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노출 없이 배터리만 갈고 싶은데요

아이폰은 해가 갈수록 단위 비용 당 배터리 가격이 비싸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배터리를 교체할 때마다 의도하지 않은 개인정보 노출을 겪고 있습니다.

개인정보 노출 없이 배터리만 갈고 싶은데요

약 13개월 전 아이폰 14 프로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 몇 년 동안 사용하던 아이폰 11 프로는 여전히 빨랐고 여전히 아이폰에 기대하는 거의 모든 요구사항을 문제 없이 수행해 냈을 뿐 아니라 그 다음부터 각지게 바뀐 외관 대신 둥근 외관으로 손에 쥐면 감겨 오는 느낌도 좋았습니다. 카메라가 세 개 달린 프로 모델에 512기가 스토리지를 선택하니 가격이 엄청났지만 다양한 카메라 옵션은 재미 있는 사진을 만들 수 있게 해 줬고 널직한 스토리지는 온갖 파일을 아이클라우드에 두고 그때그때 느려 터진 네트워크로 로딩하며 상황을 지연 시키지 않아 좋았습니다. 하지만 코비드 국면을 거치며 페이스아이디로 폰을 열 수 없는 점이 많이 불편했는데 이후에 출시된 아이폰에서는 마스크를 쓴 상태로도 페이스아이디를 사용할 수 있어 굉장히 부러워 하다가 아무래도 이제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눈으로 보기에는 옆면이 직선으로 각 진 아이폰 4부터 시작해 7이 되기 이전까지 이어지던 디자인을 좋아했는데 정면에서 볼 때는 적당히 둥근 모서리 모양이 정돈된 느낌을 주고 측면으로 돌려 놓고 보면 직각으로 떨어지는 느낌도 좋아했습니다. 이 시대의 아이폰은 지금처럼 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측면이 수직이라도 손에 쥐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폰 역시 스마트폰 시장의 대세를 따르며 점점 더 커지기를 반복하자 수직으로 떨어지는 옆면은 폰을 점점 더 쥐기 불편하게 만들었는데 아이폰 7부터 11까지 계속 되던 둥근 측면은 그나마 큰 폰이라도 손에 쥘 때 감겨 오는 느낌을 줘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둥근 측면은 이전의 수직 모양에 비해 눈으로 보기에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이폰 11 프로 대신 아이폰 14 프로로 갈아탔지만 이제는 새 아이폰에 드는 어떤 기대감 같은 것은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이폰은 아이폰이고 새 아이폰도 사실은 이전 아이폰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화면 크기도 거의 똑같았고 여전히 카메라 세 개가 붙어 있었으며 충전 포트도 똑같은 모양이었고 여전히 비슷한 속도로 구동 됩니다. 가끔 유튜브에 보면 이전 세대 아이폰과 새 아이폰을 옆에 놓고 미리 프로그램 된 로봇팔로 똑같은 순서로 앱을 실행해 보는 테스트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데 분명 그렇게 비교해 보면 차이가 있었지만 이전에 사용하던 아이폰은 다시 팔아버렸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비교해 새 아이폰이 더 빠르다는 사실을 체감할 일은 없습니다. 만약 디자인을 모두 가리고 화면만 보여준 채 어느 쪽이 새 아이폰이냐고 물으면 설정 정보를 확인하기 전에는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편 대대로 아이폰은 한국의 겨울이 지나고 나면 배터리 수명이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처음에는 배터리 수명을 표시하지 않고 배터리 수명이 줄어듦에 따라 성능을 제어해 사용 시간을 확보하려 했다고 합니다. 만약 이런 애플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이런 동작의 변화를 고객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큰 잘못입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시간이 갈 수록 아이폰이 명백히 느려지고 있는데 그걸 정상 동작이라고 설명해도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국내에서 이 문제 관련으로 정부가 행동에 나섰고 국내 정부의 압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다음 OS 업데이트부터 배터리 수명을 표시하고 또 배터리 수명에 따라 성능이 제어될 때 이 사실을 고객이 확인할 수 있도록 변경됩니다. 또한 이 수명이 100%로 시작해 79%까지 감소하면 경고를 띄워 고객이 상태를 확인하고 배터리를 교체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계부를 검색해보니 한국에 애플스토어가 생긴 다음 공식 절차를 통해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게 된 다음 총 세 번 아이폰 배터리를 교체했는데 한번은 아이폰 7 플러스를 사용할 때, 또 한번은 아이폰 11 프로를 사용할 때, 그리고 마지막 한번은 아이폰 14 프로를 사용할 때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아이폰 7 플러스는 만 3년을 사용한 다음 배터리 수명이 79%가 되어 배터리를 교체했고 아이폰 11 프로 역시 만 3년을 사용한 다음 배터리 수명이 79%가 되어 배터리를 교체했지만 아이폰 14 프로는 만 1년이 지나자 마자 배터리 수명이 79%가 되어 배터리를 교체했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3년 정도는 그럭저럭 봐줄 만 한 수명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이번에는 고작 1년 밖에 그렇게 사용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이미 배터리 수명이 급격히 줄어들어 사용에 불편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가계부 기록으로부터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그리고 짜증 나는 점은 매 번 아이폰 배터리를 교체할 때마다 가격이 대략 두 배 씩 오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8년도에는 3만얼마, 3년 뒤인 2022년에는 거의 8만원, 그리고 1년 뒤인 2023년에는 거의 15만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 추세라면 몇 년 뒤에는 아이폰을 팔아 배터리를 사야 할 판입니다. 