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선택지

대화 중 선택지는 어떤 게임에 의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현대에 주로 만드는 장르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현대의 선택지

한동안 자전거를 굉장히 열심히 타던 때가 있었습니다. 미니벨로를 하나 산 다음 원래 그 자전거를 탈 거라고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긴 거리, 험한 환경에서 자전거를 탔는데 다행히 그런 사람이 저 한 명 뿐이 아니어서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며 자전거를 타곤 합니다. 이 자전거는 접으면 당혹스러울 정도로 작게 접혔기 때문에 자전거 출입을 금지하는 신분당선, 평일 자전거 출입을 금지하는 여러 지하철, 지방을 오가는 고속버스, 온갖 기차에도 편안하게 들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덕분에 장거리 대중교통을 통해 먼 거리를 이동한 다음부터는 자전거를 타고 자유롭게 이곳 저곳을 느릿느릿 돌아다니는 새로운 여행 방법을 알게 됩니다. 한강에서 이렇게 작은 자전거를 만나면 보통 가볍게 짧은 거리를 탈 것 같은 분들이 타고 계시기도 했지만 일단 자전거를 싣고 수도권에서 한참 떨어진 장소로 이동하고 나면 갑자기 다들 눈빛이 바뀌며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큰 도로를 용감하게 달려 보통 큰 자전거들도 잘 찾아오지 않는 높다란 언덕을 올라 다니며 언덕 꼭대기에 있던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는데 그런 눈빛을 받을 때마다 나름 우쭐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이 자전거는 오래 전에 영국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지금처럼 세련된 모양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작게 접을 수 있는 메커닉은 지금과 거의 같았고 자잘한 수정이 이루어지며 현대에 다다랐고 오래 전에 특허 기간이 만료되어 지금은 여러 회사에서 접히는 메커닉이 이와 동일한 여러 자전거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이 자전거를 만들었던 영국의 본사 역시 계속해서 자전거를 수정, 보완하고 또 강력한 고급화 전략을 통해 누구나 똑같은 자전거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여전히 나름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특히 이 자전거에서 마음에 드는 점은 여러 부품을 정말 고집스러울 정도로 잘 바꾸지 않는다는 점인데 오랜 세월에 걸쳐 수정 보완을 거듭하고 또 고급화 전략에 따라 신제품을 생산하면서도 여간해서는 최신 트렌드를 거의 반영하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오래 전 처음 도입한 내장 허브기어는 척박한 환경에서 장거리 주행을 할 때도 신뢰할 수 있게 동작하지만 그 무게나 동력 손실을 고려하면 현대에는 더 나은 선택지들이 있지만 여전히 똑같은 방식을 고집합니다. 또 프레임 자체를 회전 시켜 접는 방식은 이 프레임이 펼쳐진 상태로 강한 힘을 받더라도 프레임이 다시 접히지 않도록 만드는 굉장히 투박한 클램프 고정 메커닉을 사용하는데 이 역시 현대에는 원터치 방식에 비슷한 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을 법한 방법들이 있지만 고지식할 정도로 오래된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어떤 사람들은 서드 파티 제품으로 몇몇 부품을 변경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편리하고 아름답지만 함께 장거리 라이딩을 나가면 여지 없이 문제를 일으켜 우리 모두의 일정을 망치는 주범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