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감을 마주하기
무력한 감정을 무시하지 마세요. 어두운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세요. 일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계가 현대에 거 가까워질수록 이전 시대에 만연했던 필요 이상의 상명하복 문화는 조금씩 약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저 같은 나사 빠진 사람이 좀 더 이전 시대에 태어나 일하기 시작했다면 어쩌면 어느 조직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쫓겨나 지금보다 훨씬 더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을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지금 상태가 비참함과 그리 거리가 멀다고 보기도 어렵지만요. 명백히 잘못된, 그리고 이상한 명령을 곧이 곧대로 수행한 다음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를 제 스스로가 온전히 뒤집어 쓰기를 반복하는 것이 당연한 세계는 아마 살아가기 그리 만만한 세계는 아니었을 겁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전 시대에 비해 조금은 명백히 이상하거나 명백히 잘못된 명령을 수행하기에 앞서 제 생각을 말하고 만약 이 말이 통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다면 명령을 조금은 덜 이상하고 조금은 덜 잘못된 모양으로 바꿔 수행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전에 비해 조금은 덜 이상한 명령을 수행하며 이 명령을 정의하는데 제가 직접 의견을 내고 기여했기에 이 명령의 진의를 파악하고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의되지 않은 동작을 정의할 때 보다 적극적이고 또 구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이전 시대에 좀 더 강력한 상명하복 문화에서 같은 일을 수행했다면 명령을 수행하는 동안 나타난 정의되지 않아 의사결정이 필요한 모든 상황 하나하나를 제 관리자에게 들고 가 하나하나 결정하도록 했을 겁니다. 상황 상 이런 행동은 당연하고 또 회사 생활을 지속해 감에 있어 제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회사 관점에서 이런 행동이 만연할 때 성공적으로 회사 전체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저 한 명이 살아남기 위한 행동과 회사가 임무를 완수하고 수익을 내기 위한 행동은 서로 상당히 다를 겁니다.
제가 수행하는 업무를 제가 직접 설정하거나 조율한 결과 그 목적을 온전히 이해한 상태로 수행할 때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수행할 때 사이에는 결과는 어떨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 과정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군에서는 이를 이른바 ‘임무형 지휘 체계’라고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사례를 들어 보면 이렇습니다. 만약 한국에 전쟁이 일어나 자신이 업무에 사용하던 스토리지를 분리해 이를 들고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임무를 받은 군인이 있다고 해 보겠습니다. 이 군인이 받은 임무는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컴퓨터에서 스토리지를 분리한 다음 자동차를 타고 서울공항으로 이동해 미국으로 가는 수송기에 탑승하는 것입니다. 일단 수송기가 안전하게 본국에 도착하면 그 다음의 임무를 이어 수행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이유로 서울공항이 파괴되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이 군인이 자신이 받은 임무를 그대로 수행한다면 스토리지를 챙겨 일단 서울공항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서울공항은 더 이상 수송기가 이륙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므로 여기서 더 이상의 임무 수행은 불가능해집니다. 이제 누군가에게 현재 상황을 보고하고 새 임무를 부여 받을 때까지 대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임무는 지연되고 상황은 계속해서 변할 것이 분명하므로 새로운 임무를 받는다 하더라도 이 임무 역시 실제 상황과 맞지 않아 수행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이미 독일군이 임무형 지휘 체계를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임무형 지휘 체계는 간단히 임무의 실제 목적을 지시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절차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꿔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임무를 가지고 같은 상황을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이제 이 군인이 수행해야 하는 임무는 스토리지를 분리해 어떻게든 본국으로 돌아가 안전한 장소에 스토리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제 임무의 전체 그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 변하는 상황은 이미 전달 받은 임무 수행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사용하던 기계에서 스토리지를 분리한 다음 차량으로 서울공항까지 이동합니다. 그런데 서울공항으로 이동하던 도중 서울공항에서 더 이상 수송기가 이륙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정보를 받습니다. 이전 상황이라면 이제 이 상황을 누군가에게 보고하고 그 다음 임무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이제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임무는 스토리지를 안전하게 본국에 가져가는 것이므로 누군가에게 보고하고 그 다음 임무를 기다리는 대신 유연하게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탐색할 수 있습니다. 이동 가능한 다른 후방의 군용 비행 기지를 수소문해 그리로 이동한 다음 어떻게든 수송기에 탑승한다면 누군가에게 보고하고 그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대신 임무는 계속되고 결국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겁니다. 