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본질
종종 어떤 의도를 가지고 본질과 다른 이름을 붙여 부를 때가 있습니다. 의도를 달성하기 위함이겠지만 종종 본질을 흐리게 만들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널리 통용되지만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지 않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준중형. 사실 소형과 중형 사이의 애매한 크기 자동차를 일컫는 말로 이해하고 있고 소형보다는 약간 크고 중형과 비슷해 보이지만 중형보다는 약간 작거나 몇몇 옵션이 적으면서도 본격적인 중형보다는 저렴한 카테고리의 자동차를 일컫는 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소형도 아니고 중형도 아닌 모호한 정의를 이용해 소형보다는 비싸지만 중형에 비해서는 부족한 상태라도 준중형이라고 정의려고 우기는 경우도 있어 보여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반전세라는 말 역시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반전세는 전세와 비슷하게 보증금 액수가 크고 월세가 적은 임대차 계약을 말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월세 계약입니다. 때문에 반전세라고 말하기에는 전세 관련 법률에 따를 수 없고 월세라고 하기에는 보증금 액수가 커 보증보험, 대출 따위에 서로 다른 규칙이 적용됩니다. 이 역시 보증금 크기에 따라 붙인 이름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인 규칙은 월세이기 때문에 본질을 흐려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엔지니어들도 뭔가에 올바른 이름을 붙이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대에도 과학계에서는 반복 제어 변수를 i
, j
와 같은 식으로 단순하게 붙이는 관습이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고 개인적으로도 처음 프로그램 언어를 배울 때 반복 제어 변수에 저런 이름을 붙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코드가 길어지고 코드를 작성하고 나서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저런 의미 없는 반복 제어 변수를 보고 코드를 시 읽는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반복 제어 변수를 기술적인 관점에서 그저 반복문 안에서 반복을 제어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하면 의미 없는 알파벳을 붙여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반복 대부분은 반복의 대상이 되는 맥락이 있고 만약 반복 제어 변수 이름에 그 맥락의 이름을 사용하면 시간이 지난 다음 코드를 읽을 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령 데이터베이스에 쿼리를 날린 다음 돌려 받은 결과 뭉치의 전체 수량을 센 다음 그 횟수만큼 반복한다면 반복 제어 변수에 알파벳 한 글자를 사용하는 대신 AffectedUsers
처럼 무엇을 반복하는 것인지 정확한 명칭을 사용할 수도 있는데 시간이 지난 다음 코드의 맥락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사용하는 여러 단어들이 있는데 종종 사람들이 소프트웨어 개발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좀 더 관리 업무에 친근함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몇몇 용어들을 고쳐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프로젝트는 규모가 크지 않아 오피스가 있던 층에서 가장 큰 회의실에 프로젝트 구성원 전부가 모일 수 있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 회의실에 모여 각 부서의 부서장이 지난 한 주 동안 수행한 업무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진행한 더 큰 맥락의 업무와 기능을 설명하며 공유할 만한 내용이 있을 때 이를 추가로 모두에게 말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조금 딱딱한 언어로 말하면 이는 회의 형식을 한 주간 보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식은 프로젝트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만 실상 이 회의가 끝나면 각 부서의 누군가가 프로젝트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했던 프리젠테이션 문서를 고위 의사결정자나 경영진을 위한 문서로 고쳐 작성한 다음 실제 주간 보고를 진행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주간보고라고 하면 뭔가 딱딱한 느낌이 들 것 같다고 생각한 고위 의사결정자 중 누군가가 이 회의의 이름을 주간 정리 회의라고 이름 붙였고 적어도 보고 보다는 정리가 더 나은 단어처럼 보였습니다.
