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스트 목록에 퀘스트를 어떤 순서로 보여줄까요?

퀘스트를 어떤 순서로 나열하는 것이 좋을지 알아보는 김에 겸사겸사 퀘스트 시스템을 개발할 때 자주 듣는 질문의 의미도 살펴보겠습니다.

퀘스트 목록에 퀘스트를 어떤 순서로 보여줄까요?

몇몇 프로젝트에 걸쳐 퀘스트를 설계했습니다. 일부는 PC에서 돌아가는 MMO 게임이었고 또 일부는 모바일에서 돌아가는 MMO 게임이었는데 각 게임을 개발하는 시점에 따라 퀘스트 시스템은 조금씩 달랐고 또 집중하는 요구사항 역시 달랐지만 퀘스트를 설계하며 엔지니어로부터 듣는 질문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퀘스트가 게임에 도입되는 시점은 주로 퀘스트가 사용할 어지간한 기반 시스템들이 이미 동작한 다음일 때가 많습니다. 가령 이미 아이템 개념이 있고 몬스터와 전투할 수 있고 이들로부터 드랍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으며 마을, 필드, 던전 등 여러 가지 레벨로 이동할 수 있고 또 보스 몬스터와 여러 사람이 전투해 전투에 참여한 각자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규칙이 이미 구현되어 있는 시점일 수 있습니다. 이런 규칙들이 게임을 만들어내고 이 위에 퀘스트 시스템이 얹혀 동작할 수 있는 시점에 퀘스트를 설계하면 그나마 편안하게 퀘스트를 만들어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퀘스트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지만 퀘스트 시스템이 게임 전체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이로 인한 복잡성을 알고 있기에 엔지니어들은 보통 처음부터 완전하게 작성된 퀘스트 요구사항을 바로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퀘스트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 역시 한 번에 퀘스트 전체 요구사항을 포함한 아름다운 설계를 도출하는 대신 확장 가능한 모양으로 만든 작은 요구사항의 조각들을 차례차례 내보내 이를 만들어 가다 보면 결국 완성된 퀘스트 시스템에 도달할 수 있는 모양으로 기획서를 작성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획서를 작성하는 시간 동안 퀘스트 개발을 담당한 엔지니어들이 아무 것도 안 하고 기다릴 수는 없기에 아직 문서가 없음을 알지만 미리 게임디자이너들로부터 근미래에 작성될 퀘스트 설계 문서에 포함될 몇몇 내용을 질문해 힌트를 얻어 미리 준비하려고 하는 경우를 자주 겪습니다. 이 때 자주 받는 질문에는 ‘한 번에 퀘스트를 몇 개 까지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가’, ‘퀘스트에 분기가 있는가’, ‘습득한 퀘스트를 포기할 수 있는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한 번에 퀘스트를 몇 개까지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처음 받을 때는 굉장히 곤혹스러웠는데 게임디자인 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 숫자를 그 시점에 찍기는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여러 퀘스트를 수행하던 MMO 게임들을 살펴보면 수많은 퀘스트로 유명했던 몇몇 게임은 현재 수행 중인 퀘스트가 화면 한쪽 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심지어 그 안에서 스크롤마저 가능할 만큼 여러 퀘스트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고객들은 퀘스트의 목표를 살펴본 다음 이번 이동을 통해 한 번에 여러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한 최적의 동선을 머릿속에서 설계한 다음 이에 따라 행동한 결과로 한 번에 여러 퀘스트를 수행하며 재미를 느끼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런 게임을 만든다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최대한 많이’ 혹은 ‘한 30개쯤?’ 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게임이 그런 게임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너무 적은 숫자를 말하면 미래에 문제가 생길 것 같고 또 ‘한 30개쯤?’이라고 답하면 이 답변을 들은 엔지니어를 화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답변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큰 숫자를 말하면 종종 엔지니어가 어제 집에서 플레이 해 보고 온 싱글플레이 오픈월드 게임에서 한 번에 퀘스트 하나만 화면에 표시할 수 있음을 예로 들며 우리도 한 번에 퀘스트 하나에 집중하도록 하는 편이 낫지 않느냐는 의견을 말할 수도 있는데 이 의견에는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일단 우리는 싱글플레이 게임이 아니고 또 퀘스트 하나에 집중을 요구할 만한 게임인지 그렇지 않은지 일개 게임디자이너 입장에서 확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MMO 게임에서 모든 퀘스트 하나하나에 높은 집중 상태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제 여러 직군 간에 거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숨겨진 의미는 동시에 퀘스트를 몇 개 까지 받아 몇 개 까지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지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의 숨겨진 의도는 여러 퀘스트를 가지고 있을 때 게임 속 세계가 이 각각의 퀘스트에 따라 상시 대응해야 하는지 여부를 물은 것입니다. 