임무형 지휘 체계는 그 한계가 지적되기도 하지만 올바른 상황에 사용된다면 추가 개입을 최소화한 채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입니다. 우리들이 회사에서 지시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만약 지시를 받을 때 지시가 이 지시를 수행함에 따라 그려질 더 큰 그림의 일부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해 그 목적을 이해하고 이런 이해에 기반해 스스로 판단을 통해 지시의 문제점을 지시를 접수할 시점에 관리자와 의사소통을 통해 조정한다면 지시를 수행할 때 자주 등장하는 바퀴벌레 같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리 정의되지 않은 의사결정이 필요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큰 그림에 연결되는 지시의 목적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목적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 안에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해 업무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지시하고 업무를 수행하게 만들면 업무를 수행하는 개개인이 큰 그림을 이해하고 자신의 업무를 좀 더 주도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적절히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방식을 바로 적용하려고 시도하면 초반에 혼선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관리자들만큼 전체 그림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을 수 있어 큰 그림을 설명해도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어느 수준의 의사결정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고 또 어느 수준의 의사결정은 보고와 지시를 받아야 할 지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기준은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기에 초반에 훈련이 부족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팀 전체가 새로운 지시 수행 방법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이 규칙이 궤도에 오르면 관리자 입장에서 일하기 상당히 편해집니다. 온갖 정의되지 않은 문제를 마주하고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팀 구성원 전체의 업무를 필요 이상 깊이 이해하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한때 관리자의 역량 중 하나로 모든 구성원들의 업무를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던 시대가 있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이런 시도는 관리자가 수행해야 하는 업무의 우선순위를 떨어뜨려 정작 관리자가 수행해야 할 업무를 지연 시켜 팀의 퍼포먼스를 떨어뜨립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큰 그림을 보고 목적에 따라 움직이며 어지간한 의사결정을 스스로 하기 시작하면 관리자 입장에서 주요 의사결정과 진행 상황을 파악하기만 하면 되므로 이전 수준의 높은 이해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따라 관리자가 실제로 수행해야 하는 다른 팀과의 업무 조율, 팀이 겪는 문제 해결 등의 실제 관리 업무에 집중할 여지가 늘어납니다. 동시에 구성원들의 업무 만족도도 올라가 어느 날 갑자기 ‘우진님.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라는 말을 듣고 함께 들어간 회의실에서 갑작스런 퇴사 의사를 전달 받아 고통 받을 일도 줄어듭니다.
이 개념이 항상 관리자들에게 잘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구성원들에게 느슨한 지시를 통해 일을 맡긴 다음 그저 지켜보고만 있으면 불안해하고 또 팀을 장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C레벨 패닉에 빠진 높은 분들로부터 갑작스레 받는 랜덤 질문에 즉시 답변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되어 있을 때 자신이 유능하게 보이고 또 팀을 제대로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받아들이는 정보 수준이 다르고 또 그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다르며 이에 따라 그들 각각이 생각하는 것, 생각하는 방식들이 모두 다르기에 랜덤 질문에 갑작스레 완벽한 대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의 관리자들은 팀을 온전히 장악하고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랜덤 질문에 완벽한 답변을 해 유능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모든 구성원들의 업무를 파악하고 또 이들에게 개입 여지가 거의 없는 형태의 지시를 내리곤 합니다. 여기에는 지시를 수행하는 구성원이 개입해 의사결정을 할 여지가 거의 없어 의사결정이 필요한 상황 마다 관리자의 개입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황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지므로 관리자 입장에서 좀 바쁘기는 하겠지만 모든 사람의 업무를 꽤 깊이 파악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한 대가는 위에서 설명했습니다. 또 이로 인한 대가 중 눈여겨볼 것은 구성원들이 자신이 지시에 개입할 여지가 거의 또는 전혀 없기에 그들이 생각할 때 분명 뭔가 이상하거나 잘못된 지시라고 생각하더라도 개입해 조정할 여지가 없어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점입니다. 또한 협업 부서들도 어떤 의사결정도 직접 수행하지 못하는 게임디자이너를 신뢰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 담당 게임디자이너를 찾아가는 대신 바로 관리자에게 찾아가 의사결정을 얻은 다음 담당 게임디자이너에게 전달하지 않고 그냥 업무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사기가 높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일 겁니다.