애초에 의도 역시 프로젝트 구성원 모두가 금요일 오후 슬슬 더 이상 집중하기 어려워지고 퇴근 생각이 간절한 시간대에 잠깐 모여 한 주 동안 프로젝트 전체에 걸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전해 듣는 자리로 이 곳에서 이번 주를 정리한 다음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퇴근하도록 고려한 것입니다. 이름 때문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모두들 편안하게 회의실에 들어와 잡담을 나누고 약간 가볍게 작성된 프리젠테이션 문서와 각 부서장님들의 가벼운 발표를 들은 다음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한 주를 마무리할 수 있어 크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누군가 그런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프리젠테이션 문서에 웃긴 상황을 만들어내는 버그 영상을 가져오거나 웃긴 짤을 가져오기 시작했는데 이런 시도는 대체로 사람들을 잠깐 웃게 만들고 또 문제를 만든 당사자가 ‘아놔. 오늘 가기 전에 고쳐둘께' 라고 말하게 만들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 주간정리회의는 내용보다는 서로 누가 더 적절한 짤을 가져와 사람들을 웃기는지 서로 경쟁하는 자리로 목적이 살짝 변합니다. 그 결과 처음에는 주간정라회의 자리에서 공지사항으로 조금 더 심각한 이야기도 무리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몇 주 뒤에 회사가 우리들이 낸 결과물과 향후 계획을 보고 받기를 원하며 이 자리에 내놓을 결과를 신경 써서 준비해야 한다는 공지를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웃긴 짤이 난무하며 다들 거기 집중한 자리에서 조금 더 본격적인 공지를 하기는 어려워집니다.
앞서 말했듯 이 자리의 본질은 프로젝트 구성원 전체를 향한 주간 업무 보고였고 이 맥락을 벗어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초기에는 그 이름 덕분에 프로젝트 구성원들이 딱딱하지 않게 회의에 참여하고 가볍게 서로 상황을 공유하는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냈지만 시간이 지나자 목적이 바뀌어 서로 웃긴 짤을 보여주기 위해 경쟁하는 자리가 되었고 이런 분위기의 변화는 정작 이 자리에 주간 보고로써 동작할 때 무리 없이 포함할 수 있었던 보다 중요한 공지와 목표를 공유하는 기능을 약화시킵니다. 중요한 공지는 주간정리회의에 나오지 않게 되었는데 덕분에 중요한 소식을 금요일에 듣고 주말 동안 이제 이 변화한 상황과 새로운 목표를 어떻게 수행해야 할 지 머리를 식히며 생각해본 다음 다시 월요일에 모여 일을 시작하는 대신 중요한 공지를 주간정리회의를 피해 월요일에 전달하고 다들 당장 이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회의실에 모여 무거운 공기 속에 바로 방법을 도출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만약 지난 금요일에 미리 소식을 들었다면 다들 주말 동안 생각해보고 월요일 회의를 보다 빨리 끝낼 수 있었을른지도 모르고 또 그 회의에서 더 나은 방법을 도출해낼 수 있었을른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일련의 상황 변화의 기저에는 주간보고라는 본질적인 의미를 가진 이름 대신 이를 흐리는 이름을 사용해 사람들이 본질을 흐리는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만든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지난 권고사직을 겪은 곳에 참여해보니 똑같은 주간회의를 자랑하기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 이 집도 똑같은 실수가 일어나겠구나’ 싶었는데 이미 첫 회의에 참여해본 다음 실수가 서서히 일어나지 않고 이미 실수가 만연해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전에 경험한 본질과 동떨어진 잘못된 이름을 가진 회의처럼 웃긴 짤을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그저 각자의 부서에서 수행한 업무를 미리 준비한 문서에 작성한 다음 그 문서를 띄워 놓고 이를 설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각자 자기 부서가 수행한 업무 중심으로 설명하다 보니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직군들이 모여 하나의 통합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약해진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가령 기획에서는 마일스톤 목표에 해당하는 기획 문서를 생산해 냈다는 이야기를 주로 했고 프로그램에서는 실제 구현된 결과물을 영상으로 보여주었으며 아트에서는 그 주에 생산된 에셋을 주로 보여주었는데 상대적으로 문서들은 별 관심을 이끌어내기 어려웠고 구현된 결과물은 사람들의 집중을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아트에서는 주로 원화가 큰 관심을 받습니다. 이들이 관심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함께 일하는 이유는 완성된 결과를 만들기 위함이지 각자 눈에 더 그럴듯해 보이는 결과를 가져와 마치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말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집중시키기 위함은 아닙니다.