가령 작년에 플레이 했던 싱글플레이 오픈월드 게임인 파크라이 6에서는 한번에 퀘스트 하나만 활성화 할 수 있는데 퀘스트를 활성화한다는 의미는 퀘스트 목록에서 그 퀘스트를 선택하고 나면 퀘스트 목록을 닫은 다음에도 화면 한 구석에 그 퀘스트가 표시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게임 속 세계가 그 퀘스트를 위해 변경된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이것이야말로 퀘스트를 활성화 하는 행동의 진정한 결과입니다. 게임 속에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요새가 있었는데 이 요새는 문이 닫혀 있고 요새 주변의 지형 역시 무슨 짓을 해도 요새 담을 넘어갈 수 없는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모양 자체가 어떤 퍼즐이라고 생각해 족히 10미터는 될 것 같은 높은 담을 넘을 방법을 찾기도 하고 땅 밑에 숨겨진 입구가 있을지도 몰라 한참을 찾아다녔으며 헬리콤터를 타고 진입하려고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코 요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헬리콥터를 타기 위해 이 요새 주변의 모든 대공포대를 박살냈음에도 오픈월드 게임 개발에 지레 겁먹음에 보여드린 스크린샷처럼 있지도 않은 대공포대로부터 공격을 받아 헬리콥터를 요새 안으로 이동 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이 요새를 공격해 이 주변을 장악하고 있는 고위 인사를 처단하는 퀘스트를 시작한 다음 이 요새 앞에 가보니 이미 게릴라들이 탱크를 몰고 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전진하자 그동안 무슨 수를 써도 들어갈 수 없었던 버려진 요새 위에 갑자기 사람들과 기관총들이 나타나 우리를 공격하고 우리들 역시 요새 문에 대포를 쏴 문을 부수고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는데 이전에 무슨 수를 써서도 들어갈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아무도 없이 조용했던 이 요새는 이제 적들로 가득하고 또 우리들이 쳐들어간 덕분에 사방으로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아수라장으로 바뀝니다. 이 퀘스트를 클리어 하고 나자 이 요새 안에 짱박혀 있었던 것 같은 장군은 더 이상 지도에 나타나지 않았고 무슨 수를 써도 들어갈 수 없었던 요새 안쪽에 직접 걸어 들어가거나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 들어갈 수도 있게 되었으며 그 안에 게릴라들이 거주하며 퀘스트를 받을 수도 있고 탈 것을 얻을 수도 있으며 탄환을 보급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장소로 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장소는 처음부터 퀘스트에 의해 상태가 바뀌며 그 전에는 무슨 수를 써서도 이 장소와 상호작용 할 수 없는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가 플레이어가 이 장소와 상호작용 해야 하는 퀘스트를 받아 이를 활성화한 시점에 월드의 상태를 바꿔 비로소 요새 문을 열고 쳐들어갈 수 있는 상태로 바뀐 것입니다. 이를 다시 앞에서 잠깐 말한 복잡한 말로 표현하면 어떤 퀘스트를 활성화 하느냐에 따라 활성화된 퀘스트에 맞춰 세계가 변하고 이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한 번에 퀘스트를 몇 개 까지 수행할 수 있느냐는 질문의 의미는 한 번에 퀘스트 몇 개를 활성화 할 수 있는지, 다시 말하면 한 번에 퀘스트 몇 개에 대한 월드의 상태 변화를 허용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파크라이 같은 싱글플레이 게임이었다면 세계에는 나 혼자만 있고 한 번에 퀘스트 하나만 활성화 할 수 있으니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 수를 묻는 질문에 '1'이라고 답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MMO 게임에서 이 질문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가령 앞마당에서 몬스터 10마리를 처치하는 퀘스트와 앞마당에서 전투 중인 NPC와 대화하는 퀘스트를 각각 가지고 있는 상태일 때 퀘스트를 동시에 어느 하나만 활성화, 즉 세계가 한 번에 퀘스트 하나에 대해서만 변할 수 있다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앞마당에서 전투 중인 NPC와 대화하기 위해 이동하는 도중 마주친 몬스터와 전투하다 보니 어느 새 몬스터 10마리를 처치했지만 이 행동은 퀘스트에 의해 집계되지 않을 겁니다. NPC와 대화한 다음 다시 마을에 돌아와 퀘스트를 마치더라도 여전히 몬스터 10마리를 처치하는 퀘스트는 아직 시작 조차 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을 테고 이 플레이어는 방금 NPC를 만나러 갔다 오면서 몬스터를 10마리보다는 훨씬 더 많이 처치한 것 같지만 여전히 클리어 되지 않은 퀘스트를 보며 이상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 두 퀘스트가 한 번에 활성화된 상태라면 어땠을까요. 