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무시하면 이상한 말을 하게 된다

한 열흘쯤 전에 타임라인에 지나가던 글 주소 하나를 보고 눌러서 나온 페이지의 글을 모두 읽은 다음 순간 울화통이 치밀었습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는데 이 글에 표현된 이런 생각을 하고 이를 언론사에 보내 글쓴이 이름을 걸고 공개되도록 만들려면 대체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또 어떤 생활과 어떤 경험을 해야 할 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냉장고가 만든 도시'라는 글인데 만약 제가 한국어에 서툴러 글을 똑바로 읽고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실패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도대체 이 글의 어디부터 이상하다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지 파악하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어이가 터져서 일단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급하게 주절거렸는데 이제 시간이 좀 지났으니 왜 그런 감정을 느꼈고 왜 그렇게 급하게 감정을 배설하려고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글은 대략 현대에 흔한 거주 형태인 아파트에 소위 양문형 냉장고를 일상적으로 들여 놓게 되었는데 이 냉장고에 의해 일어날 것 같은 여러 현상을 긍정적이지는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우리들이 냉장고가 좀 더 작던 시대에 경험할 수 있던 무언가를 냉장고가 커진 현대에는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령 현대에 널리 사용하는 양문형 냉장고는 그 안에 더 많은 식품을 보관할 수 있어 한 번에 더 많은 식품을 구입해 보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한 번에 많은 양을 구입하면 종종 이들 중 상하기 전에 먹지 못한 것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글쓴이는 만약 냉장고가 더 작았다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식품을 구입하지도 않았을 테니 그저 구입해 보관만 하다가 버릴 일이 훨씬 덜 일어날 거라고 말합니다. 또 커다란 냉장고는 사람들이 식사를 준비할 때 밖에 나가 그때그때 필요한 식품을 구입해 오는 행동을 하지 않게 만들고 이 커다란 냉장고에 어울리는 집을 가지기 위해 부동산에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아파트 주차장에 즐비한 커다란 자동차가 일으키는 사회 문제에 다다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금 드는 감정이자 이 글의 제목이며 결론이기도 한 말을 여기서 다시 한 번 하면 ‘노동을 무시하면 이상한 말을 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커다란 양문형 냉장고가 나타나고 현대에 여느 도시 가정에서 이를 흔히 사용하게 된 과정에서 일어난 노동 형태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는 대신 과거의 기억에 기반한 미화된 경험의 스냅샷과 현대에 느끼는 이 경험에 대한 그리움의 스냅샷을 일대 일로 비교하면 그 사이에 가려진 노동의 변화를 보는 대신 과거의 열악한 현실을 가린 개개인의 노동,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는 동안 변화가 별로 없는 현대의 노동 환경 변화로 인한 만성적인 시간 부족, 이 사이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는 수행해야 하는 가사노동, 어릴 때부터 강한 경쟁에 노출된 아이들 같은 좀 더 큰 그림을 놓치게 됩니다. 이런 모든 이야기 사이사이에는 누군가가 수행해야 할 노동이 스며 있으며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냉장고가 더 작고 더 자주 사람들과 마주치던 이상한 과거를 낭만적으로 느끼며 그리워하는 상태가 돼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페니실린이 없는 세계에 남는 결정에 적어도 구체적인 생활을 상상하지 않은 상태와 그 순간의 감정 상태로는 그 결정에 동의할 수도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과거 사람들은 종종 가족 포르노에 묘사되는 화목한 가정 같은 생활을 실제로 한 것 같습니다. 남성이 주로 사회에서 노동하며 임금에 기반해 돈을 벌고 주로 여성이 가사노동을 하며 아이들을 양육하고 가정을 둘러싼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러 가지 역할을 오롯이 감당해 왔습니다. 이 고도성장기에는 사회 속에서 더 오래 일해 그에 합당한 고용 유지와 보상을 받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가정에서 받을 수 있었고 또 가정에 그런 대우를 요구하는 일이 크게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주로 여성이 수행하던 가사노동에는 현대 관점에서 봐도 대단히 시간 집약적이고 반복적인 일이 많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 번 온 가족이 참여하는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세탁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돌봄기관이나 학교에서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노동 요구에 응하고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사람들과 함께 프리라이더가 있지는 않은지 감시하는 환경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분명히 존재하지만 개개인의 가사노동은 쉽게 폄하되거나 지워져 마치 모든 일이 공기처럼 당연히 존재해야 할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최소 한 사람의 시간을 보이지 않는 노동에 완전히 희생한 결과 매일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가게를 방문하고 비슷한 시간에 가게를 방문한 다른 사람들과 만나 흔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The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했는데 커뮤니티의 역할은 서로를 감시하며 서로가 각출한 보이지 않는 노동에 프리라이더는 없는지 확인하는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성이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던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부당하게 요구 받는 여러 노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배척하고 있습니다.