저 자신은 지독하게 게으른 사람이고 또 평균 미만의 지능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제가 구성원들의 업무를 모두 파악하고 있기는 불가능하며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을 요청할 때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 수준에 도달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의 업무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들에게 지시하고 그들이 작성한 문서를 살펴보고 아쉬운 점을 개선하도록 가이드 할 수는 있겠지만 일단 협업 부서와 본격적으로 업무가 시작되면 제가 개입할 때마다 오히려 진행이 늦어질 뿐입니다. 어지간하면 개입할 일을 만들지 않고 구성원들 스스로가 직접 의사결정을 하도록 독려합니다. 의사결정이 필요한 상황을 전달 받고 그들의 생각을 들은 다음 즐겨 하는 질문은 ‘아무개님은 스스로의 제안이 옳다고 생각하세요?’인데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결정해 수행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는 질문입니다. 그들의 결정은 어쩌면 옳지 않을 수 있고 제가 보기에 직관적으로 뭔가 이상한 점을 찾아낼 수 있을른지도 모릅니다. 정도에 따라 즉시 개입해 상황을 완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면 일단 물러나 직접 의사결정한 결과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고 그 결과를 수습하는데 도움을 주는 쪽이 중장기적으로 구성원들 개개인에게 더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제가 더 열심히 그들의 업무를 파악하려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상황에서 이런 정책은 나름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프로젝트를 떠나기로 결정할 때 저와 함께 그런 방식으로 일하던 구성원들에게 자칫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제가 제 방식으로 그 프로젝트에서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큰 그림은 커녕 당장 우리 팀이 수행할 업무를 지시하기에 앞서 업무 각각은 저 자신을 설득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종종 희미한 비전을 마주하며 납득하기 쉽지 않은 각각의 지시 사이에 제 멋대로 연결을 만들어 그럴듯한 거짓말을 잘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솔직히 C레벨 패닉으로부터 발생한 극도로 짧은 사고에 의해 발생한 별 의미 없는 업무들이 갑자기 발생해 이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이들이 프로젝트에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를 지어내 사람들을 설득하곤 했습니다. 저 자신은 이 말들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잘 알고 있었지만 일단 이런 아주 그럴듯한 거짓말을 통해 앞뒤가 잘 맞지 않는 얕은 사고의 결과로 비롯된 지시들을 연결하는 논리를 만들어내고 나면 저 자신도 이 논리에 기반해 행동하기 시작하고 얕은 사고에 기반해 발생한 장기적으로 프로젝트와 회사에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은 명령을 수행하는데 불만이 줄어듭니다. 이런 설명을 들은 분들이 과연 정말로 이 설명에 납득했기 때문에 분명 급작스럽고 일관되지 않아 보이는 지시를 군소리 없이 수행하기 시작하기로 결정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제 거짓말에 속아서, 아니면 제가 이런 거짓말이라도 지어내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하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런 썩 효율적으로 보이지는 않는 이상한 지시들을 여러 팀에 걸쳐 수행하게 만들기 위해 그런 설명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습니다. 짧은 주기마다 그림은 완전히 뒤바뀌었고 미래를 예측해 업무를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마일스톤에 개발한 기능은 고작 몇 주 후에 내려진 지시에 의해 완전히 수정되어야만 했고 이 새로운 요구사항을 몇 주만이라도 일찍 알 수 있었다면 재작업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말하며 제게 항의하는 엔지니어에게 할 말이 바닥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프로젝트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던 제 후임은 저와 상당히 다른 스타일로 업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분의 업무 지시 범위는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업무 진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의되지 않은 동작을 정의하기 위한 의사결정에 구성원 개개인이 직접 판단하기 보다는 각각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쪽을 선호했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개입하지 않은 의사결정을 보통 존중하지 않곤 했습니다. 더 짧은 주기마다 보고해야 했습니다. 위에 설명한 대로 이에 따라 관리자가 권한을 가지고 수행해야 하는 업무들이 자연스레 수행되지 않곤 했는데 이런 업무들은 마일스톤 계획이나 개발 목표상에 명시되지는 않으므로 이런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황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협업 부서들이 좀 더 적대적으로 변하고 또 협업 부서들이 담당 게임디자이너에게 찾아와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대신 직접 중간관리자에게 찾아가 의사결정을 획득한 다음 이를 담당 게임디자이너에게 공유하지 않고 그냥 업무를 진행해 버린 결과 전혀 예상하지 않은 모양의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더 자주 노출되며 사기가 계속해서 떨어질 뿐입니다. 구성원들의 사기 역시 문서와 빌드로 보고를 수행하는 과정에 전혀 드러나지 않으므로 문제로 인식되지도 않습니다. 프로젝트를 떠난 다음 몇 달에 걸쳐 메신저를 통해 하소연을 듣고 또 술자리에서 어려움을 듣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저 죄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제가 무책임하게 프로젝트에서 떠났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몇 개월에 걸쳐 그들 역시 거의 대부분 프로젝트를 떠났습니다. 