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븐을 다시 살펴봅시다

오래된 게임 리븐으로부터 현대에 게임을 구성하는 환경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현대에는 잊혀진 낡은 방식을 살펴봅시다.

리븐을 다시 살펴봅시다

리븐은 미스트의 후속작이지만 플레이 방식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임보다 세계 안에서 길을 찾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플레이어는 낯선 섬들에 던져져 누가 무엇을 숨겼는지, 어떤 기계가 왜 돌아가는지, 어떤 흔적이 어떤 사건을 말하는지 스스로 읽어내야 합니다. 리븐의 퍼즐은 각각의 퀴즈와 달리 마을, 공장, 사원, 감옥, 연구실 같은 생활 공간 속에 들어가 있고 그 공간을 만든 사람의 목적이 곧 퍼즐의 구조로 이어집니다. 이런 설계 때문에 리븐은 환경 퍼즐 어드벤처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Riven — Immersion through Integrated Puzzle Design]. 먼저 분명히 해둘 점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리븐의 공략이나 퍼즐 풀이가 아닙니다. 리븐이라는 게임이 과거에 존재했음을 모르더라도 리븐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퍼즐이 왜 그런 형태로 존재하는지를 납득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어떤 장면에서는 정답을 말하기보다 왜 단서가 그런 모양인지와 그 단서를 누가 왜 남겼는지부터 설명할 작정입니다. 리븐은 그 과정을 즐기라고 만든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리븐의 기본 줄거리는 플레이어는 스트레인저라는 이방인이 되어 붕괴 중인 에이지 리븐에 들어가 겐을 포획하고 캐서린을 구출한 뒤 별의 균열을 열어 아트루스를 부르는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이 구조 자체가 게임의 목표이자 퍼즐을 풀어야 하는 이유입니다[^Riven]. 일단 스포일러 범위를 미리 정리하겠습니다. 이 글은 리븐의 스토리 전체와 엔딩과 핵심 퍼즐의 해법을 포함합니다. 리븐을 직접 풀어보고 싶은 분에게는 스포일러가 됩니다. 반대로 이미 플레이했는데 정리를 원하거나 게임을 하지 않아도 리븐을 이해하고 싶은 분께 전체 맥락을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드니는 지하 문명을 이룬 종족이자 그들의 언어와 문화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에이지는 드니의 기술(The Art)로 글을 써서 연결되는 세계를 뜻합니다. 중요한 점은 많은 드니인이 에이지를 새로 만드는 창조로 보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세계와 연결이 생긴다는 관점으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겐은 라이터가 에이지를 창조한다고 믿었고 아트루스는 그 믿음에 반대했습니다[^The Art]. 연결서는 에이지로 이동하는 책입니다. 책 속의 링크 패널을 만지면 그 에이지로 이동합니다. 기술서는 그 에이지 자체를 규정하는 원본 설정서에 가까운 책입니다. 기술서가 불안정하거나 손상되면 에이지 자체가 무너질 수 있고 리븐의 붕괴는 바로 이 문제입니다. 덫 책은 겉보기에는 연결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 한 명을 가두는 감옥입니다. 겐을 잡기 위해 아트루스가 스트레인저에게 건네는 핵심 도구가 이것입니다[^Riven: The Sequel to Myst – Solution]. 별의 균열은 리븐 사원 섬에 존재하는 현실의 균열 같은 현상으로 바닥의 금처럼 갈라진 틈 아래로 별빛 공간이 보입니다. 이 균열은 에이지와 에이지 사이를 잇는 다리처럼 작동하며 리븐의 마지막에 스트레인저가 떨어져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통로가 됩니다[^Star Fissure]. 이어서 리븐을 읽는 두 관점을 제안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사건의 연대기입니다. 누가 무엇을 했고 그 결과 지금 무엇이 되었는가를 시간 순서로 따라가면 플레이어의 세 가지 임무가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리븐의 모든 퍼즐은 결국 겐 포획과 캐서린 구출과 신호라는 목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건의 흐름을 알면 퍼즐의 용도와 의미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두 번째는 퍼즐의 구조입니다. 이 퍼즐은 어떤 정보로 잠겨 있고 그 정보는 어디에서 얻으며 어떤 잠금장치는 왜 이런 모양인가를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리븐의 퍼즐은 난수 암호가 아니라 생활 시스템입니다. 학교의 교구는 드니 수 체계를 강요한 증거이고 공장의 밸브는 겐의 산업 통제의 흔적이며 사원의 회전 방은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 보안 장치입니다. 리븐은 이 두 관점을 오가며 살펴볼 때 이해하기 사장 쉬워집니다. 이야기가 퍼즐의 이유가 되고 퍼즐이 이야기의 증거로써 작동합니다.

이제 드니 문명, 기술(The Art), 책의 종류, 별의 균열, 그리고 리븐 붕괴의 성격을 살펴봅시다. 드니 문명은 책으로 세계를 건너는 종족입니다. 드니는 수천 년 동안 지하에 거대한 도시를 만들고 길드라는 직능 조직으로 사회를 운영했습니다. 그들의 핵심은 기술(The Art)이었고 이 기술은 글을 통해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책을 만들어냈습니다. 드니에게 책은 지식의 그릇이면서 동시에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통수단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드니 문명 전체가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작동했습니다. 그들은 자급자족을 위해 식량 에이지를 만들고 치료를 위해 치유 에이지를 만들고 필요하면 감옥 에이지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확장성은 드니를 번영하게 했지만 동시에 드니가 현실을 경시하게 만드는 독이 되기도 했습니다. 기술(The Art)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창조가 아니라 연결이라는 점입니다. 드니의 주류 관점에서는 라이터가 무에서 유를 만들어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어떤 세계와 연결이 생긴다고 봅니다. 기술서는 새 세계의 설계도라기보다 어떤 세계로 연결될지에 대한 매우 정밀한 서술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에이지의 주민도 그들의 역사도 라이터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라이터는 그 세계를 지배하는 신이 아니라 그저 연결을 만들어낸 사람일 뿐입니다. 반대로 겐은 라이터가 에이지를 창조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겐은 자신이 쓴 에이지의 주민을 자기 피조물처럼 대했고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다스린다는 논리로 스스로를 신으로 꾸몄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철학 논쟁이 아니라 리븐에서 벌어지는 모든 폭력과 저항의 출발점입니다. 리븐의 세계관에서 책은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니라 권력 그 자체입니다. 연결서는 링크 패널을 만지면 특정 에이지로 이동시키는 책입니다. 기술서는 그 에이지와 연결을 유지하는 기본 문서에 가깝습니다. 기술서가 훼손되거나 불안정하면 그 에이지 자체의 안정성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아트루스는 크비어(K'veer)에서 리븐 기술서를 고치며 시간을 벌고 있었고 플레이어는 그 시간 안에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The Riven Descriptive Book].

