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의 운영과 운명

플랫폼 홀더의 어떤 행동은 그 바깥에 있는 잠재 고객들을 열 받게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플랫폼의 운명입니다.

플랫폼의 운영과 운명

지금까지 만들어 본 기반 장르를 MMO로 하는 거의 모든 게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외부에 닫혀 있습니다. 고객은 인게임에서 규칙에 맞춰 행동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지만 그 여러 경험과 결과는 근본적으로 우리들이 설계한 규칙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MMO 게임을 개발해본 경험이 많지 않던 시대에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종종 저질렀고 작은 실수는 실제 세계와 마찬가지로 짧은 시간 안에 게임 전체에 퍼져 수습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작은 실수에는 지속적으로 신규 고객들이 유입될 거라는 황당할 정도로 낙관적인 예상에 기반해 성장구간 퀘스트에 반드시 다른 플레이어와 파티를 만들어야만 진행할 수 있는 부분을 넣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여러 게임에 걸쳐 비슷한 실수를 했고 한동안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단 성장 구간을 개발하고 나서 시간이 흐른 다음 서비스를 시작하면 개발팀은 주로 목소리가 가장 큰 고객들이 외치는 방향을 주로 바라보고 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마일스톤 계획은 이미 반짝이는 기능으로 완전히 가득 차 기존의 문제를 수정하거나 우리가 현재 올바르게 행동하고 있는지 확인할 틈 같은 것은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덕분에 서비스를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 초반 성장 구간에 고객이 거의 유입되지 않는 시점이 당연하게도 찾아오면 귀중한 신규 고객들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 볼 겨를도 없이 초반 성장 구간에서 이탈해 버리지만 이 사실을 눈치 채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프로젝트 전체가 가장 목소리가 큰 고객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또 당장 이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다 보면 그저 잘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 초반 구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봐야만 문제를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실수에는 인게임 전체에 화폐단위를 하나만 만들어 놓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 초기 MMO 게임은 고객들로부터 월 단위로 요금을 받았기 때문에 이 설계가 얼마나 이상하고 또 얼마나 위험한지 눈치채기까지 여러 해가 걸린 것 같습니다. 사실 현대적인 MMO 게임이 그 근거를 둔 MUG나 또 다시 이들이 근거를 둔 MUD로 갈수록 게임 내 경제시스템에 대한 개념이 점점 더 희박해져 판타지 세계에 통용되는 화폐라고는 골드 하나면 충분하다고 너무 쉽게 생각했고 이 시대 상용 게임의 요금제에 의해 이게 문제라는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으며 특히 문제가 드러날 만한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음에도 이 시대에는 현대에 상상하기 어려운 ‘백섭’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했기 때문에 애초에 화폐단위가 단 하나 뿐이라는 사실이 문제임을 눈치채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화폐단위가 하나 뿐이어서 게임 내 재화가 골드 밖에 없다면 사실 경제시스템을 설계하는 입장에서 게임 내 경제시스템은 뭐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이 시대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인게임 경제시스템을 설계하고 구축하고 운용할 사람을 별도로 구인하곤 했지만 현대와 비교하면 이들에게 요구하는 역량은 황당할 정도로 단순했습니다. 그저 엑셀을 좀 다룰 수 있고 중등 교육과정에서 산수를 완전히 포기하지만 않았으면 경제시스템을 설계할 역할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게임 전체에 걸쳐 화폐라고는 오직 골드 하나 뿐이었고 골드 이외에 그나마 가치를 가지는 것은 플레이어 개개인이 획득하는 경험치 뿐이지만 대부분의 게임에서 경험치는 거래 가능하지 않으므로 경제시스템에 편입 시켜 생각할 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게임 세계 전체에 걸쳐 화폐가 오직 골드 하나 뿐일 때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는 굳이 여러 게임의 사례를 들 필요 없이 실제 세계에서 똑같은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들을 살펴보는 쪽이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유로존은 경제 수준이 다른 여러 나라들이 단일 화폐인 유로화를 사용하는데 이론적으로 광범위한 경제시스템에 걸쳐 단일 화폐를 사용하는데다가 쉥겐협약에 기반한 자유로운 국경 통과와 합쳐져 EU 영내에서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똑같은 화폐를 사용할 수 있어 엄청나게 편리할 겁니다. 