매일 빠짐없이 장을 보고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들고 식사를 준비해 먹고 뒷정리를 하는 이 모든 과정에는 끊임 없이 강한 노동이 필요합니다. 이 댓가로 그날 사 온 음식들은 대체로 다음 날 아침까지 소모되어 냉장 보관에 대한 필요가 현대만큼 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 훈련된 결과 작은 냉장고에 남은 식품을 살펴보고 이에 맞는 음식을 떠올리며 여기에 부족한 한 두 가지 식품을 집 근처 가게에 가서 사 오라는 심부름을 아이에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보이지 않는 반복적인 노동을 통해 훈련된 사람이 가정마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쓴이 입장에서는 낭만적인,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야만적인 시대를 뒤로 하고 현대로 돌아와 현대에 우리들이 사회로부터 무엇을 요구 받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가장 한 사람의 모든 시간을 쥐어짜 일한 댓가로 가족 전체를 부양할 수 있었습니다. 성별 간 임금격차는 엄청났고 이 격차는 가부장제가 동작하는 근본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가정에서 한 사람만의 노동을 통해 벌어 들이는 소득 만으로는 자기 자신을 부양하는 정도가 한계입니다. 가정을 부양하고 또 양육 하려면 가족 구성원 중 두 명 이상의 노동이 필요합니다. 이전 시대에는 한 사람의 모든 시간을 쥐어짜 가족 전체를 부양했다면 이제는 여러 사람의 시간을 이전보다는 덜 쥐어 짜이는 상태에서 가족을 부양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전에는 한 사람의 시간 전체를 갈아 넣을 때만 동작하던 매일 집에서 하는 식사, 잘 청소 된 집, 항상 깨끗하게 정리된 옷, 교육기관으로부터 요구 받는 어처구니 없는 노동력 동원 요구에 대응할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프리라이더를 감시하고 처벌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므로 이제 가정에 한 사람의 노동력을 온전히 갈아 넣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 매일 아침, 저녁 식사를 집에서 하는 데는 엄청난 노동이 필요한데 이제 가족 구성원들 중 성인 모두가 일해야 가정을 부양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과거에 한 사람의 모든 시간을 요구해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경험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식사를 항상 준비할 수 없고 이에 따라 간편식이 발달했으며 간편식은 온라인으로 한 번에 여러 개 배송 받으면 냉장고에 보관해 한동안은 식사를 준비하는데 드는 시간과 노동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현대적인 가전입니다.