제가 떠나고 나서 몇 분기가 지나기도 전에 팀 거의 전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제가 중간관리자로써 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얼마 전 팀원님과 저녁을 먹다가 요즘 그 분이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가장 최근에 저는 더 이상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인디비주얼 컨트리뷰터로써 일하고 있을 뿐입니다. 의도하지 않게 저에게 명시적으로 부여된 업무 바깥의 영역에 관여하지 않도록 조심하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보다 조금 더 오래 일했다고 해서 팀원의 권한이 확장되지 않습니다. DM이 하나뿐인 안전한 의사소통 창구일 때 이를 막을 수 없다에 언급한 “우진님은 무슨 치외법권이에요?” 같은 소리를 들을 위험도 있습니다. 이 말을 이미 들은 이상 저는 팀원으로써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중이기는 하지만 회사는 이 시간을 업무 시간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잠시나마 팀원으로써 본분을 약간 벗어나 제 의견을 말하곤 합니다. 다만 항상 상대에게 지금 당신이 밥 먹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은 이 프로젝트에서, 나아가 이 회사 전체에서 가장 회의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염두하라는 경고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나서 상대의 하소연을 듣습니다. 마일스톤을 거듭하지만 가시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의 빌드, 계획을 수립했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보류되는 바람에 같은 일을 미래에 다시 수행하려고 할 때 변화한 상황에 맞춰 같은 요구사항을 항상 재작성해야만 하는 상황,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상황을 습관적으로 마주하면서도 이에 대한 개선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모습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런 상황의 개선에 기여할 수 없는 점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는 이야기 역시 듣습니다. 기시감이 듭니다. 어딘가에서 이런 일을 겪었던 것 같고 심지어 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다가 짧게 그 분이 한동안 말씀하신 이야기를 단어 하나로 거칠게 요약했습니다.
무력감. 시간이 흘러 업계 전체가 성숙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업계의 태동기에는 이미 전설이 된 채 더 즐거운 일을 찾아 업계를 떠난 천재들이 업계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들의 빈자리를 저 같은 흔해 빠진 보통 사람들이 대신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업계의 성장기에는 이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가 고객으로써 게임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현대에 가까워지며 자연스럽게 이 직업은 고객으로써 접근하기 보다는 생계를 위한 직접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변화를 달갑게 여기지 않기도 합니다. 이제는 아무도 해 본 사람이 없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특정 동작을 그 기능의 이름으로 설명할 때 말이 통하지 않자 그 동작을 직접 하나하나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때 더더욱 그런 달갑지 않음이 표면에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직업을 생계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늘어난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들이 일생의 꽤 많은 부분을 바쳐 일해 온 업계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이를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동작을 더 잘 설명하고 그 동작이 지난 세월에 걸쳐 고객들의 요구와 여러 문제를 겪으며 변화해 온 과정을 잘 설명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 설명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개인적으로는 게임의 여러 부분들이 변화해 온 과정을 되돌아보고 더 잘 이해할 기회를 얻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스스로 다른 게임의 고객이며 스스로 게임에 취향이 있고 이를 취미로써, 아니면 여가의 일부로써 받아들이는 분들 역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업무를 지시할 때 큰 그림과 이 업무 사이의 연관을 설명하고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의사결정의 범위를 적절한 범위 안에서 넓혀줄수록 더 잘 동작합니다. 스스로 더 자신 있게 정의되지 않은 동작에 대한 의사결정을 합니다. 이런 업무 스타일로부터 협업 부서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어 관리자를 찾아가는 대신 직접 담당 게임디자이너에게 찾아와 의논하고 방침을 결정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마주하며 이를 마치 자신의 의도였던 것처럼 수습하기 위해 고통 받을 일도 없습니다. 중간관리자는 그저 이 상황이 더 잘 돌아가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다른 부서의 중간관리자들이 놀라지 않도록 조율하며 문제가 일어아면 이를 해결하는데만 관여할 뿐입니다. 더 게으르게 행동하면서도 이런 스타일을 선호하는 구성원들의 사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고객으로써 자신, 게임을 여가로 즐기며 자신의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모양의 지시를 받고 이에 개입해 수정할 여지가 없을 때, 큰 그림과 자신의 업무 사이에 연관성을 납득하지 못할 때, 큰 그림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희미한 비전조차 발견할 수 없을 때, 그리고 중간 관리자로부터, 혹은 자기 스스로 협업 부서 구성원들을 설득할 거짓말을 만들어낼 수조차 없을 때 크게 힘들어합니다. 