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참다 성불하다

2024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드디어 샤를 르끌레어가 우승해 드디어 성불해버렸지만 게임 자체는 지독하게 재미없었습니다. 2026년 규정 변경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똥 참다 성불하다

작년 서기 2023년 F1 모나코 그랑프리를 보고 든 생각은 이건 마치 똥 참기 게임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나코는 역사 깊은 시가지 서킷으로 속도를 낼 수 있는 포인트가 적고 전체적으로 길이 좁아 모터스포츠에 흔히 기대하는 추월을 노리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2010년대 이전 재급유를 하던 시대에는 차량 크기가 지금보다 더 작았기 때문에 모나코에서도 추월할 여지가 있었을 것 같지만 선수와 핏크루들의 안전을 위해 재급유가 금지되어 더 큰 연료탱크를 장착해야만 했고 또 다양한 에너지 회수 장치들을 도입하면서 차량은 점점 커져 바퀴가 차 밖으로 튀어나와 있어 시각적으로 작아 보이지만 자동차가 차지하는 전체 면적은 이전에 비해 훨씬 커집니다. 이렇게 큰 차량이 모나코 같은 좁은 시가지 서킷을 달리다 보니 물리적으로 추월이 거의 불가능해졌고 레이스는 거의 퀄리파잉 때 결정된 출발 순서가 거의 그대로 유지될 뿐이어서 누군가는 그냥 퀄리파잉 결과로 우승자를 결정한 다음 일요일에는 모나코 관광이나 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모나코 그랑프리는 지난 2022년에는 세르지오 페레즈가, 작년 2023년에는 막스 베르스타펜이 우승했는데 둘 다 추월에 의한 우승보다는 핏스탑 타이밍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습니다. 2022년에는 비가 많이 내리는 상황에서 핏스탑을 여러 차례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페라리가 큰 실수를 저지르면서 세르지오 페레즈가 맨 앞으로 나왔고 타이어가 완전히 박살 나도록 달렸지만 바로 뒤에 있던 사인츠가 페레즈를 결코 추월할 수 없었고 결국 페레즈가 우승을 차지합니다. 2023년에도 비가 내렸고 비에 맞춰 올바른 시점에 올바른 타이어를 사용하지 않은 팀들은 완전히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부 추월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대체로 노면이 젖어 있는 상황에서 올바르지 않은 타이어를 사용하며 기회를 노리던 팀과 그렇지 않은 팀 사이에 일어난 추월이어서 어느 정도는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추월이었고 각각의 추월이 경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각 팀의 전략은 최소 두 가지 컴파운드를 사용하는 범위 안에서 핏스탑을 최소화한 상태로 레이스를 마무리하는 것, 그리고 그 전에 퀄리파잉에서 최대한 높은 순위를 달성하는 것을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또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는 최대한 버티며 누군가가 사고를 일으켜 세이프티카를 소환하거나 ‘불행하게도’ 아무도 사고를 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올바른 타이어로 교체한 다음 주행하거나 비가 짧게 내린 다음 그칠 것으로 예상될 뿐 아니라 앞서 달리는 차량들이 레이싱 라인을 말려 줄 것을 예상한다면 핏스탑 없이 버티는 것 이상을 생각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모나코 그랑프리를 주의 깊게 보며 작년에는 모나코 레이스가 마치 똥 참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여느 서킷처럼 누군가가 사고를 내면 재빨리 핏스탑 해 타이어를 교체한 다음 끝까지 달리는 것 이상의 전략이 나오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사고를 내지 않으면 끝까지 타이어 교체 없이 꾹 참고 버티다가 마지막 순간에 규정에 따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타이어를 교체하는 상황을 보며 ‘기도 메타’라고 생각합니다. 비가 내리거나 사고가 나기를 기다렸다가 그 타이밍에 시간 손해를 최소화하고 타이어를 교체한다면 이미 퀄리파잉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는 전제 하에 우승을 노려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무도 사고를 내지도 않고 또 비도 내리지 않는다면 타이어를 언제 교체하든지 간에 그 누구도 추월할 수 없고 또 그 어떤 순위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은 기도 메타라기보다는 누군가 먼저 똥을 싸기 전까지 모두가 똥을 참으며 버티는 모습처럼 느껴졌고 모두들 타이어가 맛이 가 브레이킹 시점이 점점 빨라지는 상황 속에 누군가 브레이킹에 실패해 가드레일에 처박히면 다들 미친 듯 화장실로 달려가 참았던 똥을 싸는 모습처럼 보여 합리적인 게임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 끝에 올해 2024년에는 이런 똥 참기 상황의 최고봉을 달성하고 말았는데 그 과정에서 모나코에서 여러 번에 걸쳐 억까를 당하며 절대 우승하지 못하던 샤를 르끌레어가 지난 6년에 걸쳐 억까를 당한 끝에 드디어 우승하며 성불하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페라리 입장에서도, 샤를 르끌레어 입장에서도 모나코에서 달성한 우승은 대단한 결과이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 그리고 페라리 팬이 아닌 입장에서는 똥 참기도 이만한 똥 참기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두 해 동안에는 그나마 비라도 내려 노면이 젖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이어 교체 없이 버티는 팀과 그렇지 않은 팀 사이에 차이가 발생해 추월이 조금은 발생했고 이는 경기 전체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추월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 2024년에는 게임 내내 비가 내리지도 않았고 아무런 사고도 없었습니다. 덕분에 퀄리파잉에서 결정된 순위 그대로 끝까지 유지되며 어떤 추월도 일어나지 않고 퀄리파잉에 1위를 기록해 맨 앞에서 출발한 샤를 르끌레어가 1위로 우승을 차지했고 이번에는 한 명이 못 참고 똥을 싸 버리는 틈을 타 모두가 화장실로 몰려가는 상황이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페라리 입장에서는 가슴 졸이며 이번에야말로 샤를 르끌레어가 성불하기를 바랬겠지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전과 같이 그냥 이럴 거면 퀄리파잉 끝나고 그냥 트로피 수여하고 모나코 관광이나 하는 편이 나았습니다.