현대에는 여러 가지 지불 수단이 있어 서로 다른 나라에서 지불을 시도하더라도 국가 별 화폐를 준비할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에서 지불을 위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은 그 나라의 화폐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로존 안에서는 굳이 현대적인 지불 수단을 고려하지 않아도 그냥 유로화 자체가 똑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는 환율에 의한 변동성을 제거해 유로존 안에서 재화와 용역의 이동을 매우 편리하게 만듭니다. 다만 현대에 가까워지며 현대적인 지불 수단이 생기며 이런 장점은 느린 속도로 희석 되는 중이어서 장점에 비해 단점이 두드러지는 중인데 가장 큰 문제는 유로존 내 국가들마다 경제 수준이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가령 독일은 적어도 현대 이전까지는 유로존 안에서 경제수준이 높은 국가에 해당했습니다. 만약 유럽이 여전히 서로 다른 화폐를 사용했다면 경제수준이 높은 국가의 높은 물가수준은 환율에 의해 독일과 거래하는 국가에 곧바로 전파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독일에 수출하려는 독일보다 경제수준이 낮은 국가는 자국의 낮은 통화가치를 이용해 가격 경쟁력을 얻어 경제수준을 올릴 가능성이 있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이렇게 발전합니다. 그런데 같은 화폐를 사용하는 순간 환율 차이가 사라지고 독일과 거래하려는 국가들은 서로 다른 경제수준에 의한 물가 차이가 같은 화폐단위에 의해 즉시 전파되는 상황을 맞습니다. 화폐단위가 다를 때는 경제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가 독일과 거래한 다음 더 많은 자국 통화로 교환해 자국 경제를 부양할 수 있었지만 서로 같은 유로화를 사용하는 이상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애초에 이런 효과는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는 ‘덜 발전된’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치팅이라고 규정하고 단일 통화를 사용해 거래하는 모습이 더 ‘현대적’인 모습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경제 수준이 서로 다른 여러 국가들이 같은 화폐를 사용하면 경제 수준이 서로 다른 국가들 사이에 물가 수준이 쉽게 전파되어 문제를 일으키고 이 상황에 개입해 완화하거나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가령 독일에서 커피 한 잔이 2유로라고 할 때 독일 국민들은 커피 한 잔에 이 정도 비용을 지불하는데 무리가 없는 경제수준을 유지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독일보다 경제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에서는 임금이 낮고 원자재 비용이 낮을 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 역시 낮아 더 낮은 가격으로 커피를 팔 수 있습니다. 만약 다른 화폐단위를 사용했다면 어쩌면 유로로 환산할 때 1유로 미만의 가격에 커피 한 잔을 팔 수 있었을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국가 간에 같은 통화를 사용하면 경제수준이 높은 국가의 더 높은 물가가 쉽게 주변으로 전파됩니다. 가령 독일에서 2유로인 커피 한 잔의 가격은 독일 밖에서 1유로 미만이 될 수 있어 독일 관점에서는 독일 밖에 나가 커피를 사는 것이 이익입니다. 그런데 이는 독일 밖에서 독일 안으로 들어가 더 높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말과 같기 때문에 사람들이 경제수준이 더 높은 지역으로 이동해 일하고 경제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으로 동일한 화폐단위의 돈을 가져와 물가를 올립니다. 잠깐 동안 외부에서 들어온 더 많은 돈이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경제수준에 비해 물가가 높아져 국가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질 소득을 감소 시키는 결과를 일으키며 이는 경제수준에 맞지 않은 높은 물가, 경제수준에 맞는 임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일자리의 붕괴 같은 결과로 이어져 결국 부가 경제수준이 더 낮은 국가에서 더 높은 국가로 이전되는 효과를 일으킵니다.