이들은 이런 상황에 생계를 위해 그저 지시를 수행하는 사람들과 달리 이 상황을 개선하고 싶어하고 이 상황을 개선하는데 어떤 기여를 하고 싶어합니다. 그럴 수 없을 때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럴 수 없을 때 무력감을 느낍니다. 이 정의가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일단 저 자신은 그랬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이 상황에 느끼는 그 분의 감정을 ‘무력감’이라고 정의한 다음에는 제가 그런 무력감을 느낄 때 했던 잘못된 행동들, 무력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정신력을 중요하게 여기던 제가 이런 상황에 즐겨 인용하곤 하는 어떤 사람처럼 생각하려고 애쓰던 경험, 이로 인해 제가 겪은 결과와 저에게 남은 현실을 짧게 이야기해 봅니다. 회사는 저녁 먹는 시간을 업무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최대한 짧게 마무리하고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또 나이 먹은 사람이 이딴 소리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이게 길어지기까지 하면 큰일입니다. 회사가 저녁 시간을 업무 시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고마울 따름입니다. 핵심은 무력감을 무시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력감을 느끼는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 백 명도 훨씬 넘는 프로젝트 전체 구성원들 중 단 한 사람의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권한 안에서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거의 가망 없는 목표에 자신을 몰아 넣고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지기를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저 백 명을 훨씬 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일 뿐이며 그런 개인이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프로젝트 전체에 할 수 있는 기여 역시 그 정도 수준으로 제한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여러 사람 분의 권한을 가진 분들은 자신의 위치에 맞는 영향력을 행사에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가능성이 있지만 인디비주얼 컨트리뷰터인 우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종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패기 넘치는 개인이 프로젝트의, 회사의 문제를 바로잡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이들의 장르는 판타지입니다. 실제 세계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매체를 보며 잠깐 동안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겠지만 자신을 그들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그들의 수준과 자신을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그럴수록 무력감은 깊어지고 이런 어둠의 감정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 아니라 마음에, 뇌에 물리적인 흔적을 남깁니다. 그리고 이 흔적은 앞으로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무력감은 이를 견디려고 하고 또 이에 함부로 맞서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어린 저는 그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범위를 넘기는 행동들은 오가는 리퍼쳌 속에 싹트는 카르마에 소개한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나쁜 평가를 만들어냈습니다. 마치 오래된 영화 매트릭스 도입부에서 나오는 매트릭스에 갇힌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들을 가두고 있는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설명처럼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오인하고 이에 저항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 무력감은 깊어지고 결국 이런 여러 경험들은 저 자신에게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히 남아 있는 물리적인 흔적을 남겼습니다. 지금 무력감을 느끼는 구성원들이 그 무력감을 무시하려 하거나 무력감에 대항하려 하거나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면서까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다가 상처 입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우선 무력감의 존재를 인정하고 무력감에 함부로 대항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개인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기에 함부로 무력감에 대항하기 위해 한 행동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와 평가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무력감을 유발한 상황에 대한 책임은 높은 분들, 그리고 회사가 집니다. 우리들이 그 책임을 지려다가 망가지면 안됩니다. 세월은 길고 기회는 많습니다. 이번 무력감에 자기 자신을 내맡겨 스스로 망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 상황은 높은 사람, 더 오래 일한 사람, 회사 등의 여러 주체에 의해 긍정적인 방향으로든 부정적인 방향으로든 수습될 겁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들은 이 상황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그 짧은 저녁 시간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저 자신 역시 겪고 있는 그 무력감, 그 어두운 감정으로부터 저 자신을 잘 추스리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