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가기 위한 냉동은 불필요하다

두 달 전 공유한 6만년에서 상대성이론에 따른 시간 수축으로 인해 인류가 광속에 가깝게 가속하면 인간의 한 평생에 비해 훨씬 짧은 시간을 사용해 우주 곳곳에 도달할 수 있지만 상대적인 시간 수축을 겪지 않는 나머지 인류에게는 같은 시간이 실제 다른 은하가 지구로부터 떨어져 있는 거리 만큼에 해당하는 시간이 경과해야만 하며 3만 광년 떨어진 가장 가까운 외계 은하를 탐사하고 돌아오는 시나리오에서 탐사 참가자들은 그들의 평생에 비해 훨씬 짧은 시간 후 탐사를 완료하고 지구에 돌아올 수도 있지만 그 사이에 지구는 은하까지 거리의 적어도 두 배에 해당하는 6만년이 흐른 다음이라는 사실을 설명한 우주문명을 위한 조건이라는 영상을 소개했습니다.

인류가 아광속 또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며 은하 곳곳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서로의 모행성, 그리고 여러 은하계와 소우주 사이에 상대적인 시간 인식으로 인한 현실은 제 머릿속에서 여전히 소설 삼체 3권 끝부분에 머물러 있습니다. 소설의 설정 상 우주에서 광속으로 이동한 항적에는 영구적인 광속의 변화가 일어나 누군가 광속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도 있지만 원하지 않게 이 광속이 느려진 항적 안에 빠져 영원히 탈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광속이 느려진 공간에서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전자기력에 의해 동작하는 모든 장치들이 의도대로 동작하지 않게 되어 우주선을 구성한 장비를 이전과 같이 제어할 수 없게 되어 이 상황에 대비한 또 다른 시스템을 준비하지 않는 이상은 이 공간으로부터 인간의 평생보다 짧은 시간 안에 탈출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위 영상의 아이디어를 겹치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할 수 있게 된 인류는 그 영역을 우리 은하 바깥으로 넓혀 가겠지만 은하계 곳곳에 걸쳐 거주하게 된 인류 각각은 이제부터 서로 완전히 다른 공간 뿐 아니라 완전히 다른 시간에 걸쳐 살게 되며 이들은 서로 만날 수 없을 뿐 아니라 서로 통신할 수도 없게 됩니다. 종종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소설과 영화에서 인간의 한 평생보다도 더 먼 거리에 있는 서로 다른 종족들이 한 곳에 모여 여러 사건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이런 사건은 어쩌면 정말 일어날 수도 있을 겁니다. 사건을 구성한 서로 다른 종족들은 서로 다른 은하로부터 출발해 같은 장소, 같은 시간대에 서로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일으킨, 혹은 겪은 사건이 이로부터 각 종족의 평생보다도 더 긴 시간과 거리만큼 떨어진 우주의 다른 시간과 장소에 영향을 끼치기는 어려울 겁니다. 어쩌면 스타워즈가 시작될 때 스크롤되는 우주의 역사는 사실 이 역사 정보가 전달될 수 있는 아주 좁은 은하계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며 관점을 돌려 우주 전체로 보면 무슨 역사라고 보기에도 뭣한 아주 좁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어난 일일 뿐 그 바깥으로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겁니다.