덫 책은 이 세계에서 책이 무기가 되는 순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덫 책은 겉보기에는 정상적인 연결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링크가 끊겨 있어 사용자를 에이지로 보내지 않고 세계와 세계 사이의 빈 공간에 가둡니다. 중요한 점은 덫 책이 한 명만 가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같은 덫 책을 사용하면 안에 있던 사람과 밖의 사람이 서로 위치를 바꿉니다. 이 교환 규칙 덕분에 덫 책은 탈출구이기도 하고 덫이기도 합니다. 스트레인저가 겐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겐이 끝내 덫 책을 진짜 연결서인지 시험해보겠다며 스트레인저에게 먼저 쓰라고 시켰기 때문입니다. 덫 책은 리븐의 세계관에서 완벽한 승리가 왜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한 번의 실수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가 뒤집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별의 균열(Star Fissure)은 리븐의 가장 이상한 장소이자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매듭입니다. 사원 섬 바닥에 난 거대한 균열로 아래에는 별빛 같은 공간이 보이고 가까이 가면 현실이 찢어진 듯한 느낌을 줍니다. 겐은 이 균열을 연구하면서 그 아래로 사람이 떨어져도 바로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더 나아가 이 균열이 어디론가 이어진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냅니다. 그래서 겐은 균열 위에 철판과 뷰포트를 설치해 봉인하고 그 위에 조잡한 망원경을 올려 관측 장치처럼 만듭니다. 결국 플레이어가 그 봉인을 풀고 망원경을 내려 균열을 다시 열어야만 아트루스에게 신호가 전달됩니다. 별의 균열은 리븐 세계관에서 특이한 역할을 합니다. 연결서 같은 정교한 도구가 없어도 현실의 틈 자체가 길이 될 수 있다는 예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스트레인저가 그 틈으로 딸아쟈 자기 세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리븐은 처음부터 안정적인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겐이 리븐 기술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고쳐 쓰고, 불완전한 재료로 책을 만들고 필요에 따라 문장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세계를 다뤘기 때문에 리븐은 시간이 지날수록 균열이 늘고 구조가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겐이 리븐을 떠나기 위해 233번째 Age 연결서를 만들려고 했을 때도 그의 연결서는 스스로 링크를 유지하지 못했고 겐은 그 문제를 리븐의 나무가 불순해서 그렇다고 탓했습니다. 그래서 겐은 책의 결함을 인정하고 고치는 대신 파이어 마블이라는 에너지원과 돔 네트워크를 만들어 기계적으로 링크를 억지로 유지하려 했습니다[^Why didn't Gehn do this?]. 이 선택이 리븐의 붕괴를 더 앞당깁니다. 세계가 불안정한데 그 위에 더 큰 기계를 얹어 돌린 셈이기 때문입니다. 리븐에서 무너진다는 것은 단순히 섬이 깨지는 장면만 뜻하지 않습니다. 자연 생태가 변형되고 사람들의 생활이 공포와 노동으로 재편되고 언어와 교육이 바뀌고 종교가 조작되는 과정 전체가 붕괴입니다. 그리고 물리적 붕괴는 그 모든 붕괴의 끝입니다. 아트루스는 리븐 기술서를 고치며 그 끝을 늦추려고 했고 캐서린은 주민을 타이로 옮기며 사람만이라도 살리려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선택이 겐의 선택과 부딪히면서 리븐은 하나의 세계가 어떻게 무너지는지와 그때 무엇을 구할 수 있는지를 끝까지 보여주는 무대로 작동하게 됩니다[^Book window].

리븐에서 벌어지는 일은 결국 네 사람이 서로 다른 목표를 품고 같은 공간에 접근한 결과입니다. 겐은 잃어버린 드니를 되살리려 하고 아트루스는 그 욕망을 막기 위해 세계를 수리합니다. 캐서린은 무너지는 고향에서 사람을 살리려 하고 스트레인저는 그들 누구의 편도 아닌 외부자로서 마지막 손을 뻗습니다. 이 네 사람의 목표는 현재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거의 상처가 만든 필연에 가깝습니다. 겐(Gehn)에게서 모든 것은 상속에서 시작됩니다. 겐은 드니인 에이트루스(Aitrus)와 인간 티아나(Tiana)의 아들로 태어난 최초의 혼혈이었고 드니 대붕괴를 어린 나이에 겪은 뒤 드니를 함께 잃었습니다[^Gehn]. 겐은 이 상실을 애도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상실을 분노로 바꾸고 그 분노를 자신이 드니의 유일한 상속자라는 자기 신화로 굳혔습니다. 겐이 어머니 티아나를 원망한 이유도 같은 흐름 안에 있습니다. 겐은 아버지 에이트루스가 죽은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어머니가 자기 삶을 망쳤다고 믿어버렸습니다. 겐의 비극은 여기서 한 번 더 이어집니다. 겐의 아내 케타(Keta)는 아트루스를 낳다가 죽습니다. 겐의 233번째 에이지의 침실에는 케타의 초상과 케타가 남긴 메시지가 남아 있고 메시지에는 겐을 사랑한다는 말이 담겨 있습니다[^Gehn’s 233rd Age]. 겐은 이 죽음을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했다는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그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더 큰 권력을 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권력의 형태가 기술(The Art)입니다. 문제는 겐이 기술의 근본을 배운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는 고대 책에서 문장을 베끼며 에이지를 쓰고 그 결과 불안정한 에이지를 만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파괴해왔습니다. 겐이 리븐에서 30년 동안 집착한 목표는 결국 드니를 부활시키는 것과 자기 자신을 신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리븐을 탈출하는 것입니다. 겐이 파이어 마블 돔을 만들고 또 233번째 에이지로 연결하는 길을 열어놓고도 그 사실을 숨긴 이유는 탈출의 순간을 오직 자기 뜻대로 통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겐은 고통받은 자이면서 폭군이고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입니다. 그는 자기 연민으로 자기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람입니다.

아트루스(Atrus)는 겐의 아들이지만 겐의 세계관과 정반대 방향으로 성장합니다. 아트루스는 클레프트(Cleft)에서 할머니 티아나에게 길러졌고 열네 살이 되어 겐에게 끌려 드니로 내려갑니다[^Atrus]. 겐은 아트루스를 드니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 교육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세뇌에 가까웠고 아트루스는 그 안에서 아버지의 광기를 깨닫습니다. 겐은 에이지의 주민을 생명으로 대하지 않았고 자신이 썼으니 자신이 소유한다고 믿었습니다. 아트루스가 겐과 결별하게 되는 핵심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아트루스에게 에이지는 구조물이 아니라 삶이 있는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아트루스는 아버지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아버지를 가두게 됩니다. 아트루스의 인생을 바꾼 또 한 사람은 캐서린입니다. 아트루스는 리븐에서 캐트란(Katran)이라는 원주민 소녀를 만나지만 발음을 잘못해 캐서린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Catherine]. 캐서린은 겐의 학생이었고, 겐은 캐서린을 아내로 삼아 기술을 더 통제하려 했습니다. 아트루스는 캐서린과 티아나와 함께 겐을 리븐에 가두고 별의 균열을 통해 탈출하여 미스트로 도망치는 계획을 세웁니다[^Myst Journey]. 이때 아트루스가 떨어뜨린 미스트 연결서가 지구로 흘러가고 그 연결서를 주운 사람이 훗날의 스트레인저가 됩니다. 이 연결은 리븐의 사건이 가족 내부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플레이어의 세계까지 끌어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트루스가 다시 리븐에 발이 묶이는 계기는 두 아들 시러스(Sirrus)와 에이체너(Achenar)입니다. 두 아들은 미스트에서 자라며 여러 에이지를 약탈했고 결국 부모를 속여 캐서린을 크비어로 유인한 뒤 리븐 기술서를 만지게 만들어 리븐으로 보내버립니다. 이 순간 캐서린은 겐에게 붙잡히고 아트루스는 크비어에 갇혀 리븐 기술서를 고치며 시간을 벌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아트루스의 목표가 캐서린 구출과 겐의 영구 포획으로 변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아트루스는 자신의 실수를 고치려는 사람이고, 이 방식이 세계관 전체의 윤리를 대표합니다. 그는 세계를 소유하려 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게 버티게 하려 합니다.

