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지갑으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로그인 하는 건 나쁜 아이디어는 아님
제가 하는 일이니까 종종 ‘왜 디센트럴랜드 파운데이션 지갑으로 랜드를 옮겨야 할까'같은 NFT 이야기를 하지만 이 단어가 '너한테 팔고 튈거임’의 약자로도 사용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상승장 동안 NFT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또 NFT를 거래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떻게 대했는지, 그리고 현재 어떤 상황인지 생각해 보면 이런 표현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한편 마스토돈 같은 트위터를 대신할 가능성이 있는 탈중앙화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은 종종 언론 매체에 의해 탈중앙화와 함께 거론되는 블록체인과 묶여 설명되곤 합니다.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된 뭔가를 지탱하는 적당한 인프라이기는 하지만 탈중앙화가 항상 블록체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며 블록체인 상에 있는 뭔가가 항상 탈중앙화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마스토돈과 탈중앙화와 블록체인 이야기가 별 장치 없이 한 기사 안에 들어 있으면 피식 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 타임라인에서 이 기사를 본 다른 분이 ‘차라리 마스토돈에 지갑으로 로그인 할 수 있다고 하시지 그래?’ 하고 빈정대시는 글을 보고 피식 거리다가 문득 ‘그렇게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마스토돈을 처음 재미 삼아 사용하기 시작할 때 다른 인스턴스에 가입할지 아니면 인스턴스를 만들지 고민했는데 인스턴스에 따라 규칙이 꽤 달라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우선 인스턴스마다 가입 조건이 있거나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은 현대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당연한 것입니다. 가령 차별, 위협, 혐오발언 금지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한편 가상자산과 같은 주제에 대한 글을 금지하는 곳도 있었는데 이런 제한을 받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디든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귀찮은 문제를 만들기 마련인데 가령 네이버 카페에서 운영진들에 의해 항상 일어나는 귀찮은 일들이 여기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고 심지어 트위터조차 새 소유주에 의해 온갖 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또 기왕이면 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 시스템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마스토돈 인스턴스를 따로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스토돈 관리자 기능 중 가장 신나는 것은 커스텀 이모지를 설정하는 겁니다. 트위터에 비해 엄청나게 다양한 커스텀 이모지를 설정해 이야기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트위터에서도 공통 이모지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상대가 어떤 기계를 사용하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나온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자유롭게 이모지를 사용해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마스토돈에서 커스텀 이모지는 플랫폼에 관계 없이 내가 등록한 이미지로 나타났고 다른 인스턴스에 올라온 글에서 재미있는 이모지를 발견하면 저장해서 내 인스턴스에 등록하면 다음 부터는 내가 글 쓸 때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마스토돈을 사용하시는 분들은 이 행동을 ‘이모지를 훔쳐서 사용한다’고 하곤 했는데 사용한 단어에 비해 그리 부정적인 뉘앙스는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트위터의 새 소유주가 유료로 이름 옆에 아이콘을 붙여준다며 아이콘 목록을 공유했길래 그 아이콘을 그대로 저장해다가 커스텀 이모지로 등록해 이름 옆에 붙였는데 이 상황으로 ‘파란딱지가 유효하려면 트위터가 인증기관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어야’라는 글을 작성하며 잠깐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커스텀 이모지도 분명 누군가 만든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런 이미지를 지금처럼 아무 댓가 없이 주워서 사용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분명 댓가 없이 이미지를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커스텀 이모지는 분명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써서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데 그 사람에게 댓가를 지불하기는 커녕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 감사조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지만 트위터 블루 옵션 중 프로필 아이콘에 NFT 이미지를 사용하는 옵션이 있었습니다. 트위터 계정에 지갑을 연결하면 지갑을 스캔 해 프로필에 사용할 수 있는 NFT를 나열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면 프로필이 변경됩니다. 이렇게 변경한 프로필은 나머지 프로필이 원형으로 나타나는데 비해 육각형 모양으로 나타나고요. 개인적으로 NFT 이미지를 프로필에 사용하는 아이디어는 쿨하지만 그 아이콘이 육각형 모양으로 나타나는 아이디어는 쿨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NFT는 이미지의 제작자가 누구인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상황에 따라 제작자에게 댓가를 지불할 수도 있는 꽤 괜찮은 시스템입니다. NFT 이미지를 프로필에 사용함으로써 프로필에 아무 이미지나 무단으로 사용하는 대신 제작자를 존중하거나 댓가를 지불했음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이건 어느 정도 자기만족에 가까우므로 이를 육각형으로 구분해서 보여주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탈중앙화된 시스템을 지향하는 마스토돈과 블록체인을 별 이유 없이 연결한 덜떨어진 기사를 빈정거리는 의미로 마스토돈에 지갑 주소로 로그인하라는 글을 읽었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마스토돈이 아니더라도 온라인에서 이미지를 사용할 때 블록체인 지갑을 사용하는 것은 나쁜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새로운 자격 증명 - 아이디, 패스워드 - 을 만들지 않아도 로그인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플랫폼에 의존하거나 이메일을 밝히지 않아도 로그인 할 수 있고요. 또 지갑은 근본적으로 서로 약속하고 인정한 가치를 전송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단 지갑을 만들었다면 유료 서비스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반 위에서 사진, 그림, 커스텀 이모지를 NFT로 만들어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하거나 만든 사람에게 댓가를 지불하고 인스턴스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유료화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여전히 블록체인 지갑을 통한 로그인은 사용자에게 적대적입니다. 이 상황을 완화하려는 여러 플레이어들이 난립해 플레이어들 각각이 제시하는 방법은 납득할 만 하지만 이 많은 방법들을 모두 지원하는 로그인을 보면 오히려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난립한 플레이어가 좀 정리되고 또 블록체인 스스로도 덜 사용자 적대적인 사용 방법을 제공한다면 비록 지금은 빈정거리기 위한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지만 실제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지갑을 연결하거나 아예 지갑 주소로 로그인하도록 지원하는 건 분명 쓸모가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