이런 설정은 별의 목소리에 잘 나타나 있는데 지구와 우주에 있는 두 사람이 서로 광속으로 이동하는 전파가 닿는 범위 안에서는 서로 의사소통 할 수 있고 서로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비록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광속으로 이동하는 전파라도 점점 더 지구와 우주선 사이를 오가는데 점점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의사소통에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이는 결국 사람 사이 마음의 거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표현합니다. 가령 2023년 겨울 현재 보이저 1호는 지구로부터 빛의 속도로 22시간 31분 떨어져 있습니다. 보이저 1호에서 지구를 향해 신호를 보내도 22시간 30분 후에 지구에서 이를 수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구의 어느 부분으로 전파가 도달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구 곳곳에 설치된 여러 안테나를 통해 미약한 신호를 받아야만 하므로 실제 보이저 1호와 의사소통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방향 만으로도 이보다 훨씬 길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둘 중 우주에 있는 사람이 이제 빛의 속도로도 한 인간의 평생보다 더 먼 거리로 이동하면 이들은 서로가 마지막 순간에 살아 있었다는 정도의 정보를 알 수는 있지만 사실상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며 이 세계는 공간적으로도, 그리고 시간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한편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문득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주인공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동면을 통해 지구 근처에 머물며 계속해서 미래로 이동하기를 반복하는 행동은 어쩌면 광속 이동이 가능해지면 더 이상 불필요한 행동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소설에서도 가족들은 한 인간의 평생 안에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먼 우주에 있고 현재 기술로 거기 도달할 수 있을 가능성은 없으며 그나마 더 빠른 이동 기술의 발달을 기다리며 동면을 취해 아주 조금씩 미래로 이동하기를 반복했지만 소설 속 이야기가 진행되는 현재 기준으로 여전히 그렇게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고 또 주인공의 신체는 이제 동면을 반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노화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미 이 시점에도 지구 근처의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미 가족들은 빛으로도 닿을 수 없는 우주 저 편에서 각자의 일생을 마무리했겠지만 처음에 소개한 광속 이동으로 인한 시간 수축으로 인해 서로의 공간이 멀어진 만큼 서로의 시간도 완전히 달라져 지구 기준의 시간을 기준으로 한 우주 전체의 시공간 스냅샷을 본다면 아직 가족들은 우주 저 편의 새로운 행성계에 아직 도착하지조차 않았을 수 있습니다. 가족들은 겨우 몇 시간 후 새로운 행성계에 도착하겠지만 이는 상대성이론의 시간수축에 의한 결과로 이 시점에 지구는 이미 아주 기나긴 시간이 흐른 다음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지구 기준의 시간 상 어느 미래에 광속 이동이 가능해진다면 지구 기준으로는 이미 한 인간의 평생보다 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상대적인 시간 상으로 가족들은 아직 우주 저 편의 행성계에 도착하기 이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어느 시점에 인류의 기술로 광속 이동을 시작해 우주 저 편의 행성계에 도착한다면 가족과 주인공 각자가 겪은 서로 다른 시간 수축으로 인해 서로의 시간대가 일치한다면 가족들은 오늘의 그들과 수 백 년 동안 동면한 주인공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에게 그런 광속 이동 기술이 있다면 미래로 이동하기 위한 방법으로 동면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집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삼체 3권에서 주인공이 미래로 이동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안전한 동면 기술 뿐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동면을 통해 미래로 이동하기를 반복하며 고통스러운 역사를 건너뛰어 오직 주인공들을 위해 펼쳐진 듯한 작위적인 세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고 이런 특징이 삼체 시리즈에 뒤로 갈수록 불편한 느낌을 받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소설 가장 뒷부분 처럼 이미 인류가 광속 이동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여기부터 인류는 미래로 이동하기 위해 더 이상 동면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광속에 충분히 가깝게 움직일 수 있다면 동면 대신 상대 시간을 계산해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광속으로 이동한 다음 멈추면 광속 이동한 자기 자신을 제외한 세계는 시간 수축을 겪지 않아 상대적으로 더 긴 시간이 흘렀을 것이고 이는 동면과 마찬가지로 미래로 이동하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광속 이동은 인류가 한 인간의 평생보다 짧은 시간 안에 전 우주 곳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 주겠지만 이는 동시에 광속 이동을 시작하기 전 인류 문명과는 영원히 다른 시간대의 다른 세계로 이동하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광속 이동은 인류가 전 우주에 걸쳐 살게 되더라도 이들은 결코 같은 시간대에 살아갈 수 없으며 서로 멀리 떨어진 거리만큼 서로 멀다 못해 서로 완전히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게 되며 이는 인류가 우주 문명으로 도약한다 하더라도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주 곳곳에 떨어져 사는 여러 종족이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모여 어떤 사건을 겪더라도 전 우주 관점에서 이 사건은 아주 좁은 범위에만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세계에 미래로 이동하기 위한 동면 기술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필요한 만큼 광속으로 이동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