캐서린(Catherine)은 리븐 사람입니다. 캐서린은 겐과 아트루스의 싸움에 휘말린 조연이 이상으로 리븐의 생존 계획을 실제로 실행한 핵심 인물입니다. 그는 겐의 학생으로서 기술을 배웠고 동시에 겐이 리븐 사람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캐서린의 목표는 겐을 이기는 것 뿐 아니라 그의 목표는 리븐의 사람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캐서린이 모이어티와 손잡은 이유도 이런 이유입니다. 모이어티는 겐의 통치에 저항하는 리븐 원주민 집단이고 캐서린은 그들에게 도망칠 장소를 만들어 주려고 했습니다[^Tay]. 그 장소가 타이(Tay)입니다. 캐서린은 겐의 연구실에서 모이어티가 훔쳐낸 반쯤 탄 책을 바탕으로 타이를 다시 쓰고 그 안에 수정(geode)을 넣어 북 윈도우를 만들 수 있게 합니다. 이 수정은 겐의 결함 있는 책을 안정화하는 데 쓰이고 모이어티가 겐의 기계에 의존하지 않도록 해줍니다. 캐서린이 현실주의자인 이유는 그가 리븐을 구한다는 불가능한 목표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리븐이 결국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전에 사람들을 옮길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쪽으로 행동합니다. 캐서린의 일지는 이 모든 계획의 실행 기록이며 플레이어가 후반부로 갈 수 있게 해주는 결정적 단서가 됩니다[^Catherine's Journal (Riven)]. 한편 스트레인저(The Stranger)는 이 이야기의 가장 특이한 존재입니다. 스트레인저는 이름도 과거도 설정되지 않았고 게임 안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이 침묵은 주인공의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곧 주인공이라는 설계 때문입니다. 스트레인저는 별의 균열로 떨어진 미스트 연결서를 우연히 발견했고 그 책을 만져 미스트로 연결된 뒤 다시 아트루스의 의뢰를 받아 리븐으로 들어갑니다[^The Stranger]. 스트레인저는 드니인도 아니고 리븐인도 아니고 모이어티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쪽의 편견에도 갇히지 않은 채 행동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스트레인저는 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입니다. 엔딩에서 스트레인저가 별의 균열로 추락하는 것은 처벌이 아니라 귀환입니다. 별의 균열은 스트레인저를 본래 세계로 안전하게 돌려보낸다는 것이 이야기의 전제입니다[^What does the ending of Riven mean?].

리븐의 스토리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시간을 버는 사람과 시간을 쓰는 사람의 경쟁입니다. 아트루스는 크비어(K'veer)에 갇힌 채 리븐 기술서를 고치며 붕괴를 늦추고 스트레인저는 그 짧은 시간 안에 겐을 가두고 캐서린을 꺼내고 신호까지 보내야 합니다. 이 구조 때문에 리븐의 서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퍼즐을 풀어야만 전개되는 이야기로 설계됩니다[^Riven: The Sequel to Myst]. 프롤로그는 크비어에서 시작합니다. 스트레인저가 아트루스의 작업실에 나타나면 아트루스는 리븐 기술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래된 종이 위에 문장을 덧붙이며 리븐이 당장 붕괴하지 않도록 버티게 하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아트루스는 스트레인저에게 세 가지 임무를 줍니다. 겐을 포획하는 것, 캐서린을 구출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어떤 방식으로든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때 아트루스가 건네는 책이 덫 책입니다. 덫 책은 겉으로는 드니로 돌아가는 연결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가둘 수 있는 감옥이며 다른 사람이 다시 사용하면 안팎이 교환되는 구조입니다. 아트루스가 스트레인저에게 돌아오는 길을 함께 주지 않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진짜 탈출용 연결서를 스트레인저가 가지고 있으면 겐이 이를 빼앗아 리븐을 탈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Question about Riven's story that confused me]. 스트레인저는 리븐에 도착하자마자 겐이 설치한 함정에 걸립니다. 링크인 지점에 케이지가 있고 겐의 경비병 초가 다가와 심문을 시도합니다. 초는 흥분해서 리븐어로 말을 퍼붓다가 겐이 외우게 해둔 드니어 문장을 중간중간 끼워 넣으며 스트레인저의 소지품을 뒤집니다. 초의 손이 덫 책에 닿는 순간 모이어티 정찰병이 기습해 초를 쓰러뜨리고 덫 책과 아트루스의 일지를 가져갑니다[^All-In-One Riven Walkthrough]. 이 장면은 리븐 초반의 중요한 약속입니다. 플레이어는 임무의 핵심 도구를 즉시 빼앗기고 어떤 설명도 없이 이 세계를 걸어서 이해하라는 방식으로 던져집니다.

