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스턴트 월드에서 개인화된 경험
MMO 게임은 이전까지 혼자서 겪던 여러 경험을 게임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겪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컴퓨터 게임 역사에 완전히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하고 있어요. 이제 내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완전히 바닥부터 어렵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상대 역시 내가 경험을 할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니까요. 바닥부터 이야기하는 대신 바로 경험으로부터 내가, 우리가 느낀 경험을 바로 나누면 됐습니다. 이렇게 얻은 것이 있는 반면 아쉬운 점도 생겼는데 여러 사람이 같은 공간에 일어나는 사건을 동기화 하기 때문에 개인화된 경험을 하기는 좀 더 어려워졌습니다. 스토리에 큰 영향을 주는 거대 보스가 모든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내 퀘스트 진행 상황에 따라 NPC가 나에게 말을 거는 장면을 잘 만들기는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스턴스 던전을 발명했습니다. 던전에 주로 나 혼자 들어가 내 게임 진행에 맞춰 개인화된 경험을 합니다. 퍼시스턴트 월드에서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는 환경 변화 같은 장치들을 개발자 입장에서 좀 더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습니다. 개인화된 경험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MMO의 핵심 경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필드를 돌아다녀 봐도 사람들을 마주치기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더 큰 보상을 주고 더 멋진 개인화된 경험을 하게 해주는 인스턴스 던전에 들어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게임을 플레이 하고 있지만 필드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성장구간 퀘스트를 자동진행 하느라 그냥 필드를 달려서 통과할 뿐입니다. 사람 모양을 하고 있지만 봇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게임 망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동안은 퍼시스턴트 월드에서 큰 보상을 주는 이벤트를 만드는데 집중했습니다. 시간에 따라 높은 보상을 주는 보스가 스폰됩니다. 이 보스는 개인이 처치하기는 버거웠기 때문에 필드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이 장치는 한동안은 잘 작동했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MMO 게임이지만 여전히 플레이어들은 개인화된 경험을 원하며 그와 동시에 MMO 게임을 플레이하는 느낌을 원할 뿐 아니라 개발자 입장에서 아주 난해한 다른 플레이어캐릭터들과 함께하면서도 나에게 더 유리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싶은 요구사항을 함께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대에는 아주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성장구간의 자잘한 퀘스트 수준으로 퍼시스턴트 월드에서 개인화된 경험을 주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퍼시스턴트 월드지만 몇몇 오브젝트가 플레이어캐릭터의 퀘스트 진행에 따라 개인화 됩니다. 이들은 나를 제외한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동기화되지 않으며 종종 나에게만 보이고 나만 인터랙션 할 수 있기도 합니다. 가령 누군가 잃어버린 짐보따리를 찾아 주는 퀘스트를 하고 있다면 평소에는 없던 짐보따리가 나에게만 보이거나 평소에는 마을에 있던 NPC가 필드에 나타나 나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식입니다.
여전히 인스턴스 던전에서 하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주변 환경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조금씩 퍼시스턴트 월드에서 개인화된 경험의 범위를 늘려 가고 있기는 하지만 기획 관점에서 해결해야 할 아주 골아픈 문제들이 있고 이들은 시간제한이 있는 개발 중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개인화된 대상과 인터랙션 할 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야 할 지 정책을 결정해야 합니다. 위 짐보따리 사례에서 짐보따리에 인터랙션 하는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좀 이상하게 보일 겁니다. 마치 허공에 인터랙션 하는 것처럼 보이겠죠. 짐보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니까요. 이 광경을 어색하다고 판단하면 인터랙션 중인 짐보따리를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보이게 해야 하지만 그럼 평소에는 필드에 버려져 있던 인터랙션 할 수 없던 짐보따리가 이를 찾는 퀘스트를 수행 중일 때만 인터랙션 되어야 합니다. 어색하다고 평가한 동작을 개선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평소에는 마을에 있던 NPC가 필드에 나타나 대화를 하는 것도 흔하긴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양자와 달리 플레이어캐릭터는 게임 상에서 한번에 한 곳에만 존재할 수 있으므로 마을에 그 NPC가 여전히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이더라도 이를 관측할 수 없으니 어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맞겠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퀘스트에 의해 던전 안에서 NPC와 만났지만 그 던전 안에서 포탈을 열고 마을에 돌아가면 그 마을 안에도 여전히 이 NPC가 있을 수 있고 이건 분명 이상해 보입니다. 플레이어캐릭터는 게임 상에서 한번에 한 곳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 항상 참은 아닐 수 있어 이런 상황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또 마을과 달리 필드는 몬스터들이 돌아다니는 안전하지 않은 곳입니다. 내가 NPC와 대화 중이든 말든 몬스터들은 플레이어캐릭터를 공격합니다. 몬스터와 전투가 일어나지 않을 범위에 NPC를 배치하거나 NPC 주변에 볼륨을 치고 그 안에는 몬스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온갖 이상한 예외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고작 NPC 한 명을 개인화시켜 필드에 나타나게 하는 것 뿐인데도요.
