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스트랜딩 설정의 우아함에 대해서
한번은 서바이벌 장르 게임을 개발하는데 잠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프로젝트가 터지던 날 이후 같은 회사 안에서 재 배치 받은 팀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팀에서는 그리 오래 있지 않아 따로 이력에 남기지는 않고 있습니다. 다만 이 팀에서 고민한 주제들은 지금 생각해봐도 흥미로워서 가끔 떠올려 보곤 하는데 결정적인 이유는 도무지 적당한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 프로젝트 역시 중단되었는데 과연 이 때 고민하던 주제는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였을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그래서 이 고민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게임 데스스트랜딩 설정의 대단함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중단된 모바일 수집형 장르를 뒤로 하고 재 배치 된 부서에서는 모바일 서바이벌 장르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서바이벌 장르를 생각하면 맨 먼저 돈 스타브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게임에 좀 익숙해질 즈음에 멀티플레이 버전이 나왔는데 게임에 익숙한 사람과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적당히 섞인 상황에서 게임은 단지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우리를 한없이 차갑게 대했습니다. 유효한 플레이를 하는 사람 소수가 피똥 싸며 의식주를 간신히 마련해 오면 게임을 배우는 중인 나머지 사람들이 순식간에 이를 소모해버렸고 이 과정이 반복되자 어려운 시대에 가족을 부양하던 가장의 심정을 헤아렸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게임 세계는 우리를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마다 우리들은 대책 없이 죽어 나가기를 반복했고 결국 참여한 사람들 대다수가 흥미를 잃어 멀티플레이 파티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서바이벌 게임은 플레이어를 어디까지 괴롭혀야 할 지에 대한 딜레마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용자는 게임을 통해 경험을 얻고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게임 바깥의 유저는 게임 규칙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같은 상황에서 더 익숙하게 플레이 하며 게임이 제공하는 여러 컨텐츠에 도전하며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게임 속 플레이어는 게임 속 세계와 함께 점차 강해져 더 강한 적과 싸우고 더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하며 기본적인 욕구를 안정적으로 충족하고 탐험과 새로운 목표 발견, 스토리 진행 등 고차원적인 활동을 하게 됩니다.
어느 순간 플레이어는 더 이상 죽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게임 세계가 플레이어를 아무리 극한으로 몰아붙여도 플레이어가 게임을 떠나지 않는다면, 또 게임이 수학적으로 플레이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면 플레이어는 결국 성장해 안정적인 상태에 도달합니다. 여느 게임에서는 이 상태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목표이지만 서바이벌 장르에서는 플레이어가 이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은 게임이 더 이상 서바이벌 장르로써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서바이벌은 시시각각 나를 죽이려 드는 세계에 대항해 머리를 쥐어 짜 살아 남는 장르입니다. 살아 남는 것이 목표일 뿐 성장해 세계가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을 만큼 강해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장르가 영속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바이벌 장르는 플레이어를 항시 죽도록 괴롭힙니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괴롭히는 여느 장르에 비해 이 장르에서는 직접적으로 플레이어를 더 가난하게 만들고 실제로 죽입니다. 죽기 직전의 긴장감은 즐겁지만 실제로 죽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게임이 나를 더 이상 방법이 없을 정도로 괴롭힌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유저는 게임을 떠나게 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부드럽게 굴면 서바이벌 게임으로써 유효한 플레이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돈 스타브 역시 플레이어가 불사의 상태가 되어 더이상 서바이벌 메커닉이 동작하지 않는 상태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 집요하게 플레이어를 괴롭혔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섬을 가라앉혀 뗏목에 아이템 몇 개를 싣고 간신히 도망치도록 만들었는데 뭘 만들어 놓기만 하면 괴물이 나타나 다 부숴버리는 통에 슬슬 게임에 식상해질 무렵이어서 이런 메커닉이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유저가 게임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 괴롭히지만 동시에 식상해지지 않도록 집요하게 괴롭히는 건 개발을 계속해 나가면서 적당한 수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이 모바일에서 동작하는 순간 고민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고객이 모바일 게임에 기대하는 것, 게임에 집중하는 정도, 게임을 통해 우리가 내야 하는 수익 등을 고려할 때 서바이벌 장르로는 지금까지 한 모든 고민에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결국 개발이 더뎌지며 어려움을 겪고 결국 프로젝트가 취소된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으리라 예상합니다.
게임 데스스트랜딩의 장르를 개인적으로는 ‘워킹 시뮬레이터’라고 생각합니다. 걷는 플레이를 너무 잘 만들어 작은 지형 차이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경험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의 맥락에서 이 게임에 가장 주목하며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플레이어가 이룩한 성과를 자연스럽게 없애도 납득할 수 있는 설정입니다. 데스스트랜딩은 처음부터 독특한 세계관에 의한 설정을 잘 설명하고 시작합니다. 트레일러에서도 비를 맞으면 큰일 나며 비를 맞은 모든 사물이 순식간에 낡아 없어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먹을 것을 먹이며 살려야 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플레이에 따라 자원을 축적해 세계에 건축물을 세워 이후 플레이를 좀 더 빨리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플레이는 서바이벌 게임의 고민거리와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플레이어가 충분한 자원을 갖춰 게임이 제시하는 어려움을 더 이상 어려움으로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계에 내리는 비가 자연스럽게 이 고민을 해결합니다. 세계에 방치한 건축물과 탈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낡아서 사라집니다. 더 많이 낡기 전에 자원을 투입해 유지보수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지만 여기에 자원을 요구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에서 무한정 강해질 수 없습니다.
또한 돈 스타브에서처럼 무작정 강한 괴물이 나타나 눈앞에서 그동안 내가 이룩한 결과물을 한번에 다 찢어 파괴하는 정 떨어지는 경험 대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전투를 피하려고 비가 내리는 지역을 피했다가 나중에 다시 와 보면 비를 맞아 낡거나 이미 사라진 건축물을 만날 뿐입니다. 똑같이 플레이어가 갖춘 자원을 없애버리는 행동이지만 데스스트랜딩 쪽은 덜 폭력적이고 더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도 가끔 필드에 유저들이 뭔가를 설치하게 만들고 싶을 때 이 설치물이 언제까지 유지되어야 할지, 또 유효기간이 끝날 때 어떻게 사라지도록 할지, 또 사라지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유지보수 해야 할 지를 고민하면서 모바일 서바이벌 게임을 만들 때의 파멸적인 기억과 돈 스타브의 어쩌면 좀 폭력적인 경험과 데스스트랜딩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느낀 납득할 수 있는 우아한 파괴를 차례로 떠올리게 됩니다.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민의 최소 수준을 데스스트랜딩을 잡고 보니 너무나 까마득한 우아함에 한숨만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