우리에서 풀려난 뒤 스트레인저는 사원 섬의 회전 방(게이트 룸)을 만나 이 장치를 풀어 금색 대형 돔과 파이어 마블 돔으로 가는 길을 열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다섯 섬 탐험이 시작됩니다. 정글 섬에 가면 마을이 다리를 올려 외부인을 막고 있고 학교에는 드니 숫자를 가르치는 교구가 남아 있습니다. 분화구 섬으로 가면 목재를 파쇄하고 펄프로 끓여 종이를 만드는 공장과 겐의 연구실이 있습니다. 고원 섬으로 가면 지형 모형실, 감시실, 실험 흔적이 있으며 이 모든 장소가 서로의 단서가 됩니다. 이 시점의 플레이는 사건 전개라기보다 세계의 작동 원리를 읽는 단계입니다. 중반은 모이어티와의 접촉으로 방향이 바뀝니다. 스트레인저는 정글 섬 곳곳에 숨겨진 나무 눈 장치에서 드니 숫자와 동물 소리를 연결해 동물 돌 퍼즐을 풀어 숨겨진 통로를 열어 타이(Tay)로 향합니다. 타이에 도착하자마자 스트레인저는 독침에 맞아 쓰러지고 눈을 뜨면 방에 갇혀 있습니다. 잠시 뒤 넬라가 나타나 덫 책과 캐서린의 일지를 돌려줍니다. 이 장면의 의미는 리븐의 스토리가 여기서부터 우연히 살아남는 이방인에서 캐서린과 모이어티가 의도적으로 움직이는 작전으로 변합니다. 넬라가 건네는 캐서린의 일지에는 별의 균열 봉인을 푸는 코드, 겐을 먼저 가둬야 하는 이유, 그리고 주민을 타이로 빼내야 하는 우선순위가 적혀 있습니다. 이때부터 스트레인저는 해야 할 일의 순서를 확정하게 됩니다[^Reading Journals]. 후반은 겐을 만나기 위해 파이어 마블 돔을 가동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스트레인저는 고원 섬의 지형 모형실에서 다섯 섬의 위치와 돔 위치를 확인한 다음 감시 장치에서 색과 기호의 대응을 확인하고 사원 섬 금색 대형 돔의 5×5 격자에 파이어 마블을 올바른 칸에 배치합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리븐 전역의 파이어 마블 돔에 전력이 들어오고 각 섬의 돔 잠금장치를 겐의 일지에 적힌 코드로 열 수 있게 됩니다. 돔이 열리면 233번째 에이지 연결서가 나타납니다[^OFFICIAL RIVEN THE SEQUEL TO MYST HINTS AND SOLUTIONS]. 스트레인저가 233번째 에이지로 이동하면 겐의 사무실 한가운데 매달린 우리 안에 갇힌 채 겐과 대면합니다. 겐은 오랜 독백으로 자신이 변했다고 주장하고 리븐 사람들을 위한다고 말하며 스트레인저를 회유합니다. 그러나 겐은 덫 책을 보고 즉시 의심합니다. 그는 그 책이 진짜로 안전한지 먼저 증명해라며 스트레인저에게 먼저 링크인하라고 요구합니다. 이 요구는 겐의 약점이자 오만입니다. 겐은 덫 책의 원리를 모르고 한 사람이 먼저 들어가 안전하면 나도 들어가겠다는 식으로 연결서를 시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클라이맥스는 이 요구를 역이용하는 순간입니다. 스트레인저가 덫 책을 사용하면 스트레인저가 책 안에 갇히고 겐은 작동한다고 판단하여 곧바로 따라 사용합니다. 그러면 교환 원리에 의해 겐이 덫 책 안에 갇히고 스트레인저가 풀려납니다. 이로써 겐을 포획하는데 성공합니다. 스트레인저는 233번째 에이지에서 감옥 섬 엘리베이터 코드를 알아내고 감옥 섬으로 가서 캐서린을 해방합니다. 캐서린은 덫 책을 가져가며 자신이 모이어티에게 경고하고 주민 대피를 마무리하겠다고 말합니다. 그 뒤 스트레인저는 사원 섬으로 돌아가 망원경을 내려 별의 균열을 다시 열어 신호를 보냅니다. 별의 균열이 열리는 순간 리븐 붕괴가 시작되고 그 대규모 변화를 감지한 아트루스가 링크인합니다[^Reference:Endgame (Riven)]. 캐서린도 사원 섬에 도착해 아트루스와 재회합니다. 캐서린은 주민들이 타이로 안전하게 옮겨졌다고 말하고 스트레인저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아트루스도 스트레인저에게 감사 인사를 남긴 뒤 캐서린과 함께 링크아웃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스트레인저는 무너지는 땅과 함께 별의 균열로 추락합니다. 이 결말은 리븐을 구한 것이 아니라 리븐의 사람을 구한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세계는 사라지지만 사람은 살아남습니다. 이것이 캐서린이 선택한 현실적 승리입니다. 또 다른 엔딩은 리븐이 행동의 순서를 얼마나 잔인하게 중요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줍니다. 겐을 가두고 균열을 열었지만 캐서린을 구출하지 않으면 아트루스는 겐이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캐서린의 운명을 알 수 없다는 한탄을 남기고 돌아갑니다. 반대로 겐을 가두지 않은 채 균열을 열면 겐이 아트루스를 사살하고 초가 스트레인저를 사살하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이 엔딩에서 겐은 드니로 탈출할 가능성을 얻고 리븐의 주민은 대피하지 못하며 아트루스는 죽습니다. 다른 엔딩들도 같은 원리를 반복합니다. 겐을 만난 자리에서 덫 책 사용을 세 번 거부하면 겐이 스트레인저를 총으로 사살합니다[^Not all original endings?]. 겐을 가둔 뒤에 덫 책을 다시 쓰면 겐이 풀려나고 스트레인저가 대신 갇히는 엔딩으로 이어집니다. 덫 책은 완벽한 무기가 아닙니다. 한 번의 부주의로 주체와 객체가 바뀝니다. 별의 균열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이르게 열면 구원은 오지 않고 너무 늦게 열면 세계가 먼저 무너집니다. 리븐은 결국 플레이어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그 우선순위를 끝까지 지킬 수 있는지입니다. 그리고 그 답이 한 문명의 존망을 좌우합니다.

리븐의 퍼즐은 정답 맞히기가 아니라 세계가 남긴 흔적 읽기라고 봐야 합니다. 리븐의 퍼즐은 누군가 플레이어를 괴롭히려고 만든 장치가 아닙니다. 누군가는 통치하려고 만들었고 누군가는 숨으려고 만들었으며 누군가는 탈출하려고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구조를 보면 만든 사람의 욕망이 보이고 해결 방법을 보면 그 욕망의 빈틈이 보입니다. 드니 수 체계 퍼즐은 정글 섬 학교에 있는 교육 장치에서 시작됩니다. 이 장치는 숫자를 가르치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리븐 전체에 걸린 자물쇠의 공용 열쇠입니다. 학교 안의 교구를 조작하면 드니 숫자 글리프가 하나씩 나타나고 플레이어는 그것을 반복해서 보며 패턴을 알아내야 합니다. 숫자 1부터 4까지의 기본 형태가 있고 그 형태를 90도 회전하면 5, 10, 15, 20처럼 5의 배수가 생기는 규칙이 드러납니다. 이 규칙을 조합하면 0부터 24까지의 표현이 가능합니다. 결국 플레이어는 1부터 10 정도의 글리프를 확실히 외우고 회전 규칙을 이해한 뒤 이후에 나오는 모든 코드를 스스로 해독할 준비를 마칩니다. 리븐에서 드니 숫자는 단지 숫자가 아닙니다. 겐이 리븐 아이들에게 드니식 교육을 강요한 흔적이고 드니의 질서를 리븐에 심으려 했던 문화적 지배의 문서입니다. 숫자 체계가 5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은 겐의 집착도 비춥니다. 다섯 섬, 다섯 돔, 다섯 동물, 다섯 단검 같은 구조가 반복되는 이유는 리븐의 세계가 겐이 선호하는 질서 위에서 재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D'ni Numerals]. 한편 동물 돌 퍼즐은 그 드니 숫자를 자연 관찰과 결합시키는 퍼즐입니다. 정글 섬 곳곳에 숨겨진 다섯 개의 나무 눈 장치는 각각 드니 숫자 1부터 5 중 하나를 보여주고 동시에 특정 동물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플레이어는 숫자와 소리를 묶어 1번 소리는 물고기, 2번 소리는 딱정벌레, 3번 소리는 개구리, 4번 소리는 서너, 5번 소리는 와르크라는 대응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글 섬 비밀 동굴에 있는 동물 돌 판에서 그 다섯 동물을 그 순서대로 눌러야 폭포가 갈라지며 타이(Tay) 연결서가 드러납니다. 이 퍼즐의 핵심은 리븐 토착 생태계 지식입니다. 서너가 어디에 있고 어떤 소리를 내는지, 와르크가 어떤 존재인지, 딱정벌레와 개구리가 어떤 환경에 있는지 실제로 관찰하지 않으면 풀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퍼즐은 모이어티가 만든 비밀 통로라는 설정과 잘 맞습니다. 겐의 감시를 피하려면 겐이 무시하는 지식으로 잠가야 하고 겐이 무시하는 지식은 리븐의 자연입니다. 이 세계를 진짜로 보지 않으면 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리븐의 설계 철학이 여기서 처음으로 분명해집니다[^Moiety caves].

