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말라면 하지마루요
명시적인 기록과 증명에 기반한 근태 기록은 프리라이더의 입지를 줄이지만 조직 전체에 큰 압력을 줍니다.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머릿속에 생각을 떠올리면서 이 생각이 너무 낡았다는 의견이 떠올랐습니다. 현대에 이런 생각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또 현대에 이런 생각이 실제 생활에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르며 중요한 것은 일을 해 냈는가, 그렇지 않은가 일 뿐 그 일을 어떻게, 또 어디서 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여전히 우리들은 먼 옛날 우리들의 조상으로부터 유래한 사회에 살고 있으며 하루하루 시간은 미래로 흘러 가지만 우리들의 생각과 고정관념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사회의 오래된 고정관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이 고정관념을 기준으로 주변을 판단하는 사람들에 대응하기 위해 그런 고정관념에 대강 동의하는 것처럼 행동할 필요는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은 돈을 받고 회사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다면 회사와 맺은 계약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사와 맺은 고용 계약을 살펴보면 회사가 저에게 돈을 주는 댓가로 제가 회사에 제공해야 하는 노동의 구체적인 형태가 명시 되어 있습니다. 먼저 출퇴근 시각이 명시되어 있고 그 중 사실상 대기 상태이지만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휴게시간, 그리고 초과노동에 대한 덩의와 이에 대한 임금 지불 방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 지정된 노동시각이 종료된 다음에도 상황에 따라 노동을 요청할 수 있고 이에 응해야 한다는 사실이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 계약서를 끝까지 읽어 보면 맨 아래에 회사 대표자와 제 사인이 서로가 이 문서의 내용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댓가로 회사는 계약한 주기마다 계약한 금액을 저에게 지불하고 저는 이 돈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회사는 장기적으로 저를 고용해 저를 포함한프로젝트를 성공 시켜 회사에 수익을 내고 위험을 감수한 정도에 따라 더 많은 돈을 벌 목적입니다. 저는 제 스스로의 경험과 능력을 발전 시켜 같은 일을 더 잘 하고 새로운 일에 더 빨리 적응하고 상황을 예상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더 빨리 더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 이를 실행하며 회사가 저에게 돈을 지불하는 댓가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거시적인 목표 이전에 단기적으로는 회사와 맺은 고용 계약에 명시된 여러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데 그 중 하나는 일정한 시각에 출근하고 또 퇴근하는 것입니다. 일정한 시각에 출근해야 하는 이유는 한 사람의 노동 만으로 회사 전체가 굴러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만들어진 이유는 회사가 해결하려는 문제가 한 사람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크기이기 때문이며 일단 한 명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기 시작하면 이 사람들 사이에 협업이 일어나야만 회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원활한 협업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협업 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상태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에는 온갖 방식의 의사소통 수단이 발명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은 직접 이야기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의사 전달 수단을 아직 발명해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때때로 전달하려는 내용의 복잡도에 따라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의사소통 수단인 문서가 있기는 하지만 복잡한 전달사항을 조리 있게 문서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며 이 스킬은 사람들 개개인의 재능에 더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여러 가지 의사 소통 방법에도 불구하고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의사 전달 방식을 선호하며 이 방식이 전통적으로 가지는 여러 장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일하는 환경에서 서로 가장 오래됐고 또 검증된 이 방식을 통해 의사전달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상태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령 오전 아홉 시 까지 출근해야 한다고 고용계약에 명시되어 있는 이유는 이 시각을 기준으로 노동시간을 측정해 회사가 저에게 지불할 비용을 산정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협업을 해야 하는 관점에서는 이 시각부터는 회사 안 또는 적어도 그리 멀지 않은 범위 안에 있어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려고 할 때 서로를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서도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규칙을 좀 오래된 말로 근태라고 줄여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 최근 몇 년이 지나는 사이에 이 개념이 조금 약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한 