똑같은 상황이 골드 하나만을 화폐 단위로 사용하는 가상 세계에서 똑같이 발생합니다. 가상 세계에 국가의 구분은 없지만 경제 수준이 서로 다른 여러 플레이어들은 있습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한 플레이어들에게 한 병에 1골드인 포션은 꽤 비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환경은 그런 포션을 항상 구입하기를 요구하지 않는 수준으로 예쁘게 조정 되어 있기는 하겠지만 이들에게 포션 가격이 그리 편안하지는 않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시작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들은 마을 앞 몬스터들로부터 얻는 보상으로는 자신이 시간 당 소모하는 자원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높은 보상을 주는 지역과 컨텐츠를 플레이 하게 됩니다. 이들은 그 댓가로 많은 골드를 얻고 또 이 경우 역시 이들이 던전 깊은 곳에서 상대하는 강한 몬스터들이 훨씬 많은 골드를 드랍 하는 대신 이들로부터 더 많은 공격을 받아 포션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하도록 예쁘게 만들어져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들 관점에서 한 병에 1골드에 판매하는 포션 가격은 한번에 몇 백 병을 구입하더라도 별 부담이 되지 않을 가격이라는 사실 역시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화폐를 사용하거나 서로 상호작용에 제한을 받는 국경 안에서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초창기 MMO 게임의 보다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거의 제한 없이 상호작용 할 수 있었고 한 쪽의 부가 다른 플레이어에게 쉽게 이전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높은 물가 역시 쉽게 이전 되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이 시대에는 플레이어 간의 직접 거래, 거래소를 통한 거래 등 플레이어들이 직간접적으로 아이템을 골드와 교환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유로존에서 단일 화폐를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게임이 고장나지 않고 잘 동작하더라도 성장 구간을 마친 고객들이 획득하는 더 많은 골드는 게임 전반의 물가를 끌어 올려 게임을 처음 시작한 고객들의 플레이를 방해합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 아무도 이런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일단 성장 구간은 극단적으로 신규 고객의 유입이 없다는 가정 하에 만들어집니다. 게임을 서비스 하기 전부터 그런 우울한 상황을 떠올려야만 하는 건 썩 즐거운 경험이 아니지만 아무리 MMO 게임이라도 항상 세계의 모든 장소에 다른 사람들이 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누군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항상 다른 플레이어를 도울 의사를 가지고 있지도 않을 겁니다. 반드시 파티 상태를 요구하는 멍청한 퀘스트는 더 이상 적어도 메인 퀘스트 라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 여러 사람이 플레이 하는 모양을 만들기를 원하는 이벤트는 이 이벤트에 사람들이 별로 참여하지 않는 상황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사람들의 참여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이벤트가 알아서 정리되도록 설계합니다. 