파이어 마블 돔 퍼즐은 리븐의 다섯 섬을 하나의 에너지 시스템으로 묶습니다. 겐은 불완전한 연결서 문제를 기술(The Art)의 이해로 고치지 못했고 대신 기계적 에너지 주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파이어 마블 돔 네트워크입니다. 다섯 섬에 하나씩 회전 돔이 있고 사원 섬의 금색 대형 돔에서 전력을 공급해야 소형 돔이 제대로 작동합니다. 플레이어는 고원 섬의 지형 모형실에서 각 섬의 지도와 돔 위치를 확인하고 겐 연구실 쪽 단서로 색과 기호의 대응을 맞추고 사원 섬의 5×5 격자에 파이어 마블을 올바른 칸에 꽂아 전력을 켭니다. 전력이 들어오면 각 섬의 돔 내부에 있는 슬라이더 잠금장치를 겐의 일지 코드대로 맞출 수 있고 그 잠금이 풀리면 233번째 에이지 연결서가 나타납니다. 이 퍼즐은 세계관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겐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겐은 결함을 인정하고 원리를 배우기보다 더 큰 기계와 더 많은 통제 장치를 세워 결함을 억누릅니다. 다섯 섬을 관통하는 배관과 동력 흐름은 겐의 전체주의적 지배 구조 그 자체입니다. 하나의 중심에서 에너지가 나가고 그 에너지를 제어하는 코드는 겐만 알고 있습니다[^Firemarble dome]. 그리고 회전 방(Rotating Room)과 사원 섬 금색 방은 신전이자 자물쇠라는 리븐의 핵심 개념을 가장 먼저 보여줍니다. 회전 방은 사원 섬 지하에 있는 게이트 룸으로 방 자체가 회전하여 다른 통로와 연결됩니다. 플레이어는 버튼을 눌러 방을 돌리고 레버를 전환해 쇠창살 문을 올리며 다리로 이어지는 접근 경로를 확보합니다. 이 장치는 겐이 외부인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설계한 물리적 잠금장치입니다. 동시에 회전 방의 구조물과 장식은 겐을 찬양하는 성상 전시실 역할도 합니다. 이 방을 여러 번 오가며 퍼즐을 풀기 위해 자연스럽게 겐이 보여주고 싶어 한 상징과 흔적을 보게 됩니다. 이동의 통제와 사상의 주입이 한 공간에 겹쳐 있습니다. 리븐에서 길을 잠근다는 것은 단순한 보안이 아니라 통치 방식입니다[^Gate Room].

망원경과 별의 균열 코드는 리븐에서 신호가 퍼즐이 되는 순간입니다. 별의 균열은 원래부터 열린 상처 같은 통로였지만 겐은 그 위에 뷰포트를 설치해 봉인하고 망원경을 얹어 관측 장치로 위장했습니다. 플레이어는 캐서린의 일지에서 얻은 드니 숫자 코드를 사원 섬 맨홀의 다섯 버튼에 입력해 잠금을 해제합니다. 중요한 점은 입력이 끝나도 자동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뚜껑을 들어 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연출은 이건 비밀번호 퍼즐이 아니라 실제 기계라는 리븐의 태도를 강조합니다. 그 다음에는 맨홀 안에서 고정 장치를 빼고, 핸들을 돌려 망원경을 아래로 내립니다. 망원경이 내려가며 뷰포트 유리를 깨뜨리는 순간 별의 균열이 다시 열리고 리븐 붕괴가 시작됩니다. 이 퍼즐은 리븐이 요구하는 마지막 책임을 상징합니다. 코드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균열을 여는 행동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입니다[^Fissure code broken]. 한편 와르크와 감시 체계는 리븐의 공포 통치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보여줍니다. 정글 섬 호수에는 와르크 교수대가 있고 주민이 매달려 희생되는 의식이 벌어졌습니다. 와르크는 물속에서 잠복하다가 먹잇감이 떨어지면 달려드는 존재입니다. 겐의 권력은 이 공포를 의례로 포장해 정당화합니다. 동시에 리븐 곳곳에는 겐의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마을과 공장과 사원은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나뉩니다. 플레이어는 와르크 자체를 직접 통제할 수 없지만 빛과 소리와 미끼 같은 간접 요소가 와르크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이 구조가 무서운 이유는 주민들이 겐의 얼굴을 직접 보지 않아도 겐의 시선과 와르크의 공포가 항상 공간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겐은 사람을 지켜보는 것과 먹히게 하는 것을 함께 설계한 통치자입니다.

분화구 섬의 공장 퍼즐은 리븐 세계가 어떻게 책을 만드는 노동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줍니다. 분화구 섬에는 목재 파쇄기, 보일러, 종이 제작, 잉크 생산과 관련된 시설이 한 줄로 이어져 있습니다. 동력은 호수 중앙의 펌프가 만드는 증기로 공급되고 밸브를 돌려 어느 장치에 증기를 보낼지 선택해야 합니다. 플레이어는 이 밸브를 조작해 잠긴 문을 열고 공장 내부로 들어가 종이와 잉크의 생산 과정을 직접 보게 됩니다. 이 퍼즐이 중요한 이유는 리븐에서 책이 신성한 물건이 아니라 산업품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드니의 연결서는 종교적 유물이 아니라 공장 제품이 되었고 겐은 그 생산을 독점하며 권력을 유지합니다. 분화구 섬이 마을 사람 출입 금지 구역처럼 취급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책을 만드는 공정이 통치의 심장부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부상 열차(마그레브) 네트워크는 섬을 잇는 편의 시설이 아니라 통제된 이동 수단입니다. 리븐의 다섯 섬은 바다로 갈라져 있지만 마그레브는 특정 지점들만 연결합니다. 이 말은 곧 갈 수 있는 곳만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그레브의 승강장과 레일 배치는 겐의 우선순위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공장, 연구실, 사원, 고원 섬 같은 통치 시설은 연결되어 있고 주민이 사는 구역은 차단되거나 우회로로만 접근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마그레브를 타고 이동하면서 리븐이 하나의 섬이 아니라 하나의 통치 시스템으로 설계되었음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통제된 이동이 깨지는 순간이 모이어티 동굴망입니다. 겐이 통제하는 길과 모이어티가 숨겨놓은 길이 충돌하면서 리븐의 퍼즐이 서로 연결됩니다. 이어지는 감옥 섬 엘리베이터 코드는 겐의 사적 공간이 열쇠가 되는 대표 사례입니다. 캐서린이 갇힌 감옥 섬은 겐이 가장 중요한 인질을 보관한 공간입니다. 그 공간을 여는 코드는 공개된 표지판에 있지 않습니다. 플레이어는 233번째 에이지에서 겐의 침실 가까이에 있는 장치를 통해 소리 순서를 듣고 그 소리를 감옥 섬 엘리베이터의 버튼 입력으로 변환해야 합니다. 이 퍼즐은 겐의 성격을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겐은 모든 것을 숫자와 코드와 잠금으로 묶어 관리하지만 그 잠금의 근거는 합리성보다 소유욕에 가깝습니다. 내 것에 가까울수록 잠금은 더 개인적이고 더 은밀해집니다. 그래서 겐의 방에서 나온 소리가 캐서린 감옥의 열쇠와 연결되는 것입니다[^How To Rescue Catherine In Riven (2024)].