마을 바깥에 있는 NPC를 만나러 가는 동안 의도하지 않게 몬스터를 처치할 때마다 현재 활성화된 NPC와 만나는 퀘스트 뿐 아니라 몬스터 10마리를 처치하는 퀘스트가 함께 진행될 겁니다. 퀘스트 목록에는 NPC와 대화하는 퀘스트를 수행 중이라고 하이라이트 표시 되어 있겠지만 그 상황에서 앞마당에 있는 몬스터와 전투할 때마다 몬스터 10마리 처치 퀘스트가 수행되어 NPC와 대화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갈 즈음에는 어느새 몬스터 10마리 처치 퀘스트가 완료되어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마을에 돌아와 NPC와 대화하는 퀘스트를 마치고 나면 한 번에 퀘스트 두 개를 간단히 완료할 수 있습니다. 이 상태가 앞서 오래된 게임에서 고객들이 직접 퀘스트 목록의 수많은 퀘스트를 살펴본 다음 이번 이동에 의해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가 어떤 것들인지 확인한 다음 최소한의 이동과 전투를 통해 최대한 많은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동선을 계획하며 이를 통해 여러 퀘스트를 한 번에 수행함에 따라 즐거움을 느끼는 모델과도 같습니다. 이런 플레이 시나리오에서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 수는 제한이 없으며 퀘스트를 받을 때마다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퀘스트에 대해 각각의 퀘스트에 의한 월드의 변화가 모두 다 적용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이라이트 한 NPC와 대화하는 퀘스트를 수행할 때 몬스터를 사냥하는 퀘스트가 진행되지 않으며 여러 퀘스트를 한 번에 수행하기 위핸 동선 설계가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현대 MMO 게임을 개발할 때 동시 수행 가능한 퀘스트 수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전부 다’라고 답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퀘스트에 분기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아 왔습니다. 사실 이 질문 역시 퀘스트를 설계하는 사람이 바로 답변하기에 상당히 곤혹스러운 질문인데 여러 프로젝트에 걸쳐 퀘스트를 설계할 때마다 퀘스트를 설계하는 사람인 저와 퀘스트를 사용해 실제로 게임플레이를 만들어낼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 그리고 서로 다른 조직일 때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퀘스트 진행에 분기가 있을지 보통 퀘스트를 설계하는 시점, 특히 이런 질문을 받을 시점에는 대체로 저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퀘스트를 사용해 플레이를 만들어 갈 사람들 역시 아직 여기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분기는 오래된 게이머일수록, 또 싱글플레이 게임을 오래 플레이 해 온 사람일수록 요구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오래된 싱글플레이 게임의 분기로부터 깊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자신이 개발에 참여하는 MMO 게임으로부터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퀘스트 수행에 분기가 있어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요구사항은 작게는 퀘스트 중 일어나는 대화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서부터 시작해 크게는 특정 상황에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죽이지 않거나, 혹은 어느 던전을 클리어 하느냐 하지 않느냐 등 여러 조건에 따라 고객이 미래에 겪을 다른 경험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 작은 수준에서 퀘스트 단위에서 분기가 있을 수 있고 분기의 결과에 따라 작게는 던전의 경로가 달라지거나 크게는 미래에 다른 퀘스트를 받거나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요구사항을 말하게 되는데 이런 답변은 보통 엔지니어를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곤 합니다.

