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도구로 위키를 추천해요

여러 글을 오랜 기간에 걸쳐 써 나갈 작정이라면 비록 아름답지는 않지만 위키를 글 쓰는 핵심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글 쓰는 도구로 위키를 추천해요

타임라인에 각자의 글 쓰는 도구 추천이 지나갈 때 한동안은 참전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전하지 않습니다. 일단 요즘 세상에는 글을 읽는 사람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 역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단 글을 쓸 생각이 있다면 어떤 도구를 사용하든 글을 쓰는 일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적당한 도구를 살펴보고 선택하는데 시간을 쓰기 보다는 일단 아무 도구로 글을 쓰기 시작해 글을 끝 맺는 쪽이 더 의미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도구 이야기가 오가든 가만 보기만 합니다. 또 글 쓰는 도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글쓰기의 다양한 목적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전통의 긴 글 쓰기의 강자를 추천하거나 글쓰기에 집중하도록 도와준다는 도구를 추천하거나 겉모양이 예쁜 도구를 추천하는 크게 세 가지 이외의 추천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령 글쓰기 도구 하면 반사적으로 스크리브너를 꺼내는 분들을 만나곤 합니다. 스크리브너가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이고 여러 사람들이 이 도구를 사용해 긴 글을 무리 없이 써 내는데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문단을 서로 분리해 놓고 순서를 편리하게 바꾸고 보드에 개요를 작성한 다음 하나씩 선택해 긴 글로 풀어 간 다음 이들을 배열해 긴 글을 완성해 가며 글 본문 뿐 아니라 글에 필요한 여러 메모와 참고자료를 한 프로젝트로 관리할 수 있는 점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글 쓸 도구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 도구를 사용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종류의 글을 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그리 길지 않은 가벼운 에세이를 작성하고 블로그에 올릴 글을 작성하고 학생이라면 그리 길지 않은 리포트를 작성하는 정도가 고작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 스크리브너는 어울리지 않는 선택입니다. 길지 않은 글은 별도 보드에 문단을 정리할 필요가 별로 없고 길지 않은 글을 쓰는데 문단 순서를 바꾸면 오히려 맥락이 흐트러지며 본격적으로 별도의 메모나 참고자료를 관리할 필요도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써 보려는 사람 대부분에게 이 도구는 썩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다음으로 글 쓰는 화면 모양이 예쁜 도구를 추천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종종 등장하는 앱에는 베어, 율리시즈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모두 애플 환경에서 동작하고 스크린샷이 예쁩니다. 또 이런 앱들 거의 대부분이 - 앞서 소개한 스크리브너를 포함해서 - 글쓰기에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 전체화면을 사용해 화면 상의 방해물을 치운 상태에서 큼직한 글자를 보며 글을 쓰는 일종의 집중 모드를 제공하는데 이런 화면 역시 스크린샷을 보면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화면 상의 여러 방해 요소들 때문에 글을 쓰기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이라도 이 앱들의 스크린샷을 보고 나면 당장 이 앱을 구입하고 나면 자신도 그렇게 예쁜 앱을 통해 글을 써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앱들은 분명 예쁜 화면을 통해 글을 쓰고 관리할 수 있게 해 주며 스크리브너에 비해 글 하나하나를 작성하는데 드는 부담을 줄여 주지만 개인적으로 글이 늘어날 때 이들을 관리하는데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율리시즈 같은 앱은 계층 구조를 통해 글 각각을 나열하고 필터링하고 서로를 연결할 수 있지만 이들을 따로 내보내지 않는 이상 앱 없이는 글에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앱을 실행하면 그 모든 글이 아름답게 보이고 이들 사이를 연결해 관리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글 사이를 연결해 관리하는데 집중한 위키 스타일로 글을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그나마 베어는 태그 기능에 집중했지만 위키 스타일로 글을 관리할 수 있고 율리시즈만큼 예쁘지만 율리시즈와 비슷한 한계가 있습니다. 애플 환경에서만 동작하는 것을 단점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결국 오랜 세월에 걸쳐 글을 쓰고 검색하고 수정하고 서로 다른 글을 연결하다 보면 플랫폼의 제한, 가령 웹에서 볼 수 없다는 특징은 특징이라기 보다는 단점으로 다가옵니다.