장소에 모여 서로의 작업에 맞춰 정확히 일해야 하는 업무 형태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조금씩 비동기된 형태로 일할 수 있고 지난 몇 년 사이의 전염병 국면을 보내며 생각보다 많은 일이 비동기 형태로 진행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위치 역시 한 곳이어야만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꽤 다양한 분야의 업무가 인터넷을 통해 전송될 수 있어 굳이 비슷한 장소에 같은 시각까지 출근해 한 공간에 모여 앉아 일해야만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에 따라 이전에는 더 빠른 시점에 진행되었을 의사소통이 의사소통 시점을 약속하고 서로가 같은 기술적인 수단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며 이 의사소통 수단은 대체로 이전에 만나서 이야기하던 방법에 비해 서로의 비언어적 신호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감염병 국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작은 비효율을 용인해 왔지만 감염병 국면이 마무리 되어 가는 상황에서 회사는 이전에 용인하던 비효율을 개선하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원격 근무를 축소하고 회사에 출근하게 만들고 감염병 이전 시대처럼 같은 공간에 모여 최대한 빠른 시점에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포함해 최대한 빠른 시점에 의사소통을 해 이전 시대만큼 효율적으로 업무가 진행되기를 원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고용계약의 앞부분에 적힌 피고용인의 의무이기도 하고 또 좀 낡은 것 같은 표현인 근태의 문제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좋은 근태를 유지하며 출근 시각에 맞춰 나타나고 퇴근 시각에 맞춰 사라지는 것 만으로 업무 진행을 담보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얼마나 더 집중하고 또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하는지에 따라 근태와 업무 효율은 정비례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잠깐 이야기했듯 근태는 근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효율적인 의사소통 방법인 직접 대화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의사소통에 참여할 개개인의 상태를 예측하기 쉽게 만드는 바탕입니다. 만약 조직의 일부가 고용계약에 명시된 시간 조건을 잘 지키지 않는다면 이 사람들이 비록 적절히 의사소통에 참여하고 적당한 수준의 성과를 낸다 하더라도 이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면 이들을 의사소통에 포함시키는 비용이 항상 높아집니다. 오전 9시까지 출근하는 회사에서 오전 10시에 회의를 잡았지만 참여자들 중 일부가 오전 11시에 출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오전 10시에는 회의를 잡을 수 없습니다. 이런 자잘한 비용이 모여 전체적으로 의사소통을 더 느리게 만들고 일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기회를 놓치게 만듭니다.
근태를 온전히 지키기는 물론 쉽지 않습니다. 사실은 불가능합니다. 살다 보면 은행에도 가야 하고 병원에도 가야 하며 세상을 살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다른 직장인들의 업무 시간 안에 회사 밖에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근태는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근태를 지킬 개개인들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개개인들에게 작지 않은 세상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약서에 명시된 시간 중 일부를 회사 밖에서 사용하도록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런데 개개인들을 신뢰해 이런 규칙을 느슨하게 만들어 두면 반드시 프리라이더가 나타납니다. 프리라이더는 그 스스로 규칙을 악용하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프리라이딩 욕구를 일으키고 또 사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뢰에 기반한 느슨한 규칙은 규칙을 통해 구성원들을 배려하고 좀 더 편하게 일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시작하지만 결과적으로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사기를 유지하고 프리라이더 발생을 저지하고 그러면서도 구성원들을 신뢰하는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귀찮고 짜증 나지만 이전까지는 느슨하게 신뢰하던 규칙을 직접 기록하고 증명하는 규칙을 바꿔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며 이 과정의 필요성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과정이 진행될 때마다 상당히 짜증이 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규칙을 최대한 잘 지키려고 많이 노력하고 또 함께 일하는 사람들 역시 그럴 거란 사실을 의심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사실 이런 노력은 어떤 명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이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 일하는 상태가 될 때 협업이 가장 잘 일어나는 것 같으며 이 때 성과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프리라이더들의 행동을 완화하기 위해 이전까지는 의식하지 않고 하던 행동을 기록하고 통제하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면 갑자기 이전 까지는 의식하지 않고 하던 신뢰에 기반한 행동들이 갑자기 관리하고 통제해야 하는 일로 바뀌며 의식적으로 신경을 써야 하는 귀찮고 또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로 바뀝니다.