현대적인 가전이 과거 한 사람의 노동력 전체를 요구하던 노동을 없애 주지는 못하지만 이를 작은 조각으로 나눠 가족 구성원들 중 웬만한 사람들이 이 노동의 조각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는 했습니다. 가령 로봇청소기는 누군가 청소기를 밀고 다니고 걸레를 밀고 다니는 수고를 로봇청소기를 관리하는 수고로 단순화했습니다. 세탁과 건조를 기계가 담당해 세탁물을 종류 별로 정리하고 세탁이 완료되면 이를 다시 꺼내 널거나 개어 정리하는 일을 담당하면 됩니다. 식기세척기는 사람이 직접 시간을 투입하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리지만 일단 그릇을 넣고 돌리면 사람이 더 이상 개입하지 않아도 되어 이 시간 동안 다른 노동을 할 수 있게 해 주며 인간보다 더 일관성 있고 또 신뢰성 있게 동작합니다. 또 그 망할놈의 양문형 냉장고는 이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식품을 한 번에 보관할 수 있어 애초에 식품을 구입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노동을 절약해 주고 매번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무슨 JIT 마냥 그때그때 두부 한 모를 사 와야 하는 상황을 없애줍니다.

현대에 가정 구성원 중 가장 한 명만 일해서 모두를 부양함에 따라 동작하던 가부장제와 이에 기반해 또 다른 한 사람의 노동력 전체를 갈아 넣어 동작하던 가정 시스템은 붕괴했습니다. 현대에는 가정을 구성한 성인 대부분이 일해야만 가정을 부양할 수 있어 이전 시대에 비해 보이지 않는 가정 유지에 필요한 노동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아이들 역시 아주 이른 시점부터 강한 교육 경쟁에 노출되어 글쓴이가 기억하는 ‘두부 한 모 사 오는 심부름’을 할 아이는 학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나마 천만 다행으로 이런 사회의 변화에 의한 시스템의 붕괴를 민감하게 인식한 현대적인 가전 개발사들이 발표한 여러 가지 기계를 통해 야만적인 과거 시대에 한 사람의 노동을 온전히 갈아 넣어야만 동작하던 가정 환경이 이를 유지하기 위해 요구하던 거대한 노동을 여러 작은 조각으로 나눠 가족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모양으로 바뀌어 그나마 현대에 가정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양문형 냉장고는 이렇게 한 사람의 온전한 노동력을 요구하던 가정 유지가 더 작은 여러 가지 노동으로 분산 되어 더 다양한 가족 구성원이 그 노동을 감당할 수 있게 되어 현대적인 가정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핵심 장치 중 하나 입니다. 이 과정에서 글쓴이가 말한 대로 어차피 버려질 식품을 보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렇게 버려지는 식품이 어디서 온 것인지, 과연 현대의 시스템을 이해한 사람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야만적인 시대에 훈련된 사람들에 의한 것인지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작은 부작용은 과거와 현대 사이에 가정 구성원들의 노동 형태 변화에 의한 것일 뿐 노동 형태 변화를 지원하기 위한 현대적인 가전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현대에 과거에는 필요하지 않았던 커다란 양문형 냉장고가 집집마다 필요해진 이유는 노동 환경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노동 환경의 변화로 과거 고도성장기에 가장 한 사람의 임금으로 나머지 가족을 부양하는 댓가로 다른 한 사람의 노동력을 온전히 갈아 넣어 유지하던 가정 환경을 현대에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양문형 냉장고로 대표 되는 현대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 노동 형태가 변화하고 또 한 사람의 모든 시간을 투입해 수행하던 노동이 이제 사회를 향하는 변화, 이 모든 과정에 사람의 노동이 있었다는 점을 무시하면 저런 이상한 소리를 하게 됩니다.

과거에 훨씬 더 야만적인 시대와 현대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다면 거기에는 어떤 사회적 맥락이 있습니다. 집집마다 놓인 양문형 냉장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부동산, 이 부동산을 유지하며 일어나는 온갖 사회 문제는 노동형태의 변화라는 맥락에 의한 것이며 야만의 시대에 한 사람의 노동력을 온전히 갈아 넣어 유지하던 좀 더 작은 규모의 삶으로부터 노동을 무시하면 이상한 소리를 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모든 일상에는 노동이 필요합니다. 이를 누군가 대신 수행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노동이 없거나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