배터리 교체 비용이 아이폰 신품 가격의 거의 8%에 달하는 상황이 올바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편 애플스토어에서 아이폰을 교체할 때면 항상 인간이 전뇌와 의체를 사용하는 시대 설정의 오래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장면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이 오래된 애니메이션에서는 드물기는 하지만 필요에 따라 의체를 사용하고 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의체를 교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전의 기억과 인격을 유지하지만 의체를 바꾸고 나면 겉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므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됩닏. 하지만 의체 교환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어서 마치 혼인신고처럼 증인 한 명이 함께 오면 의체를 교환할 수 있는데 의체를 교환하는 동안에는 평소에 전뇌를 통해 바깥 세상과 항상 연결되어 있던 경험을 하며 생활하던 것과는 달리 새 몸으로 인격과 기억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교체 절차를 진행해야만 합니다. 평소에 항상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그 자리에 있는 아이폰을 통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다른 세계와 상시 연결 되어 이야기를 하고 그림과 영상을 보고 또 글을 읽고 의사결정을 하며 이 사실을 여러 사람들에게 전파하던 상태에서 아이폰을 몸과 분리해 맡긴 다음 외부 세계와 아무런 접점 없이 가로수길과 강남대로를 걷을 때는 상당히 외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배터리 교체를 맡긴 다음 애플스토어를 나와 길을 걸었는데 지난 두 번 배터리를 교체할 때는 가로수길 매장을 이용했는데 그 때 그 거리는 마치 저 같은 사람이 그 거리에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좁은 거리 양쪽에는 들어갈 엄두가 잘 나지 않는 예쁜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앞의 좁은 인도로 정말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언어로 대화하며 지나갔고 인도 바깥의 도로에는 평소 아파트 주차장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하게 생긴 차들이 특이한 소리를 내며 지나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거리를 걸으며 적당히 월급 받아 그럭저럭 먹고 사는 회사원 같은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바로 그런 모습을 한 저 자신은 그 장소에 있으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아이폰을 맡기고 나니 외부와 연결될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심지어는 배터리 교체가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예상 교체 시간 동안 기다린 다음 교체가 완료되었는지에 대한 확인 없이 스토어에 돌아갈 작정이었고 그런 사이에 북쪽으로 한강까지 걸어 나갔다가 다시 돌아가니 배터리 교체가 끝나 있었고 다시 외부 세계와 연결되어 외로운 느낌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이번에도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배터리 교체를 시작하면 제 애플 계정 패스워드로 내 아이폰 찾기 기능을 해제한 다음 교체를 맡기는데 마치 이러면 영원히 아이폰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듭니다. 이곳은 제조사 애플이 직접 운영하는 매장이기는 하지만 한때 중국에서는 직원들마저 자신들이 진짜 애플스토어에서 일하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진짜 같은 가짜 애플스토어가 운영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생각하면 처음 보는 직원에게 내 아이폰 찾기 기능을 해제한 다음 아이폰을 건네는 이 행동이 과연 보안상 올바른 방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문제가 생겨 아이폰이 분실 되면 클라우드에 백업된 데이터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기기를 영영 찾을 수 없게 되는데 과연 그들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애플스토어 직원들은 정말 적극적이고 또 친절하게 응대해 줬지만 이런 행동이 약간 과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가령 내 아이폰 찾기를 해제하기 위해 애플 계정 패스워드가 필요한데 이를 1Password 앱에서 복사해 붙여 넣자 이를 보고 ‘개발자신가봐요?’ 