가령 어떤 게임에서 필드에 종종 원래 그 필드에 나타나지 않는 강력한 몬스터들이 플레이어들에게 많은 보상을 뿌릴 각오를 하고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필드에는 아무도 없거나 게임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플레이어들 뿐이어서 강력한 이벤트 몬스터에게 덤벼들었다가 한 방에 바닥에 눕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반이어서 사망 패널티가 느슨하다는 점에 근거해 바로 일어나 몬스터들에게 다시 달려들기를 반복하지만 여간해서 이벤트가 끝날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이 제안하는 높은 보상도 이미 이 필드를 오래 전 벗어난 플레이어들에게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수준입니다. 이런 상태로 시간이 좀 흐르면 갑자기 사람 모양을 한 NPC들이 어디선가 몰려와 몬스터들을 물리치고 결국 이벤트를 정리해 이 이벤트에 참여하며 바닥에 눕기를 반복한 플레이어들에게 얼마 안 되는 보상을 뿌립니다. 이런 이벤트는 이제 필드에 오직 관찰자만이 존재하며 아무도 참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결코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또 유로존처럼 경제수준이 다른 여러 주체들이 모인 곳에서 같은 화폐를사용하는 짓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 디아블로 이모탈 재화구조를 살펴봤는데 이 즈음 여러 게임에 대해 항상 옳은 말을 하는 영어를 사용하는 한 유튜버가 이 경제구조를 ‘톡식’하다고 평가하며 열변을 토하기도 했지만 저런 사람들이 결국 유로존 같은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가늘게 뜰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여러 경제수준이 다른 여러 주체가 같은 공간에서 플레이 하도록 만들어진 게임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유로존이 겪는 문제를 완화하거나 해결하고 있습니다. 먼저 플레이어 사이에 일어나는 재화의 이동을 차단하거나 제한합니다. 플레이어들 사이에 직접 재화를 주고 받거나 바닥에 아이템을 드랍하면 일정 시간 동안 유지되어 다른 플레이어가 획득할 수 있도록 한 게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경제수준이 서로 다른 플레이어 사이에 재화 이동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게임의 어느 한 곳에서는 당연한 높은 물가 수준이 게임 전체에 퍼져 게임 전체를 인플레이션 상태로 만들어 버립니다. 한때 이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시대에는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소위 ‘하수구’ 메커닉을 설계하는데 병적으로 집착했고 또 이를 지나치게 집행한 나머지 가상 세계 전체에 걸친 디플레이션이 일어난 사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플레이어들 사이에 일어나는 직접적인 재화 이동을 완전히 차단하거나 주식 거래 시스템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무기명 거래소 메커닉을 통해 제한적으로 재화 이동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근본적으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합니다. 다음으로 게임의 각 시점에 통용되는 화폐를 다르게 만들어 서로 다른 경제 시스템 사이에 재화 교환이 근본적으로 일어나지 않게 하거나 재화 교환이 일어날 때 가치를 크게 떨어뜨립니다. 가령 초반 지역에서는 골드를 주 거래 수단으로 사용하지만 뒤로 갈수록 던전에서는 이전에 획득할 수 없었던 다른 보석을 드랍하기 시작합니다. 보석은 분명 이 보석을 받아 주는 별도의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고 시간 당 효율을 고려할 때 골드로도 가치를 환산할 수 있지만 이를 초반 지역에 가서 골드 상점에 직접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간단한 트릭이지만 이제 인게임 경제는 마치 경제수준이 서로 다른 나라들이 서로 다른 화폐를 사용해 서로 간에 외환 시스템에 의한 통제가 일어나는 것과 아주 비슷한 상태가 됩니다.