이미 이전부터 모나코는 그 역사적 의미 때문에 게임을 계속하고 있지만 앞서 소개했듯 차량 크기가 점점 커지고 속도도 점점 빨라지면서 모나코는 현대적인 차량에 어울리지 않는 서킷으로 변했습니다. 일단 차량이 커서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휠투휠 배틀이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그나마 시케인에서 브레이킹에 실패한 차량이 밀려나는 정도가 그나마 하품 나는 주행 속에 일어나는 이벤트인데 다른 서킷에서 배틀이 일어나더라도 크게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마무리되는 반면 모나코에서는 시케인에서 브레이킹에 실패하면 시케인을 넘어 시케인을 돌아온 앞서 가던 차량과 부딪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 내몰립니다. 그래서 뭔가 이벤트가 일어나면 좀 덜 지루하겠지만 이런 식의 위험한 이벤트를 원하지 않습니다. 작년에도 시케인에서 브레이킹에 실패한 차량과 시케인을 돌아온 차량들 석 대가 서로 뒤엉키는 모습을 보고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역사적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현대 차량들이 모터 레이싱을 하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이 서킷을 계속해서 유지해야만 할 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서킷 구조를 변경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그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올해 2024년에는 정말 아무런 추월도 일어나지 않고 출발한 순서 그대로 끝났고 그나마 샤를 르끌레어의 성불 맥락이 없었으면 그냥 쿠팡플레이 해지하고 그 시간에 잠이나 자는 편이 더 올바른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절이 싫으면 중이 변해야 하듯 모나코 서킷이 그대로라면 차량이 바뀌는 방법도 있습니다. 지난 F1의 2026년 규정 변경과 지속가능성에서 2026 시즌부터 차량 규정이 크게 변경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서 차량 크기가 아주 조금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정도 줄어드는 걸로 모나코에서 의미 있는 추월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모나코 서킷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대에 비해 여전히 차량은 거대하고 그 속도를 받쳐주기에 서킷은 너무 작고 좁습니다. 특히 시가지 서킷 특성 상 런오프가 좁아 선수들도 보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모든 상황 속에서 그저 차량 크기가 조금 줄어든다고 해서 거의 불가능하던 추월이 갑자기 가능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나마 차량만 작아지는 것은 아니고 기존 DRS 대신 ERS가 도입되어 이전과 같이 지정된 구간 안에서만 가속력을 얻을 수 있는 대신 한 랩 내내 가속력을 얻을 수 있게 되면서 한 랩 내내 추월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된다는 점 역시 모나코에서 그나마 덜 하품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모나코 서킷에서 여전히 추월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 이번처럼 샤를 르끌레어의 성불 같은 맥락 없이 게임을 보느니 그냥 퀄리파잉 결과로 우승자를 정하고 일요일에는 좀 쉬자는 이야기가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먼저 서킷 크기에 비해 차량이 충분히 작아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선수들의 기량이 상향 평준화 되어 차량 각각의 폭이 10센티미터 줄어든 것 만으로도 둘이 모이면 20센티미터 짜리 공간이 생기는 셈이지만 그 사이로 다른 차량이 지나갈 수 있을 만한 의미 있는 공간은 아닙니다. 모나코 서킷의 여러 부분은 차량 1.5대가 지나갈 수 있는 수준이 대부분이고 여기에 20센티미터짜리 공간이 추가로 생긴다 하더라도 추월이 갑자기 용이해지지 않을 겁니다.