모이어티 동굴과 숨은 동선은 리븐에서 세계가 곧 인터페이스라는 감각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모이어티는 지도나 표지판 대신 동굴의 굴곡, 숨은 레버, 관찰 렌즈로만 보이는 표시, 그리고 동물 돌 같은 퍼즐을 사용해 자기들의 길을 보호합니다. 이 길은 플레이어에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이어티 입장에서는 그 불친절함이 곧 안전입니다. 겐의 병사나 감시 체계가 쉽게 따라오지 못하도록 만든 길이기 때문입니다. 플레이어가 동굴을 헤매며 얻는 것은 모이어티의 생존 방식입니다. 리븐에서 숨겨진 길은 숨바꼭질이 아니라 저항의 언어입니다[^Moiety]. 233번째 에이지의 우리(cage)는 대화로 퍼즐을 풀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퍼즐 게임에서 대화는 힌트를 주거나 분위기를 만드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리븐에서 겐과 대화는 실제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겐은 덫 책을 보고도 바로 쓰지 않습니다. 그는 의심하고 시험하고 상대를 흔들어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 합니다. 스트레인저는 겐의 요구를 받아들이되 그 요구가 덫 책의 교환 원리 때문에 결국 겐을 가두는 결과로 이어지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여기서 플레이어가 푸는 것은 암호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겐의 오만, 불안, 욕망이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드는지 읽어야 합니다. 리븐은 이 장면에서 퍼즐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Reference:Gehn, Age 233]. 그리고 덫 책(Trap Book)의 설계 의미는 이 모든 퍼즐의 윤리적 결론입니다. 덫 책은 감옥이면서 거울입니다. 겐을 가두기 위해 만든 도구가 결국 스트레인저를 가둘 수도 있고 캐서린을 구하기 위해 쓰는 도구가 다시 겐을 풀어줄 수도 있습니다. 덫 책은 복수의 기술이 아니라 책이라는 기술이 가진 양면성을 드러냅니다. 리븐의 세계에서 책은 길을 열지만 동시에 길을 닫습니다. 지식을 전달하지만 동시에 지식을 독점합니다. 덫 책은 그 양면성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압축해 놓은 장치입니다. 그리고 이 장치가 마지막에 남기는 질문은 겐을 가두는 것은 정의인가 폭력인가 입니다. 겐을 가두지 않으면 더 큰 폭력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도 우리는 감옥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가, 리븐은 그 불편한 질문을 정답 없이 남긴 채 끝납니다[^Trap Books & How Myst IV Revelation works WITHOUT any retcons].

리븐은 퍼즐이 많은 게임이 아니라 퍼즐을 통해 세계를 소개합니다. 리븐의 퍼즐은 단서를 모아 자물쇠를 여는 기능을 넘어 그 세계가 어떤 폭력 위에 세워졌고 어떤 저항으로 버텼는지를 보여주는 언어입니다. 이번에는 정답이 아니라 의미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퍼즐을 풀 때 실제로 무엇을 통과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통과가 어떤 윤리적 감각을 요구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식민지배의 흔적입니다. 겐은 리븐을 점령한 것 뿐 아니라 리븐 사람의 일상과 생각의 틀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정글 섬 학교의 교구는 그 의도가 가장 노골적으로 남아 있는 장소입니다. 겐이 강요한 드니 숫자는 세계를 읽는 방식의 강요입니다. 리븐 사람의 언어는 남아 있지만 중요한 정보와 통제 장치는 드니의 문자와 숫자로 잠겨 있습니다. 이 구조는 문맹을 만들어 사람을 다루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겐은 기술(The Art)을 자신만의 권리로 만들고 리븐 사람을 그 기술에서 배제했습니다. 그 결과 리븐 사람은 겐의 세계를 스스로 고칠 수도 겐의 세계에서 스스로 떠날 수도 없게 됩니다. 겐이 만든 읽을 수 없는 세계가 곧 자신을 가두는 감옥입니다[^Literacy in Myst Games, Part 2: Riven]. 종교도 같은 방식으로 바뀝니다. 겐은 원래부터 리븐 사람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와르크를 이용해 자신을 신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사원 섬의 겐 사원에서는 주민이 정해진 시간에 모여 과일을 바치고 구형 우리 속에서 겐의 얼굴이 나타나 명령을 내립니다. 주민들은 그 얼굴을 신의 현현처럼 받아들이지만 실제로는 인접한 방에서 겐이 이미저로 투영하는 연출입니다. 이 장면에서 핵심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핵심은 거짓말이 의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겐은 문을 원격으로 여닫고 마그레브가 사원으로 사람을 실어 나르고 와르크 조각상이 제단처럼 서 있는 구조를 통해 자기 통치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만듭니다. 종교는 마음의 영역이지만 리븐에서 종교는 건축과 장비와 동선으로 설계된 시스템입니다[^Temple of Gehn].

노동도 바뀝니다. 분화구 섬 공장은 리븐에서 가장 차갑게 식민지배를 말하는 장소입니다. 겐은 에이지를 지배하려면 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종이와 잉크와 제본을 생산하는 공정을 만들어 리븐 전체를 그 공정에 종속시킵니다. 이는 권력의 물질적 기반입니다. 책을 만드는 노동을 통제하는 자가 이동과 지식을 통제합니다. 겐의 폭력은 항상 총이나 와르크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만들기 위한 강제 체제로도 나타납니다. 리븐의 공장 퍼즐을 풀어 문을 여는 순간 플레이어는 진행을 위해 노동 시스템을 가동하게 됩니다. 이때 플레이어는 자신도 모르게 식민 통치를 작동시킵니다. 리븐은 이 불편한 감각을 숨기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설명할 것은 관찰의 윤리입니다. 리븐은 플레이어에게 관찰을 요구합니다. 단서는 글로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고 소리로 흘러가고 벽에 남아 있고 또 기계의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관찰은 중립적 행위가 아닙니다. 관찰하는 사람은 힘을 갖습니다. 리븐의 주민은 겐의 카메라와 사원의 이미저에 의해 일방적으로 관찰당합니다. 그 관찰은 감시이고 통치입니다. 반면 플레이어의 관찰은 저항의 도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도 결국 남의 삶을 퍼즐의 단서로 읽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와르크 교수대, 감옥, 제물, 노동의 흔적은 원래 누군가의 고통입니다. 리븐은 그 고통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당신이 본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묻습니다. 관찰을 통해 길을 여는 플레이어의 행동은 동시에 타인의 고통 위를 지나가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긴장이 리븐의 윤리입니다. 아트루스의 태도는 이 윤리를 대표합니다. 아트루스는 세계를 소유하려 하지 않고 무너지는 세계를 수리하려 합니다. 그는 에이지의 주민을 실재하는 생명으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그의 관찰은 지배를 위한 관찰이 아니라 책임을 위한 관찰에 가깝습니다. 플레이어는 아트루스의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자주 겐의 시설을 이용해야 합니다. 관찰의 방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플레이어는 겐처럼 필요한 것만 뽑아 쓰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리븐은 플레이어에게 아트루스의 태도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태도를 선택하게 합니다. 세계를 이해하려는 관찰이 되는지, 도구를 얻기 위한 관찰이 되는지 플레이어의 시선이 결정합니다.