라고 묻기도 했고 또 다른 사람들이 겪은 경험에는 배터리 교체 후 사용 시간을 늘리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배터리를 주로 사용한 앱 목록에 늘어서 있는 게임 목록을 보며 이 앱들이 배터리를 주로 소모하고 있다고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을 알려주며 고객이 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 목록을 허가 없이 보기도 한 모양입니다. 이번 제 경우에도 배터리 교체가 끝나 아이폰을 찾으러 가서 비용을 결제하려 했는데 아이폰 첫 페이지에 있는 앱 목록에 지라와 컨플루언스 모바일 앱이 있는 걸 보더니 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했고 적당히 사회생활 하는 사람처럼 받아 넘겼지만 이 상황이 올바른 상황인가 하는 고민을 해봤습니다. 생각해보면 주로 배터리를 사용하는 앱 목록이나 아이폰 앱 목록은 그 자체로 상당한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화면인데 이를 어쩔 수 없이 보게 될 수는 있지만 자신이 본 정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애플은 그들이 개인정보 보호에 진심이라고 광고하는 것처럼 그들의 수리 과정에도 개인정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이폰을 수리하는 그들은 이론적으로 아이폰을 시작하더라도 인증 받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암호화가 해제된 상태에 진입할 수 없기는 합니다. 또 수리를 시작하기 전에 제가 동의해야 하는 그 글자로 빽빽한 문서 한 구석에는 제 스스로 내 아이폰 찾기 기능을 해제했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 일어나는 분실에 대해 애플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리를 맡겨 돌려 받는 그 사이에 제 아이폰은 이전보다 보안 상 훨씬 취약한 상태에 놓이며 이 상태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스토어 직원이 고객이 아이폰을 조작하는 모습을 보고 개인정보에 가까운 정보를 취득해 이를 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객이 무슨 앱을 주로 사용해 배터리를 소모하든, 고객이 첫 페이지에 무슨 앱을 고정해 놓고 사용하든 이는 고객의 개인정보이며 개인정보를 존중한다고 주장하는 제조사의 공식 판매 및 수리점 직원이라면 역시 그런 회사의 주장에 따라 고객의 정보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번 배터리 교체를 통해 또 한번 스토어 직원의 전혀 사려 깊지 않고 또 재미있지도 않은 제 폰에 나타난 개인정보에 기반한 대화는 그렇잖아도 매번 배터리를 교체할 때마다 두 배씩 오르는 교체비용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 마당에 더더욱 기분이 좋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메일로 이번 교체 과정을 진행한 담당자는 어땠느냐는 설문이 왔는데 이 설문 역시 만족스럽지 않았고 답변할 수도 없었습니다. 교체에는 제 눈에 보이는 사람만 네 명이 관여 했고 교체 자체는 눈에 띄지 않을 누군가가 뒤에서 진행했을 겁니다. 처음 매장에 방문해 진단을 수행한 사람과 마지막으로 배터리가 교체된 아이폰을 돌려주고 결제를 진행한 사람 각각이 고객의 개인정보에 참견하며 마음이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메일로 물은 이 한 사람은 그 두 사람 중 누구인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메일을 보고 기분이 더 나빠져 메일을 무시하기로 합니다.

애플 스스로는 매번 새 아이폰을 출시할 때마다 배터리 성능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내에 발매된 첫 아이폰부터 계속해서 사용해온 입장에서 배터리 성능은 그저 그런 상태로 몇 년을 유지하고 있고 배터리 수명은 짧아지고 있으며 그 사이 두 배씩 증가하는 비용을 감안하면 비용 당 배터리 가격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배터리 성능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애플이 이런 상황에 관심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폰 사용 시간과 배터리 수명이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 그리고 이 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 사이에 효율이 나빠져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전체적인 경험은 나빠지고 있다는 점을 파악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또 그들의 수리 절차 상 여러 번에 걸쳐 보안 상 취약해진 상태를 맞이하는 직원들이 생기게 되는데 이들이 고객의 개인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거나 어쩔 수 없이 접근하게 되더라도 이를 고객에게 부주의하게 그냥 말해버리지는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