게임이 대부분 닫힌 경제에 근거해 설계되며 이는 MMO 개발 경험이 별로 없던 시대에 했던 극도로 치명적인 실수에 어느 정도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닫힌 경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오래 전에는 꽤 흔하게 일어나던 현대 관점으로는 어처구니 없는 치명적 실수 이야기를 한참 했습니다. MMO 게임이 주로 닫힌 경제 모양으로 설계되어야 하는 간단한 이유는 경제가 외부로부터 닫혀 있어야 고객들의 플레이 경험을 의도한 대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상점에서 한 병에 1골드에 판매하는 포션 이야기를 했는데 깊은 던전에 들어가 강력한 괴물을 상대하는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들의 높은 체력에 어울리는 포션은 포션을 파는 상점에서 100골드에 판매하는 대신 던전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상점에서 1루비에 판매하도록 합니다. 그러면 100골드가 초반 지역에 나타나 플레이어들 사이에 직접 일어나는 거래에 근거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서로 가치가 같더라도 100골드로 고급 포션을 구입할 수 없고 또 1루비로 포션 100병을 구입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경험의 제한에 의해 플레이어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MMO 장르에서도 경제 시스템을 망가뜨리지 않고 각각의 플레이어가 자신의 상태에 맞는 경험을 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전 인게임 경제시스템을 외부에 공개하려 하고 이 특징을 게임의 장점으로 내세우려는 프로젝트에 얼마 동안 참여하며 게임 경제를 외부에 공개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해 봤고 지금까지 설명한 온갖 이상한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런 특징에 반응하는 고객들은 게임을 통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경험에 집중하기 보다는 게임을 통해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게임 외부 세계 관점에서 부의 이전에 더 관심이 있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하기에 그들은 경제 시스템에 그리 밝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간단히 경제 시스템이 외부에 열려 있는 게임이 유지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례를 지구 반대쪽의 여러 나라들이 겪는 상황으로부터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런 닫힌 경제에서 볼 수 있는 MMO 게임의 특징은 이들이 자기 스스로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수행해야만 하는 데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경제시스템을 외부와 완전히 단절 시킨 상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경제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고 또 이에 근거해 플레이어들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이들의 각 시점에 맞는 경험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경제시스템을 외부에 노출시키려는 계획을 가졌던 그 프로젝트는 심지어 외부로부터 에셋이 유입되고 이 에셋에 근거한 플레이를 가능하게 하려는 위험한 계획도 함께 가지고 있었고 이와 함께 만약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MMO 게임 관점에서 초보적인 수준의 사람들이 만든 동작하는 제품이 존재한다면 우리 게임으로부터 나간 캐릭터와 에셋에 근거해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우리 캐릭터들이 동작하게 만들 계획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계획에 반응한 고객들은 한편 우리들의 캐릭터를 구입할 때 캐릭터의 에셋을 함께 얻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해 왔는데 이 질문을 받은 커뮤니티 매니저가 자신이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음을 깨닫고 개발팀에, 정확히는 저에게 질문을 해 왔습니다. 제 관점에서 우리는 경제 시스템을 외부에 노출 시키려는 사실상 달성 불가능하거나 유로존스러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우리의 존재 의미는 근본적으로 플랫폼 서비스에 가까우며 플랫폼 관점에서 비록 경제 시스템이 개방되어 있다 하더라도 에셋의 유통마저도 그렇게 만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순간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존재 이유가 없어집니다. 때문에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에셋과 이에 기반한 플레이어 캐릭터의 등장을 환영하지만 우리 캐릭터들이 외부로 나갈 때 이들이 기반한 실제 에셋이 함께 나가는 상황을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플랫폼으로써 들어오는 재화와 에셋을 막지 않지만 반대 방향으로는 움직이게 만들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제 관점에서는 당연하고 또 원론적인 답변을 했는데 커뮤니티 담당자가 제 답변을 그대로 고객에게 전달하려고 해서 이를 막느라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과거 트위터가 그 이름을 바꾼 다음 기존 고객들을 열 받게 만드는 여러 가지 행동을 하면서 텍스트 기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시장에 기회가 찾아왔고 여러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나타납니다. 이들 중 가장 의미 있는 실적을 내고 있는 플레이어는 메타의 스레드처럼 보이는데 이들은 이미 스스로 구축해 놓은 계정 시스템에 기반해 아주 빠르게 사용자를 확장해 나갔고 실제 사용자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거대한 계정 수를 달성합니다. 또 이들은 분산 소셜 네트워크 프로토콜에 기반해 마스토돈을 비롯한 여러 서비스가 기반한 이른바 페디버스와 호환되도록 하면서 기존 페디버스 사용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하지만 이 행동은 스레드를 플랫폼이라는 관점으로 보고 있던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존에 알려진 분산 소셜 네트워크와 통신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스레드 자신이 페디버스에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비교할 때 비슷한 수준이어서 이들의 도움이 절실할 때 의미 있는 결정입니다. 하지만 이미 스레드 스스로가 페디버스의 어느 플레이어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플레이어이며 사실 페디버스의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은 입장에서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페디버스 사용자들은 별 제한 없이 스레드의 글을 읽을 수 있었는데 물론 이는 페디버스 사용자들을 편안하게 만들겠지만 스레드 입장에서는 실컷 거대한 플랫폼을 구동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쏟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 돈의 일부가 자기 자신의 고객들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 서비스 외부 사용자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당연히 메타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페디버스 사용자들을 기쁘게 만들 이상한 상황이 유지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고 예상 대로 스레드는 페디버스로 글이 나가는데 딜레이를 뒀고 또 페디버스의 여러 서비스에 호환되지 않는 기능을 추가하기 시작합니다. 이 결정은 페디버스 사용자들을 열 받게 만들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스레드가 플랫폼 서비스이며 플랫폼 서비스가 고객들의 경험을 의도 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에 닫힌 모양으로 만들거나 이미 외부와 연결되었다면 외부와 호환되지 않는 더 나은 경험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고객을 플랫폼 내부로 이동 시키기 때문에 스레드 관점에서 올바른 결정입니다.