겐의 공학과 아트루스의 기술(The Art)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줍니다. 둘 다 문제 해결처럼 보이지만 방향이 반대입니다. 겐은 결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불완전한 책을 만들고 그 불완전을 재료 탓이나 주민 탓으로 돌립니다. 그리고 결함을 원리로 고치지 못하니 힘으로 보정합니다. 파이어 마블 돔은 이 태도의 결정체입니다. 겐은 기술(The Art)의 부족을 공학으로 보충합니다. 겐은 세계를 설득하지 못하니 세계를 억지로 작동하게 만듭니다. 이 방식은 당장 작동합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작동하는 동안 사람은 시스템에 종속되고 시스템이 무너지면 세계 전체가 함께 무너집니다. 아트루스는 반대입니다. 그는 기술서를 고치며 세계가 버티도록 합니다. 그는 힘으로 세계를 눌러 움직이게 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문장 하나를 조심스럽게 다루며 그 문장이 어떤 생명과 어떤 환경에 영향을 주는지 신중해합니다. 이 차이는 단지 성격 차이가 아니라 세계관의 선언입니다. 기술(The Art)은 지배 기술이 아니라 책임 기술이어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리븐이 마지막에 세계가 아니라 사람을 구하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세계를 억지로 유지하려는 겐의 방식이 실패했기 때문에 아트루스와 캐서린은 사람을 옮기는 방식으로 승리합니다. 이어서 신의 연출을 살펴봅시다. 리븐에서 신성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연출의 문제로 보입니다. 겐 사원의 이미저는 그 핵심입니다. 주민은 구형 우리 안에서 나타나는 겐의 얼굴을 보며 겐이 어딘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옆방의 의자에 앉아 마이크로 명령을 내리는 인간 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 연출은 잘 작동합니다. 왜냐하면 겐은 연출을 혼자 만들지 않고 마그레브 동선, 원격 문, 와르크 상징, 제물 의례까지 한 묶음으로 설계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진실을 말하는 대신 무대를 만듭니다. 리븐의 퍼즐은 그 무대를 해체하는 과정입니다. 망원경을 내려 별의 균열을 여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겐이 봉인하고 관리하는 장치로 바꿔버린 균열을 플레이어가 다시 있는 그대로의 상처로 되돌립니다. 신의 무대가 찢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이는 붕괴하는 세계의 비극입니다. 리븐은 결국 사라집니다. 최선의 엔딩에서도 리븐은 무너지고 별의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패가 아니라 구원의 대상이 바뀐다는 점입니다. 리븐에서 세계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수준으로 손상되었습니다. 기술서가 흔들리고 섬이 갈라지고 균열이 열리면 붕괴가 가속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리븐은 답을 사람에게 둡니다. 캐서린은 타이를 준비하고 모이어티는 통로를 만들고 스트레인저는 겐을 가두고 신호를 보내며 아트루스는 마지막 순간에 사람을 데리고 떠납니다. 이 결말은 매우 쓰고 단순합니다. 세계를 살릴 수 없을 때, 남는 윤리는 생명을 옮기는 일입니다.

리븐이 게임이라는 감각을 지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리븐의 퍼즐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퍼즐 자체가 어렵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 세계가 너무 그럴듯해서 플레이어가 문제를 게임 규칙이 아니라 현실의 구조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리븐의 연출은 퍼즐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이 아니라 퍼즐이 성립하도록 만드는 기반입니다. 먼저 말해야 할 것은 프리렌더와 실사 합성의 미학입니다. 리븐은 1997년 게임인데도 화면이 낡아 보이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기술에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사진 같은 공간감을 최대로 끌어올렸기 때문입니다. 배경은 3D로 만든 뒤 프리렌더 이미지로 뽑아내고 인물은 실사 영상으로 촬영해 배경 위에 합성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이 방식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제약이 많습니다. 플레이어가 임의로 카메라를 돌릴 수 없고 이동도 정해진 시점 사이를 건너뜁니다. 리븐은 이 제약을 약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바꿉니다. 시점이 제한되어 있으니 그 한 장면의 밀도를 끝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물의 반사, 습기, 섬의 먼 거리감 같은 요소가 계산된 그림이 아니라 그냥 거기 있는 풍경처럼 느껴집니다. 이 설득력이 쌓여 플레이어는 레버 하나를 당길 때도 게임 오브젝트를 클릭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기계를 조작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리븐 제작 당시에도 렌더링 자체가 큰 병목이었고 수천 장의 이미지와 수 시간 분량의 영상이 들어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실제 같은 장소는 단지 그래픽 품질만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리븐의 미학은 만져질 것 같은 세부에 집착합니다. 예를 들어 리븐의 기계들은 버튼이 크고 볼트가 보이고 녹이 슬어 있고 통로는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습니다. 이런 물성은 플레이어에게 이건 누군가 만들고 쓰던 시설이라는 감각을 줍니다. 이 감각이 퍼즐을 현실로 만듭니다. 퍼즐을 푸는 것은 숫자 맞추기가 아니라, 시설을 이해하는 일이 됩니다. 이어지는 것은 인터페이스를 숨기는 방식입니다. 리븐에는 지도, 퀘스트 목록, 목적지 마커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행은 됩니다. 그 이유는 리븐이 인터페이스가 해야 할 일을 세계가 대신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게임이 다음에 이동할 곳을 표시하지 않는 대신 플레이어는 눈에 띄는 구조물을 기억합니다. 금색 대형 돔, 회전 방, 학교, 교수대, 공장 굴뚝 같은 것들이 표식 역할을 합니다. 길이 막히면 인터페이스로 힌트를 주는 대신 세계가 너는 아직 이 세계의 언어를 못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드니 숫자를 모르는데 코드 입력 장치 앞에 서 있으면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무지 자체가 장애물이 됩니다. 이는 불친절하지만 강한 일관성입니다. 리븐에서 플레이어는 탐정이 아니라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은 처음엔 표지판을 못 읽고 규칙을 모르기 때문에 관찰해야 합니다. 리븐은 그 이방인 감각을 인터페이스로 깨지 않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리븐이 진행의 방향을 직접 말하지 않는 대신 행동의 의미를 분명히 한다는 점입니다. 레버를 당기면 문이 열리는 식의 단순한 기계는 초반에 충분히 등장합니다. 플레이어는 실험을 통해 이 세계는 조작 가능하다는 확신을 얻습니다. 그 다음부터 진짜 퍼즐은 어떤 레버를 왜 당겨야 하는가로 바뀝니다. 인터페이스는 없지만 세계의 반응이 일관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점점 자신만의 지도와 규칙을 머릿속에 만들게 됩니다. 이는 리븐이 원하는 진행 방식입니다. 이어지는 특징은 소리로 만든 퍼즐입니다. 리븐에서 소리는 분위기 연출에만 사용되지 않습니다. 소리는 단서이고 때로는 정답 그 자체입니다. 동물 돌 퍼즐에서 플레이어는 나무 눈 장치가 내는 동물 소리를 구분해야 합니다. 공장에서는 증기의 압력과 기계음이 지금 무엇이 가동되는지를 알려줍니다. 233번째 에이지에서는 겐의 장치가 내는 소리 순서가 감옥 섬 엘리베이터의 코드가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소리가 설명이 아니라 현상으로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누군가 이 소리는 3번이라고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소리를 듣고 반복해서 확인하고, 다른 장소의 장치와 연결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세계가 플레이어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방식입니다. 또 리븐의 공간은 잔향을 가집니다. 동굴은 습하고 울리고 금속 통로는 딱딱하고 비어 있는 소리가 납니다. 이런 음향은 플레이어가 여긴 겐의 시설인지 여긴 모이어티의 은신처인지 감각적으로 구분하게 합니다. 시각만으로는 같은 갈색 돌길처럼 보여도 소리가 공간의 정체를 알려줍니다. 이때 소리는 퍼즐 풀이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세계가 가진 정보층입니다. 이어지는 특징은 텍스트의 무게입니다. 리븐은 말이 적은 게임입니다. 컷신도 길지 않고 인물 대화도 많지 않습니다. 대신 일지가 세계를 이해하도록 합니다. 아트루스의 일지는 프롤로그에서 플레이어에게 임무와 위기감을 주고 캐서린의 일지는 중반에 플레이어에게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렬해 줍니다. 특히 캐서린의 일지는 퍼즐을 여는 열쇠를 포함합니다. 별의 균열 봉인 해제 코드, 신호를 보내는 순서, 겐을 먼저 가둬야 하는 이유 같은 것들이 글로 적혀 있습니다[^Atrus's Riven journal]. 이때 리븐의 텍스트가 특별한 이유는 텍스트가 현실적인 문서라는 점입니다. 캐서린의 일지는 플레이어를 위한 안내서처럼 쓰이지 않습니다. 감옥에서 급히 쓰는 글이고, 넬라에게 전달하라는 지시가 섞여 있고 감정이 흔들리는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정보만 얻는 것이 아니라 캐서린의 시선과 조급함도 함께 읽게 됩니다. 텍스트는 내러티브 도구이면서 동시에 퍼즐의 키 카드입니다. 그 둘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이어서 살펴볼 것은 리븐식 난이도의 정체입니다. 리븐의 난이도는 계산이 어려운 것 만으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리븐은 정답을 묻기보다 이해를 묻습니다. 예를 들어 파이어 마블 돔 퍼즐은 격자에 색을 꽂는 단순 작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섯 섬의 지도 정보, 기호-색 대응, 드니 숫자 해독, 그리고 겐의 인프라 설계 의도를 한꺼번에 이해했는지를 검사합니다. 퍼즐을 풀어내는 능력보다 세계의 구조를 머릿속에 세우는 능력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리븐은 막히면 오래 막힙니다. 하지만 한 번 이해가 생기면, 해결은 몇 초 만에 끝납니다. 이 난이도는 친절과 맞바꾼 결과입니다. 현대 게임은 마커와 하이라이트와 힌트 버튼으로 플레이어의 시선을 잡아 끌어줍니다. 리븐은 그 도움을 최소화하는 대신 플레이어가 스스로 시선을 만들어내도록 합니다. 그래서 리븐을 끝까지 겪은 사람은 퍼즐을 풀었다보다 세계가 이해됐다는 감각을 더 강하게 기억합니다. 리븐이 만드는 몰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완성됩니다.