다음으로 모나코 서킷 자체가 추가 파워를 통해 속도를 낼 수 있는 구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내지를 수 있는 구간에 시케인을 설치해 안전을 도모하고 있는데 추가 파워를 얻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구간에서 공간이 없어 추월이 어렵고 내지를 수 있는 곳 역시 거의 없다는 점 때문에 ERS가 도입되더라도 추월을 기대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특히 ERS가 발동되는 조건은 현재의 DRS와 비슷한데 모나코에서는 앞 차와 간격이 크게 벌어지지 않는 상황이 많아 ERS가 발동될 때 동시에 가까이 붙어 있는 차량 여러 대가 함께 ERS 적용을 받아 다음 랩 내내 기차를 이뤄 아무도 추월하지 못하는 기차 상태가 일어날 거라고 예상합니다. 현재 DRS가 ERS로 바뀌면서 다른 서킷에서는 특정 차량이 한 랩 내내 추가 파워를 얻는다면 서킷 곳곳에서 추월을 노릴 기회를 노려볼 수 있겠지만 이 규칙은 모나코에서는 기존 DRS 트레인과 마찬가지로 ERS 트레인을 만들어 모두 함께 빨라지는 현상을 만들 테고 이 적용을 받지 못할 만큼 멀리 있던 하위권 차량을 백마커로 만들어 오히려 주행을 위험하게 만들 여지도 있습니다.

그나마 비라도 내려 이벤트가 일어날 여지가 있었던 지난 2년 동안의 모나코와 달리 2024년의 모나코는 아무런 변수 없이 맨 앞에서 출발한 샤를 르끌레어가 드디어 이 비싼 똥 참기 게임에서 우승해 성불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동안 샤를 르끌레어가 얼마나 모나코에서 억까를 당해 왔는지를 생각하면 올해 같은 결말도 완전히 재미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채팅창에 사람들의 ‘스테이아웃 스테이아웃’을 보며 서로 낄낄거릴 수 있어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게임 자체만 놓고 보면 모나코 서킷은 현대 F1 레이싱에 어울리지 않는 상태로 계속해서 운영되고 있고 이 모습은 서로 누가 더 오래 똥을 참는지 대결하는 수준 이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2026년의 규정 변경을 통해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중이 바뀌더라도 근본적으로 절이 바뀌지 않는 이상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는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