긴 글을 쓰지 않고 논문을 쓸 작정은 아니며 앞으로 여러 가지 글을 써 정리하고 싶고 또 글 쓰는 환경을 하나로 유지하고 싶다면 흔히들 추천하는 멋진 도구들 대신 처음부터 위키에 글을 쓸 것을 추천합니다. 이 분류에도 옵시디언이나 도쿠위키 같은 꽤 그럴싸해 보이는 도구가 있습니다. 비록 후자는 앞에 설명한 율리시즈나 베어만큼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지만 글을 쓰고 저장하고 매 수정마다 새 버전을 만들어 모든 과거 글에 접근할 수 있고 플랫폼 독립적으로 글을 읽을 수 있으며 웹 기반이어서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에도 똑같은 환경에 기반해 계속해서 글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특히 웹 기반에서 글을 쓰고 수정할 수 있으면 소프트웨어 개발 진행 상황이나 여러 컴퓨팅 환경 변화로부터 상대적인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어 오랜 기간에 걸쳐 사용하기에 적절합니다.

글을 쓰는데 위키 모양의 도구를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위키가 처음부터 여러 글을 서로 연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만들어진 도구라는 특징 때문입니다. 스크리브너가 긴 글 하나를 완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위키는 긴 글, 짧은 글에 관계 없이 글들이 서로를 인용해 글 사이에 관계가 생기고 관계를 따라 여러 글을 차례로 살펴볼 수 있으며 글 사이의 연결 자체가 글을 정리된 상태로 유지하게 만들고 또 이 연결로부터 새로운 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특징이 딱히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저 글 몇 개를 작성했을 뿐이고 글 각각은 서로 완전히 다른 주제를 말하고 있어 이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어 딱히 연결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분명 서로 비슷한 주제를 말하거나 한 글에 언급한 단어를 이전에 글 하나에 걸쳐 설명했던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럴 때 이전에 작성했던 글을 연결하기 시작하면 아주 천천히 글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위키 모양의 도구에서 글을 쓰기 시작해 글 사이에 연결 관계가 만들어져 이 상태가 유지되기 시작하고 글 수가 늘어나면 어느 순간 글 사이의 연결은 단순한 하이퍼링크가 아니라 여러 주제를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으로 변합니다. 글 사이의 관계로부터 새로운 글 쓸 거리를 찾아낼 수도 있고 여러 연결된 글 목록을 또 다른 글로 만들어 연결된 여러 글에 대한 설명을 작성하는 식으로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위키 모양의 도구가 의미 있게 동작하는데 다른 글 쓰는 도구들은 모든 컨텐츠가 글일 것을 가정하곤 합니다. 하지만 위키 모양의 도구는 페이지에 글을 쓸 수도 있지만 그저 하이퍼링크를 포함한 글 목록만을 나열할 수도 있고 거기에 글 모양의 설명을 추가할 수도 있는 등 각각의 글 내용에 대한 자유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글을 작성하는 것 뿐 아니라 이전에 작성한 글을 인용하고 목록을 만들고 글 사이의 연결을 정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위키 모양의 도구 대부분이 앞서 다른 분들이 주로 소개해 주시는 도구에 비해 예쁘지 않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스크린샷에 아름답게 표현된 앱들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도 앱을 구입해 설치해 보고 싶게 만들고 또 이미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 도구에 기반하며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들게 만들 정도입니다. 시각적으로 예쁘다는 사실은 글을 쓰는 과정의 만족감을 올려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다못해 외부에 가서 랩탑을 열고 타이핑 할 때 그 아름다운 앱이 화면에 떠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글쓰기에 고양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위키 모양의 도구들은 투박하고 주로 웹 브라우저를 통해 접근하므로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기 쉽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랩탑을 통해 타이핑할 때 그 아름다움을 통한 고양감을 북돋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위키 모양의 도구를 강하게 추천하지만 이 단점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여러 글을 쓸 작정이거나 이미 글이 잔뜩 있고 이들을 앞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보관하고 수정하고 새 글을 작성하는데 필요한 한 가지 도구를 찾고 있다면 옵시디언, 노션, 도쿠위키 등 위키 모양의 도구에 글을 쓰는 쪽을 추천합니다. 이들은 비록 아름답지는 않지만 많은 글을 오랜 세월에 걸쳐 보관하고 수정하기 이전 버전에도 접근할 수 있게 해 주며 글 사이를 쉽게 연결할 수 있고 글 뿐 아니라 페이지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도 있어 정리에도 유용하며 이런 행동을 통해 다른 글 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데도 도움을 줍니다. 또 위키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 사이를 연결하는데 익숙해졌다면 스크리브너 스타일의 글쓰기를 위키만으로 완전히 똑같이 흉내 낼 수 있다는데 동의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