근본적으로 MMO 게임은 같은 가상 세계에서 여러 플레이어들이 서로 다른 진행상황에 따라 서로 조금씩 다른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져 왔습니다. 가령 어떤 게임에서 초반에는 마을에 대장장이가 안 보이지만 어느 퀘스트를 통해 던전에 붙잡혀 있는 대장장이를 구출하고 난 다음부터는 마을에 대장장이가 나타나는 수준의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MMO 게임은 여러 플레이어들이 결국 게임의 중후반에 가면 서로 비슷한 경험을 한 상태가 되기를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후 플레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강력한 무기를 드랍하는 특정 보스가 있을 때 이 보스를 클리어 하기 위한 준비가 된 상태가 여러 플레이어에 걸쳐 비슷한 플레이의 결과에 의해 나타나야 합니다. 만약 게임에 여러 가지 분기가 있고 각 분기에 따라 게임이 적극적으로 세계의 상태를 바꾼다면 이에 따라 비슷한 자원을 투자해 플레이 한 각 플레이어들의 상태가 특정 시점의 중요 보스를 클리어 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상태가 될 수도 있고 이는 MMO 게임에서 클래스 간, 혹은 퀘스트 분기 간에 공정하지 않은 동작으로 인식되어 고객들로부터 큰 항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싱글플레이 게임에서 이런 깊이 있는 분기 플레이가 고객들로부터 항의를 받지 않고 동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에 플레이어 자기 자신 말고는 경쟁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 내가 선택한 답변 대신 다른 답변을 한 덕분에 보스를 더 빨리 쓰러뜨릴 수 있다면 과연 이 선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또한 이런 깊이 있는 분기는 실제 세계의 제작 비용 때문에 달성하기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분기는 이를 주의 깊게 설계하지 않으면 퀘스트 제작 비용을 몇 배가 되도록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분기에는 서로 다른 대사, 서로 다른 퀘스트, 서로 다른 성장 설계가 필요하며 서로 다른 컷씬 같은 본격적으로 값비싼 에셋을 제작하기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분기가 있는 어지간한 게임들도 분기에 의해 경험이 달라지는 구간을 최소화하도록 분기를 설계하거나 분기에 의해 아예 다른 경험을 하도록 만들기 보다는 한 레벨에서 수행한 플레이의 결과를 종합해 조건에 따른 결말을 보여주는 식으로 설계해 제작비용을 조정하곤 합니다. 그런데 분기 도입에 대한 요구사항은 종종 이런 제작비용의 한계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도입되어 이 시스템에 대한 제작비용 만큼이나 시스템을 사용한 분기 플레이 제작비용 역시 상승 시켜 결국 납기를 맞추기 위해 분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개발 방향이 변경되기도 합니다. 결국 분기 기능을 위한 시스템 개발 비용, 분기 별로 구분된 경험을 만들기 위한 제작 비용, 이들 모두를 테스트 하기 위한 비용이 모두 합쳐져 결국 상당한 비용을 사용했음에도 의미 있는 분기 플레이를 만들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MMO 게임에서 분기의 개념 자체를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고 싱글플레이 게임의 분기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습득한 퀘스트를 포기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특정 상황에서 퀘스트에 의한 변경사항을 되돌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사실 퀘스트는 종류에 따라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가령 주로 메인퀘스트로 분류되는 종류의 퀘스트는 이를 포기할 수 있도록 할 경우 게임 자체가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포기를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포기를 허용한다면 현재 진행 중인 스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거나 퀘스트를 포기할 수 있게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포기한 퀘스트를 다시 획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령 도시에서 국왕과 대화해 메인퀘스트가 다음으로 넘어갈 때 이 퀘스트를 포기했다면 다시 국왕과 대화해 메인퀘스트를 획득할 수 있는 식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반면 자유롭게 포기할 수 있는 퀘스트도 있는데 가령 메인퀘스트와는 별개로 특정 레벨 안에서만 동작하는 퀘스트는 그 레벨에 진입할 때만 획득할 수 있고 이를 수행하지 않으려면 자유롭게 포기해 퀘스트 목록에서 제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은 게임에 따라 퀘스트 포기 개념 없이 다시 이전 레벨에 진입하면 그 레벨에서만 유효한 퀘스트가 목록에 나타나 이어서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하는데 이는 앞서 설명한 획득한 퀘스트 전부가 활성화된 상태이며 그 결과로 모든 퀘스트에 의해 현재 플레이어가 위치한 월드의 상태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관점에서 첫 번째 질문과 세 번째 질문은 사실상 같은 질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런 배경에 근거해 퀘스트 목록에 퀘스트를 어떤 순서로 보여줘야 할까요. 