이제 리븐을 옛날 게임이라는 말로 끝내기 전에 리븐이 무엇을 바꿨는지, 무엇이 남았는지, 무엇이 사라졌는지 살펴봅시다. 리븐 이후 퍼즐 어드벤처 장르는 같은 길을 그대로 따르지 못했습니다. 리븐이 한 번 열어놓은 기준 즉 퍼즐은 세계에 섞여 있어야 한다는 기준은 지금도 좋은 퍼즐 게임을 평가할 때 계속 작동합니다. 리븐이 만든 가장 큰 표준은 환경에 통합된 퍼즐입니다. 리븐 이전에도 퍼즐 어드벤처는 많았지만 퍼즐이 종종 게임을 위한 장치처럼 따로 놓였습니다. 리븐은 반대로 퍼즐을 세계의 생활 시스템으로 숨깁니다. 학교에는 숫자 교육 장치가 있고 공장에는 증기 밸브와 생산 공정이 있고 사원에는 보안과 의례가 합쳐진 동선이 있습니다. 이 구조는 플레이어가 퍼즐을 풀면서 동시에 세계를 이해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리븐의 퍼즐은 맞히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면 열리는 형태로 작동합니다. 이런 통합 설계는 오늘날에도 퍼즐 설계의 모범 사례로 언급됩니다. 퍼즐이 세계관의 결과로 존재해야 몰입이 유지된다는 생각이 리븐을 통해 강하게 각인되었습니다[^Designing and Integrating Puzzles in Action-Adventure Games]. 또한 리븐은 내러티브 전달의 새로운 문법을 남겼습니다. 리븐은 많은 것을 말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보여주고, 남겨두고, 빠뜨립니다. 플레이어는 누군가가 직접 알려주지 않는 정보를 환경의 흔적과 기록물로 조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모이어티가 왜 생겼는지, 주민이 왜 다리를 올려 잠갔는지, 공장 노동이 왜 그 구조로 굴러가는지는 긴 대사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대신 공간의 구조, 배치된 물건, 반복되는 상징을 통해 추론하게 됩니다. 기록물도 중요합니다. 아트루스의 일지와 캐서린의 일지는 설정을 설명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퍼즐을 여는 열쇠입니다. 이 방식은 불완전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남깁니다. 플레이어는 전지적 시점이 아니라 현장에 뒤늦게 들어온 이방인이고, 따라서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리븐은 그 불완전함을 결점이 아니라 서사의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The Art of Environmental Storytelling in Riven: The Sequel to Myst].

현대 퍼즐 게임과의 차이를 말하자면 핵심은 힌트 설계와 편의성입니다. 리븐은 지도, 퀘스트 마커, 목표 안내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세계가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게 만들고 플레이어가 직접 메모하고 기억하게 합니다. 현대 퍼즐 게임은 대체로 더 친절합니다. 상호작용 가능한 물체를 강조하거나 힌트 버튼을 제공하거나 막히면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런 변화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접근성을 높이고 플레이어가 불필요한 시행착오로 지치는 일을 줄여줍니다. 다만 그 대가가 있습니다. 리븐은 불편함 덕분에 내가 진짜로 이 장소를 이해했다는 감각을 강하게 줍니다. 반면 현대 게임은 같은 감각을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편의성을 올리면 몰입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몰입을 만드는 재료가 달라집니다. 리븐은 그 변화의 반대편에 서 있는 기준점입니다. 리븐이 남긴 유산을 더 현실적으로 살펴보면 후대가 계승한 것과 포기한 것이 명확해집니다. 계승된 것은 환경 서사, 통합 퍼즐, 말보다 공간으로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리븐 이후 많은 작품이 퍼즐을 위한 방이 아니라 살아온 흔적이 남은 장소를 만들려 했고 그 안에 퍼즐을 섞으려 했습니다. 반대로 포기된 것도 있습니다. 리븐처럼 힌트를 거의 주지 않고, 진행 순서를 강하게 숨기며 플레이어의 메모와 관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설계는 점점 드물어졌습니다. 리븐은 강한 성취감을 주지만 동시에 많은 플레이어를 막습니다. 그리고 시장은 점점 더 넓은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움직였습니다. 그 결과 리븐의 방식은 장르의 주류가 되기보다는 특정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찾는 특징으로 남았습니다. 다만 리븐이 보여준 설계의 논리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통합 퍼즐은 지금도 좋은 게임의 언어로 계속 사용됩니다[^MYST & RIVEN The World of the D’ni - Mark J. P. Wolf].

왜 다시 리븐을 살펴보는지에 대한 질문은 결국 느린 이해의 가치로 돌아옵니다. 리븐은 빠르게 소비하기 어려운 게임입니다. 길을 잃고 돌아다니고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보고 메모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만듭니다. 이 과정은 현대의 빠른 피드백과 즉시 보상에 익숙한 감각과 반대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반대편에 리븐의 힘이 있습니다. 리븐은 플레이어가 세계를 정복하게 하지 않고 세계에 익숙해지게 합니다. 익숙해지는 동안 플레이어는 단서를 주워 정답을 만드는 대신 의미를 이해하고 판단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구할 수 있는 것이 세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그 결론은 컷신이 주입한 감동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직접 만든 윤리가 됩니다. 리븐을 다시 살펴본 이유는 그 경험이 아직도 드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