스레드도 온라인 게임도 고객들의 경험을 의도에 맞춰 통제하기 위해서는 외부에 닫힌 모양이어야만 합니다. 이는 게임 업계가 지난 오랜 세월에 걸친 바보 같으면서도 치명적인 실수에 의해 회사의 막대한 자본을 사용하면서 간신히 얻은 교훈입니다. 만약 어떤 플랫폼 서비스가 외부에 자신들의 서비스를 개방하려는 행동을 한다면 이들이 충분히 똑똑하지 않아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거나 이들이 충분히 똑똑해 전략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둘 중 하나입니다. 만약 전자라면 그 서비스는 오래 가지 못할 겁니다.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쓰고 있지만 그 돈이 자신의 고객들을 위해 사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고객들의 경험을 의도에 맞게 유지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후자라면 머지않아 외부에 개방된 상태에서 외부에 호환되지 않는 기능들이 의도적으로 추가되며 외부 고객들을 화나게 만들어 이들이 서비스 내부로 진입할 겁니다. 한때 트위터가 자신에게 접근하는 모든 API를 공개해 자신이 직접 벌어야 할 돈을 서드파티 클라이언트 제작사들이 버는 완전히 이상한 상황을 오랫동안 방치한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저 자신도 서드파티 클라이언트에 이용 요금을 지불하며 광고가 나타나지 않는 쾌적한 타임라인을 읽을 수 있었지만 트위터 입장에서 이 상황은 멍청할 뿐 아니라 거의 주주에 대한 배임 행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환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고 또 이제 그 회사는 더 이상 배임 할 주주가 없는 개인 회사가 되었지만 플랫폼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올바른 의사결정을 했다고 평가합니다.

온라인 게임, 스레드, 트위터 같은 플랫폼은 그런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객들의 사용 경험을 의도에 맞게 통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서비스는 여러 관점에서 외부에 닫혀 있어야만 합니다. 어쩌면 그렇지 않은 상태로도 고객들의 경험을 의도에 맞춰 유지할 수 있을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평균 미만의 지능을 가진 제 입장에서는 그런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저와 비슷한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서비스를 만든다면 어떤 이유에서 일시적으로 외부에 서비스를 연동하더라도 이는 목적을 가진 일시적인 행동이어야 하며 목적을 달성하면 연동을 철회하거나 연동 수준을 제한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고객들의 경험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플랫폼은 그런 운명이고 온라인 게임, 스레드, 트위터 모두 그런 의사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페디버스 사용자 입장에서 스레드가 여러 가지 제한을 가하는 점은 좀 짜증 나겠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은 플랫폼 홀더이며 그들의 태생과 운명에 맞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MMO들이 바보 같았던 거고 또 과거의 트위터가 이상했던 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