일단 이런 질문이 나타날 때 몇 가지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이 게임은 한 번여 여러 퀘스트를 받을 수 있으며 이들 모두가 동시에 활성화 되어 세계에 변경을 가하고 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현재 수행 중인 퀘스트를 어느 하나로 특정하기 어려워 싱글플레이 게임처럼 지금 수행 중인 퀘스트 하나를 맨 위쪽으로 정렬할 수가 없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퀘스트 정렬 순서를 결정하는 가장 큰 조건은 이 게임이 이동과 전투를 자동으로 수행하는지, 아니면 이동과 전투를 플레이어가 직접 수행하는지입니다. 만약 여느 모바일 MMO 게임처럼 게임의 여러 가지 행동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일종의 매니지먼트에 가까운 장르라면 퀘스트 순서는 크게 게임 전체를 진행 시키는 메인 퀘스트와 나머지 순서에 의해 정렬하고 그 다음은 현재 위치로부터 가장 짧은 거리를 이동해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 순서에 따라 정렬해야 합니다. 메인 퀘스트는 고객이 이 존재를 계속해서 인지하며 굳이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지 않더라도 나머지 퀘스트를 수행하며 시간을 보낼 선택을 했다가 적당한 시점에 메인 퀘스트를 진행 시켜 게임 전체의 상태를 변하게 만드는 결정을 선택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메인 퀘스트를 맨 위에, 나머지는 퀘스트의 종류에 관계 없이 가까운 순서로 정렬하면 고객의 어지간한 요구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동과 전투를 직접 수행하는 종류의 게임이라면 메인 퀘스트가 항상 맨 위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거리에 따른 정렬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여전히 메인 퀘스트는 게임 전체를 진행 시키기 위해 맨 위에 정렬되어 있기는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거리에 따라 정렬될 필요가 없습니다. 선택적으로 오래된 게임처럼 고객 스스로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따르는 플레이를 위해 거리를 표시하고 거리에 따른 정렬을 선택하게 할 여지는 있지만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는 없으며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애초에 개발자들이 한 번에 수행할 수 있는 여러 퀘스트의 동선을 설계해 굳이 고객이 직접 이를 계산할 필요가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플레이어가 위치한 장소를 기준으로 이 곳에서 의미 있게 플레이 할 수 있는 퀘스트를 위쪽에 정렬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가령 현재 어떤 던전에 들어와 있다면 이 던전을 제어하는 던전 퀘스트를 메인 퀘스트보다 더 위로 정렬해 현 시점에 사실상 무의미한 메인퀘스트가 위쪽에 나타나 플레이를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 때는 맨 먼저 현재 레벨에서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를 나열하되 현재 던전을 제어하는 던전에 일대일로 바인딩 된 퀘스트를 맨 위에, 나머지를 그 다음에 나열하고 애초에 현 위치에서 수행할 수 없는 퀘스트는 아예 표시하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 던전을 클리어 한 다음 밖에 나가면 다시 메인 퀘스트가 맨 위에 나타나고 현재 레벨에서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가 그 다음, 그리고 나머지 퀘스트가 이어서 정렬되면 고객은 여전히 현재 레벨에서 너무 멀리 이동하지 않고서도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요약하면 매니지먼트 장르라면 메인퀘스트를 맨 위에, 나머지는 거리에 따라 나열하는 규칙을 기본으로 하며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정렬 규칙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매니지먼트 장르가 아니라면 여전히 메인퀘스트를 맨 위에 정렬하지만 그 다음은 현재 레벨에서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를 우선 정렬해야 하는데 이는 거리 규칙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던전과 같이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라면 현재 레벨에서 사실상 수행이 불가능할 메인퀘스트가 맨 위에 있을 필요가 없으며 현재 던전을 제어하는 퀘스트가 맨 위에, 나머지 현재 레벨에서 수행 가능한 퀘스트들을 나열하면 되는데 이 역시 던전을 제어하는 퀘스트를 제외하면 거리 규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이 때는 현재 레벨에서 사실상 플레이가 불가능한 메인 퀘스트를 표시할 필요가 거의 없으며 이 규칙은 던전 뿐 아니라 다른 레벨에 적용할 여지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