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모드는 현대의 소탕권
자동전투가 있고 필드에서 지속적인 사냥을 통해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게임이라면 내가 게임을 직접 플레이 하지 않는 시간에도 게임을 실행해 놓고 자동전투를 돌리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종종 일하면서 힐끔 자동전투가 돌아가는 폰을 쳐다보며 관리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직접 조작할 필요가 없고 또 자동전투를 돌려 놓을 필드에서는 죽을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에 굳이 전투 화면을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게임들은 모두 절전모드를 지원합니다. 서버와 통신하며 자동전투를 하고 있지만 그 화면을 직접 그리지는 않습니다. 자동전투를 돌리면 항상 뜨끈하던 폰이 시원해지고 배터리 소모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어차피 죽지도 않을 거고 비용 효율을 생각하면 포션을 사용해야 하는 사냥터에 두지도 않으며 그 정도 필드에서 PvP가 허용되어 있더라도 사람을 죽이고 패널티를 입을 플레이어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굳이 클라이언트를 켜 둘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동전투를 하는 캐릭터들은 단순한 전투 AI에 의해 동작하고 클라이언트가 있으면 지속적인 자동전투를 위해 별도로 뭘 더 개발할 필요가 없으니 좋기는 하지만 클라이언트가 없어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오딘의 방치모드는 클라이언트를 켜놓고 절전모드에서 자동전투를 돌려 놓는 플레이를 아예 클라이언트를 실행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오고 보니 방치 모드는 단순히 절전 모드를 대체하는 역할에서 수집형 게임에서 전투를 생략하게 해주는 소탕권과 비슷한 메커닉으로 변했습니다. 수집형 게임의 소탕권은 재화를 지불하고 전투를 생략하고 보상을 받게 해줍니다. 어차피 전투를 하면 보상을 받으니까 보상은 추가되지 않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또 다른 자원인 시간을 구입하는 형태입니다. 남들이 전투 100번 도는데 한 판 당 30초씩 걸려 밤새 전투를 돌릴 동안 나는 소탕권으로 1분 안에 이 전투를 끝내고 보상을 얻어 먼저 성장한 다음 밤새 불타는 폰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습니다.
방치 모드는 이 메커닉을 정확히 반대로 돌린 결과입니다. 플레이어는 시간을 투입해 보상을 얻습니다. 어차피 그 시간 동안 클라이언트를 실행해 놓고 다른 앱을 사용하지 않는 상태가 되기보다는 방치 모드로 설정한 다음 클라이언트를 종료하고 편안히 다른 일을 한 다음 보상을 얻어 게임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오딘의 방치 모드가 소탕권을 함부로 도입하기 어려운 MMO 게임에서 재화를 들여 시간을 사는 대신 직접 시간을 투입해 보상을 얻는 MMO 관점에서 합리적인 소탕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방치 모드 모델은 시간을 직접 투입하므로 자연스럽게 시간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이는 행동에 대한 일일보상 지급에 비교할 만큼 게임을 플레이할 직접적인 계획을 세우게 만들어 습관을 유도하는 장치로도 동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