애초에 그런 상황을 의도한 것이 전혀 아니지만 이 회의가 진행될 금요일 오후가 되면 팀마다 상당히 바빠졌는데 서로 프로젝트 구성원들에게 보여줄 ‘자랑거리’를 별도로 가공해 내기 위해 시간을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아트 에셋 중 주로 원화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면 시간이 지나자 인터페이스 구동 영상이 관심을 받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실제 엔진에 올려 동작하는 모습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영상으로만 제작한 인터페이스가 동작하는 모습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언리얼 엔진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항상 겪곤 하는 인터페이스 위에 자연스러운 3D 모델을 올리기 어려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영상 속에서는 언리얼 엔진의 한계를 무시한 결과물이 아름답게 동작했고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회의에서 본 수준의 결과를 기대했다가 실제 구현된 결과를 보고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아트 부서에서는 이 회의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하기 시작했는데 서로 실제 게임에서는 구현 불가능한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어 와 보여주기 시작했고 이는 부서 안의 단위 팀 내에서 오직 이 회의 때 그럴싸한 가능성을 보이는데 집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이 회의를 준비하느라 우리는 한 주에 4일 동안 일하고 나머지 하루는 거의 회의를 준비하는데 집중하는 모양새로 일하기 시작했고 누군가 이 회의의 존재가 일할 시간을 부족하게 만든다는 의견을 냈지만 아주 쉽게 묵살되었습니다.

최근 위키의 계층을 관리하는 방법 이야기를 했는데 이 때 이야기하지 않은 비슷한 맥락의 경험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위키의 계층구조가 어떻게 되든 말든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위키는 연결을 통해 관계를 만드는 기록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이상 계층 구조가 정리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제가 원하는 문서에는 똑같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층 구조의 정리는 제 관심사가 아니었는데 위키를 위키로 받아들이는 저 같은 사람보다는 위키를 과거 디렉토리와 파일로 문서를 관리하던 습관의 연장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기에 이번에는 군말 없이 계층 구조 정리 업무를 받아들여 수행합니다. 그런데 이 일에서 한 가지 재미있었던 점은 마일스톤 계획과 결과
라는 계층 하위에 마일스톤 계획과 포스트모템 문서들을 모아뒀는데 처음 제안한 이름은 이게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원래 제안한 이름은 별 생각 없이 마일스톤 계획과 평가
였습니다. 의도는 우리들이 게임디자인 부서의 일부로써 마일스톤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이에 따른 결과를 평가해 다음 마일스톤을 대비하고 또 전체 개발 과정에서 우리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문서들이 여기 포함되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계획과 실행, 그리고 결과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 평가라는 단어가 보스의 걱정을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이는 앞서 예를 든 본질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개인적으로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회의 이름을 사용하는 맥락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스에 따라 좀 더 친근한 이미지를 주려는 보스가 있는 반면 좀 더 엄격한 모습이나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이는 보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보스는 저를 포함한 구성원들에게 좀 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령 자신을 직책 호칭 대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부탁하시곤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의도를 이해했지만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물론 북미나 유럽에서 자연스럽게 상대의 성을 부르는 문화가 있지만 아시아 지역에는 성을 부르는 문화가 없고 또 한동안은 이름을 직접 부르는 행동이 썩 좋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되었고 덕분에 프로젝트 전체에 걸쳐 나이에 관계 없이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를 수 있어 사람들을 쉽게 부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몇몇 직책자들은 그 직책을 대화에 포함할 때 의미를 가질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두 단계 이상의 단위 조직을 포함한 중간관리자 정도 되면 함부로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를 경우 여러 가지 부작용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가령 단위 조직 구성원 중 여러 단계 위 보스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수 있는데 이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직책 호칭을 부르지 않을 경우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사람들은 그 사람 자체를 보스와 비슷한 권한이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거나 반대로 보스에게 직접 해야 할 말을 그 사람에게 하는 등의 자잘한 부작용이 생기곤 했습니다. 