우주 여행이 가능하겠지만 이들을 떠나 보낸 지구 입장에서 이들이 가장 가까운 문명을 탐사하고 돌아오기까지 실제 이들이 이동한 거리인 6만년에 해당하는 시간이 흐른다는 내용입니다. 때문에 어떤 문명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한다면 이동하는 사람들 스스로는 평생에 걸쳐 아주 멀리 떨어진 우주 곳곳을 이동하며 살아갈 수 있겠지만 이들을 떠나 보낸 지구는 이들이 다시 지구에 돌아오기까지 걸릴 엄청난 시간 동안 유지될 문명의 안정성이 필요하며 우주 곳곳을 누비며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한 외계 문명이라면 그런 오랜 세월에 걸친 문명의 안정성을 달성했을 겁니다. 때문에 우리가 이런 오랜 세월에 걸쳐 살아 남은 우주 문명을 마주한다면 이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살아남기 위한 낮은 공격성, 배려, 이해와 같은 특징들을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여러 과학 소설에서 이런 가설에 기반한 특징을 갖춘 외계인이 등장합니다. 가령 프로젝트 헤일메리에는 지구에 닥친 문제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한 외계 문명이 비슷한 접근 방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슷한 장소에 나타나 서로를 마주하는데 이들은 선의에 기반해 서로의 생존 환경을 파악하기 위해 대기 구성 물질과 기압을 서로의 방식으로 전달하며 각자는 이 의도를 이해하는데 성공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또 다른 이야기에는 지구 문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발전한 외계 문명이 등장하고 이들과 함께 여러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며 여기에는 지구인과 비슷한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종족과 대면하는 사건도 있습니다.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또 다른 외계 문명은 모두를 위험에 몰아넣지만 결국 반복되는 시간에 영원히 갇히는 운명을 맞이하며 지구 문명 역시 오랜 세월에 걸친 문명의 안정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문명을 발전 시킨 그 특유의 공격성을 제어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외계 문명이 오랜 세월에 걸쳐 너무나 안정적으로 존속한 나머지 겪어 온 문제들 역시 함께 배웁니다.
우리는 적어도 공개된 바에 따르면 외계 문명과 접한 적이 없으므로 이런 모든 이야기는 오직 인간의 관점에서 추측과 가정에 기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외계인은 마치 우리 입장에서 신과 같아 마치 우리가 지나가는 다람쥐와 이야기를 시도하려는 상황과 비슷할 수도 있고 또 우리가 상상해 왔던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 혹은 아예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배경에서 지구 문명이 다른 외계 문명을 가정하고 이들과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가정은 어쩌면 너무 나이브한 접근일 수 있다고 봅니다. 칼 세이건의 외계 문명에 대한 의견은 낭만적이지만 오직 상상 속의 존재에게 선의, 이해, 배려 같은 인류 관점에서의 개념이 존재하고 이들에 의해 문명이 오랜 세월에 걸쳐 안정적으로 존재했으리라는 가정은 적어도 외계 문명이 지구 문명과 비슷한 경로와 경험을 통해 발전했으리라는 또 다른 가정 위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지구 문명의 공격성에 물들어 존재를 확인하지도 못한 외계 문명에 대한 공격성에 기반한 생각을 더 쉽게 수긍하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우리들이 살아남아야 한다면 오랜 세월에 걸쳐 자멸하지 않을 안정적인 문명을 가정하기 보다는 암흑의 숲 이론에 기반해 우리가 다른 문명을 적은 비용으로 공격할 수 있는 기술 수준을 달성한 다음에는 우리들 역시 암흑의 숲 속에 있는 다른 사냥꾼들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 영상은 결국 암흑의 숲 속에서 서로를 파멸 시키지 않고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의 의도를 이해하고 조율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먼저 밝은 곳으로 나아가 자신을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생존을 위해 암흑의 숲 속에 자신을 숨긴 채 다른 문명의 파멸을 댓가로 생존하는 문명이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 올바른지, 또는 필요한지 역시 생각해볼 만한 주제입니다. 여전히 아직까지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문명이 우주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암흑의 숲 이론에 기반한 행동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얻어낸 생존과 지구 문명의 발전이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는 제 공격적인 의견에도 불구하고 달리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