퍼시스턴트 월드에서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같은 경험을 주는 핵심 요소인 전투에 관여하는 대상을 개인화하려면 일은 좀 더 복잡해집니다. 위 스크린샷에서 곰 살코기를 놓는 경험은 나에게 개인화된 경험이지만 이 퀘스트의 다음 스텝은 전투 가능한 몬스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몬스터는 내 개인화된 진행으로부터 나타났지만 이 몬스터마저 개인화하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이 몬스터와 전투하는 내 모든 동작 역시 동기화되므로 몬스터가 동기화되지 않는다면 나는 허공에 전투하게 됩니다. 또 퍼시스턴트 필드에서 플레이어캐릭터와 몬스터만 분리해 격리된 전투를 치르게 하기도 어렵습니다. 또 전투 행동은 내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 한 마리 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몬스터에게도 영향을 끼칩니다. 때문에 어디까지 동기화되고 어디까지 개인화된 상태로 처리할 것인지 규칙을 만들기 아주 어렵습니다.
때문에 두 가지 결정을 하게 됩니다. 오브젝트와 인터랙션 하는데까지는 개인화하지만 이 결과로 나타나는 몬스터는 개인화하지 않습니다. 내 개인화된 행동의 결과에 의해 나타난 몬스터는 모든 사람에게 보이며 다른 몬스터와 똑같이 전투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 상 내가 힘겹게 상대할 몬스터였지만 지나가던 다른 사람이 손쉽게 잡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개인화된 경험 측면에서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다른 한 가지 결정은 플레이어캐릭터를 주변 공간과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입니다. NPC가 플레이어만을 위해 움직여야 하거나 다른 플레이어캐릭터나 몬스터로부터 방해 받지 않는 경험을 퍼시스턴트 월드에서 플레이 하던 도중에 해야 한다면 퍼시스턴트 월드에서 이를 수행하기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하기보다는 개인화된 경험을 위해 짧은 시간 동안 플레이어캐릭터를 퍼시스턴트 월드에서 격리해 퍼시스턴트 월드와 똑같이 생긴, 하지만 아무도 없는 인스턴스로 이동시켜 개인화된 경험을 하게 합니다. 이 안에서는 전투를 하든 뭘 하든 플레이어 한 명에게 개인화된 경험을 하게 할 수 있고 퍼시스턴트 월드와 격리되어 있어 다른 플레이어캐릭터나 몬스터들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원하지 않는 인터랙션으로부터 안전합니다. 다만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질테니 좀 어색하기는 하겠지만요.
현대에 널리 쓰이는 MMO 게임에서 개인화된 경험을 만드는 방법은 이정도입니다. 근본적으로 더 강하게 개인화된 경험을 주고 싶다면 이 게임의 장르가 MMO여야 할 지를 고민해봐야 하지만 보통 어른들의 사정 상 MMO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개인화된 경험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 이 방법들은 느리지만 개선될 겁니다. 개인화된 경험을 마치면 다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 굉장한 경험을 나누는 세계로 돌아가 게임을 지속할 수 있을 테고 그건 분명 오직 개인화된 경험만을 주는 장르와 비교할만한 경험일 겁니다.