한번은 작은 회사의 대표님과 한 부서의 부서장님이 서로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부서장님이 대표님을 가리킬 때 호칭 없이 이름을 그냥 부르며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어쩌면 대표님은 이런 호칭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을 수 있고 또 부서장님 역시 그랬을 수 있습니다. 서로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 알았고 아주 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보는 사람들은 대표님에게 적절한 거리감, 적절한 권한 따위를 느끼지 못하거나 대표님에게 가야 할 정보나 건의가 대표님 대신 그와 친한 부서장님께 가는 등 잘못된 결과를 초래합니다. 때문에 나이가 비슷하거나 개인적으로 친하다 하더라도 함부로 자신의 보스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직책 호칭 없이 부르는데는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제 보스는 제가 제출한 컨플루언스 계층구조 정리 제안을 보고 딱 한 가지를 지적하셨는데 바로 마일스톤 계획과 평가
에서 ‘평가’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평가를 우리들이 마일스톤을 계획하고 수행한 다음 포스트모템을 통해 굉장히 건강한 방법으로 잘 된 점과 잘못된 점을 나열하고 다음에는 더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그 행동 자체라고 생각해 이를 ‘평가’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 평가는 우리들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우리가 수행한 마일스톤 결과에 대한 평가를 의도한 것입니다. 하지만 제 보스가 보기에 이 평가는 마치 ‘인사평가’와 같이 개개인을 평가하는 단어처럼 느껴지셨던 모양입니다. 평소에 보스가 구성원들에게 안전한 분위기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는 맥락을 알고 있기에 설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았고 제가 먼저 ‘아! 이거 인사평가의 평가와 비슷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군요!’ 라고 말했고 다행히 이 생각은 보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보스가 구성원들에게 안전한 업무환경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계신지 잘 알기에 이 글에 설명한 본질과 동떨어진 이름이라는 말을 할 것도 없이 바로 ‘평가’를 ‘결과’로 수정하겠다고 하고 그대로 실행합니다.
이번 제 행동은 지금까지 설명해 온 맥락에 따르면 준중형, 반전세와 마찬가지로 본질과 동떨어진 이름을 통해 사람들이 본질에 집중하는 대신 이름이 의미하는 바에 집중해 본질의 의도를 흐리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 결과로 좀 딱딱한 상태가 되더라도 본질을 흐리지 않는 정확한 이름을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가령 주간정리는 그 본질에 충실한 ‘주간보고’가 되어야 하고 우리들의 포스트모템은 ‘평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이름을 결정하는 입장이라면 이렇게 이름을 붙인 다음 오히려 실제 진행되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서로를 블레임 하지 않도록 중간에서 버퍼 역할을 하는데 집중할 겁니다. 이전에도 그렇게 행동해 왔기도 합니다.
다만 이번에는 그럴 입장이 아니고 또 안전한 환경을 구축한다는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기에 본질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용어를 받아들였습니다. 대신 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이전에 경험해 온 비슷한 사례를 모아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번 61호에도 지난 2주간 공유한 이야기를 함께 보내 드립니다.




프로젝트의 모든 구성원들은 서로 추구하는 목표가 다릅니다. 가령 게임디자인 직군의 상당수는 프로젝트의 흥망성쇠와 자신들의 직업 안정성이 하나로 묶여 있기에 스스로 원하지 않더라도 프로젝트의 완수와 런칭, 고객과 대면 등을 목표로 삼기 쉽습니다. 하지만 다른 직군은 꼭 그렇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문득 깨닫는 요즘입니다. 프로젝트의 완수가 회사 생활의 핵심 목표가 아닌 분들과 어떻게 하면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이에 묶여 있는 저희 직군의 직업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저에게는 쉽지 않은 고민입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접어 두고 오랜만에 만난 동네 친구 좀 보고 가세요. 이 날은 마침 그리 바쁘지 않아 고양이 알러지가 있어 이 친구와 놀아준 왼손은 이후 몇 시간에 걸친 가려움을 겪었고 이 친구와 함께 숨을 쉰 덕분에 호흡기계통이 한동안 오동작했지만 뭐 어때요. 한참이나 말도 안 통하는 친구에게 제 고민을 털어놓았는걸요.
신비롭게도 응급실이 없는 나라에 살고 계십니다. 만약 스스로의 생활을 통제하실 수 있으시다면 아플 일, 다칠 일 만들지 마시고 안전하게 살아 남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또 두 주 뒤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