작년 2022년 직업생활 회고에 밝힌 이직 이후 규모가 작은 회사와 규모가 작은 팀에서 근태 문제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와 맺은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노력했고 그 가운데 여느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때때로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기도 하고 또 그 사이에 하지 못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계약서에 명시된 퇴근 시각 이후에 남아 일을 마무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동의 핵심은 협업하는 모든 사람들을 신뢰하며 프리라이더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스스로의 일에 충실하고 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성과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일 자체에 집중할 수 있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었으며 그렇게 절약한 시간에 시장에 다른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생각해 보며 개인적인 역량을 올릴 수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조직이 커지며 어쩔 수 없이 프리라이더들이 나타났고 앞에서 설명한 이들의 발생으로 인한 조직 전체의 효율, 그리고 사기 저하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이상적으로는 프리라이더들은 신뢰에 기반해 효율적으로 동작하는 조직 관점에서 실패한 채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든 프리라이더로 변할 수 있는 사람들을 채용 과정에서 철저하게 걸러내고 또 이들을 강력하게 제어할 방법이 필요하지만 조직이 작을 수록 이런 방법을 갖추기 어렵고 또 작은 조직에서 프리라이더를 걸러내고 나면 일할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작고 보잘것 없는 회사가 프리라이더를 걸러낼 방법, 이들을 통제할 방법, 이들을 제외한 사람을 채용할 방법 모두를 갖추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채용하고 이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사기를 약간 손해 보면서 조직 전체에 너무 강한 통제를 가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해 왔지만 어느 시점에 저하되는 사기에 의한 손해와 더 강한 통제에 의한 손해를 저울질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자명합니다. 우리는 프리라이더들과 협업 없이는 임무를 완수할 수 없습니다. 이들과 함께 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고용계약에 명시된 의무를 다해야 하고 이를 통제하기 위해 귀찮은 기록과 증명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고용계약에 따른 의무를 철저히 수행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행동해 왔지만 갑자기 이를 회사가 정한 방식으로 기록하고 회사가 정한 방식으로 증명해야 하는 상태가 되면 갑자기 반발심이 들어 회사의 증명 요구에 따르고 싶지 않은 감정 상태가 됩니다. 이전에는 지각이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지각하지 않았고 외출이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알아서 개인 용무에 사용한 시간 만큼 마저 일했으며 집중을 유지하고 흡연 같은 사사로은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음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이 모든 행동을 기록하고 증명해야 하는 순간 갑자기 무의식적으로 하던 모든 행동이 의식적인 모양으로 변하며 별로 따르고 싶지 않아집니다.
이전에는 회사에서 이런 정책을 만들어 실행할 때 이 규칙을 지키기 어려워 하는 분들을 배려해 회사에는 비밀이었지만 회사가 요구하는 증명 방식을 흉내내 그런 분들을 배려한 적이 있습니다. 제 관점에서는 조직 구성원들 중 프리라이딩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음을 잘 알고 있지만 회사는 이를 알 수 없으므로 기록과 증명을 요구했는데 이는 출퇴근에 일어나는 자잘한 예측 밖의 상황을 실제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어 별로 해결할 필요 없는 문제를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전에 신뢰에 기반해 행동할 때는 대중교통이 조금 늦는 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몇 분 늦게 올 뿐입니다. 하지만 회사가 개개인의 행동을 기록하고 증명하도록 요구하면 대중교통이 늦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뀌어 사람들에게 필요 없는 압력을 가합니다. 이런 상황은 싫지만 회사에 거역할 수는 없어 회사가 요구하는 증명 방법을 기술적으로 흉내내 이들의 문제를 문제로 만들지 않곤 했고 덕분에 생산성에 이익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이직 이후 작은 조직에서 한동안 이런 문제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아 왔지만 이제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을 이해하지만 여전히 나쁜 감정이 드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 말라면 하고 싶은 것처럼 갑자기 출퇴근 시각을 기록하고 위치와 네트워크를 통해 이를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자 여전히 회사에 거역할 수는 없기에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행동하며 이 요구에 따를 작정입니다. 하지만 이를 통한 또 다른 형태로 일어날 조직의 사기 저하와 전혀 해결할 문제가 아닐 상황이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다가오게 만드는 압력이 조직에 작용하는 상황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지는 고민입니다. 아무 말도 안 하면 알아서 잘할텐데 갑자기 지정된 방법으로 행동을 증명하라면 전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심보가 문제인지 아니면 프리라이더를 채용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상황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